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당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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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당한 날

원종환 0 975
어릴적 한달에 한번인지.. 하여간 가끔 하던 민방위 훈련 날 이면 집에 불 다 끄고 그래도 공부 해 보겠다고 커텐 두껍게 치고 촛불 켜고선 머리카락 태우며 장난치던 날 이 있었다..
정전은 아니었지만 어두움속에서 할일이 전혀 없었던 난 형을 괴롭히거나 촛불 심지를 괴롭히며 더운 여름날을 보내기도 했었다.
지난 몇 일 동안은 문명의 이기가 밀집한 뉴욕의 또 다른 재난의 날 이었다.
목요일 오후 4시를 계기로 갑자기 찾아온 정전은 여름의 더위와 기가막히게 잘 어울리며 뉴욕의 모든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아랍계 사람들은 미국인에게 하늘이 내리는 벌 이라고 하고 9/11 이후의 또다른 하늘의 계시라 하기도 하고.. 태러리스트들의 공격 이라고도 하고..뉴욕 맨하탄 한 바닥 안에서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갈팡지팡 걸으면서 경찰들이 나누어 주는 물 받아 마시며 소방관들의 도움으로 앨리베이터에서 2시간만에 내리면서 별소리들을 다들었다.
한가지 확실한건 참 이 세상에 미국인들을 싫어 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근데 왜들 미국에 있지?
하는 생각이 자꾸 머리를 맴돌았다.
하여간 전기가 없는 48시간 동안은 인간의 무력함과 내가 얼마나 문명의 이기에 빠져서 사는지..
항상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는 난 전화국이 먹통이 되고나서 아무런 대책없이 멍청히 브로드웨이에 서 있었고... 옆을 지나던 할아버지의 오래된 트랜지스터 (라디오라 하기엔 너무 오래되서)의 AM방송을 오랫만에 들으며 무슨 일이 터진건지 이해하기 시작했고.. 담배 피지 않는 난 담배 피는 사람들의 라이터가 어찌나 부럽던지.. 그날따라 스타벅스의 후라파치노가 엄청 먹고 싶었고.. 배를넷 들어가서 디아블로 엄청 하고 싶었다.. 시사랑와서 시 한 100편은 쓸것만 같았고 오랫만에 영화도 보고 싶었다. 공기가 없어야 그 고마움을 안다고.. 전기가 없는 동안은 정말 암흑 이었다.. 세상도 마음도.. 할일이 전혀 없어진 그야말로 난리가 난 그 날 난 한가지 끝없는 생각을 했다.
예전 한국에서 M.T가는 동창따라 첩첩산중에 들어가서 모기한테 엄청 뜯기며 밤새도록 노래 부르고.. 배를 타고 망망대해에서 별빛속에서 낚시 하던 일..
그래.. 난 전기 없어도 상관없어.. 있음 좋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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