아버지의 시력 / 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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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시력 / 한향

아버지의 시력 / 한향



땅의 시력은 틀림없다
될성부르지 않으면 키우지 않는다
모소 대나무는 사 년을
매미는 칠 년을 보살핀다


땅의 품에서 나온
모소 대나무는 보란 듯 우뚝 서서 그늘을 만들고
매미는 세상의 아픔에 앉아 함께 운다


아버지는 시력이 영 신통치 않으셨다
기약 없는 떡잎을
이십 년 넘도록 키웠다


이십 년이 지나면
모소 대나무처럼
매미처럼
세상으로 나가 이름값 할 줄 아셨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까지도
탐탁지 않은 떡잎을 더듬더듬 꼭 잡고
신앙처럼 믿고 또 믿으셨다



한향,『아무르강에 그리운 사랑 있네』(문학의 전당,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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