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시인의 자유 건져올린 시의 무게 이은송 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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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시인의 자유 건져올린 시의 무게 이은송 시평

◩ 해설

푸른 시인의 자유 건져올린 시의 무게
- 이은송 시인의 시집 『이 가을에 낚시질』에 부쳐 -



李 英 芝
(시인 · 시조시인 · 문학박사)



시의 세계는 나와 너, 인간과 자연, 주체와 객체가 구별되지 않아서 내가 네가 되고, 시인이 시가 되고, 시가 시인이 된다. 이은송 시인과 이은송 시와의 철저한 합일 곧  이은송 시인이 이은송 시가 된 이번 시집 『이 가을에 낚시질』을 내게 되어 감사하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꿈꾼다.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특히 시인은 시를 통해서 행복을 꿈꾼다. 이 선택의 자유는 시를 쓰는 순간이나 시가 탈고되어 나오는 그 때의 행복감, 그리고 잘 써졋을 때 기쁨을 안겨준다.
잘된 시는 긴장관계, 곧 시 그 자체와 시의 내용물 둘 사이에 있는 거리를 드러내지만 이 둘이 서로 화합하여 하나가 되는 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특히 현재진행이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갖춘 이은송 시인의  『이 가을에 낚시질』은 현재형 “낚시질”로 시작된다.
그리고 가을과 낚시를 등가관계로 설정하고 가을의 낙엽이 떨어지는 절망적인 지상의 시간을 회복의 낚시로 건져올리는 행위를 드러내면서 두 개의 극적인 눈에 보이는 두가지의 긴장관계를 이 시집을 통하여 시인이 시가 되는 상상력을 제시한다. 따라서 그게 무엇인가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내는 책 제목의 시적 효과를 성공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시에서 이은송 시인이 낚시질 하는 행위는 무엇인가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느냐에 따라 그 시인에 대한 절대의 가치가 평가된다. 당연히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고 최대의 찬사는 시를 쓰기 위해서 살며, 그리고 가장 적절한 표현은 이은송 시인이 시다라는 경지까지 가는 일이다. 이 은유관계에 걸맞게 이은송 시인은 시적화자를 통해 이 가을에 시를 낚시질하는 존재이며 그 건져올려지는 것이 다름아인 시임을 제시한다.
시집의 제목은 시 내용에 대한 대표적이 상징이다. 우리나라에는 봄 · 여름 · 가을 · 겨울 사계절이 있다. 이은송 시인은 가을을 책 제목으로 커다랗게 선택하였다. 일반적으로 가을하면 남성의 계절이고 여성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의 고독과 외로움과 가을남자, 곧 시인이 있게 된다. 기우는 햇살에 한잎 두잎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잘못 살아온 지난날들을 불교용어로 회광반조廻光反照한다고 한다. 봄바람에 꽃눈, 잎눈이 다시 피어나듯 삶의 영혼에 연화장 세계가 열리기를 두 손 모아 간구 하는 시인의 심상이 반영하는 계절이다. 
따라서 보편적 개념으로 가을은 떨어짐과 수확이라는 두 개의 커다란 축을 드러난다. 실제 이은송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하여 낚시로 건져 올리는 시와 그리고 비우는 마음의 자유를 구가한다.

가을에
시(詩)를 낚는다
미끼로 버둥대는 고독을 바늘에 끼우고
한번 따먹고 올 또 다른 놈을 위해
물 좋은 장소로 옮겨 앉아
물 표면에 인 바람처럼
흔적 없이 낚시밥을 던진다
큰놈을 낚으려는 욕심은 없다
애초부터 낚시질에 소질 없고
주체할 수 없는 가을이 나가자 자꾸 조르기에
그럼 낚시질이나 하자고
해서
멋진 한 놈
펄떡거리는 물빛 좋은 시(詩)나
한 마리 건지자고
허탕치는 날이 많지만
미끼만 채먹고 간 놈을
미워하진 않는다
사랑한다 그래서 내일도 올 예정이다
- 「이 가을에 낚시질」 전문

가을과 고독은 특히 남자에게 있어서는 어울리는 관계이다. 이 보편성을 이은송 시인은 시적화자로 한다. “미끼로 버둥대는 고독을 바늘에 끼우고/ 한번 따먹고 올 또 다른 놈을 위해/ 물 좋은 장소로 옮겨앉아” 있기 까지 하면서 낚시질을 하고 있다. 이 행위는 “물 표면에 인 바람처럼/ 흔적 없이 낚시밥을 던진다/ 큰놈을 낚으려는 욕심은 없다”는 두 개의 상반된 시적 긴장 곧 낚시질과 욕심없음의 아이러니를 그 해답으로 “멋진 한 놈/ 펄떡거리는 물빛 좋은 시(詩)나/ 한 마리 건지자고/ 허탕치는 날이 많지만/ 미끼만 채먹고 간 놈을/ 미워하진 않는다/ 사랑한다 그래서 내일도 올 예정이다”라는 것이다.
 아직 시인인 이은송과 이은송의 시는 서로 분리되어 있다. 그 분리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 내일 올 예정이다라는 진행형이 지속이라는 시적 화자의 답은 시를 잘 쓰기 위해 평행 낚시질을 할 것이라는 이성적인 다짐이다.
작품 「이 가을에 낚시질」의 시는 시적화자가 시인 자신임을 드러낸다. 연 구분없이 된 줄달음하기의 이 시는 좋은 시를 쓰고 싶어하는 시인의 절절한 달리기이다. 낚시질이라는 다소 하위적인 ‘...질’언어를 통해 현재진행형의 가을남자가 자신의 위치를 낮추면서 시 한편을 쓰기 위한 행위임을 공개한다. 오로지 시 그 자체가 이은송 시인이 되어 있다.
시를 쓰기 위해 존재하는 이은송 시인은 자신의 위치를 천형이라 하고 있다.

반복되는 경험이
똑같진 않지만
알고 보면 경험만 하다 마는 꼴은 아닐까
투자가 많아 항상
손해 보는 것처럼 생각되나
그러나 쓰지 않으면
범람하여 정리되지 않은 트림들을
어쩌나
천형인지도...
- 「글쓰기 곧 똑같지 않은 경험」 전문

글쓰기의 어려움, 그러나 멈출 수 없는 마음의 끌림이 되는 시는 이 시인에게는 천형이다. 하나가 되기 위한 몸부림 그것은 시인이 가야 할 길이고 그것을 위한, 시 쓰는 시간은 새벽이다.

새벽에 시 쓰는 짓
누가 시키지도 않는 미친 짓 같은
이 짓은
이보다 더한 고독을 막으려고 하는 짓
여름 땡볕에
시들해진 들풀 같은 글귀 몇 개
거미줄 치기에 어울릴 것 같은 음산
닦여지지 않은 시이지만
또 그렇게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이
편하기도 하거니와
햇볕은
여기에도 들었다가 지더군
- 「새벽에 시 쓰기 유감」 전문

시는 어쩔수 없는 운명처럼 닥아온 존재이다. 그리하여 때로는 너인 시와 합쳐질 때는 나와 너의 구분이 없는 절대의 세계도 안겨준다. 이 행복한 때는 햇볕이 든 때라는 것이다. 
이 햇볕이 든 시, 곧 나, 곧 그녀를 시인은 남자는 세상으로 내보낸다.

외출을 꿈꾸더군
나가면 돌아오지 않으리란 각오로
뒤돌아오기 위한 가출을
꿈꾸지 않는가 보더군
인연을 끊으려
질긴 인연을 맺었던 것은 아닐까 그녀와는
슬픈 과시(誇示)를 보이기 위해
그녀를 내쫓았다
차라리 화려한
슬픈 외출을 꿈꾸는 그녀에겐
잘 되었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자유로울까
보내고 난 후의 허전한 행복
참말로 자유스럽다
- 「시(詩)」에서

왜냐하면 그녀가 세상에 내 보내지기를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보내고 난 후의 허전한 행복을 맞보는 시인이다.

2 합일

시와 시인이 합일했던 잘된 시였을때를 시적 은유로 시적 화자의 느낌은 달콤했다고 하고 있다.

시의 미소는 달콤했다.
미래만 존재하는 현재
과거는 있을 수 없는 현재
시는 나를 애무했다
아니 내가 시의 전부가 되었다
- 「내 애인은 시(詩) 1」에서
 
이은송의 시는 이은송 시인의 애인이다. 그러기에 그녀에게 빠져든다. “시의 미소는 달콤했다./ 미래만 존재하는 현재/ 과거는 있을 수 없는 현재/ 시는 나를 애무했다/ 아니 내가 시의 전부가 되었다/ 시의 마음대로/ 그것이 시를 나의 전부로 만들 수 있기에” 그녀는 시인의 애인이 되어 있다. 그리고 애인, 시인과 시가 만나는 시간은 밤이다.

하나가 되지 못하고선
둘도 될 수 없음을 배우자고
조건은 그것 하나
해서
시(詩)
그녀는 아름다웠다
- 「내 애인은 시(詩) 2」에서

너와 나의 구분이 없는 만남, 그리고 서로 대화할 수 있는 하나가 된 사이는 에덴의 세계이다. 이 혼연일체를 위해 이은송 시인은 밤에 시작업하는 시간을 갖는다.

처음 보는 꽃을 마주하고 있다
낯설다
수반에 침봉에
얼마큼 잘라서
어디로 휘이게
어떻게 꽂아야 할는지
가위를 들고 용기를 낸다
자르고 꽂았다 뽑고 또 자르고
꽃봉오리 다치지는 않을까
- 「詩作 1」에서

뭐도 아닌 것이 나를 환장하게 만든다
나의 전부를 다 토해 질펀하게 드러냈는데도
상상해 보라
백지 위 나의 전부에 놀란 내 가슴이 얼마나 누추한지
그런데도 백지장을 보면 깜짝 놀라기도 하니
나 아직도 환장 하겠다
울렁거리는 시가 아직도 남았다는 말인지
- 「詩作 1」에서

시를 쓰는 것
위험한 소일거리는 아닐까

활개치는 언어들을
철지난 날에
얼리는 것은 아닐까

순간을 잊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것이겠거니
- 「詩作 3」 - 위험한 소일거리에서


나를 밟고 서서
한 송이 꽃을 뱉어내는
채송화보다 더 아름다운 객담을 토할 수 있는가
햇빛을 향한
그놈의 떳떳함처럼
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 「푸념 1- 원고지 왈」 에서


그녀의 눈
움트기 위한
탄력의 웅축
그 눈이 나를 밟는다

가슴을 마구
뒤적여 놓고 가는
바람처럼
- 「가을의 여인」
그 여인조차 이은송 시인에겐 시 그 자체이다. 시인인 나와 너인 시가 합일하며 이루어낸 세계에 대한 그리움은 아직 합일 되지 못하기에 밤을 지세우고 시작업에 몰두한다. 이 작업을 위한 일에 고심하는 것은 시인의 행복, 누구나 느꼈던 그 행복을 찾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차츰 인간으로서의 한계성을 느끼면서 깨닫기 시작한다. 낚시로 건져올리는 시의 무게와 그 무게에 실린 무게를 깨닫는 일을 이은송 시인은 빗새의 꿈으로 하고 있다. 빗새는 뱁새라고도 하는데 특이한 일은 푸른 알을 낳는데 있다. 푸르름도 그 이미지가 소망적인데 알까지 가진 빗새를 시작하는 일은 아주 만족스러울 만한 존재이다. 

비오는 날
집 짓겠다는 희망은 되풀이되고
둥지는 쓰디 쓴 집착
살아 있음이 확인되는 굳은 날
차라리 투쟁이 외로워
고독한 전쟁
- 「빗새 12」 전문 
   
완성은 신의 호주머니에나 있는 것
고정된 안정보다
푸른 방황에 익숙한 서로가 되자고 했다
숱한 별 중의 하나처럼만 살자고
언제나 떠날 자유가 있어
구속은 행복이라고
 - 「빗새 14」에서

늘 모자란 웃음이었지
기억만 넘치소서
사는 것이 기만이라고 느끼기 전
- 「빗새의 꿈」 전문

따스한 바람이 불어 와서
듣지 못한 시간이
고통이었음을 알았지요
혼자의 속삭임이 얼마나 큰 소음이었는지
균형 있는 아우성은
혼자가 아니라도 가능하다고 알았을 때
나는 자그마한 풀을 기대고 있더군요
이미
- 「빗새의 추억」

시적 화자는 “나는 자그마한 풀을 기대고 있더군요”로 하여 푸르름에 기댄다. 푸른 알을 낳는 빗새는 비가 오면 들어앉을 자리가없다. 이청준은 빗새라는 제목으로 이 빗새가  비오는  날이면 집이 없어 이 나무 저 나무를 돌아다니지만 결국 비를 맞으며 슬피 운다 하였다 (빗새, 이청준 축제). 그러나 이은송 시인만의 자유스러움 그것은 불가의 깨달음 철학을 체험을 통해 알게 된 이은송 시인의 빗새의 추억은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 그대로를 체험방体驗方으로 알게 된 여실지견如實知見에 속한다.
이은송 시인은 시에 대한 투절한 탐색을 한다. 시인 이은송이 아니라 시와 이은송이 합일된 오히려 시인 이은송 보다 시가 이은송을 압도한다.

옆의 산을 더듬었다
내 심장이 아직은 식지 않아
토하기 위한 심장을 녹이고 있는 중이다
옆 산을 더듬었다
네 심장은 아직도 녹을 것이 남았는가
영겁을 눕고도
늘 푸름에 지치지도 않는 너를 보면
네가 나이다
나를 보기 위한 너를 더듬는다
- 「非色之色」에서

나의 전부가
너의 일부로 밖에 차지할 수 없어도
그렇더라도
너의 일부로 각인되고 싶다
너의 일부인 내 마당엔
너는 가득 찼다
- 「너에게 -- 순 1」

이은송 시인의 시의 합일화에 대한 깨달음은 등가관계에서가 아니라 나를 온전히 비워 상대방에게 넘겨줌으로써 비워지는 합일화이다. 이는 시의 긴장관계가 해소되는 관계이다.

넓은 너의 양팔에
나의 모두는 너의 것이 되기를
조건이 없이 안김을
구태여 사랑이라 말하지 말기를
나는 그렇게 들었네*
                                 
*심호택 시인의 어느 시 제목
- 「희망 사항이 이룩되길」에서

재생되지 않는 이성(理性)
차라리 그녀의 것이 됐다

- 「동백 1」에서


궁금한 짙은 질문
다 차마 못한 채
따라만 웃었다
- 「동백 2」 에서 

너로 인해 내가 누군지를 생각하면서
사랑은 시작했다

그래서 너와 나는
우리가 되는가 보다
- 「愛」에서

너와 나의 구분이 없는 세계는 불교에서는 열반의 세계이고 기독교에서는 화해와 회복의 세계이다. 시에는 시가 가지는  은유이다. 서로 팽팽히 맞서면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나부터 온전히 비워 그에게 기대는 것, 신에게 기대는 것이 합일의 경지이다.
따라서 이은송 시인의 시 세게는 비움의 세게이다. 왜냐하면 시와 만나기 위해서이다. 낚시를 하면서 좋은 시에 대한 깨달음은 욕심을 버리고 나를 비우는 일임을 깨닫는다.
이은송 시인은 시가 지닌 표현구조에서 대체적으로 어두운 언어를 선택, 특히 사계절 중의 조락의 계절인 가을을 택하고 이 조락과 어두움과 몰락의 경지를 넘어서는 시인의 의지를 드러낸다.

차디찬 행복
저 초라한 바람은 알리라
말하지 않는 바람은 그래서
자기만의 노래를 날린다
제목 없이
시작이라고
- 「11월」에서

늦은 가을 11월은 이제 서서히 죽음의 계절이다. 그러나 다 죽는 것은 아니다라는 역설을 통하여 탄생을 위한 비움을 역설한다. 무상을 단멸관으로만 보아 허무하다거나 절망 할 것이 아니라 윤회전생의 순환법칙이 위대한 미래를 창조해 내는 것이 법성임을 깨닫는다.

천국을 향한 꿈으로
더 이상 무거울 수 없는 허무를 찾는다
- 「느낌 3」에서

이은송 시인이 깨달은 것은 해와 안개와의 긴장관계를 해가 뜨면 안개는 걷힌다는 사실이다.

안개야 걷혀라
아니 해야 웃어라
속지 말고 웃어라
안개 걷힌 그 때
우리
우리 내기를 할까
이기는 자는 언제나 진자처럼
용서를 하자고
- 「해가 뜨면 안개는 걷힌다 1」 에서 
 

서로 안긴 풀밭들이
현혹된 안개 속에서도
찜부럭 거리지 않는다
안개가 머잖아 걷히기에
- 「해가 뜨면 안개는 걷힌다 2」에서 

괴로움에서 누구나 납득 할 수 있는 진리를 깨닫는다. 해탈후의 열반적정에 드는 이은송 시인은 시를 통한 진리를 얻는다.
 
욕심 없이 선
풀잎 끝
해탈
영생(永生)이리라
- 「이슬 2」에서

이 해탈의 경지는 무소유의 생활관으로 바꾸어 진다.

지는 잎도 나도 길가에 눕고
어디 노숙이 아님이 하나나 있던가
- 「路宿 1」에서

담벼락은 바람이 없어서
고맙다
- 「路宿 2」에서

깨달음은 무소유의 경지이다. 고행으로 여겨지는 시작업을 통해 오히려 고통보다는 즐거움과 여유작작하는 생활관으로 변한다. 이러한 깨달음은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보는 철학이 적용되어서이다. 죽음이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물질현상의 거푸집이 무너지는 것에 다름 아니며, 인연 따라 생성․소멸하는 철학은 풍요한 너로 인한 초라한 나를 알게 되는 경지이다. 
         
누군가 노크하는 소리에
노크하는 그 주인은
함께 하지 않아도
내 전부인 별이었노라고
어지럽지도 않은 여울 위에
나는 조각배라고
- 「Knock」에서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았다
- 「너에게 -순 1」

인생이 담기는 시작업은 무엇으로도 정의될수 없다는 자유선언이다. 시인의 마음 자유를 말한다. 시인은 시어의 자유를 소원한다.

찌는 뜻한 추위에
불치의 외로움
- 「솔직하게 말 합니다」 에서
   
이슬을 달고
허공을 밟는다
바람도 털썩 앉았다가 가는
아침
신(神)의 한가한 시간
시작도 끝도 아닌
한가한
신의 침묵
- 「아침에 장미 피고」에서
고통에서 자유까지의 오기까지를 시인은 중간에 해우소(화장실)를 다녀오는 일로 제시한다. 그것은 우려와 걱정과 근심을 털어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둘이서도
혼자일 때
가을 탓일까
탄내가 나는 고독이
물밀어 오고
이 한 밤중은 기도가 간절하다는데
나 아니라도 주무를 사람이 많은
달(月)도
함께 할 수 없는
가을 탓일까
가을밤은 타고
고독이 익고
소화되지 않는 시(詩)만 자꾸 삼키고

살짝
일어나 화장실에
가고 싶다
- 「살짝 일어나 화장실에 가고 싶다」

화장실에 가는 이유 또한 시가 잘 안쓰여질 때 간다. 그 이유는 마음이 무거운 내용물 때문이다. 이를 비우기 위해 화장실을 간다.

냄새가 비벼지는 공간
시집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긴다
냄새 묻은 시를 맡는다
시는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으라고 그러나
코로 읽는 시
벽면의 글
- 「화장실에서」 전문

해우소를 거쳐 시인은 시의 완성된 상태를 본다. 그것은 3부의 꽃 보기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보기에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눈을 향한 향연을 위해 시인은 맑기를 원한다.

맑기를 말한다면
하늘보다 더 한 것이 있을까
그 하늘을 잉태한 깊은 산의 시냇물은 또 어떻고
거기 바람이 살짝 나그네처럼 왔다갔다면
그처럼 맑은 만남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 만남이 그리워
전화 코드마저 뽑고
만남을 회피했다
- 「만남」에서

살구나무 꽃 진 며칠 후에 떨어진
콩만한 살구열매 보다 더 푸른 열무
손으로 잡히는 크기로 뚝뚝 꺽어
왕모래밭 밟듯한 그런 소금 두어 줌에 갓 버무리고
반짝거리는 참기름에 고추장 묻은 밥이
백열전등에 반짝인다
그런 저녁은 모두 어머니 몫이었다
- 「어느 가을날」 

어머니에게 있는 맑음과 봄에게 있는 달콤함이 되는 시를 쓰는일은 달콤한 봄빛을 마시기 위해서이다.

과분한 욕심일까
봄빛 한 줌 주워
설탕보다 더 달콤한 봄빛을 마시고 싶다

친구가 바쁘면 어떠랴
연한 풀색에 취한 나도 바쁜데
- 「봄」에서
 
아침은
쟁명한 아침은
나의 전 재산 반이랍니다
유산할 수 없어
계산되지 않는 행복이랍니다
엄청 부자랍니다
무흠(無欠)의 아침
한가한 사람의 사치인가요
이런 사치는
나의 주조음(主調音)이랍니다
게다가
조하(朝霞)빛 커피가 얹혀지는 날이면
나는 시간의 조타수랍니다
쟁명한 마음으로
- 「아침」에서
맑음과 봄과 그리고 아침은 이은송 시인에게 있어서 참선하는 시간이다. 

꽃을 봄
참선(參禪) 시간
버리기 위한 투쟁
부담스런 소유(所有)
집착이 나를 작게 하는 것
- 「꽃 보기」에서
차 한 잔으로도 행복 할 수 있어
새벽을 녹이고 싶지만
나만의 차 한 잔으로 만들기엔
그것도 욕심
한 가닥 작은 욕심도 버리려한다
- 「새벽에」에서
 
얻어짐의 행복은 버림으로 하여서라는 철학은 이은송 시인에게 있어서 득도이다.

태고를 알면서도
미래를 말하지 않는
구도자

수행이 득도(得道)임을
- 「설악산 1」

마음이 편하니
가슴에 풀 한포기 심을 수 있고
상상의 나비가 날기에

향기가 아침 이슬보다 투명하군

누가 나 좀 봐 주세요
내 가슴에 풀이 났네요

풀을 심으니 봄도 왔네요
- 「무제」
 이은송 시인은 드디어 가슴에 풀이 났다고 누구든지 보아달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신감은 시가 따로따로 이은송 시인과 떨어져있는 것이 이은송 시인이 시가 되어 있는 득도의 시간이다. 가슴에 풀이 났네요라고 외치고 있다.

내가 부르면 올까 의심스런 아름다운 봄이더군
그런 봄이 날 부르더군
그래서 설악산엘 올랐지
- 「설악산 2」에서

득도의 경지에 오른 이은송 시인은 자신을 다 비우고 났기에 오히려 모든 것이 나에게 깨달음으로 온다.
지금까지 좋은 시 한편을 낚기 위한 이은송 시인의 시철학을 보아왔다. 시적 화자는 시와 공생하면서 오로지 좋은 시를 건지기 위해 70여편의 시를 향한 은유와 이미지와 종교를 다 흡입시켰다. 이 시인의 소명을 다하기 위한 몸부림은 드디어는 나를 비우고 난 자리에 봄이 닥아오고 설악산이 다가온 경지이다.
지금까지 본 바에 의하면 이처럼 투철하게 시에에게 닥아가기위한 투철한 시정신을 쏟아부은 다른 시인들의 경우가 없기에 더욱 그 가치가 크다. 이에 늘 공생해야할 시를 향하여 연인처럼, 그리고 내 몸의 일부가 되어 시로 사는 이은송 시인에겐 그만큼의 행복이 따른다.
왜냐하면 철저히 시로 하여 철저히 허무해보고 철저히 외로워 본 시인의 고독을 통하여 오히려 이제는 마음의 가벼움에 이르며 나를 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학에서는 깨달은 자에게는 무상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연을 창조하시고는 보기에 좋았더라 한 이 세상에서 시를 위해 시적화자로 존재하는 이은송 시인은 행복한 시인이다. 그러하라고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고 이은송 시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도도한 흐름에서 시인자신을 비우고 행복만을 시로 쓰는 행운이 이미 있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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