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문협시모음/그도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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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시 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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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문협시모음/그도세상

진안 문협 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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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허호석

내일이 있으므로 오늘이 있는 거지

만남의 인연을 연정으로 다듬어
함께 가고자 손잡아준 님이여!

새날의 이정표가 있을 그 어디 쯤에
사랑을 저축할 둥지를 향해
동행하는 내일의 길 있으니 행복인 걸

들꽃처럼 우리 소망
하늘 한켠 걸어놓았지
언 듯 접혀진 날들 펼쳐보면
세월의 바람에 긁힌 자국 많지만
구비마다 젖은 눈으로도 웃어 보이는
님이 있으므로 내가 있는 것을

높고 낮은 구불 길인들
동행하는 내일의 길 있으니
어디라도 외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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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산하

허호석

금강 상류 햇살의 첫 동네 강마을
그 날의 삶처럼 구불구불한 논두렁 밭 두렁 길
어허, 가난도 좋았던 옛 생각 그리운 산하여

하얀 물소리가 징검다리 건너뛰며 놀던 강변
그 여울물소리에 누원 하늘을 펼쳐보았던 모래밭도
바짓가랑이 마를날 없이 내달리던 들판
새참자리 불러주던 손짓도 정겨원지

아! 영원히 물에 잠긴 고향, 망향정에 오르면
여지저기 찔레꽃으로 피었던 첫사랑의 추억도
더 넓은 하늘 날고파 보내고 남던 고개
그 하는 받든 까치집은 새날은 망부석이었다.

용담호 물에 묻고 가슴에 묻고 12,600
실향민들이여! 옛 생각 외로운 나그네인들
고향 처마 끝에 걸어두었던 고향하늘만은 영원하리니
그리운 산하 청산을 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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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아니면

허호석

세상에 원래 길이 있었으니
오직 하나님 말씀 가운데로 내주신
한 길 구원의 이정표를 찾아가나이다.

가는 길 구불 길인들 높은 곳은 진리로 넘고
낮은 곳은 말씀으로 넘어 가는 길
성령의 불빛을 밝혀 주소서

은혜 아니면, 은혜 아니면……

이름 모를 풀꽃인들 하늘 향해 피어 있으니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고 바르게 걷도록
주여 붙잡아 주소서

겉과 속잉 위장된 손톱 및 온갖 허물
때는은 이 참회하는 마음에 밑줄을 그어주소서
하얀 성령의 눈을 내려
헌신짝도 몽당비도 손잡아 주시듯
주여! 얼룩진 영혼을 새롭게 하소서.
은혜 아니면, 은혜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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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산의 가을

전병윤

군밤 냄새가 은행잎을 노랗게 굽는다
거리의 악사는 가을을
짠하게 보내려 하고
다람쥐는 가을 틈새마다
상수리를 심는다

가을이 사람마다
예쁜 추억의 모자를 씌워주면
청춘들은 사랑의 알토란을 심고
백발 연인들은 묻어두었던
알토란을 캐내 보고 있다

구봉산은 한가을의 만물상
그 풍광을 고운 색실로 꼬아
또 한해의 역사를
빨간 시詩로 수를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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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전병윤

-꽃샘의 영원성
내 모든 기억과 발자국을 엮으면
그 곳에 내 꽃샘이 있다

사슴이 풀을 뜯다가
먼 산을 보고 있는 저 눈빛
봄빛 같은 평화를 보고 있다

낙타는 앞도 뒤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평생 짐을 지고 간다
가면서 눈을 끔벅끔벅 무엇을 볼까
분홍빛 자유를 보고 간다

나는 전적지 순례를 하면서
가슴이 뭉클거리는 부정맥에 시달렸다
피를 뿌리며 절규하는 전우들의 함성 속에서
사슴과 낙타를 보았다

지구상에 우주상에 꽃샘들이
깊고 고요한
평화와 자유가 영원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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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들의 신호

전병윤

벌통은 법통이다
여왕벌 수벌 일벌들
책임과 의무와 질서가 확연한 법통이다

이 천년 긴 세월동안 사람과 함께 살았다
꿀만 말고 농사도 함께 지어준 벌들
몇 년 전부터 무더기로 사라지고 있다

무선 전자파와 특수농약의 오염으로
벌들의 귀소 본능이 지워졌단다, 그래서
꿀 따러 멀리 나갔다가
집을 못 찾아오는 불쌍한 벌들

벌들이 망하면 사람도 망한다는데
우리는 자승자박하는 일이 너무 많다
빙산이 무너지고 철새가 오지 않고
하늘이 낮아지고 햇빛이 희미해지고……

착한 벌들이 인간에게 윙윙윙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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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연구소

강정숙

범 부채 과꽃 나팔꽃 취 꽃
분꽃 키다리 꽃 백일홍 쥐방울 넝쿨
꼬리명주나비 어우러진
그런 곳에 살고 싶다

오이 고추 가지 토마토
파 부추 상추
맘껏 가꿀 수 있는
그래서 부담 없이 이웃과도 나눌 수 있는
그런 곳에 살고 싶다

맘껏 하늘을 드리우고

밤에는 별도 총총 띄우는
칠흑 같은 밤
시인의 ‘별 헤는 밤’을 노래하며
잔잔한 마음을 누리는
그런 곳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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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숙

향교길 마을 고가에
치매할머니 돌보는
구순의 할아버지 마당
백일홍꽃 한가득

토방엔 진돌이 앉아서
졸고 있는 오후

돌 담장위
튼실한 호박덩굴 사이로
조롱 조롱 매달린 여린 애호박들

진돌아~
진돌아~

반기는 할아버지
호박하나 따다 먹어유
부담없이 나눠먹는 호박의 인정

유달리 노란 호박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7월의 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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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가 된 청소부

강정숙

모정 마당의 커다란 실루엣의 플라타너스
어스름녁 길게 늘여진 그림자

어린잎 손바닥만하게 자라
갈색톤의 중후한 잎
한 잎 한 잎 날리기 시작해서
비바람에 촉촉이 젖은 나뭇잎

겨울 찬바람에
뼈만 남게 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 그의 빗자루 질

그곳을 지나칠 때면
스스로 세상의 빗자루가 되는
성자를 닮은 한 청소부를 만난다

*성자가 된 청소부 : 바바하리다스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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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일기

구연배

시로 전하는
그 아름다운 말을 알아듣지 못해
사랑을 잃었다
허영이 되어버린 그리움

시로 알리는
그 분명한 신호를 풀지 못해
너를 잃었다
눈물도 아까운 회심

하늘의 말
예언의 말
풀도 듣고 미물도 아는데
깜깜한 귀로 너를 듣는다.

바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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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읽다

구연배

비가 온다. 하늘이 보내는 감성 입자
약간 된 눈물 맛이다. 하늘 못에서 누군가 운다는 것
나와 얼마만큼 다른 이종의 슬픔인지 모르지만
사무친 가슴과 설움으로
먹장 주름을 찢으며 우는 것이다. 수만리 하늘을 떠다녔을 얼음알갱이
천둥과 뇌우를 뒤섞어
하늘 아픔을 녹여 전한다. 중력을 못 견디고 떨어진 빗방울
마른 개천을 적시고
평원 밖의 강을 달리고
풀뿌리마다 하늘 맛을 깃들인다. 소리는 움직임에서 생기는지
평생을 들어도 모를 약청의 귀로
어느 촉촉한 고요를 알겠다고
현의 떨림 같은비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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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놀이

구연배

마음이 데인 것으로는
성이 안 차서
곱게 부쳐먹는다.
뱃속에서 그 꽃이 피면
그 날은 뒤집어지는 날
환장도 좋은 꽃놀이 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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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호

권희승

진안 심장이 푸르다
사람의 생명이 된
저 인자한 물줄기

호수에 진안의 애환이 담겨있다.
수몰로 인해 진안을 떠난 수몰민
남은 건 물안개와
소멸된 발자국들

예로부터 물가에 잡을 짓지 말라고 한 풍설을 뒤로하고
기어이 고원에 집을 지었다.

얼마나
돌아오고 싶을가!
고향 떠난 수몰민들
얼마나 물 속의 땅을
그렁하게 바라볼까

얼마나
다시 돌아와
흙을 채우고 집을 지어
아이들 웃음소리 듣고
싶을가

숲 속 출렁이는 물가에서
추억 노래하고
싶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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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단

권희승

나라를 잃어버린 조선의
백성들이 주천 대불리
화양산에 모였다.

백삼 년 전 조선의 황실을
향해 애국의 마음을
각오하던 황단대제

이제는 다시 나라를
잃지 말자 오늘날까지
진안의 산모퉁이에서
나라사랑 마음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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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권희승

가을이면 용담호를 가리라
구석구석 다 뒤져서라도
숨어있는 용을 찾아 어우렁 마실 다니리라

여름이면 운일암반일암을 가리라
해 반 절 구름 절반 계곡을 따라 구름다리 건너
구름나그네 만나 회포를 나누리라

겨울이면 구봉산을 가리라
분홍 눈빛을 가진15)미자를 만나서
16)빨간 입술을 탐하리라

봄이면 노적봉에 올라가
푸릇푸릇 올라오는 새순을 만나
청춘의 노래 들으리라

15) 미자 ☞ 오미자
16) 빨간 입술 ☞ 오미자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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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알바

김영갑

오후 세시.
우린 생활비를 벌기 위한 알바 중이었습니다.
매달 6일간 일하면 한 달 생활비가 되니
이보다 좋은 알바가 어디 있겠습니까.
농사로 경제생활이 해결되는 소작농부는 없습니다.
그 알바가 힘들고 더럽다고 한 이후로 정말 포기할까 봐
마나님이 돕고 있답니다.
어떤 멘티가 내일 오후 비가 온다고 알려왔습니다.
아침까지도 이번 주 내내 맑음이었는데? 하며
서로 일기예보를 확인하다가
아이고 고놈의 일기예보 맞고 틀리고를 떠나 날 좋을 때
깨 텁시다. 하고
알바를 중단하고 귀가했지요. 올 여름 내내 비 예보는 맞은 일이
거의 없었던지라.
그로 인해 고생한 기억이 뼈에 박힌지라.
그냥 감으로 안전이 최고다.
이런 결론이었지요.
베어서 고추밭 인근에 널어 뒀던 들깨를 들어내 털고
깻대 버리고 거푸집 골라내니
날이 어둑어둑합니다.
챙겨들고 집에 왔더니 전화했던 멘티 부부가 와서 기다립니다.
도우러 온 거지요. 그들이 도와 체질하고 선풍기로 날려서
깨를 추려 보니 기대보다 양이 많네요.
저는 체질 선풍기질이 젤 어렵습니다.
최종 선물로 나온 들깨가 3kg 정도. 밭가상에 벌레 막겠다고 심은 거라
기대보다 두 배는 많습니다.
고마워서 여지 껏 술대접했습니다.
근데 말입니다.
그들 보내고 생각하니 말이죠.
수확한 들깨가 요즘 시세로 5만원 정도입니다.
우리 부부가 알바하다 돌아와
이웃집 부부 도움까지 받아서
수확한 농산물의 경제적 가치. 그게 그렇단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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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를 읽는가?

김영화

연인과 함께 폭설에 갇혀
오오 눈부신 고립을 찬미한 ‘한계령을 위한 연가’를
남편과 죽도록 싸우고 온 그녀가
이게 말이나 되는겨? 하면서도
능숙하게 낭송한다

“밭에서 고추나 따지, 시는 무슨 놈의 시여?”
시어머니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뛰쳐나온
까칠한 며느리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를
능청스레 연기한다

가을밤, 눈빛 한번 부딪힘으로 시작되어
형체를 알 수 없는 상태로 머물다간 슬픈 사랑을
남편을 먼저 천국 보낸 미망인이
화석처럼 읇조린다

그녀는
늘 ~
작업복을 벗지도 못한 채 허기진 모습으로 나타나
꼭 목마를 닮은 숙녀처럼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난 사랑을
쉼표 없이 읽어나간다

꿈 많던 소녀시대를 상기하듯
눈을 지긋이 감고
칠순을 지나 팔순을 바라다 본
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반듯한 할머니가
‘그 꿈을 깨우면 어떻게 할까요?’
라고
또랑또랑 외치신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너그들이 외로움이 뭔지나 알아?

머나먼 타국에서 지긋지긋한 외로움으로
수백 날을 보낸 그녀가 수선화처럼 속삭인다

나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그것도 팔 남매의 맏며느리였어
나의 살아온 삶이 곧 슬픈 노래여
그녀는 외줄 타기 삐에로 처럼
늘 화려한 외출이다
그녀의 낭송은 차라리 절규하는 외침이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물이 되어 흐르자며
남편의 출퇴근 시간이 정확하지 않아
늘 혼자였던 그녀가
애교 있는 편지로 전송한다

그녀,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통받는 이웃을 위하여
입으로만은 부족해
새처럼 훨훨 온몸으로 노래하며 날아간다

누가 시를 읽는가?
질문하는, 살아 있는 존재가 읽는다.
살아 있겠다고 선언하는 존재들이 읽는다.
비록 땅에 살지만
별에 살고 싶은 하늘바라기들이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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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기쁨

김영화

마당 한켠 두엄자리에
저절로 돋아난 호박 새싹을
비탈진 울타리에 대충 옮겨 심었지
살거나 말거나

어느 날
온갖 잡초들의 전쟁이 한창일즈음
노랗고 펑퍼짐한 꽃이
평화를 선언하대?
그러거나 말거나

평화는 사랑이야
작고 앙증맞은 열매를 매달고
세찬 빗줄기와 바람 부는 벌판에서
꿋꿋이 지켜낸 모성
싸우거나 말거나
소리내어 울 명분도 없다
오직 숨어서
누렇게 익어갈 뿐

살거나 말거나
그러거나 말거나
헐벗고 약한자의 간절함
그러나
평화의 나눔
가진자의 오만함
아, 방치된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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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사랑

김영화

종종
아파트 놀이터 단풍나무 아래 벤치에
깨끗한 노부부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본다

들은 바로는
몇 년 전에 나이 마흔에 가까운 아들을
교통사고로 먼저 보낸 뒤
이곳으로 이사 와서 사신다고 한다

스칠 때마다 가슴이 아프지만
여태까지 나는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언젠가 슬며시 눈인사를 건넸다가
노부부의 너무 맑은 눈동자에
내가 그만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절절하게 슬픔을 참아내야
그 슬픔이 저렇게 투명해 질 수 있을까?
어떤 마음으로 서로 보둠어 달래주어야
저렇듯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빨간 단풍나무 잎이
가을햇살에 더욱 투명하다
노부부의 사랑처럼
가을도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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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집

김용호

텃밭에
며칠 전에는 무성한 잡초들이
세월의 흐름사이
꽃을 피운 화초가 되어 아름답다.

작은 분수대
마음을 헹구어내 줄 것만 같은
물줄기 흐르는 소리
어머니의 정겨운 속삭임 같아 좋다

돌담 옆에
웃고 서있는 접시꽃의
환하게 미소짓고 있는 모습이
마음씨가 예쁜 아내 얼굴 같아 좋다

새소리
조경수에 앉아 주절거리는
의미는 몰라도 좋다

바람이 불어온다
세월이 흘러간다.
굵은 행복과 정겨움이 잇닿는
시골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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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피던 날

김용호

한들한들거리는
코스모스의 아름다운 미소 속에
생김새가 없는
코스모스의 감미로운 향기 속에

우리도 코스모스의
미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코스모스의
향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코스모스 피던 날
올곧은 마음으로
우리랑 사랑이랑 기쁨이랑
코스모스처럼
다정한 연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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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김용호

무늬가 없는
허공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리움이 둥둥 떠다닌다.

보드랍고 아늑한
한소끔 내 추억도 둥둥 떠다닌다.
잊혀지지 않는 얼굴들도 둥둥 떠다닌다.

그 허공에 세월이 지나간다.
이따금 그 허공에 구름도 지나간다.
힘들어진 내 삶도 그 허공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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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3

김예성

저수지에서 밤늦도록 낚시를 하다가
툭, 말을 던진다
너무 조용해요 물속이
그러자 저수지가 화답한다
달빛을 뿌려 꽃밭을 만들어 드릴께요

어둠은 한 장의 종이
한편의 시를 써넣지 못하지만
침묵이 스며들고 고요가 맨발로 왔다갔다
왼손 오른손이 번갈아 구부러지고
낚시대는 심심해 하품만 해대는데

앗! 찌가 나를 부른다
이 때를 놓치면 안되지, 그만 잡아당긴 낚시 대가 부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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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 내리면

김예성

밤비 내리는 날에는 비를 맞아라
비 내리는 순서의 맨 앞 줄에 몸을 맡겨
훔뻑 비가 되어라
비의 발자국에 붙어있는 흠없는 비의 꼬리를 자르거나
그 아픔을 훔쳐먹어서는 안 된다
순간 비의 발가락을 목에 걸고
애끓는 사연 소리만 만져라
생명의 생명은 하늘에서 내려온다
목마름이 깊은 이 밤
하늘 음성을 높이 마셔라
빗방울로 채워진 밤바다로 나가
잘 다져진 바다의 땅을 걸어가
옷을 벗고 벗은 옷을 더 벗어라
하늘소리 가벼운 알몸에 기대어
나와 같이 오래 서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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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의 시간

김예성

하늘이 맑아
얼굴을 밝히 펴들어
마음까지 푸르지만
지은 죄가 커
용서의 눈물, 내 눈물의 시체를
땅에 묻지 못한다

내 눈물 절반은
강물에 흘려 보내고
나머지는 흙 속에 감춰두고
마음 뒤숭숭하게 살지만
손과 발은 잘도 뛰논다

죄에 젖은 발자국을 뒤집으면 후회뿐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욕심 때문에 귀속이 막혀있고
눈 떠 있는 눈물 골짜기에서
한번 더 불타는 심장을 태우며 숨어산다
나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에게 용서를 빌며
지금은 은둔의 시간하늘 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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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뭔지

남궁선순


그대 만나

산바람
물수리 들으며
자알
놀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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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

남궁선순

딸을 많이 나아
이 병원 저 병원에 취직시켰더니만
아무델 가도
어머님! 어머님!

큰딸은 약 먹여주고
작은 딸은 어깨 주물러 준다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하는 이
심기가 불편하여 불퉁거리는 이

하기 싫어도 아니할 수 있나
짜증이 나도 아니 웃을 수가 있나

삭막한 콘크리도 숲에서
들고나는 모든이들
깨진 무릎 감싸주고
아픈 마은 환한 미소로 달래주는

백의의 천사 가슴속에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출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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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이모저모

박부산

뒤숭숭한 바깥 세상 날씨조차 악천후
방안퉁수 죽칠 바 양서良書 끼고 살아
열심히 독서삼매경 텅 빈 마음 흐뭇하다

베란다 자리잡은 크고 작은 화분
자칫하면 시들세라 정성껏 손질하여
철 따라 피는 웃음꽃 무딘 마음 너그럽다

인터넷 바둑방 하루 두세 번 찾아
낯모르는 이 만나 스스럼없이 대국
한동안 즐기다 보면 들 뜬 마음 대담하다

보라매공원으로 쾌청한 날 나들이
숲길 산책하며 사색의 여유 즐겨
자연과 정 나눌수록 흐린 마음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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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옷 그 멋

박부산

티셔츠 후줄근히 비지땀 젖는데
촘촘히 빚은 손길 바람 솔솔 휘어잡아
옷깃을 스치는 촉감, 한결 고아古雅지다

호화로운 유행바람 스스로 비껴 가는
순수한 전통미 연년세세 빼어나다
학처럼 고아지는 멋
아리따운 맵시여

투명한 흰 색 바탕 본성 드러나듯
순하디 순하여 조심스레 사리는 몸
모시 옷 입은 노부부
품위 있어 달리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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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짐을 함께

박부산

밤이면 불면의 늪 헤어나지 못해도
상비약 의존한 채 손수 불씨 밝히다
오로지 바라는 소망
안분지족 그것뿐

팔자 좋은 큰 손 아랑 곳 하지 않고
힘든 일 도맡아 고난 다져 굳은 손
가계부 적자 메우고자
적금통장 거머쥐다

비지땀 쌓은 근검 비로소 뜻 이루어
호강 누릴 만한데 사치는 먼 인연
알뜰한 씀씀이 장하다
무거운 짐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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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값 청구서

박희종

어제 아침도
오늘 점심도
내일 저녁도

세끼를
꼬박
꼬박
꼬박 챙겨 먹었습니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고
먹기 위해 사다보니
이젠
사료에 중독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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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영토

서동안

차가운 바람에 시달려야
더 옹골찬 씨앗을 맺을 수 있다고 했던가
수시로 바뀌는 변화와 타의에 의해 무너뜨린 삶이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음에 또 몰래 주위를 살핀다
그들은 바람에 구속된 풀밭의 비행사
흔들릴 때까지
작은 영토에 납작 엎드려 읍소하던 시절은 갔지만
여전히 그리움을 탐색하며
어떤 간절함이 부르는 인연일까
근원을 바치는 순종을 위해 낮은 비행을 시작한다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보면
흰머리 무성해지는 인연을 따라
더러 자기 영토를 넘어 남의 집 담을 넘기도 하며
일순간 낯선 곳으로 비행하다
장열하게 낙하산을 펼쳤다는
전갈을 풍문으로 들었는데

겨울 말리던 햇살 두고 어찌 봄빛 아래 밟히는지
그 영토를 두 팔 벌려 안아 본다
☆★☆★☆★☆★☆★☆★☆★☆★☆★☆★☆★☆★
눈꽃

서동안

푸석푸석한 화폭에
눈이 눈의 문을 두드리면
정갈해 보이는 저 눈웃음들이
하얗게 다져진
결정체로 일어서는 신 새벽
밥 짓는 연기
산의 허리를 휘감아 돌면
일체의 애린도 거부하던 화폭에
눈으로 그려지는
그리움의 유전자 한 톨
잊혀진 아득함을 불러내어
뉘엿뉘엿 지는 시간 속으로
무량 세월 일깨워
안으로, 안으로 삭이며
눈이 눈으로 귀화할 때
내게 닿지 않는 기억 한껏 되감아
바스락바스락
겨울을 익혀 가는 눈꽃 같은 여인
☆★☆★☆★☆★☆★☆★☆★☆★☆★☆★☆★☆★
해바라기 씨앗

서동안

텃밭 울타리에 심어 놓은
까맣게 잘 익은 해바라기 씨앗 거둬들이며
한 알 깨물어 본다
톡 하고 부서지는 씨앗에
붉은 태양의 심장 소리 가득하다
본시, 태양의 아들이 분명할 터
북받쳐 오르는 설움이 가득할 때마다
고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은
어머니의 심장 소리를 듣기 위함일 것이다
슬픔 딛고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여름내 타들어 가다 말라버린 태양의 흔적을
어떡하던 지켜야 한다
그래서 험한 세상에
먼저 튕겨져 나가지 않으려고
서로 어깨를 단단히 고정시키며
한 겨울을 견디는 것일 게다
그 중 실한 것을 골라 가슴에 키운다
생명으로 자라 어머니의 심장 소리를
다시 듣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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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풀 씨는

성진명

이른 봄, 거름 주고 밭 갈아
두둑을 만들고
곡식도 심고 채소도 심어
먹거리를 기대했는데

새싹들이 돋아나고
모종들이 자라는가 싶더니
육칠월 지리한 장마가 지나고 보니
곡식도 채소도 보이지 않고
땅바닥도 보이지 않게 초나라 병사들이
점령을 해버렸다

이 많은 풀씨는 누가 뿌렸을까?
설마 그분은 아니겠지
하느님도 최초의 농부 이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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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나 짓지

성진명

퇴직이나 은퇴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뭐 할거냐고 하면
흔히 하는 말
농사나 짓지
하지만, 농사나 짓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지상에서 최고로 어려운 일이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이 있듯
면장도 해보았지만
농사짓기가 면장 하기보다 어렵다
농지 구입 등
골치 아픈 일들은 차치 하고
뭐라도 심으려면
퇴비, 비료, 토양살충제 뿌려야지
땅 갈려면 트랙터가 있어야지 두둑 만들려면 관리기가 있어야

비닐 씌워야지~~~~~ 없으면 임대해야 하는데
제30호/2022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가 트랙터 임대하는 전날에는 비가 온다
비라도 올라치면 모든 게 연기……
심었다고 거저 자라는 게 아니고
내가심은 것말고는 모두 잡초인데
온 밭에 초나라 병사들이
시시때때로 우후죽순처럼 올라오고
나비는 나방이 되고
곤충들은 해충이 되어 득시글거려
수시로 농약 통 짊어지고 나서야 한다
감자 몇 박스 캤다고
팔아보려고 하면 감자 농사지은 사람들뿐이고
경매장으로 보내면 씨값도 안 나오게 후려치는데
수수료란 꼬리도 따라붙는다
농약 잔류 검사받고 로컬푸드에 내면
제값을 받을 수 있지만
여기도 경쟁이다
그렇게 한해 농사지어 수지를 따져보면
우리 가족 인건비는 빼고
본전이나 될동말동
그래도
농산물은 인류의 생명 창고니
누군가는 농사를 지어야 인류를 지킬 수 있고
농자천하지대본은 만고불변일지니
그대여 실망하지 말고
우리 찐하게 농주 한 사발씩 마셔가며
농사 한 번 지어보세그려
사람을 2롭게, 안전하고 건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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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성진명

밭에 땅콩을 심고
토란을 심다가
몇 고랑이 남아서 생강을 심었다

땅콩이 잘 나서 자라고
토란도 늦게 나서 자라는데
문득
생강이 생각나서 보니
전혀 생강나지 않는다

바쁘게 일하다가
또 생각나서 들여다보니
그래도 생강나지 않았다
어느 날 생강 밭을 들여다보니
생강은 드문드문 나고 풀이 무성하다
생강은 내 생각대로 나지 않고
생강의 생각대로 생강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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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향기의 아름다움

송미숙

코스모스 피는 언덕에서
그리운 당신의 얼굴을 생각합니다

해가 아름답게 떠 있는 그 언덕의
빛살은 아름다웠고
해가 지는 그곳도
당신의 은총의 그림자가 머물다 갑니다

시원한 바람이 코스모스 향기로
내 얼굴을 어루만져 주고
가을의 높은 하늘과 햇빛이
밤의 달과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세상에서 작은 한 방울의
이슬마저도 곱기만 합니다

세상 만물은
살아서 우리에게 영광을 주시는 분이여!

하늘의 문을 열어주신 당신이여!
바람으로 매년 계절을 부르고
작은 가지 끝에 매달린 잎새
이 풍요로움을 사랑하여
이루어진 우리의 세상에
오늘도 나는 신비를 만드신
자연에 도취되어갑니다

당신이 만드신 결실의 계절
가을 속에 가을 향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만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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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내 고향 마이산

송미숙

숫마이봉과 암마이봉
그리운 내 고향 마이산
보는 장소와 계절에 따라
새롭고 신비함은 각기 다르다

연분홍 꽃잔디 축제의 향연에서
저 찬란한 마이산을 보면
어린 시절 동심의 세상에
함께 하던 벗들이
무척이나 그립고 보고 싶다

여름 장마철 폭우 때면
암마이봉 자연 계절 폭포로
시원함과 신비함을 자아내고

가을이면 타포니 지형 곳곳에
오색단풍으로 새 옷을 갈아입고
가슴에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겨 본다

울이면 탑사 주변
신비스런 역고드름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더덕구이와 동동주 한잔에
돌아오는 길 아쉬움을 달래 본다.

그리운 내 고향 마이산
늘 마음에 담으며
나는 오늘도
추억의 시간에서 행복과 기쁨을 느낀다

내 고향 마이산이여!
영원히 내 가슴에 살아 숨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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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없이 사라진 빗방울

송미숙

그리운 슬픈 마음을 달래보려고
창가 화단 앞 나뭇잎에 떨어진
빗방울을 바라보며 생각하여 본다

어디로 사라지는지 모르는
빗방울의 슬픈 흔적들
창가에 기대어 이내 그 빗방울이
나의 눈물방울이 되어 버린다

늘 화단을 예쁘게 가꾸시던 아버지
그 생각에 사로잡혀 순간 나의 눈가에는
구슬픈 눈물방울로 흘러내린다

하늘나라에서도 지난 이승에서처럼
아름답게 화단을 곱게 가꾸고 계시겠지요.
아버지 훗날 저도 아버지가 가꾼
하늘나라의 고운 화단으로 초대하여 주겠지요?

그때보고 싶은 그리움으로
아버지와 곱게 손잡고 예쁜 화단에서
아름다운 춤을 추고 싶어요

그리고 서로 부둥켜 같이 울고 싶어요
아버지 늘 해맑은 미소로 오늘도
그리움에 사무쳐
나의 눈물이 빗방울이 되어
고운 당신을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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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호랑이

안현심

글을 청탁했더니
하루 만에 써서 보내주셨다
이처럼 빨리 써주시는 것은
바쁘고 안 바쁘고의 차이가 아니라
주어진 일에 임하는 태도의 문제일 것

삶터를 지키는 동안
숙련된 일꾼 몫의 몇 갑절을 해치웠다
이 글 저 글 청탁이 들어와도
일머리를 꿰어차질 없이 진행했다

빠르고 올바르게 일하는 사람을
일 호랑이라 불렀는데

호랑이처럼 무섭게 일하는 사람
장마 틈새 여우볕을 짯짯하게 누리는
담장 위 호박꽃이다, 꽃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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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솜다리 꽃

안현심

설악의 바위를 딛고
장하게 일어선 산 솜다리처럼
바위 등을 오르내리는 지게꾼이 있었지요
휴게소와 암자에 물건을 지어 나르며
꾀꼬리와 산양을 보고 돈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발화하는 입술에서
첫걸음 떼는 아가의 말처럼
솜털이 보송보송 피어났어요

공룡능선에 하늘이 내려온 날
바위틈에서 잠시 잠들었다가
꽃이 되어버린 사람, 산솜다리꽃 한 송이
첫눈을 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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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꽃

안현심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쓸개를 떼어 냈군요, 하더라고요
얼토당토않은 말이라고 항변해도 소용없었어요
실수를 묻기 위해 되레 환자를 겁박 했지요
온갖 술수와 음모로써 핍박했지만
고난을 뚫고 마술을 푼 왕자처럼
끝내, 이기고 말았죠

근데 웬 일인가요?
죽이려던 자들이 손을 내밀며
대단하군요, 당신을 본받고 싶어요
환대의 꽃비를 흠뻑 내려주었죠

엉터리 꿈에서 깨어난 아침,
돌 담장 밑 함박꽃
☆★☆★☆★☆★☆★☆★☆★☆★☆★☆★☆★☆★
모르는 술잔

이광형

어지럽게 움직이는 술잔
이리 섞이고 저리 섞이는 자리에서
나의 술잔은
마냥 채웠다 비웠다 한다.

너도 있고 나도 있는데
술잔의 외로움이라니

누구든
홀로 살겠지만
너와 내가 여기 있는데

네가 모르는 나의 술잔
내가 모르는 너의 술잔.
☆★☆★☆★☆★☆★☆★☆★☆★☆★☆★☆★☆★
바람이 익어간다

이광형

바람의 자유로움이 나를 부른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그 어디에서 사그라져도
또다시 몸부림치는 바람

삶의 비탈은
얘기치 못하게
솟구치고 곤두박질치는데

난 바라보고
그렇게 물끄러미 서 있어야만 했다

그렇게 흐르는 게 어떨까
어느새 그렇게
지금 이대로

바람이 익어간다
☆★☆★☆★☆★☆★☆★☆★☆★☆★☆★☆★☆★
세월이 하는 소리

이광형

도무지 걷고 싶지 않을 때
걸음이 내 발에 맞지 않을 때
난 쉬어야 했어

무던히도 걸음을 재촉하던 그때
세월이 내게 말하길
넌 언제 참으로 살 거냐고
난 말했지
세월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참으로 사는 건
네가 묻고 내가 답할 게 아니라고

그리곤 계속 걸었어
걷는 게 천형인 것처럼
그 무거움에
알게 모르게 짓눌렸을 때
쉬어야 된다는 걸 알았지

월이 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거야
☆★☆★☆★☆★☆★☆★☆★☆★☆★☆★☆★☆★
전화 왔네

이호율

만지작 만지작
전화 왔네.
필요하면 다시 하겠지
혼자 생각에
받지 아니하고

이것은 아닌 것 같아
깊은 시름에 잠기다
무심히 지나간 세월
궁금하고, 필요해서 연락했을 터인데

이런 소소한 예의가
길흉화복이 될 터인데

연락 올 때 받았을 것을... 후회해도 소용없으니
누군가 기다리는 자 복이 있다 했나 ?
말짱 거짓말이지… 내가 먼저 전화하자!
☆★☆★☆★☆★☆★☆★☆★☆★☆★☆★☆★☆★
가을비

이호율

참 좋은 하늘과
어깨깃에 머무는 바람에
꽃향기를 벗삼아 펼쳐진
가을 축제
뜨거운 열기를 잠재우듯
내리는 가을비

쉬면서 한번쯤 돌아보라고
세심하게 꼼꼼하게
새로운 추억을 준비하는 가을비

촉촉히 땅을 적시고
우산 받쳐든 나의 손끝에는
바람과 비를 막고
비바람에 옷 적을까!
뒤집어질라!
애정 담뿍 곁눈질에
사뿐한 발걸음으로 답하네……

살포시 얹혀진 어깨낏에
진득하게 내리는 가을비는
내 마음 전해주려나……
☆★☆★☆★☆★☆★☆★☆★☆★☆★☆★☆★☆★
바람이 불었으면

이호율

쌀쌀함이 가을임을
일깨워주고
참 좋은 파란 하늘
간간이 풀어낸 몽실 구름
두 팔 벌려 담으려해도
나름의 의미로 그려진 그림은
못 이기는 척
바람에 새롭게 태어나네

안을 수만 있다면
저 하늘과 수줍은 듯 해바라기 잎새에
소망을 담아
덧씌우고 싶다
뭉실몽실 구름에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네
님 곁에 갈 수 있게

아! 야속한 바람이여!
이젠 쉬려나
구름은 흔적 없고 파란색만이

그래 쉬렴 !
님 향한 깊은 마음을 해바라기 꽃향기에
진하게 묻혀놓고 있게……

구름에 달 가듯이
소리없이 다가가 입맟춤이라도 하게
바람이 불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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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유순예
안녕 오미크론

유순예

딱 걸렸어 당신!

가문 땅에 쪼르륵 쪽쪽!
소낙비 몇 소절 쪽쪽거리는 소리 먹여 줘서
고마워, 오미크론!

몇날 며칠 밤낮으로 연애 시를 써서 뻐꾸기 날려댔지?
내 사랑 보부아르, 그곳에서 밤새 한잔하고 싶어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 줘, 사르트르가 되어 줄게
그대 중연(重淵)에 나를 익사시키지는 말아 줘
나를 사랑해 줄래?
죽어서도 사랑하겠다는 약속은 못 하겠어
다만 지금처럼 부비부비 하고 싶어!
숨통이 조이도록 끌어안더니
개떡 같은 이설(異說)로 찰떡같이 달라붙더니
은밀한 곳에 수억만 바이러스를 흩뿌리고 돌아갔지?

자가 격리, 재택 치료는 투덜투덜 끝냈어!
페스트의 밤은 지금도 밤마다 날밤 까고 있어
가문 땅에 질퍽질퍽
물소리 몇 소절 질퍽거리는 소리 먹여주고 간

오! 오미크론, 안녕!

후끈 달아올랐다 꺼진 불똥이든
독감보다 독한 독종이든
후유증이 당신을 역학조사할 거야
후끈 달아올랐다 꺼진 가슴앓이
되받아칠
변이 바이러스가 당신을 검역할 거야

딱 기다려, 당신!
☆★☆★☆★☆★☆★☆★☆★☆★☆★☆★☆★☆★
백합

유순예

기묘한 나의 향기에 끌렸어?

신들이 다녀가는 그 새벽
숨 가쁜 너의 몸짓언어가
심연(深淵)에 든 나의 동면을 깨웠어
모른 척해 달라는
너의 말은 이미 삭제했어
왔던 길 되돌아간
너를 기다리는 순결은 잡것과 음통했어
시든 꽃잎
죽은 향기
쓰레기장에 내다 버렸어
꽉 오므렸던 속내를 쫙 펼쳐 보이다
미쳐버린 건
꽃잎이 아닌 꽃술이야
미친 꽃술보다 먼저 미친 건
케케묵은 꽃대야
황홀했던 순간은 사랑이 아닌 오르가슴이야
변절하기 전에 차이는 게 사랑이야
마음 고쳐먹기 전에 대답해
떠나야 할 때 떠날 줄 아는 꽃가루의 유서를 읽어본 적 있어?
나르키소스에게 거절당하고 메아리가 된 에코의 연서를 알아?
오묘한 너의 향기는 어디다 숨겼어?
☆★☆★☆★☆★☆★☆★☆★☆★☆★☆★☆★☆★
피 순댓국

유순예

피처럼 검붉게 살다 가신 당신
당신이 사 주시던
피 순댓국
피처럼 검붉게 살고 있는
당신 부인이 사 주시네요

땡볕 놉 얻어서 농사지은 푸새들 내다 판
피 같은 돈으로
핏줄에게 피 순댓국 먹이시네요

고추 따야 한다 배추 심어야 한다
눈만 뜨면 싸우다가도
한쪽이 몸져누우면 애걸복걸하시던
부부 인연 끊은 지 십여 년

피처럼 검붉게 살다 가신 당신
당신은 먹지 않아도 배부른 세상에서
지그시 내려다보시고
피처럼 검붉게 살고 있는
당신 부인은 먹어도 허기지는 세상에서
넌지시 올려다보시는

핏빛 그리움 한 대접
☆★☆★☆★☆★☆★☆★☆★☆★☆★☆★☆★☆★
황혼이다

이병율

이슬로 여는 영롱한 언어들이
햇살을 더듬는 기억으로 흔들리며
드러난 형체들이 분주히 뛰처 나온다
아우성치는 빛나는 선택을 삼키는
덤덤한 일상의 낮과 밤의 경계
노을 빛 멍드는 마이산 일기장이
빤스로 멱감으며 어울리던 얼굴에서
윤기 나던 가난의 주름을 보듬고
화려한 안부를 물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냇물이 말을 걸어오며
세속으로 가린 그림자를 위로하듯
나는 나를 바라보니 황혼이다
☆★☆★☆★☆★☆★☆★☆★☆★☆★☆★☆★☆★
나를 위한 위로

이병율

훈훈한 땀 냄새
손녀의 미소가 가벼워진 볼에 안긴다
이마에 매달린 촉촉한 땀방울
매서운 꾸지람으로 찔끔거리는 눈물도 있다
나목의 숲 깊숙이 안긴 햇살의 온기
바람은 나뭇가지를 비벼대며 그리움을 흔들고
주름을 포게논 나이테의 종알거리는 소리
의연한 그 자리에 기운찬 숨소리
운장산 서봉에다 구봉산에다 남긴 흔적의 기억
하늘과 땅의 경계를 그으며
산 새소리 부스럭거리는 생명의 고요함을 보듬고
환상의 꿈을 기억하는 모반의 산그리메
아련히 찾아오는 신선의 기운
살랑대는 내 그림자를 발을 수 있었다
☆★☆★☆★☆★☆★☆★☆★☆★☆★☆★☆★☆★
그 남자

이병율

담담한 세월에 그을린 우뚝 선 체구
금당사 불화로 들려주는 목탁소리는
그 남자 기운으로 뭉친 자비로운 미소

화석으로 탄생을 기록한 지세에 기댄
모반을 누른 위안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분수령을 보듬는 운명의 너그러움이여

자연에 익어간 보통스런 삶의 사랑을
푸르름으로 승화시킨 소박한 우리네 웃음
수백 년 들려준 애환의 전설로 솟아난 그 남자

말귀 쫑긋 세우고 원시의 기운 모아 모아
천시의 염원을 빌었던 간절함으로
인고의 순산이다, 가정을 이룬 마이산

거대한 암석 가슴에 안기는 고요의 향기는
유물과 유적 그리고 기념물의 명승지로
아픔을 참은 순수의 시간과 세속의 몸짓

성현을 흠모하는 군자의 꿈으로 기댄 이산묘
내 안을 정화시킨 바람에도 흔들리는 소망
질퍽한 역사의 저항으로 단단한 사내의 마음

진귀한 부부봉 설래이는 아침의 출정으로
만상의 발자국 일렁이는 설램의 명성
오늘도 세계를 움켜쥔 눈매가 고운 마이산
☆★☆★☆★☆★☆★☆★☆★☆★☆★☆★☆★☆★
그러다

이비단모래


눈물 훔치며
내가 돌았어 돌았어

평생 지게 지고
평생 나무해서
자식 새끼 덜 멕였는디
세월 풍상맞아
고꾸라졌는디

치마 속 고쟁이에 오래
묵힌 쌈짓돈으로
자반고등어 한 손을 산다

영감이 젤루 좋아하는 거여
물 존 놈으로 줘유

한 늙은 아내가
대목장 쓸쓸한 풍경을
그린다

금이빨 내 놓고
마주보며
웃는 주름진 저녁상에
둥실 보름달 떠오르겠다
☆★☆★☆★☆★☆★☆★☆★☆★☆★☆★☆★☆★
밥이라는 희망

이비단모래

도대체 그칠 것 같지 않게
눈물 칭얼대던 날

첫 눈이 와요ㆍ첫 눈 이예요
라디오에서 설렘 흘러나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그대에게 전화하리라

우리 밥 먹어요

밥처럼 든든한 말이 어디 있을까

허기든 바람도
마음 다 쏟아져 버리고
남은 쓸쓸함도
여기 저기 욱신거리는 몸도
따뜻한 한 그릇 밥이면 그득해 질 충만

밥 좀 많이 먹어라
세상에서
다시 듣고 싶은
내 등뼈를 곧추세운 말로 남은
밥이라는 라온
☆★☆★☆★☆★☆★☆★☆★☆★☆★☆★☆★☆★
가을하늘

이점순

티 하나 없이 맑은 아기 살빛처럼
하늘이
가을을 둘러맨 하늘이 참 곱다.

양선생께서 ‘시인이 보는 하늘빛은 어떤가요? 내 눈에 저리 고운데’
선생께서 시 한 수 지어보라 권하니
‘시는 아무나 쓰는 건 간디요 시인이 쓰셔야지’
감성이 가슴에 솔찮하시니 충분히 한 편 나오겠습니다.
권주가처럼 권했으나
극구 사양하시고 내게 떠민다.
저 곱고 푸른 가을 하늘을 내게 보낸다.
☆★☆★☆★☆★☆★☆★☆★☆★☆★☆★☆★☆★
늙은 티

이점순

그전에는 층계를
왼발 오른발 따로따로 내렸는데
지금은 한 발씩 한발씩
난간 잡고 느리게 내린다.
☆★☆★☆★☆★☆★☆★☆★☆★☆★☆★☆★☆★
물 잔의 무게

이점순

유리잔에 물을 반정도 채웠어.
이 물 잔의 무게는 얼 만큼 일까?
백 그램?
삼백 그램?
아니

물의 무게는 암것도 아녀
일 분을 들고 있을 때의 무게랑
한 시간을 들고 있을 때의 무게가 다르지
온종일 들고 있다고 한다면?
팔이 저리다 못해 마비가 오겠지
이 물 잔의 무게처럼

내 삶의 무게는 얼마큼 일까?
어떤 생각으로
어떤 모습으로
길을 가는 나그네가 되어
머리에 인 물 항아리가 얹저 있을 거야.
똬리도 없이 인 가득 채워진 무게일지
팔부만 채워
짚으로 엮은 똬리에 입끈까지 있어 두 팔을 신나게 흔들며 갈
무게일지
내가 선택한 물의 무게에

짓눌려 가는 시간으로도
흔들며 가는 저 팔처럼으로도
내가 되어 가고 있겠지.

암만
물의 무게는 암것도 아녀.
☆★☆★☆★☆★☆★☆★☆★☆★☆★☆★☆★☆★
조응照應

이필종

언제나 다가가면
아버지 묘지에는 푸른 꽃이 핀다

이른 봄 찾아들면
진달래꽃이 벗해주고

가을날 언덕길 언저리
상상화가 그리움 토한다

그러하리라, 내 한 몸 또한
흔들려 가는 바람의 꽃이려니

산등성이 한 점 구름
무심히 노 저어 가는구나
☆★☆★☆★☆★☆★☆★☆★☆★☆★☆★☆★☆★
누에의 한 살이

이필종

한 생에 네 번 잠자고
그 때마다 몸의 허물을 벗는다

다 자라면 실을 토하여
고치를 짓고 그 안에 번데기가 된다

고치 안에서 안거하며, 묵언수행하며,
아름다움은 침묵이고 평화다?

그러하리라, 스치는 한 생명인들
비우고 비워가지 않은 생이 어디 있으랴

문화와 문명을 넓혀간 역사의 실크로드
시공이 겹쳐간 곳, 그곳은 아득히 멀다

언젠가 물레에 고치실 길러 올리시던
깊은 밤 어머니께서는 고치가 되셨으니
☆★☆★☆★☆★☆★☆★☆★☆★☆★☆★☆★☆★
은방울꽃

이필종

어느 날인가 홑적삼 흩날리며
님은 소박한 봄빛으로 온다

웨딩드레스 입은 청순한
오월 신부 사랑으로 온다

산골 은거하는 선비 앞에
학처럼 춤사위 펼치려 온다

어렵고 힘든 어느 가슴에
상현달 되어 등불 밝히려 온다

언제 한 번이라도, 나는 저리
그대에게 가 본 적이 있던가
☆★☆★☆★☆★☆★☆★☆★☆★☆★☆★☆★☆★
내리는 비와 노인

전근표

뚜두둑 뚜두둑~
처마 끝으로

쉼 없이 내리는 빗방울
창가에 기대선 한 노인
뚫어지라 우두커니 멍한

작은 것 큰 것
파문을 그리다 끝내
하나 되어 흐르는 모습

무슨 생각일까?

깊은 영혼마저 씻어 내린다
☆★☆★☆★☆★☆★☆★☆★☆★☆★☆★☆★☆★
오늘은 좋은 날

전근표

스치면 인연이요
스며들면 사랑이라 했던가?

수면 위를 아름다운 음표로 노래하는
금빛 물결처럼

깊은 숲 속 사이사이 반짝이는
금빛 햇살처럼

까만 밤하늘 유유히 흐르는
은하수처럼

오늘은 좋은 날 기분 좋은 날
꿈이 있고 희망과 사랑이 흐르는

송이송이 꿀맛 취해
호들갑 떠는 벌 나비처럼
오늘은 좋은 날 기분 좋은 날

너와 나 우리 모두 다
해가 되고 달이 되고 별이 되자
☆★☆★☆★☆★☆★☆★☆★☆★☆★☆★☆★☆★
작은 빗방울의 힘

전근표

먹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태풍이 몰려 온다
천둥 속 낙뢰가 내리치며
쏟아지는 빗방울 누가 막으랴

뙤약볕 가뭄 끝
번지는 화마
마른 대지 적셔주는 단비
바라지 않는 이 어디 있으랴

작은 하나의 빗방울
비록 천길만길
나락으로 곤두박질쳐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나락이면 어떠랴
그 몸 낙숫물 바위를 뚫고
흔적 없이 모이고 모여
흘러 강이 되고 바다를 만들지

우주와 지구를 살리는
생명줄
작은 빗방울 하나가 있어 그 힘에
우리가 살고 산도 있고 바다에 파도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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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전성규

봄이 오면 모든 만물 자연에
꽃과 나무에 푸르름 이루네

여름 자연에 성장하는 하늘같이
청명하고 아름답다

가을 낙엽이 지고 쓸쓸하고
저물어 가는 태양처럼 인생도 저물어 간다

겨울 산과 들에 눈 내리고
여름에 활기찬 자연 광경을 볼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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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전성규

지리산 골짜기
많은 봉우리마다 각양각색
나무 식물들마다 계절에 맞게
아름다움을 추구하네

지리산은 제자리에 그대로 있지만
사람들은 높은 천왕봉을 향해
오르고 내려오고 삶에 지치고
고달픈 내 몸을 자연에 맡기고

풍요로운 자연을 벗삼아
천왕봉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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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전성규

봄이 오면 산에 자연에 생명이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네
사람들 마음에도 다가오는
봄에 자연에 아름다움을
기다리고 있구나

진달래꽃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면
그 모습을 보고 꽃을 피우고
산을 찾는 이들에게 화사하고
아름다움을 뽐내면서
반가이 맞이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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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튀밥

정미경

38)
별이 튄다.
별이 튀어 오른다.

바싹 말랐던 과거는 불 속에서 변신을 꿈꾸고
압력의 정점을 향하여 구르고 굴러
펑!
하얀 기체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과
이윽고 날아오르는 자유들. 구름 위로 튀어 올라
그려지는 포물선의 교차점. 그 지점에서 폴짝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줄넘기를 한다.
y=-x²
포물선 방정식에 맞춰 이어지는

나비의 날개 같은 궤적을 따라
부피를 키운 별은
뜨거운 펌프질을 한다.
튀어 오른 별들이 하늘에서 깜빡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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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꽃자리

정미경

기척도 없이 누가 왔을까.
누군가 오지 않았을까.
읽기 쉬운 표정을 하고
투명하게 건드린 계절도 툭,
노랗게 떨군 마음도 투둑,
개여울 물무늬에 번져 우는가.
어스름 어둠을 기다려
새치름 달을 기다려
까마득 너를 기다려
그렇게 기다려 나를 피운다.

한시절 바람이 밀쳤고
빗물이 후두둑 두드렸고

밤이슬 무섭게 파고들었다.

시절은 너를 키우고 나를 비우는가.
내가 피었던 자리에 달이 내려와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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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막걸리

정미경
아버지는 아랫목에 고여 있다.
누룩처럼 담겨 뜨듯한 빗소리를 터뜨리는 중일까.
아랫목 항아리는 아버지처럼
이불을 뒤집어쓴 채 익어간다.
허리 굽은 태를 감추듯 둥그런 이불 능선에
모란이 붉게 피어 있고,
꽃 향 대신 시큼한 막걸리 내음이
아랫목에서 꿈꾸듯 알싸하다.

아버지 곁에서 촘촘히 고인 삶의 알알들이
발효를 마치고 막 걸러진다.

하루의 어둠이 걸쭉하게 내려앉는다.
무진한 시간들 뒤로
낮들의 더께가 절박한 하루를 퇴하고
한 잔의 탁배기로 거나해진 아버지 삶처럼
묵음으로 처리된 어떤 날,
나도 아버지 곁에 앉아 막걸리 한잔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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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

조준열

코로나로 신축년 설 명절은
8남매 가족이 함께 하지 못했다네

조상님도 숭경하려니와
91세 아버님, 89세 어머님께
절하고 공경하는 예절

코로나가 동네 어른들께
세배도 막아섰다네
설명절은 이웃과 벽을 치는 명절인데

아, 애달프다
예절도 효행도
코로나 앞에서 맥 못추는

천하 상놈의 질병
괴질의 노예가 되어버린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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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조준열

사람의 인연은 산길과 같아서
오가지 않으면 잡초가 뒤덮는다
먼저 길이 끊기고
소문이 멀어지고
뜨겁던 가슴도 식는다
끊어진 인연은 사발 깨지듯
종이가 두 조각나듯
다시 붙일 수도 이을 수도 없다
제각각 우러르는 하늘도 다르다
언어가 차단되고
우정과사랑
천리 만리 멀어지고
길은 잡초 우거진 폐허의 가시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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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조준열

초저녁 어스름에
소복이 내린 첫눈
세상사 더러움 덮어
아름다운 하얀 누리 만들었네요

나 어릴 때
눈 맞으며 마냥 좋았었네
어른이 되니 제설작업 걱정이지만
어린 시절 고운 추억은 지울 수 없네

하얀 논이 내리면
온 세상 사람들 마음도 하얗게
모두모두 천사가 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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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經

최규영

어머니 바늘귀를 꿰어주던 여섯살 밝은 눈
미풍에 살랑거리는 나뭇잎 소리도 듣던 귀
바람결에 묻어온 라일락 향기를 맡아낸 코
열 살 때인가 짜장면의 희한한 맛을 본 혀
날카로운 첫 키스의 감촉에 감응하던 육신
이 모든 감각을 실재한다고 믿었던 자의식

無 眼이비설신의
無 안耳비설신의
無 안이鼻설신의
無 안이비舌신의
無 안이비설身의
無 안이비설신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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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최옥경

어느 봄날 초록 싱그러움으로
우리 곁에 찾아온
보석 같은 오늘

오늘이 있어
기쁨과 감사의 노래로
하루를 만끽하며

오늘이 있어
가슴에 희망 품고
내일을 품에 안는다

하루가 짧지만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시간
시원하게 웃어야지

오늘만큼은
어제보다 즐겁고
사랑과 행복이 넘치도록
푸른 길을 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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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최옥경

어느 날
낡은 초록색 작은 가방
정들어 어깨에 메고
나갔더니

친구는
당장 버리라고 한다

내게 온 지
30년이 넘은 가방
어떻게 해야 하지

모두 궁금하게
여기는 가방의 마음
그 속엔 한 아름
집착과 욕심뿐인데
여기저기
방마다 쌓인 가방
방마다 빼곡한 책들

가끔 가방끈만 길다고
손가락질하던 이에게

오늘은
훌훌 맑고 밝은
햇살 한 줌 건네야지
그리고
여행 가방 챙겨 들고
깊은 가을 곁으로
떠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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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감나무

최옥경

햇살 좋은 언덕 위에
홀로 서야 했죠
해마다
거센 비바람
따가운 불볕
모진 눈보라 맞으며

빗물 스며들면
듬뿍 물 머금고
깊이, 깊이 뿌리내려
단아한 꿈 키웠죠

이젠
우람하고
알찬 모습으로
달콤한 나눔의 기쁨
누리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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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최숙자

도려낼 수도 약을 바를 수도
그렇다고 딱히 처방전이 있는 것도 아닌
암 덩이 하나 가슴으로 키운다

가슴앓이 할 때마다 도지는 아픔
밤새 보채다 새벽닭 울음으로 지새면
가시기는커녕
되레 아픔으로 가슴 죄어오는
그리움이라는 가슴엣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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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교훈

추원호

소슬 바람에 맥없이 떨어지는
추풍 낙엽을 보면
삶이 어떤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한다

자신의 지체에서 무심히 떨어지는
퇴색해진 낙엽을 보면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여름내 푸르름을 자랑하던
머리카락 흩날리는 바람에도
저항 한번 못하고
맥없이 떨어지는 나뭇잎

잎새 한 장 한 장에 새겨진
살아 온 지난날의 애환을 보며
잊혀진 추억으로 기억되기보다는
지는 낙엽을 보며 나 자신을 돌아본다

먼 훗날 무엇을 남기기보다는
내게 주어진 짧은 삶의 시간 속에
헛되지 않게 살아왔다는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고 싶은 마음

모든 것을 마무리하는 가을 때문에
미련 없이 떨어지는
흙으로 돌아가는 낙엽을 보며
지나온 세월 다투며 살아왔던
내 자신을 겸손히 돌아본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고 떠나는
낙엽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삶을 볼 수 있는
만추의 계절, 가을이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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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의 아우성

추원호

어린 시절 시골 장터에 가면
불꽃 튀는 공간이 있다
불구덩이 난립하는 활 활 타는 풍로
지옥불처럼 혀가 날름거리는 곳에
무쇠덩이들의 낫과 호미
그리고 농구들이 잠자고 있다
머리에 수건 두르고
팔 걷어 부쳐 흥얼거리는 쇠메의 손놀림
허공을 휘두르고 내리치는 쇠메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튕긴다
모루에 놓인 쇠붙이들은
무엇이 될까 생각도 없는 사이
핏덩이 낭자한 모습으로 변해 간다
쇠메가 내리 칠때 마다
대보름 쥐불놀이 하는 것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는 신음소리
눈 부라리며 돼지머리 망치로 치듯
한 방에 날리는 백정의 눈빛처럼
모루에서 피 튕기며 혈전을 벌인다
시장에서 거침없이 놀던 호미와 낫
논밭에서 무서울것 없이 후려치던 쇳덩이
이산 저산 누비며 토막내던 성깔
면도날 같은 날카로움도
내리 치는 쇠메 앞에서 족을 못쑨다
앞 뒤로 실컷 두들겨 맞고
활활 타는 지옥불로 다시 들어가
뜨거웠던 심장 다시 두드리며
모진 매를 견디지 못한 곧은 마음
뜨거운 화로속에서 잠잠히 침잠한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껀가
짐승 다루는 백정의 눈빛에 무서워
담금질 끝날때까지
고요히 모루에 누워
또 다시 고문질에 견뎌야 한다
그것이 나의 삶이라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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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바다

추원호

아침 햇살은 그리움 속으로
애틋하게 파고들고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에
줄타기하는 고깃배 하나

비릿한 바다 향기
넘실대는 파도의 웃음소리
하늘을 나는 갈매기의 날개 짓
시원한 바닷가를 그린다

하얀 모래밭을 거니는 연인
그들의 은밀한 속삭임도
파도소리에 섞이어 들려오는 시간

사랑으로 가득한 바다의 풍경
세상 근심 걱정 떨쳐버리고
삶의 의욕으로
머언 지평선을 바라본다

분노하는 마을
슬픈 마음을 비우고
넓은 바다를 바라보면
비운 내 마음속으로
기쁨의 파도소리가 들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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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의 한 가족

하광호

- 몽고 기행시 44
지난 7월, 7박 8일 몽골을 다녀왔다.
우리나라 15. 6배의 땅, 총인구는 300만명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넓고 푸른 물결 지평선 몽골 대자연을 돌아보았다.

그곳은 7월 초가을 날씨
저벅 저벅 멀리서 들려오는 가축들의 발소리
사각 사각 무리들의 풀 뜯는 소리
언덕을 넘으면 대자연의 녹색물결
온 천지가 녹색바다 처럼 출렁였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징기스칸 출생지에서
북두칠성, 가시오피아 은하수 온리온좌를 보며
별 하나 나 하나 지나간 그 시절 떠오른다.

넓고 푸른 초원에서
출렁이는 푸른 초록바다
끝없이 넘실거리는 지평선은 끝이 없다.

씨름, 경마, 활쏘기의
나담 축제에 함께하니
어느새 몽골인들은 지구촌의 한 가족

유목세계와 정주세계를 통합한
몽골제국
중국을 정복했던 원 왕조 몽고!
울창한 수림과 만년설
사막과 황무지
호수를 모두 품고 있는 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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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황현화

코로나가 개면
뜨끈한 물속 시원한
목욕탕에 가서 씻어내자
우울했던 시간들

가수 콘서트장에 가서
어우러지는 분위기에
흥건히 젖어보리라.

축제장 꽃향기 속에서
소녀가 되는 홀어미랑
추억으로 익어봐야지.

여행 통장 모아온 친구들과
구름 위로 날아가 보자
잠 못 이루는 밤 축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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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사진전에서

황현회

가을 숲 내려앉은 사진에서
알록달록하게 보이는 단풍잎

진안 사진은
하나도 없다 하시는데
여기저기 많이 본듯한 풍경들

객지에서 고향 비슷한
모습을 만났을 때
그 장면 인양 찍었을

지긋한 마음이 느껴진다.

*2022년 4월 15일 진안문화의집에서 열린 김삼권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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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댐

황현화

종이배처럼 신발들이
물 위로 둥둥 떠올랐지

댐 공사 시작하고
장대비 퍼붓던 날
물이 마루 앞까지 올라왔었지

동네 사람들 한자리에 모여
단체 사진 찍었네
표정들이 묘했지

분위기 눈치 챈 듯한
슬레이트집 기와집들도 사진 찍어
모두 담겨 있는 책
한 권씩 받았네

아버지의 아버지 그 전부터
맺어온 인연
가슴속에 묻었지
서울 아들네로
전주 아파트로
여기저기로
우리는 민들레 씨처럼 날아갔지

아스라이 눈길 더듬어
마을 있었던 그 자리
구름 담긴 맑은 물 넘실

눈물 빛
마음 판에 새기고
추억들 녹여서
수많은 생명 살리겠노라
다짐 반짝이는 용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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