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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사랑아 사랑아 44
 시내산의 언약과 하나님 - ‘모세의 고백(20140608) 李英芝




시내산 구름은 말씀입니다
시내산 빽빽한 구름은 말씀덩어리입니다

모시러 오는 저에게
따옴표 “” 한웅쿰 가져가라고
조목조목 구름따옴표 10계명 묶어놓으시고

시내산을 옹기점 연기같이 구워 소독하시어
시내 고기 두 마리 나란히 내오시고
십계명 두 돌판 나란히 내오시고

너는 내 소유라
너는 내 보석이라
모시어 사는 저를 보석싸듯싸매
독수리 등에 업고
따옴표 당신의 말씀 앵기는

날개 끄나풀 에 대롱대롱 매달린 저에게
그대 내소우인 것 “아시지”
그러면 가서 말씀을 전해
황송하게도 나를 모시듯
  나의 행하였음을 보아서
  ‘아시지’
  부탁해
단 둘이
“아시지”



출애굽기 19장은 제목 그대로 시내산의 언약입니다. 이 시내 히브리어 글자가 특이합니다. 하나님의 손, 능력의 손이 두 번 언어의 끝에 놓이고 중간에 놓이어 하나님의 손이 지금도 행하시는 일과 그리고 마무리까지 하심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이 시내
가 각기 물고기를 뜻합니다. 말하자면 물고기 두 마리이지요. 물고기 히브리어 발음 눈은 물고기 뜻 자체이니 이해하기 어렵지 않지만 버팀대 히브리어 ‘사맥’은 든든한 버팀목을 의미하는데 그 원어를 보면 물고기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물고기 두 마리가 시내라는 거룩한 땅에 존재하게 됩니다. 이로하여 신약에서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명을 먹이고도 남은 비유가 떠 오르게 됩니다.
이에 모세와 관련한 하나님의 언약과 관련되어지는지를 알게 됩니다. 왜 하나님이 주로 여기서 모세의 무리들을 대상으로 나타나시는지를 알게 됩니다. 다름아닌 이 물고기들이 상징하는 하나님의 아드님의 예표인 동시에 말씀과 관련되는 현대의 의미와의 접목입니다. 
1절
“이스아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3월 곧 그 때에 그들이 시내광야에 이르니라”

때문에 이 중요한 자리 시내산에 모세가 알고 올랐을리는 만무함에 따라 하나님이 모세를 비롯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셨음을 알게 됩니다. 이 오른 시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3개월이 지났을 때입니다. 한달을 30일잡고 석달이면 90여일이 되는데 이 90여일의 의미가 주는 바의 근거는 바로 하나님의 숫자 10에 10가 되는 100에 가까운 날자, 곧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할 때에 하나님이 응답주시는 날에 가까운 날이 된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흔히 백일기도를 하는데 연구한 바로는 불교 또한 그 근거가 성경과 깊은 관련이 있음에서 그 유래가 성경적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2절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그러므로 출애굽후의 3개월 지나서 모세무리들이 시내산 광야에 이르고 산 앞에 장막을 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수 있는 중요한 시기와 장소가 된 때입니다., 이 장소를 시내광야라고 성경은 번역하고 있는데 이 광야가 다름아닌 ‘미드바르’, 우리나랏말로 ‘믿어봐라’입니다. 히브리어로 ‘다바르’는 ‘말씀’뜻이고 이 언어 앞에 ‘미’가 붙어 ‘믿어봐라’입니다. 히브리어 ‘미드바르’나 한국어 ‘믿어보라
 는 이 어려운 광야 같은 길에서의 삶을 말씀으로 ‘믿어봐라’입니다. 더 나아가 많이 믿어보라는 이미지의 ‘하믿어봐라’도 있습니다. ‘음 믿어볼레’도 있습니다. ‘미’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이라는 뜻으로 성경은 상시다발적으로 이 ‘미’를 사용합니다. 이 때도 말씀이 두 번 사용되어 의미심장한 성경적 이해가 되게 합니다.
말씀이 두 번나타나고,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에게 하나님의 손이 두 번 역사를 하는 일은 숨쉬기 위해서입니다. 바로 시내산의 산 ‘하하르’ 에서 보이는 숨쉼 ‘하하’ 표시 2회 반복입니다. 우리들이 산을 오르면 심폐기능이 원활해지는 이 숨쉼의 중요성입니다. 숨을 쉬어야 사는게 바로 사람입니다.
  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애굽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시내산, 물고기 두 마리를 곧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고도 남은, 곧 말씀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게 될 예표자, 절대자가 있는 시내산, 말씀이 두 번이나 있는 시내산에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하였습니다. 이 ‘올라’는 히브리어나 우리나랏말이나 같이 ‘올라’, 그대로 ‘올라’입니다. 눈으로 보고자 함 뜻입니다. 이 때 모세가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모세를 불러 말씀하십니다. ‘봐이거라’ 하시면서 초청하신 거죠. 그리고는 모세가 할 일을 말씀하시는데 야곱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자손에게 고하라는 것이지요. 이때의 ‘이르고’나 ‘고하라’는 말씀 모두 문법이 현재진행형으로 이 이르고에서 ‘고하라’는 히브리어 발음이 ‘브타게드’로 ‘부탁한다’에 가깝습니다. 누구에게 알리는 것은 부탁한다는 당부가 들어있습니다.
4
“나의 애굽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백성에게 말씀하실 때 경어를 사용하십니다. 바로 ‘나의 행하였음’을 ‘아시지’ 로 하십니다. 사실 우리나라에 있는 상대방을 높임말이 어디서 왔느냐하는 것이 바로 히브리에서 찾아진다는 중요한 사실입니다. 모세가 가진 예수님의 사역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우리나랏말에 ‘모심 · 모시어’등의 존경어가 있지요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라 시키시어 애굽 땅 흑암이과 하나님의 백성들의 3일 동안 광명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독수리날개에 ‘업어’ 그 스스로 내게로 인도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백성을 ‘내가 어떻게 업어’가 바로 ‘나사’를 기본형으로 하는 본문에서의 ‘바에사’입니다. 곧 ‘봐서’ 하나님이 ‘보셔서’, 구해주어야 함을 ‘봐서’ 하셨습니다. 우리말에 ‘봐서’갈게 라는 말이 있지요. 이때의 바에사 언어를 보면 ‘나’ 라는 표현이 두 번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는 하나님자신뿐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되는데 중간에 연단하는 의미 모양 ‘사’ 가 들어가면서 앞뒤로 두 번 되풀이 되어 얼마만큼 하나님이 힘을 기울이셨음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그의 온갖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 그의 백성들 애굽에서 업어 내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이때 ‘인도’는 히브리어 ‘업어’인 ‘봐서’와 인도는 똑같은 폼, 곧 ‘바아사’와 ‘바아비아’ 둘에서 이 하나님인 나를 표시하는 א(알레프)가 두 번씩 약쪽에 붙어 그야말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업어 인도하셨음을 강조하기에 언어로 하셨습니다. 이 보이는 현상 ‘업어’는 하나님이 노력하시는 모습이고 후자 ‘인도’는 하나님의 집안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들이시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앞의 연결이음이 업어와 인도 두 언어에서 똑 같이 연결어음 두 번을 되풀이하여 모두접두어로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바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이스라엘백성 사랑하심이 그대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때 방법은 우리나라말 끄나플, 곧 크나페로 합니다. 힘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말씀이 끄나풀입니다. 이쪽과 저쪽을 이어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독수리는 ‘내세’로 발음입니다. ‘내세로’ 가는 길이거나 아니면 ‘나서라’의 명령형 어느것이어도 아주 좋은 인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독수리는,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아주 재미있는 하나님의 보여주심은 바로 ‘내 말을 잘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의 ‘듣고’와 ‘지키면’이 똑같은 폼으로 역시 ‘솨마아
와 ‘솨마르’ 입니다. 이때 전자는 소리이고 후자는 언약입니다. 그렇다면 약속이 주어지는데요. 바로 내 소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소유를 성경은 쓰굴라 는 ‘쓰굴라’로 발음되면서 소유란 하나님이 ‘쓰거라’ 주신거거나 하나님이 ‘쓸거라’ 하시던가 어느것이라도 소유의 개념이 묻어납니다. 글자풀이로는 중심, 버팀목이 되는 것은 다름아닌  은혜갚기를 바라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하나님의 소리를 잘 듣고 잘 지키면 하나님은 제사장 나라로 중심을 잡는 말씀을 마무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글자발음그대로 하나님이 마므리하시겠다 고하님 으로 한 다발을 주시었습니다.

16
“제 3일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떨더라”
시내산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은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일어나면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일이었습니다. 이 구름이 도대체 무엇일까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할 때 따음표 ‘’를 사용하고 그대로 인용할 때에는 인용표 “”로 합니다. 이러한 글자의 원형은 다름아닌 구름입니다.
그림삽입

따라서 시내산에서의 하나님말씀은 그대로 구름이 나타나서 그 흔적을 보이는 일이며 이 원형은 후일 따옴표‘’나 따옴말 “”로 전 세계적인 말씀인용이 되는 역사를 가집니다. 우리들이 신을 부정하고 아무리 날고 뛰어도 우리는 늘 하나님 말씀의 역사위에서 사는 생활입니다.
출애굽기 19장 16절에서는 ‘하야’ 곧 ‘하여’는 행위의 주제자 하나님 하시는 일이 세 번 하야로 반복됩니다. ‘하야’기본형에 우리말로 ‘봐 여기’ 곧 히브리어로 ‘바예히’와 ‘바예히’가 2회 반복됩니다. ‘바예히’ 곧 ‘봐 여기’라시며 하나님인 내가 역사하시는 현상을 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말 ‘뵈였다’로 발음되는 ‘비효트’가 있습니다. ‘비요트’는 우리말 ‘뵈였다’ 보여주시었다를 생각하면 됩니다.  접두어, 곧 하나님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세 번의 ‘하야’ 우리말 그대로 ‘하여’ 기본형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인간의 숨쉼 문제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어 하시는 일임을 제시합니다.
더구나 3일에라는 날자표시가 있어서 하나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성경이 제시하는 3위 일체가 보여주는 일은 우레, 번개, 구름이 있고, 나팔소리까지 울리는  음향리듬이 있습니다. 이 현상을 바라보는 많은 무리들이 떨었다고 하는데 이 떨었다는 표현이 바로 ‘하라드’
를 기본형으로 하는 ‘바예헤레드’ 다 떨더라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강압적으로 한다는 표현을 ‘하란다’라 합니다. 상대방이 제시할 때는 지붕안에 가두어 놓고 이른바 강요할 때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기이한 일을 경험하는 마음의 떨림을 말합니다. 위엄에 압도당한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합니다.
17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산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섰더니”

우리들은 상대방에게 ‘가라’라고 명령할 때가 있습니다. 히브리어에 우리말의 ‘가라’ 명령형 그대로가 히브리어에 ‘카라’ 소리지르다(창 41:43), 부르고 (창 41:45, 52; 출 1:18, 35:30; 슥 7:13), 말하다(창 41:51, 50:11; 시 3:2, 4), 칭하다(신 15:2), 공포하다(출 32:5), 외치다(슥 7:7) 등 (카라)로 있는데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을 하라의 뜻입니다. 또 ‘가리 가리’도 있습니다. 우리말에 ‘갈래’라는 말 그대로 ‘갈래’
 가겠느냐 뜻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셔서 그 간 사람의 일은 하나님이 마무리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연장선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의 ‘리크라테누 또한 목적사 ‘라멧’를 빼면 역시 ‘크라테누’ 곧 하나님이 ‘크라고하시기에, 가라고 하셔서’ 그들은 산기슭에 선 것입니다. 이 때 산기슭이 우리말로 닿았다, 그대로 히브리어로도 ‘다흐티’ 를 기본형으로 하는 우리말의 부딫히다의 브타흐티트 입니다. 이 기슭이 부딪히다입니다. 그대로 어느 부분에 부딪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섰다고 했는데 히브리어로는 ‘바이트야즈부’입니다. 인간인 모세일행은 다소 자신감을 가지고 있음을 성경은 ‘야자브’ 기본형으로 합니다. 하나님이 연결되는 일을 성경은 그 뜻으로 섰다는 뜻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만히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일이 아닌 서는 일은 하나님을 만나는 일로 서는 일입니다.
18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여”

모세가 모세의 무리들을 이끌고 산에 올랐을 때 연기가 자욱하였습니다. 이 연기를 히브리어로 ‘아솬’ 을 기본형으로 하는 본문 ‘연기가’ 아솬‘ 과 그 연기가 아솬노와  연기같이 를 3회 되풀이 합니다. 글자풀이로는 눈으로 보이게 하나님이 연단하는 모습이 영원히 보임을 의미합니다. 누구를 시켜서는 물고기를 시켜서인데 이 물고기는 하나님의 사역자를 의미합니다. 그만큼 시내산에 연기가 중요시 되는데 이 연기는 히브리어 사전에서 소독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연기는 소독의 의미로 재해석됩니다. 시내산에 하나님의 기운이 구름모양으로 나타나고 그리고 연기가 자욱한 모습인 것은 하나님 기운으로 이 세상을 소독하시는 의미가 내포됩니다. 하나님 강림=연기가 되는데 곧 하나님의 존재는 이 세상을 소독하려 하심을 뜻하는데 구체적인 표현은 하나님말씀=구름입니다.  구름은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따음표 모양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소독하시는 방법은 말씀으로 하심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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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고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

모세에게 하나님은 음성 ‘브콜’로 들려주십니다. 나팔소리가 점점커지면서 하나님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브’는 접두사로 하나님 집안이 됩니다. 곧 하나님안에 든 사람만 하나님 음성을 들을수 있급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매 모세가 시내산으로 올라갑니다. 이 때 올라라는 말은 우리나랏말 그대로 ‘올라’입니다. 

이처럼 모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 누구도 마주할 수 없었던 하나님을 모세는 음성과 보이는 자연의 현상을 통하여 체험하고 하나님 일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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