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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수 정 1 3043
운영자님, 먼저 게시판에 오류로 쓴 제 글을 작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시집 < 재즈가 흐르는 창 너머 비행기 한 대가 >에 수록된 작품을 추가요청 드립니다.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봄비에 잠기다  / 강 수 정

 
빗소리, 귀를 잡아당긴다
물소리 보다 빗소리는 통통해,
봄비 소리는 실크의 은밀한 움직임이야
부드러운 바람처럼 몸을 밟고 몸 속이 젖고있어
끝없이 길을 가고있어
갈증에 몸 비틀던 상처 속으로 흙 일으켜 세우고 있어
꽃 걸어오는 길 소풍 가자고 쉬운 암호 보내지만
빗장 건 마음은 웅크리고 있어
유리 고드름 심장 박혀 녹일 수 없지
따뜻한 손 빌려줘 가슴을 눕히고 쉽게 눕는 것 네 운명이지
미끈거리는 체내, 깜박 놓친 기억이 파랗게 갇혀있어
부셔버리자 떨리는 소식이 걸어오고 있어
싸르륵싸르륵 실크의 은밀한 움직임으로
봄비 소리 새들 잠 깨우고
꼭 안아보고 싶은 새 한 마리
저 봄비 속에 넘실거리며

水晶, 깨뜨리면 어둠이 / 강 수 정

바라보기에 따라
물무늬 안으로 실종되어
방울방울 눈물주머니 있네
그 투명함이 오히려 감옥 되어
무지개 빛은 단단한 돌 속이 집이네

돌 깨뜨리면 무지개 속, 내가 웅크리고 있네
푸른 바람에 수유하고 싶은 젖무덤이
두견은 꽃잎 한 자락 끌고 와 검은 주검을 덮었네
어머니, 꽃 등불은 돌무덤 위에도 소풍 오는데
간절한 영혼 빠져 나와
감꽃 줍는 아이의 손톱 끝에
매달린 슬픈 이슬 보이셔요
술 취한 아비가 황새피기 같아
주검처럼 뻗은 강이 되었네
그래, 흘러가야지 역류하여 풀 한 포기
물고기 한 마리 눈물 떨구지 않았는지
보듬어 줘야지

춘설春雪 / 강 수 정


어제 본 나비야 어데 숨었니,
먼지의 요람 속에 하늘하늘
노랑 물 절인 날개 접어 짚 덤불 속 숨어있니
모락모락, 산 안개 달콤한 발톱 내 밀며 속삭였지
대문 밖이 환하다 빨리 날개를 달아라
행복하다고 믿는 봄볕 때문
문밖 쑤시는 아픔 있는 줄 몰랐지

무늬 돋아 꽃 돌아오고 아지랑이 출렁출렁 길 지우는데

벚꽃 더미아래 우체부 아저씨 빨간 마음속
연두 빛 질주하고,
노랑 물 흠뻑 들이켜 가는 허리 넌출넌출
바람, 바람은, 산 옆구리 밟고
첨벙, 비어있는 갈비뼈 밑 혀 자국내며
春雪이다
머리 속이 덜거덕거린다 하얗게 도배된다
새 한 마리 남쪽으로 치닫고
설레던 가슴기슭을 파헤친다

어제 본 나비야 어데 숨어있니
언 날개 파닥거리며 등이 시리지
꽃은 기다리지 않고 산이 춥구나


재즈가 흐르는 창 너머 비행기 한 대가  / 강 수 정

 
산은 고요한데 화산처럼 터져 나오고 싶은 뿌리
팽팽한 땅 밀어내며 솟아오르는 비행기 한 대
내 안에서 이륙한다 탈출을 시도해보라는 신호
초록 영혼이 속에서 윙윙댄다
연회색 주둥이 물새가 같이 날자고 창가서 손짓한다
나는 튀어 오르거나 날거나 떠나지 못한다
재즈 속에 멀리 있는 너를 데리고와서
조각조각 분해시키며, 뼈들 걸어다니는 잔인한 거리에 선다
쾌락의 뿌리 흔들어 본다 어색해,
왜, 화려한 즐거움에 익숙하지 못할까
네 심장 밑으로 밀어 넣고 싶은 언어
몸짓으로 드러내지 못하나
안에는 짙은 재즈의 음률 조율되어 있는데
초록 영혼 가지 뻗을 분출구 어디서 찾나
순결한 시간은 구르는 돌 옆, 흰 제비꽃으로 서있나
이름 새겨준 바람마저 떠나보내고 있나
재즈는 몇 곡 째 흐르고, 창 너머 비행기 한 대
내 속에 착륙한다
몹시 덜커덩거린다


만두 빚는 남자 / 강 수 정

 

내 모르는 사이 하현달이 떴다
욕구불만인 남자의 둔부를 닮은 저 느림보 달
부정한 육감이 내 대뇌에 손 집어넣는다
짜릿하게 촉진되는 교감 신경
천궁꽃 줄기로 찌르고 들어가 발열한다
풍덩, 바다에 빠진다
음탕한 바다는 소돔과 고모라 성의 소금기둥을 낳는다
소금기둥 여러 형상으로 떠돌다
겨울 창가 만두 빚는 남자가 되었다
순결한 눈과, 차디찬 돌과
푸석한 흙으로 만두 빚는 것 죄가 되는 것을

버린 반쪽 기억하지 못하는 하현달
백혈구 죽어가고 득실거리는 나쁜 세균
남자의 각막 쪼아먹는 우울한 새 한 마리
배고픈 듯 하현달 히죽 웃는다
새 부리 자르고 깃털 뽑아 달의 혈소판을 막는다
내 모르는 사이 하현달
욕구불만의 남자가 삼켜버렸다

 

  틈  / 강 수 정


몸과 마음의 틈 사이 자주 삐거덕거린다
기름기 빠진 연골 아파하고 소리지르면
물기 가득 감춘 선인장 가시 내밀며 접근 금지를 외친다
바람은 육신의 틈 노려 황토색 흙발 집어넣는다
시린 발끝, 시린 손끝, 늑골 사이 손 넣어 휘젓는다
황토 물 육신 구석구석 철벅인다

어릴 적 뒷산 동굴 찰흙 캐러 갔다
뚝뚝 떨어지던 물 벽 사이 뻥 뚫린 틈 보며 앙- 울어버린
그 틈은 거대한 함성으로 내 안에 긴 동굴을 만들었다
어둠 속에서 복숭아 속의 애벌레를 먹고
첫사랑은 그 동굴에서 한 쪽 팔을 잃었다
동굴 속을 떠다녔다, 어머니의 입 벌린 틈은
내 육신의 동굴이 되어 바람이 들락날락
꿈처럼 메울 수가 없었다
풍경 소리는 해가 저물어
부처는 내 어머니 천리 낭떠러지로
뒤돌아보는 젊은 내 어머니 땅강아지 같은 자식 업고
동구 밖에서 기다리시던 뒷모습
언제나 몸이 젖은 연꽃, 숭숭 구멍 뚫린 뿌리


  빠져나간 자리 / 강 수 정


짧은 굴속에 있는 너를 끄집어내고 싶다
푸른 머리카락 일 때부터 끈적끈적
내 몸 속에 빠져 발버둥치는

목구멍으로 작은 불빛 스며들자
내 몸 속 스르르 밟고 담 넘어 가는 영혼
시간의 꼬리였다 날아오는 소문에
너는 거실의 불빛 따스하고
식탁의 인형이 일곱 개가 된다나
여자의 깔깔거리는 웃음
너는 왕이 되어 은 쟁반 굴리며
마당놀이 한 판의 주인공이 되었구나
너의 몸 한 번도 포개 넣어 본 적 없는데
내 혈관 속에서 늙어 가고 있구나

끈적이의 누런 발톱 사이로 물매화 필까

하얀 머리카락 된 너를 끄집어내어 서쪽 하늘 작은 별을 만들었다

내 몸 속에는 강물이 모든 구멍을 통해 넘쳐흐른다

 

    梅花  / 강 수 정


죽은 굴뚝나비 날개쪽지 밑에
쓰다버린 詩가 누워있다
푸른 詩를 써서 완두콩 방에 나란히 밀어 넣은 첫사랑
보내지 못한 문장, 그 씨앗 퍼뜨려 까칠한 빈가지 꽃이 열렸나
달음질치며 띄운 편지 소식 없어 至高至純함
겨울 이슬로 꽃몽오리 뒤에 숨었나

얼음집 깨고 눈꽃 열꽃이 피었나
깨어나지 못한 산의 두근거림
바람 달콤하게 살랑거릴 때
솔방울 구르는 빈산 햇살 욕심 것 끌어안는다
옆자리 꾸벅꾸벅 졸며 실눈 틔운 꽃망울
어느 날 산밑 환하게 핀 눈꽃
저 순결한 아침의 꽃 등불
꽃 그늘 아래 눈부신 사랑이 눕는다
낮은 속삭임 속 뒤틀려 울렁거리고
터지는 석류알 저 잘 익은 사랑은 누구의 것인가
어느새 꽃잎 진다 푸른 눈발 철없이 날린다
 

  雨水 무렵  / 강 수 정

 

불만스런 식욕에 투덜거리며 차분히 눕지 못한 머리카락, 부시시한얼굴, 발끝을 보다 직선으로 마주치는 장미 미용실, 제일 떡 방앗간, 궁전 노래방, 간판 읽으며 시장을 간다
立春도 지났고 몇 밤 자면 雨水인데, 겨울의 뾰쪽한 꼬리, 질기게 목덜미 잡고 달겨 붙는다, 비늘 돋은, 바람 깊숙이 아려오고, 순간, 성급한 재회로 부딪히는 손뼉소리, 그냥 피하고 싶은 회오리바람 되어, 먼지가 된 권태, 휴지가 된 실언들, 도리 킬 수 없는 악몽으로 마구 솟구친다, 그리곤 덧없이 뒷골목으로 사라진다 고무줄처럼 탱탱한 봄볕 한 줄기, 시장 사람들의 투박한 손마디 아래 얼비치듯 웃고 있다, 오늘은 쑥과 냉이를 만 눈짓으로 인사하고, 망설이며 데리고 오지 못했다 싹이 노란 무 하나, 동태 한 마리, 하루 종일 악보 그리고 남을 콩나물 대가리 와글와글, 시장 어귀 담벼락 한켠, 바람 쪼그리고 앉은 눈꺼풀 쳐진 할머니, 작은 목판에 난전 펴놓은 도라지, 우엉, 연뿌리… 겨울의 끝은 검정고무신처럼 질기기만 하다



 山門이 열리다 / 강 수 정


山門을 열고 들어섰다
얼음 손에 상한 뿌리들 시름시름 앓던
나무들의 휑한 울음소리
산은 다른 산 안에서 우뚝 서 있다
한 자락 산 끝에서 꽃불 타들어 간다
유혹적인 빛을 밀어내며
태양 반대 방향으로 어둠 따라 들어갔다
조장(鳥葬) 때 인육 먹은 새들이
하늘로 오르지 못한 영혼들과 울고있다
푸른 낮달 두려운 계곡의 혀를 깨물고
빛은 따라다니며 조금씩 나누어주었다

내 몸이 출렁거리며 열꽃이 돋았다
부드러운 바람 실눈 뜬 초록들 배를 띄운다

내 속은 왜 이렇게 고요할까
두충나무 뒤 숨은 낮달 밀어 넣어도 닿지 않는 하늘,

마을 뒤에 산이 서고 산 앞에 내가 섰다
노란 침묵 잦아 올린다 툭툭 터지는 소리
山門을 연다 가벼운 것은 찬란한 빛이었다
山門은 크게 입벌리며 내 속을 탐닉했다
출렁거리는 몸 헐어 山門에 확 뿌렸다
샛노란 산수유,


  밤섬은 낙원이다 / 강 수 정

 

날고 싶으면 그 섬을 찾아가야겠어
이상한 날개를 가진 새가 밤에 날고 있어
날카롭게 뒤틀린 오장 육부 패대기치고
날렵한 몸으로 별의 이마에 보석 박아주고 싶거든,
황조롱이 한 마리, 별 눈썹 위에 앉고싶어
끝없이 공중 회전 하고있어
보석 먹은 별 지친 길 조롱조롱 밝히는,

자갈마당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마시고
비틀거리는 그 섬에 앉아 귀기울이지
무자치 한 마리 네 허리 밟으면
놀란 새가 가슴을 파괴하고 있어
힘겨운 빌딩 걸어와 풀어헤친 앞가슴에 풍덩 안기지

밤섬에 가면
이상한 날개를 가진 새가 지치지 않고 날고있어
보석 먹은 별 땅에 내려와 불덩어리로 곡예를 하고 있어
악귀와 천사 혼돈 하는, 그 섬엔
수소생명이 물을 마신 뒤, 무거운 날개 말리고
세상에서 벌레 먹은 날개, 이 낙원에서 날고있어,


  숲이 유리 안에 서있다 / 강 수 정


  그렁그렁한 유리, 눈물 맺혀 흔들리다 불현듯 안으로 손 뻗어 나를 만져보고 싶어한다 훤히 볼 수 있지만 건너 올 수 없는 너와의 거리, 나는 너 안에 갇힌 가엾은 나무, 탈출할 수 있다 비바람 부는 이 밤 지나면 산으로 돌아갈 수 있다
  숲은 아침에 제 자리로 돌아갔다 허리잘룩한 개미 무수한 애벌레들 젖은 어깨 털며 웅성웅성, 어젯밤 유리 속 집이었다 또 유리에 기대어 흔들리다 나무를 본다 아, 그것은 뼈대 없이 흔들리는 내 모습이었다 만져보고 싶지만 만져지지 않는 또 다른 나였다


 터널은 고양이를 생산한다 / 강 수 정

 
투명한 어둠 속
터널 온 몸 뜨겁게 연다
긴 내장 속 이글거리는 금속 광선 덩어리
눈 아픈 고양이를 생산한다
끊임없이 새끼친다

붉은 푸줏간, 비린내 코 박지 않는
사막에서 퍼온 끈적이는 모래 바람 들이키는
그 심장 조정하는 너는 악마다
느끼한 기름 파먹는 벌레다
벌레는 야금야금 내 가계부 찢어먹어
몸 부풀러 짐승이 된다
요절내 땅에 묻고 싶지만
썩지 않아 용광로 속 녹여도 더욱 싱싱해

영혼 없는 고양이 죽지 않는다
생산과 재생 번복하는
국우터널 빠져나오는 광선의 행렬


 우물 깊은 집 / 강 수 정


꽃과 햇볕은 서로 숨결을 느낀다
자석으로 끌어당기는 건조한 숨결
목 긴 민들레 떨리는 바람 기다리고
제비꽃 통통한 봄비 기다린다
내 팔뚝에, 장단지에 번지는 반점들
붉게 돋은 뱀딸기 빤히 일몰 쳐다본다

나비 손님 떠날 줄 모른다
풍성한 빛 속으로 꽃가루 번져 탱탱한 나비들
새들 찾아와 가슴속에서 말한다

내 오금처럼 따뜻한 담장 너머,
우물 깊은 집이 있다

새벽 산길, 눈먼 네 아버지 아침 이슬 가득 쥐고 오면
젖은 발목에 매달린 빛의 무게
도랑 건너 접시꽃 핀 하얀 길 따라
정미소 가는 길, 아버지 지팡이가 된
그녀의 꽃밭은 담장 너머 있다

 

  부추 밭 / 강 수 정


싹둑. 목 잘려도 다시 돋아나는 상처,
잘라내고 잘라내도 돋아나는 상처 잘 아물지 않습니다
흙은, 작별 기뻐하며 햇볕과 입맞춥니다
가까이 다가 온 도시의 이빨에 물어뜯기며
화두話頭 건지는 가로등 밤낮 깨어있습니다

밤은 고요해 물소리 들리고
식은 별 떨어져 밭이랑에 묻습니다
별 무덤 늘어나면
한 뼘 두 뼘 부추 밭 늘어갑니다
오늘은 가로등을 끄고,
별 무덤 열 수 없는 노란 달빛 속
물컹한 물 냄새에 온 몸이 떨립니다
비와 이슬로 빼곡이 푸른 살을 채웁니다


  산책 / 강 수 정

 
산의 늑골 자박자박 밟는다
흙 닳는 소리,
이 정밀한 진동은 울창한 숲의 에테르
떨리는 침묵 속 느껴져 오는 열의 전달,
바람의 마찰, 뜨겁게 살갗 휘어 감는다
숲의 에너지에 떠밀려 계곡을 찾는다
물질경이 물 마음감아 올리고 돌 마음 강을 찾아 떠내려간다
저 소리들 내 안 꽉 차 흐르면 키 큰 꿀밤나무 위에 올라
구름결 펼쳐진 하늘 빛깔 색칠한다
달리는 강을 붙잡아 파란 물감 푼다

나비 등, 가을 문신 새긴 채 물을 마신다
파닥거리는 아픈 날개, 서늘한 외로움 산그늘로 짙어
백일 전 홍역으로 죽은 동생의 여린 혼령인가
찌르르… 아픔 흘러내려 뿌리 뻗는 소리,
아, 춥다, 등뒤서 나비 숨어버린다

전생에 나는 나무였으리라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나는,
흔들리는 목소리로 자주 고향 부른다
녹두는 푸른 레이스 두른 방에 심장이 커가고
수다스런 깨꽃 깨소금처럼 핀다
밥물에 푹 익힌 양대 잎, 풋고추 멸치 볶음
내 유년의 밥상머리,
그 여름 향기 속으로 산책한다
숲은 잠 속에서도 열, 빛, 바람으로 흔들린다

 
  자두꽃 / 강 수 정


보름달에 이끌려 자두꽃밭 언저리에 닿았다
바람은 산기슭 어디에 잠들었는지 따라나서지 않고
시냇물 자주 몸 뒤척이며 흐른다
희멀건 달빛아래 부채춤 추는
흰나비떼 꽃잎,

알몸에서 향내가 난다 손안에서 물커덩거린다

지난 꽃샘추위 붉은 울음, 푸른 울음,
꼭꼭 감춘 하얀 꽃잎
우레처럼 들끓던 꽃물 밀어 망울망울 꽃피운

먼 산 검은 이마 드러내고 눕자
견고한 길들 일제히 일어나
지금 막 허물벗는 달빛 속으로 무수히 뛰어든다
산기슭 어디선가 잠자던 바람 푸르르 달려든다
놀란 자두꽃 깨어나 눈비비고
산밑 마을 개 짖는 소리
후두둑 떨어져 날리는 꽃잎, 꽃잎, 꽃잎들,

 
 7월의 도남지 / 강 수 정

 

  수초더미, 짐승처럼 못의 옆구리 파먹는다 물어뜯기는 내 옆구리의 아름다움, 꽃등 켠 노란 손가락 달려와 부서지는 빛 주무른다 출렁거리는 바닥 꽝꽝 짓밟는다 뒤뚱거리다 주저앉는 물결, 움켜 안아도 비좁은 내 몸의 지퍼를 열고 뜨건 못이 눕는다 수심이 궁금하며 역사가 헐겁다 일만 년 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환단고기, 최초로 문자를 만든, 가림토 문자 가 수장되어, 오늘 그 유적의 집 헐러 물결 위로 떠올랐다, 일만 년 전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닌가, 그 때의 내 모습이 보고싶다, 옆구리 없는 내 모습과 같을까, 구름과 바람, 이슬처럼 억겁 속에, 새들은 길 묻지 않고 내 얼굴 쪼아먹어도 평화롭다
  7월의 여우 햇빛 어디에 감춰두는지, 반짝거리다 등뒤엔 푸른 비늘, 붉은 자두 물고기의 입술처럼 빠져있다 소금쟁이, 무심코 동그라미 그리고, 왕잠자리는 영토 넓히며 자기만의 제국을 세운다 그 제국 속에 낚싯대 드리운 사람들, 흔들리는 손으로 커피를 마신다 페파민트는 태초의 물빛일까, 옥빛보다 가벼운 향기에, 최초 가림토 문자를 만든 하늘의 백성이, 내 안에 수심이 궁금한 못이 눕듯이 눕는다

 
화명동이 있다 / 강 수 정


오일장서는 구포에서 숨가쁜 오르막길 올랐다
노래 한 곡 부를 정도 다리 힘 빼고 걸으면
우시장 나가 돌아오지 않는
소뼈 솟은 화명동
비닐하우스에 둘러싸인 작은 섬 같은 산 하나
소의 뼈 깎아 세운 절벽과 빽빽한 나무들
그 산 한 번도 가르마 탄 적 없다
차바퀴에 깔려 죽은 뱀을 보는 날엔
산꽃, 들꽃, 바람 쫓아버리고 울었다
멍석 깔린 구름 보며 쉬어가면서 울었다
맨발로 수초에 할퀴고 돌 뿌리 채이며 달려온 낙동강 하류
밤이면 강물은 머리채 끌려 저 산으로 흘러들어 갔다
짐승들 먹이고 나무뿌리에 나누어주었다
저 속엔 누가 살고있을까
살찐 거미 은실로 비단 짜고, 산발한 칡넝쿨
처녀 귀신 불러 머리 빗고 있을까
내 살을 찢고 궁금한 산이 들어와 앉는다 
온갖 벌레 갈비뼈 밑 스멀거리고 무서운 짐승들
병든 자궁 조금씩 먹는다
다시 꽃잎으로 태어나는,
흙 묻은 손 툭툭 털며 허리 펴고 일어서는 화명동 사람들,

 
  그 여자 / 강 수 정


  햇빛 속 티눈 찌르는 사금파리 모아 제 살 찢으며 웃고있다 수정체 풀려 비를 부르지만 그녀 머리 위에는 노란 달 떠있다, 치마폭 달빛 그득 담아 둥지에서 훔쳐온 새알 부화시키며, 사막 횡단하는 큰 새 꿈꾼다, 모란꽃 같은 그녀, 간뇌의 자율 신경 조절 미아 되어 헤매고있다 독백 같은 중얼거림 자기 안에만 있다 꽃가마 타고 새색시 될 나인데, 돌담 밑 사금파리 다듬어 소꿉 사는 어린이, 노란 달 속에 머리 풀어, 뒷산 흔들리는 댓잎 모아 달의 지붕을 덮어주던 그녀,
  어느 날, 피의 순환은 멈추고 돌담 밑 다시 깨지 않는 잠에 빠졌다, 물렁한 그녀의 뇌 속, 의사인 오빠의 손이 휘젓고 다니며, 실험실의 쥐가 되었다는 뒷소문만… 달 속, 소꿉 살던 그녀 살림 풀어놓고, 부화된 새는 열어둔 하늘 향해 날아갔다, 곱게 미친 그녀는 이 세상 다시 꽃이 되어 내려왔다

 

  나비의 죽음 / 강 수 정


모래 바람, 머릿속에서 솔잎 끝으로 인다
보내고싶은 문장으로 뭉쳐지지 못하고 흩어져
숨골 갉아먹는 벌레들,
내 잠자는 사이 나비가 되어 맨발로 날고 있다
훨훨 옷을 벗어버렸다
넘어지고 밟혀도 가슴 내어주는 흙의 음성,
컴퓨터 두들기던, 인형 접던 아이들 창가에서 외친다
와! 첫눈이다
시냇물 소리로 아이들이 흘려 내린다
흰 쑥부쟁이 꽃잎 지던 날
마법사는 하늘의 요정 불러 얼음 나비로 참새 발자국 덮는다
민둥머리 동생이 태어났고
솔갈비 타는 아궁이 속에 첫눈 내리는 소리
증조할머니는 참기름, 미역 들고 유령 같은 나비 떼 속을 걸었다
내 안에 하얀 이불 펴고 여섯 번째 동생을 눕혔다
어머니의 심장으로 다독거리며
찔레꽃 냄새로,

너희들이 내 몸의 밧줄을 풀어다오

나비 한 마리 겨울민들레 입술 위에 앉는다
혀 속으로 말려들어 덜컹 문을 닫았다
겨울민들레 물컹한 자궁 속에서 나비는 죽었다
죽은 나비 부활하여 일곱 번째 동생
파란 이불 펴고 눕혔다

 
  산책 / 강 수 정

 
산의 늑골 자박자박 밟는다
흙 닳는 소리,
이 정밀한 진동은 울창한 숲의 에테르
떨리는 침묵 속 느껴져 오는 열의 전달,
바람의 마찰, 뜨겁게 살갗 휘어 감는다
숲의 에너지에 떠밀려 계곡을 찾는다
물질경이 물 마음감아 올리고 돌 마음 강을 찾아 떠내려간다
저 소리들 내 안 꽉 차 흐르면 키 큰 꿀밤나무 위에 올라
구름결 펼쳐진 하늘 빛깔 색칠한다
달리는 강을 붙잡아 파란 물감 푼다

나비 등, 가을 문신 새긴 채 물을 마신다
파닥거리는 아픈 날개, 서늘한 외로움 산그늘로 짙어
백일 전 홍역으로 죽은 동생의 여린 혼령인가
찌르르… 아픔 흘러내려 뿌리 뻗는 소리,
아, 춥다, 등뒤서 나비 숨어버린다

전생에 나는 나무였으리라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나는,
흔들리는 목소리로 자주 고향 부른다
녹두는 푸른 레이스 두른 방에 심장이 커가고
수다스런 깨꽃 깨소금처럼 핀다
밥물에 푹 익힌 양대 잎, 풋고추 멸치 볶음
내 유년의 밥상머리,
그 여름 향기 속으로 산책한다
숲은 잠 속에서도 열, 빛, 바람으로 흔들린다
[이 게시물은 운영자님에 의해 2011-06-18 00:24:44 수정과 추가에서 이동 됨]
1 Comments
가을 2006.09.07 00:15  
안녕하십니까.
요청하신대로 "옥탑방에 잠자리 날으네"는 삭제되었으며
<재즈가 흐르는 창 너머 비행기 한 대가>에 수록된 시 22편이
본웹사이트에 소중히 간직되었습니다.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