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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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시학

제2절 눈물시학


눈이라는 언어가 가지는 이미지는 첫째 눈(雪)--물(水)으로 눈이 녹으면 물과 눈(目)-- 물(水로  슬프거나 기쁘면 눈에서 나는 눈물이  있습니다. 눈이 말을 하는 때는 눈물이 나지요. 너무 슬퍼도, 너무기뻐도 그러기에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눈물이 많은 신앙영웅은 요셉입니다. 요셉과 형들과의 관계는 아버지 야곱, 즉 이스라엘이 제일 사랑하여 요셉에게 채색옷을 입히고 특별대우를 하는데 대한 형들의 극도의 미움이 있었는데 더하여 꿈에서 형들이 요셉을 향하여 절한다는 엉뚱한 이야기를 함에 죽일려고 작정한 터였습니다. 더구나 해와 달과 열한 별 까지 요셉을 향하여 절을 한다는 꿈 이야기를 듣자 미움은 극도의 상황이었습니다. 이것도 모르고 아버지 이스라엘이 형들이 양치는 곳에 가보라고 합니다.
요셉은 순수하게 양들을 향하여 찾아가는 기쁜 마음이었는데 형들은 그러지 않아도 미운털이 박혀 죽이기로 결심한 요셉이 오자 곧 죽이기로 하였지만 루우벤이 죽이지는 말고 구덩이에 넣자 하여 그대로 구덩이에 밀어 넣어 집니다.
 성경 본문에는 없지만 17세 소년 요셉은 울었을 겁니다. 형들은 동생 요셉의 채색옷을 벗기고(37:23절)을 구덩이에 넣고(37:24) 가장 추한 모습으로 앉아 음식을 먹습니다. 마침 이스마엘 상인들이 오는 것을 보고 유다가 생각한 것은 아우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에 다시 미디안 상인들이 오자 형들이 유다의 말에 동의하면서 다시 구덩이에서 끌어 올리고(27절)요셉을 꺼냅니다. 이 때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살려 주는 줄 알고 또 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들은 요셉을 미디안 상고들에게 팔아(27절)버립니다. 은 20개에 그를 팔아(27절)버립니다. 팔려가면서 아마 대성 방곡하였을 것입니다. 이때 요셉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애통이 전개됩니다. 야곱의 집안에서는 아들 한 사람 요셉이 집승이 잡아 먹었다는 슬픈 분위기 조성된 가운데 요셉은 보디발의 집으로 팔려갔습니다.(창 37:36). 이스라엘 집안은 날이 갈수록 가난하여 져 갔고 요셉은 보비달의 집안에서의 생활이 이어집니다. 울음의 사람 요셉을 성경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므로 형통한 자가 되어(창 39:2) 있습니다.
이 때부터 요셉의 울음은 조금씩 가라앉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곁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창 39:5). 이 때 아마 요셉은 울음반 웃음반을 섞어서 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보디발의 아내의 끈질긴 유혹으로 요셉은 속울음을 울었을 겁니다.(창 39:9-13). 보디발 아내의 헛 고자질로 요셉은 옥에 들어갑니다(창 39:20). 이 때 요셉은 절대 억울암으로 울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고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창 39:21-22). 이 때 아마 요셉은 감사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감옥내에서 꿈을 해석하여 준 일이 있지만 꿈 해석의 도움으로 풀려난 죄수들은 요셉을 기억하지 못함으로 요셉은 여전히 감옥에 있께 됩니다. 이 때 울보 요셉은 감옥에서 나가지 못함을 슬퍼하여 울었을 것입니다(창 40:23). 드디어는 왕이 꾼 꿈을 해석하게 된 요셉은 풀려나게 됩니다(창 41:14). 아마 이 때는 울음반 웃음반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꿈 해석이 그대로 맞히자 바로 왕은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 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하고 자기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로 전국을 총리하게 하였더라(창 41:40-43)입니다.
이 때 요셉은 감사의 눈물을 흘렸을 겁니다. 요셉이 17세에 애굽으로 팔려가 총리가 될 때 나이는 30세였습니다. 23년 만에 총리가 되었으며 만 30세는 예수가 그의 공 사역을 할 때 나이가 30세(창 41:46)입니다. 3년간 하여 33세에 십자가에 못밬히지요. 요셉은 무낫세를 낳게 되는데 요셉도 울음 인생이 끝났다고 아들 이름을 무낫세라 합니다. 그러나 요셉에게 있어서 울음은 아직 끝이 아닙니다. 
한편 야곱 이스라엘 집안의 어두운 분위기와 가난이 겹쳐 곡식을 구하게 되어 아들을 애굽으로 보내지만 마지막 열두번째의 베냐민을 보내지 않았는데 아직도 야곱 이스라엘은 그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들 형제가 요셉을 만났을 때 요셉은 형들의 얼굴을 알아보았으나 형들이 요셉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갖가지 일들이 벌어집니다. 요셉이 형들 10을 옥에 가두어 3일간 가두어 둡니다. 3일 만에 그들을 풀어주며 요셉이 말을 하기를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창 42:18)”는 것이다.
이 때 10형제들의 죄의 고백(창 42:22)이 있는데 또한 이 의미가 회개의 눈물이 됩니다. 루우벤의 말을 들은 요셉은 그들을 떠나서 울게 됩니다(창 42:24). 시므온은 갇히게 됩니다. 막내 베냐민을 데려 와야 한다는 말을 들은 야곱 이스라엘은 다시 울게(창 42:36) 됩니다. 드디어는 베냐민이 애굽으로 내러감을 모두 무사하기를 비는 아비 마음이 나타나는데 만일 재난이 미치면 너희가 나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합이 되리라(창 42:37)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근이 점점 심하게 하시자 드디어는 결심하여 베냐민을 애굽으로 보내는데 이 때 야곱 이스라엘의 믿음은 아들인줄도 모르는 요셉총리를 언급하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하여금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라(창 43:14)는 믿음을 보입니다. 그토록 형과 아버지를 속인 야곱은 이제 완전한 이스라엘입니다.
동생 베냐민과 그의 형들을 본 요셉은 두려워하는 형들과 동생 베냐민을 향하여 그가 이르되 안심하라 두려워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시무온을 그들에게 이끌어 내고 그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여 물을 주어 발을 씻게 하며 그 나귀에 먹이를 줍니다”(창 43:23-24). 요셉이 아우 베냐민을 보고 마음이 타는 듯 함으로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창 43:30) 나와 그들을 대접합니다. 그리고 즐거워합니다. 이 즐거움은 웃음의 눈물(창 43:34)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요셉은 아비 데려오기를 작전하는데 드디어는 이들 과 형제간임을 고백하고 그 정을 억제지 못하여 울게(창 44:45“1-3)됩니다.. 아버지를 이제는 데려오자며 ”동생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창 45:14-14). 이후 야곱을 데려오게 되는데 만나서 그들은 또 한 바탕의 웃음을 눈물로 하였을 겁니다(창 45:27. 46:7).
정식으로 우는 장면은 창 46장 39절에 있는데 ”요셉이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 목을 어긋맞겨 안고 얼마동안 울매“(창 46:39)입니다.
그런데 애굽으로 팔려올 때 요셉의 나이가 17세였는데 그 아비 야곱이 애굽에 산 연한도 17년입니다. 이 때의 17 리듬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구속사적 의미로 연결됩니다. 여호와 ה ו ה י(ה󰕯ה󰖾)=5 + 6 + 5 + 1 + 0 =17로 수치의 합은 5 + 6 + 5 + 10=26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s)는 17이 시와 음악의 비례라 하였습니다. 에레미야는, 은 17세겔로 하나멜의 밭을 샀고(렘 32: 9), 이사야서에서는 창조 א󰙝󰔧(바라/창조)가 17회 사용 됩니다. 신성수입니다.
마지막으로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게 될 때 첫 아들 므낫세와 둘째 아들 에브라임이 있는데 동생 에브라임에 더 축북하게 되는 이유가 밝혀집니다. 그것은 야곱의 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죽은 곳이 에브랏이며 이와 관련한 요셉의 둘 째 아들 에브라임 모두 사랑의 의미로서 연결되며 그 뜻은 입술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의미가 주어진다. 요셉이나 야곱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의미가 레아 보다 라헬을 사랑한 하나님의 뜻, 곧 말씀 전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 됩니다. 문자적으로는 입과 관련한 פ(페)입니다. 한국말에 페 하고 내어 뱉는 것은 다른 뜻이 아니라 말씀을 내어 뱉아야 함을 그 철학으로 하는 기독교 진리입니다. 그토록 많은 눈물을 흘린 이스라엘 가정을 통하여 말씀전하는 전통적인 하나님의 가문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곧 눈물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하나님 사역의 일입니다. 
이를 성경은 라헬이 죽은 장소(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창 48:7)로 합니다.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였습니다. 말씀전하기 위해서, 야곱 역시 에브라임을 향하여(창 48:19) 축복의 권세를 줍니줍니다. 요셉에 대하여는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여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24 요셉의 활이 도리어 건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이 목자가 나도다(창 49:22-24). 이 때 아마 요셉은 달과 해와 열 한 별이 자기를 위하여 절하는 꿈이 맞음을 알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이처럼 요셉의 눈물은 눈물 시학의 정의가 되는데 기독교눈물시학이기도 합니다. 기독교 시인인 이영지 시조에서도 정서적인 눈물은 자주 등장합니다. 

하늘로 올라올라 눈물을 다 뿌리고 내려와 쓰러질듯 마음에 몰래몰래 안으로 들어오자 곧 녹아버린
그리움
    - 이영지 「첫눈의 사랑사람」 - 새벽기도 ·1536에서

가만히 비가 되는
넌 나의 하얀 운명
정말로 눈물눈썹
하늘이 그립도록
마음의
진주 꽃으로
하얀 기둥 달았습니다 
- 이영지 「넌 나의 하얀 운명」에서

장 미 비 밤을 샌 다

장 미 비
꽃잎바다
아 예 예 그 리 움 을 눈물로 달아버린

입술의 꽃물로
서서
베실베실 웃는다

웃음의
소리
장미
두 손을
모 아 들 여 그 리 움 뜨 는 법을
  · 이영지 「장미비」에서
 
위 시조 「첫눈의 사랑사람」에서 눈물 묘사의태어는 ‘하늘로 올라올라 눈물을 다 뿌리고’ 있습니다. 하늘에 ‘올라 올라’라는 의태어를 통해 하늘 중간쯤이 아니라 하늘 끝이라는 의미를 ‘하늘하늘’의태어에 숨기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 2회리듬은 결정적인 2회가 아니라 무한히 반복될 수 있는 리듬의 축약입니다. 따라서 이 시조적 화자는 절대자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새벽기도 · 1573이라는 증명이 붙어 작가의 이력에 의한 기독교적 절대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적 화자는 다시 땅으로 내려옴으로서 사람들을 구원한다는 목적이 수반되면서 뜻이 은유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쓰러질듯 마음에 몰래몰래 안으로 들어오자 곧 녹아버린’입니다. 따라서 그 의미의 사랑의 행동에 대한 눈물의 행위입니다. 그것은 문학특유어의인 그리움이라는 형용사 안에 갇힙니다.
그리움은 사랑이 전제될 때 솟아나는 마음의 감동입니다.  이영지의 「넌 나의 하얀 운명」에서 비는 일반비에서 마음으로 닥아오는 운명적인 물이 됩니다. 곧 말씀이 됩니다. 하늘이 그립도록 마음의 기쁨이 되는 결과로 하여 시적 화자는 마음의 진주꽃으로 눈물눈썹을 만들고 있습니다. 때문에 하늘이 그립다. 아 마음의 세계는 그냥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얀 기둥을 달았습니다.
이영지 「장미비 - 새벽기도 ·1730」에서는 눈과 눈물과 그리움의 관계는 모두 물과 깊은 관계에 있습니다. 이 물=눈물의 등가등식은 동시에 사랑이라는 추상명사와 등가형식입니다. 따라서 이 3자의 동일시는 시가 갖는 은유에 다중의미로서 눈물의 의태어를 외연으로 하면서 사랑이라는 시의 내포를 가지는 대표적인 형식적 비평방법에서 얻어 지는 결과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시가 가지는 장점의 색체는 바슐라르가 주장한 학설 역동적 상상력의 삼단계에 색체에 의해 의태어의 기본의미를 전해줍니다. 더구나 밤을 새는 이유가 대상을 위하여서입니다. 이 사랑의 바다는 막연한 의미의 시의 애매성을 풀기 위하여 꽃잎바다로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 사랑이 단순한 사람들의 그리움 대상이 아니라 입술이 되면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 자가 됩니다. 대상을 위하는 꽃잎바다의 사랑크기는 ‘입술의 꽃물로 서서’ 있습니다.

입술의 꽃물로
서서
베실베실 웃는다

웃음의
소리
장미
두 손을
모 아 들 여 그 리 움 뜨 는 법을
  · 이영지 「장미비 - 새벽기도 ·1730」에서
 
이때의 입술은 말하는 입술입니다. 그러므로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됩니다. 따라서 이 시적 화자는 시인 자신이 아니라 절대자의 입술로 밝혀집니다. 이 웃음은 눈물을 가진 자이되 겉으로는 말씀을 전하면서 시적 특유의 여성화자, 곧 시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하는 표현기법을 쓰고 있습니다. 사람은 특별한 일, 특히 시인에 눈에 비치는 일에 감동함으로써 감동을 받은 일을 시에 묘사하게 됩니다. 눈물을 흘리는 이미지는 직접적인 눈물을 흘리지 않더라고 마음의 감사와 슬픔이 시에서 나타납니다.

눈과 눈 마주하면 그 안에 샘이 있어
맑은 물 흐르듯이 마음이 흐르면서
하늘을 날아오르는 말하기가 보인다
- 이영지 「눈으로 말해요」

눈은 하나님의 눈 안에 든 은혜 발견)을
눈으로 읽지요
우리 둘이 마주하면 너무기뻐 사랑의 불이 일어나요
우리둘이 눈을 마주치면 눈을 읽어요
아가가 엄마 눈을 보지요
엄마의 눈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웃어요
눈으로 말해요
알아 들어요
엄마의 사랑눈을 보면 오늘이 안심되요

아름다운 것만 보이지요
꽃술의 아름다운
꽃들은 사랑하는 이의 눈만 보려
꽃잎으로 덮어요
가만히 들여다 보아야 보이는       
비밀번호를 누르면 뵙네요
행복함에
든 사랑 받으세요
 - 이영지 「눈 마주치기」
                       
더 깊은
하늘 샘을 눈(目)이라 한다지요
더 깊은 땅의 샘을 눈이라 한다지요
그대의 눈 안에 나를 넣어 주신
날에는

하늘의
맑은 물이 퐁퐁퐁 내리지요
땅에서 맑은 샘이 퐁퐁퐁 오르지요
그대의 눈 안에 나를 넣어 주신
날에는

온 몸에
초롱초롱 맑은 눈 달리네요
눈물이 눈 안에 나를
넣어 주신 날에는
- 「그대의 눈 안에」  -새벽기도 1653

눈은
하나님 눈 안에 든 사랑을 보라고 합니다
날마다 눈을 뵙네요
하나님을 뵙네요
하나님 눈에 사랑이 든 눈빛을 뵙네요

은혜를 벴네요
행복함에 든
눈으로
참생명의 말씀을 놓아
위로자가 되어
120년 살려고 하나님의 배를 만드네요

매우매우 많이많이 
은혜가 많았다하라시기에
고마워
맑은 물이 몸속에서 휘돌아 흐르도록
은혜를 벴네요

눈이 내리면
아픈 가슴이 눈 녹듯이
하늘에서 하나님의 눈이 내리네요 
선하신 눈물이 내리네요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리네요
비에 계시는 은혜가 내리네요

단비가 내리네요
애굽 군대에게 맞불로 밀매 올라온

말씀 깊이 좌정하신
영광 받으신이의
사랑을 뵙네요
- 이영지 「눈으로 뵙네요」 - 마 5:29-  30


나의 사랑하는 눈에게
고맙습니다
두 눈을 주시어

눈은 영생과 물고기
바다 물고기 처럼 많이 오래오래 살으라
눈에는 눈과 눈 사이에 하나님의 능력이
눈과 눈 사이에 눈이 있어 옆 볼 사이가 없어요
 한 눈 팔 사이가 없어요

은혜를 받으려고요
노아에게 바닷물 위에서 살아남게   
바닷물 위에서도 살아남는 위로자
120년 배를 만들어
매우매우 사랑하시기에 
하나님 눈안에서
은혜를 벴네요

노아를 사랑하시는 눈을 뵙네요
은혜가 많았다)고
눈으로 말하네요

행복함에 든
그대 눈으로
맑은 물이 들어와 그대 몸 속에서 휘돌아 흐를 거에요
눈처럼 내릴 거에요
아픈 가슴이 눈 녹듯이
하늘에서 눈이 
선하신 눈 물이
눈과 마주하며 말씀에 몸을 담그네요.

비에 계시어 단비이네요
눈 안에 든 사랑으로 밤가는지 낮가는지

이 두 눈을
이 두 눈을 잘못보아 한 눈이 없어지게 하지 말하주세요
- 「사랑하는 눈에게」 - 마 5:29-  30

저희들은 원래 소경
저는 백성을 대표하는 소경이입니다.
소경인 저는
눈 에 물을 가졌습입니다
눈이 둘이어서 눈물이 배니이다
얼굴이 비치는 눈물이나이다
눈물이 흐릅니다

어께를 토닥토닥 두드리시는 위로자
하나님의 맑은 물이 눈 속에서 휘돌아 흐릅니다
아픈 가슴이 눈 녹듯이 내립니다
아픈 눈이 눈녹듯이 뜨입니다
 
못 볼 것을 매우매우 많이 볼 뻔한 저에게
선하신 눈물이 내립니다
나를 건지시려 맞불 놓으시고
올라오시어
나를 은혜로 건지시는

눈이 내립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립니다
비 눈 물이 내립니다
- 이영지 「소경인 저에게 비 눈 물이 내리나입니다」 - 마 5:29-  30


아픈 가슴이 눈 녹듯이
하늘에서 눈이 내리네요 
선하신 눈 물이 내리네요
눈과 만나 만나
마주하며, 몸을 .
은혜의 단비로 적시며
하나님을 뵙네요
하나님의 눈에 사랑이 든 눈빛을 뵙네요

고루고루 주시는 눈
아픈 가슴이 눈 녹듯이 하는 사랑
하늘에서 눈이 내리네요 
선하신 눈 물이 내리네요

씻음을 받으세요
보라 시트를
깔아주시니
                - 「행복함에 든 사랑받으세요」 - 마 5:29-  30


파도가 일며 물이 둘로 나뉘어
하나님의 키보드

하늘의 물과 땅의 물로
17일에 시작되어 17일에 끝 내신이여
여호와17로 수치의 합은 5 + 6 + 5 + 10=26이여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s)는 17이 시와 음악의 비례라 하였습니다
에레미야는, 은 17세겔로 하나멜의 밭을 샀고(렘 32: 9), 이사야서에서는 창조 א󰙝󰔧(바라/창조)가 17회 사용
신성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용하여 주의 영광 󰗘󰕋󰔬󰗖(켑보데하/영광, 출 33: 18)의 17이여
맞불놓으신이여
하나는 빼어버리라고 하신이여
에따 하고 던져진 홍수

홍수에도
언약을 세우신이여
홍수로 멸하지 아니하시려고
홍수에 빠지지 않게
노아는 홍수후 삼백 오십년으로 흥하고 살이 쪄서

아들들로 맞불을 낳아
셈은 일백세 곧 홍수 후 아르박삿을 낳았고
좋으심을 보이신이여
맞물 ‘맙부딜’이여
움마 씻기시내 어쩔것이여
움마 씻어버리실이여
보라 시트를 깔아주신 이여
나의 눈이며
하나님의 참 말씀주심 안에 내가 있나이다
- 이영지 「행복함에 든 사랑받으세요」 - 마 5:29-  30
 
저희 눈은 두 개입니다
눈은 쌍수입니다.
눈은입니다 샘입니다
신라시대 희망의 아이는 두 눈이 멀어서 어머니가 벽에 벽화를 보고 한 눈이라도 달라하였지만
저는 두 눈이 아직 멀쩡합니다
신라시대 지인이는 두 눈이 멀은 어머니를 봉양하려
옆 집 일을 하여 손이 거칠어졌지만
제 손은 아직 너무 보드랍습니다
심봉사의 딸 심청이는 아버지 눈을 밝게하려
 바다에 뛰어 내렸지만 저는 아직 아무것도 안했습니다.
성경에 눈은 쌍수이고
이 눈을 영원히 간직하라 하나님이 눈을 주셨습니다.
눈은 아인입니다 샘입니다

두 눈과 영생 사이에 하나님의 손이
계십다
맑은 물이 눈 물이 있습니다
눈을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마음의 바다에 눈이 비치어 뜹니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알아 보는 눈이 있습니다

비에 실
눈 물 비를 맞나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맞습니다
눈 샘물에 들어 맑은 물을 마십니다
하늘안에 많은 물을 먹나입니다
바다 깊숙이에도 많은 눈 물을 먹나이다
.
매우매우많은 사람들 두 눈 사이에서
때로는 눈 물 흘리시며 눈 녹듯이 하나씩 사랑을 떼어주는 
선한 눈 물

이스라엘 백성을 눈 물 방울로 씻으시며  눈 물 방울 하나씩 녹이신 이여
 
물 
보라 시트를 깔으신이여
- 이영지 「눈망울 눈방울」 - 마 5:29-  30


하나님의 깊숙한 눈에 드신 맑은 말씀 ・ 바다 깊숙이  먹을 수 있는 참 생명의 말씀의 샘들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물이 담긴 배에 물이 깊이는 말씀입니다. 바다에 깊이 들어 있는 샘들에는 먹을 수 있는 물이 있습니다. 깊고 맑은 샘들에는 두 눈을 뜨고 잘 살필 수 있는 자만이 그 속의 물을 먹을 수 있습니다.

하늘에는 땅으로 내려오는 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이 있습니다
땅에는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눈이 있습니다
이 수직성
천지가 진동하는 여림이 오면
동시에 깊은 하늘 창이 먼저 열리어 하늘 깊음의 샘물이 하늘 아래로 내려오고
바다 깊숙이에서 솟아난 샘물의 심연과 만나는 샘물은 맑습니다
하나님의 눈과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마주하는 맑디맑은 눈입니니다.
마주하는 물입니다
두 개의 물은 눈물방울이 됩니다
두 눈이 됩니다
마주하는 물은 맑디맑은 물입니다
이때의 대화는 물입니다
말씀입니다
파도가 일면 물은 두 개로 갈라집니다
보트가 지나가면 물은 두 개로 갈라집니다
햇빛은 비칩니다
햇빛은 두 개로 갈라집니다
물은 두 개입니다
하늘의 물과 땅의 물이 두 개입니다
가벼운 물이 하늘로 오르면서 맑아집니다
땅으로 내리면서 더러워집니다

물결의 무늬는 긴 끈을 만들면서 중앙을 중심으로 갈라 빛도 어두운 곳에 빛을 집어넣었을 때 둘로 나뉘어집니다. 물과 빛의 2회 두개의 분리(참조 느 9: 11)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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