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이슬과 단비와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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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이슬과 단비와 자기

모세의 시, 반석과 아버지의 노래 – 신 32: 1-7
- (20140810) 李英芝

신명기 32장은 비에 대한 시적 언급을 가는비와 이슬비와 단비로 하여 시적 상상력을 돋우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시조창작을 하였습니다. 

하나님 사뿐히 발걸음을 디디는 가는 비는, 우산도 쓰지않고 씨알을 콩콩밟아 슬며시 그리움크기 내어 민 걸 보신다

잊었어, 이슬비를 내릴 걸 그제서야 일제히 소곤소곤 거리는 이슬방울 터트려 말씀덩어리 끝에다가 다셨다

그러고 난 다음에 못 키운 채소자란 크기를 재보시며 햇빛이 쨍쨍한 날 소낙비 단비까지도 마냥마냥 보내신

비오는
날이 되면
채소다 나물이다
줄줄이 늘어서서
우산을 쓰지 않고
비로서 이슬비보다 작은 채소, 자란다

이슬비 덧입히샤
단비를 덧입히샤
소낙비 덧입히샤
단비의 덧옷마저

이파리
물을 담으샤
데굴데굴 굴리샤

이파리 그리움이 날마다 커지면서, 산은 늘 이슬비의 잎사귀 한가운데 단비의 그리움비비 데굴데굴 굴리샤 
- 이영지 「비 오고야 이 땅에 자라는 반석」


신명기 32장 모세의 노래인데 사실은 모세의 시입니다. 모세의 노래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 때 히브리어는 ‘하시라’로 ‘하’는 정관사를 붙여서 기본형 ‘쉬르’이므로 우리 한국사람들도 즐겨 말하는 ‘시’가 됩니다. 모세의 시는 모세자신은 가나안에 못들어가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시로 대언하여 들려줍니다. 

1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모세 시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함에 있습니다. 1절은 하늘과 땅에게 명령하는 시로 시작됩니다. “하늘은 귀를 기울이고 땅은 들을지어다”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역할은 귀를 기울이는 것이고 땅은 듣는 일입니다. 하늘은 귀를 기울이라의 명령형 ‘하아자누’는 ‘하자아’  청유형입니다. 그리고 땅은 지금도 진행형인 ‘부티스마’로 ‘부탁하마’의 진행형입니다. 이 둘의 차이는 전자가 하나님이 보호막이 되어 주시니 염려말고 하라는 것이고, 후자 땅에게는 하나님이 이 땅에서 너희들이 살아가는 목표로 하나님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지요.

2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비로다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라는 시적 비유는 먼저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이슬 · 가는 비 · 단비의 정의를 알아야 합니다. 일반적인 비의 사전상 종류는 인터넷에서 다음과 같습니다.
 
는 개 - 안개보다 조금 굵은 비.
이슬비 - 는개보다 조금 굵게 내리는 비.
보슬비 - 알갱이가 보슬보슬 끊어지며 내리는 비.
부슬비 - 보슬비보다 조금 굵게 내리는 비.
가루비 - 가루처럼 포슬포슬 내리는 비.
잔 비 - 가늘고 잘게 내리는 비.
실 비 - 실처럼 가늘게, 길게 금을 그으며 내리는 비.
가랑비 - 보슬비와 이슬비.
싸락비 - 싸래기처럼 포슬포슬 내리는 비.
날 비 - 놋날(돗자리를 칠 때 날실로 쓰는 노끈)처럼 가늘게       비끼며 내리는 비.
발 비 - 빗발이 보이도록 굵게 내리는 비.
작달비 - 굵고 세차게 퍼붓는 비.
장대비 - 장대처럼 굵은 빗줄기로 세차게 쏟아지는 비.
주룩비 - 주룩주룩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
달구비 - 달구(땅을 다지는 데 쓰이는 쇳덩이나 둥근 나무토       막)로 짓누르듯 거세게 내리는 비.
채찍비 - 굵고 세차게 내리치는 비.
여우비 - 맑은 날에 잠깐 뿌리는 비.
지나가는 비 - 소나기.
소나기 - 갑자기 세차게 내리다가 곧 그치는 비.
먼지잼 - 먼지나 잠재울 정도로 아주 조금 내리는 비.
개부심 - 장마로 홍수가 진 후에 한동안 멎었다가 다시 내려,       진흙을 씻어 내는 비.
바람비 - 바람이 불면서 내리는 비.
도둑비 - 예기치 않게 밤에 몰래 살짝 내린 비.
누 리 - 우박.
궂은비 - 오래 오래 오는 비.
보름치 - 음력 보름 무렵에 내리는 비나 눈.
그믐치 - 음력 그믐께에 내리는 비나 눈.
찬 비 - 차가운 비.
밤 비 - 밤에 내리는 비.
악 수 - 물을 퍼붓듯이 세차게 내리는 비.
억 수 - 물을 퍼붓듯이 세차게 내리는 비.
웃비 - 비가 다 그치지는 않고, 한창 내리다가 잠시 그친 비.
해 비 - 한쪽에서 해가 비치면서 내리는 비.
꿀 비 - 농사짓기에 적합하게 내리는 비.
단 비 - 꼭 필요할 때에 알맞게 내리는 비.
목 비 - 모낼 무렵에 한목 오는 비.
못 비 - 모를 다 낼만큼 흡족하게 오는 비.
약 비 - 요긴한 때에 내리는 비.
복 비 - 복된 비.
바람비 - 바람이 불면서 내리는 비.
모다깃 비 - 뭇매를 치듯이 세차게 내리는 비.
우레비 - 우레가 치면서 내리는 비.
이른비 - 철 이르게 내리는 비.
늦은비 - 철 늦게 내리는 비.
마른비 - 땅에 닿기도 전에 증발되어 버리는 비.
봄 비 - 봄에 내리는 비.
여름비 - 여름에 내리는 비.
가을비 - 가을에 내리는 비.
겨울비 - 겨울에 내리는 비.
큰 비 - 홍수를 일으킬 만큼 많이 내리는 비.
오란비 - 장마의 옛말
건들장마 - 초가을에 비가 내리다가 개고, 또 내리다가 개곤       하는 장마.
일 비 - 봄비. 봄에는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비가와도 일을 한       다는 뜻으로 쓰는 말.
잠 비 - 여름비, 여름에는 바쁜 일이 없어 비가 오면 낮잠을       자기 좋다는 뜻으로 쓰는 말.
떡 비 - 가을비. 가을걷이가 끝나 떡을 해 먹으면서 여유 있       게 쉴 수 있다는 뜻으로 쓰는 말.
술 비 - 겨울비. 농한기라 술을 마시면서 놀기 좋다는 뜻으로       쓰는 말.
비 꽃 – 시작될 때한 방울 한 방울. 몇방울 떨어지는 

참으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의 종류가 많습니다. 신 32: 2절은 ‘나의 교훈은 비’라 하였습니다. 이 때 비는 ‘마아타르’입니다. 곧 하나님이 ‘맡아라’하시며 우리 인간에게 권한을 부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비입니다.  하나님이 맡아놓으시라며 내리시는 비 전체의 의미는 말씀을 들으면 지혜를 주신다는 뜻입니다. 

비를 만나야 살 수 있어요
비를 주세요
하늘을 향하여 입을 열어요
입을 크게 벌려요
비를 내려 주세요

마음이
목 안이
가슴이
뱃속이
촉촉이 젖어 살아나는
비를 주세요

성경은 비의 종류의 하나님 이슬비 곧, 는개보다 조금 굵게 내리는 비부터 시작합니다. 이슬비는 ‘탈’로 발음되는바 본문은 ‘까탈’로 되어 있습니다. ‘탈’이나 ‘까탈’이 ‘까닭’으로 들리며 귀에 익숙합니다. 각기 자기의 탈을 쓰고 살아가는 까닭으로 하여 자기 나름의 이미지, 곧 보이는 바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이 말씀의 탈 모습을 지니고 내립니다. 곡식들도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맞고 그 영향으로 각기 나름의 탈을 쓰게 되는 모양을 갖춥니다.

비와 비 사이로 걸어갑니다
비에 젖지않으며
걸어갑니다

비보다 더 가는 비로 걸어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교훈은 받아 드리는 탈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집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준 모양 각기 다른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우리나랏말 ‘아무런’ 발음에 가까운 ‘이므라’ 기본형을 가진 본문 ‘이므라티’는 우릿나라말에 상처가 ‘아물었다’ 발음에 가깝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치유의 경지를 가리키게 됩니다. 상처가 ‘아물었다’ 경지까지 오게 하는 하늘에서 내리는 ‘가는 비는 ‘사이르’ 기본형에 본문 ‘키스이림’입니다. 우리가 잘쓰는 ‘사이로’, 두 대상 사이로 가는 비가 되어 걸어가는 지혜는 양쪽에 말씀이 있기에 세상에서 잘 살아갑니다. 본문 ‘키스이림’의 뉘앙스 왜래어 키스는 바로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지요. 이 가는비는 가루처럼 포슬포슬 내리는 가루비와 보슬비와 이슬비를 통 털어서 말하지요. 우리들이 잘 쓰는 가랑비입니다. 언제 젖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옷이 젖어버리는 이 가는 비는 늘 같은 모습을 되풀이하면서 나도 모르게 동화되어가는 삶입니다. 그러기에 좋은 친구와 좋은 스승과 좋은 마음이 되어가는 나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곡식들과 환경이 축복을 받는 비가 되지요. 하늘에서 내리는 가는 비를 잘 맞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 말씀에 젖는 지혜를 가지는 탈, 곧 모양을 가지게 됩니다. 늘 말씀에 젖고 사는 삶은 참으로 축복받은 존재입니다. 
단비가 내리는 아침이면 채소가 제법 커져서 바구니에 솎아 내어 아침밥을 맛있게 먹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단비는 ‘라비브’를 기본형으로 하는 ‘브리르비빔’입니다. 기본형이나 본문 모두 ‘비비’와 ‘비빔’ 발음이 들어 잘 나물을 넣고 비벼먹는 느낌을 일으킵니다. 비빔문화가 가장 발달된 나라는 한국입니다. 갑자기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채소는 물을 받아 비벼지며 잘 자라게 됩니다. 이 비를 성경은 단비라 하였습니다. 사실 채소가 오랫동안 소낙비를 맞으면 물러터져서 먹지 못합니다. 그러나 잠깐동안 내리는 소낙비는 여름에 채소가 잘 자라는 단비입니다.

그대는 나의 단비에요
어느날
그 여름날
바로 무덥던날
날 식혀주는
단비

단비를 주시네요
단 몸에 내리는 단비
단비로 닥아온 날
목마른 내 몸이 자라는

휘청거리며 단비를 받는
단비사이로 선 단비의 사람 저에요

단비가 내리는 날은
우산을 쓰지않아요
옷을 입지 않아요

그 뜨거운 소나기 두께로
이파리 가득 물을 담으며
마음이 단비
쑤우욱 쑤우욱 자라요

바로 여름의 한자 ‘하(夏)’가 화려하게 꾸민 사람  형상글자이듯이 소나기가 잠깐동안 단비로 내리면서 우리가 먹는 채소는 우리 입으로 들어갈 아름다운 모양을 갖추게 됩니다. 이 단비의 히브리어 발음또한 ‘비비’나 ‘비빔’으로 마음껏 비벼맞을 수 있는 반복리듬언어입니다. 반복 언어의 가장 오래된 근거는 아카드어에서 찾아 집니다. 아카드어와 히브리어는 밀접하지요. 반복언어의 예는 라카라크(stork)·살사루(crieket)·발바루(jackal)·판파누(chamber for god)·단다누(all-powerful)·캄캄마타(ring) 등 엄원식 편, 「아카드어 문법」(대전: 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 1997), 69:. 
이 있습니다.
 그 다음은 이슬비입니다.
 
이슬비 두께로 
이슬의 높이로고
두께를 입히네요
비오는
날이 면
우산을 쓰지않아요

이슬비보다 작은 새싹의 이슬옷으로
영롱한 물날개
물방울 날개
이슬비

우산없이 비를 맞아요
비오는 아침
이슬비가 되어요
머리카락사이사이로 내리는
두께를 늘이고
는개보다 조금 굵게 내리는 비를
맞아요
사랑의 비
숨소리 들으며
내리는 소리
사각사각
내리는 숨소리 들으며
숨쉬며 내리느라 보슬비 불러가며
살아서 움직이는 소리가 “나 살아있어” 사랑의 늪
여기야
- 이영지 사랑의 늪

3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위엄을 우리 하나님께 돌릴지어다

시림의 할 일은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서 사람은 왜 밥을 먹고 살까요? 살기위애서입니다. 목숨 부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살았다는 행복감을 맞보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의 삶에는 가정에 가장이 있고 사회에서는 사회단체의 우두머리가 있습니다. 그 목적은  모세가 말한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히리니’입니다. ‘가라’라는 명령형을 받는 기본형과 원문 모두 같이 ‘카라’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신명기 32장 3절은 ‘아거라’(알거라의 경상도 사투라)입니다 곧 글자를 보면 나라는 사람이 등장하면서 ’내가 전파하리니‘로 번역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 외에는 없습니다. 이 때 모세와 하나님과의 감히 인간과 하나님과의 동일시가 되는 놀라운 시적 특징이 드러납니다. 성경의 시적 형태 곧 대상과 나와의 동일시는 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그 분에 뜻에 의한 것이 됩니다. 우리는 어른들에게서 어디로 가라는 말을 듣고 갑니다. 그리고 내가 가는 것은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가라는 명령자에 의해 피동적으로 임무를 다하기 위해 움직여집니다. 소식을 전하는 일입니다. 여기에 모세의 시적 특징이 있습니다. 자기의 의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소식을 들은 자들의 할 일은 위엄을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찌어다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위엄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글자 그대로 한국말에도 있는 ‘커다랗다’의 그 커다람, 위대함인데 은혜를 갚는 가슴을 말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을 받을 때나, 잘 지내온 지난날의 고마움을 부모님에게 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이러한 개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척도를 말하고 그 넓은 사랑을 받은 우리들로서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일이 됩니다. 우리말에 ‘커다랗다’라는 개념 그대로입니다. 기본형 ‘가돌’은 ‘게돌’도 있고 ‘커다랗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백제 근초고왕 나라이름이 ‘구다라’ 곧 큰 나라임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바로 히브리어에 ‘게도라’가 있습니다. 이 긴밀성은 우리가 흔히 쓰는 ‘돌다’라는 말로 더 예를 들 수 있는데 위를 향하여 계속 돌면서 은혜를 가는 일이 계속되면 커다랗게 그 공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나랏말의 ‘돌’과 ‘돌다’와 ‘큰’의미가 덧붙어 ‘핫가돌’이 됩니다. 빛이 점점 더 커지는 과정이 되며 큰 광명이 됩니다. 에덴의 네 강 중 두 번째의 강 기혼은 예루살렘 강줄기가 되는 강으로 물을 내뿜어 터져 나오는 힛데겔 강(창 2:  14)의 힘은 배에서 솟구쳐 오르는 힘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크기가 남쪽에서 북방 유브라데까지 가는 강입니다.
민족이란 은혜를 갚기 위해 사는 사람들의 단체입니다.  눈은 항상 위를 쳐다보며 그 일을 계속하여 가면 위대한 민족이 되는 것이고 위대한 국가가 되는 공동체의 삶이 됩니다. 이 은혜갚기의 덩어리, 이 가득한 민족 덩어리는 뱅글뱅글 돌며 위로만 올라가 드디어 은혜를 갚는 ‘커다란, ’가더라‘ 곧 ’구다라‘가 됩니다. 백제이름 ’구드라‘ 그대로이지요. 그대로 커다람, ’굳으라‘입니다. 우리민족은 빙글빙글 강강수월레를 돌아 춤 추면서 하나님 일을 하는 큰 민족입니다. 나라를 구하는 민족정신이 있어서 일본의 외침을 막았습니다. 민족은 하나님 일을 하면서 우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서 빙빙돌며 춤을 추며 함께 어울어져 큰 뜻을 이루는 것이 민족 공동체입니다.

4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방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하나님의 특징을 성경은 ① 반석 ② 공덕 ③ 공평 ④ 진실 하다고 하였습니다.

① 반석은 ‘주르’ 를 기본형으로 하는 본문 ‘하주르’입니다. 이 반석은 성경에서 아주 자주 쓰입니다. 특히 신명기 32장은 반석이 다빈도 현상을 보입니다.

그는 반석이시니 히브리어 ‘쭈르’를 기본형으로 하는 ‘하주르’입니다.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문장에서 ‘반석에서 꿀을’일 때는 반석 기본형 ‘세라으’에 본문 ‘미세라으’로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신다는 겁니다. 이 때에는 쭈욱 빨게 하실 ‘쭈르’입니다.
이 반석은 다음과 같은 예를 들 우 있습니다. .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히브리어 ‘쭈르’)을 경홀히 여겼도다(신 32:15)
너를 낳은 반석(히브리어 ‘쭈르’)은 내가 상관치 아니하고(신 32:18)
그들의 반석(히브리어 ‘쭈람’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신 32:30)
대적의 반석이(히브리어 ‘쭈람’ 우리의 반석(히브리어 ‘크쭈레누’과 같지 못하니 대적도 스스로 판단하도다(신 32:31)
그들의 피하던 반석(히브리어 ‘쭈르’이 어디 있느냐(신 32:37)
이스라엘의 반석(히브리어 ‘에벤’)인 목자가 나도다(창 49:24).
반석(히브리어 ‘미쌀라으’에서 시내를 내사 강 같이 흐르게 하신 물(시 78: 16)
 피할 바위가 되소서 나의 반석(히브리어 ‘쌀르이’)이시오 나의 산성이신 주는(시 71: 3)
반석(히브리어 ‘쌀르이’)이시며 산성이시며 주의 이름으로 인도하시는 주는(시 31: 4)
저가 반석‘하주르’을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시 114: 8)
반석(히브리어 ‘쭈르’)을 가르신 데서 물이 흘러나오는 말씀(시 105-41)

하나님 집에는 반석 곧 말씀이 들어 있으며 이 집은 반석이 됩니다. 이 반석은 U자형입니다. 안이 움푹 들어가야 그 안에 물이 고입니다. 반석을 쳐서 나오는 물을 먹게한 이 반석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사막에서 물이 솟는 일은 1차적 의미를 벗어나 2차적(시 35: 6)의미로서의 초월성입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반석을 두 번 친 물 이스라엘 백성을 먹였지만 그로 하여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두 번 지팡이로 반석을 치매 나오는 물 ‘마임’(마임·물, 민 20: 11)은 아버지의 거룩함을 들어내지 못하는 개인적인 물(민 20: 13)이기 때문이지요. 신학에서는 아주 중요한 자리, 곧 예수님만이 물을 두 번 칠 수 있는데 모세가 감히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 모세는 하나님의 아드님 자리의 영역을 침범하여 가나안에 못 들어갔습니다. 김정우는 “영원한 반석과 무지몽매한 백성의 이중주라는 논문을 통해 모세의 노래의 특징을 반석으로 입증합니다.
사실 환도뼈가 휘어진 כ(카프) 모양이나 손을 오무려 놓은 상태와 발바닥의 옴폭 들어간 모양은 모두 카프모양으로 힘을 내는 곳입니다. 이 모양 곧 바위는 바위이데 물이 고일 수 있는 바위를 성경은 반석으로 합니다.
이 반석은 히브리어 ‘쭈르’발음일 경우는 향기가 나는 머리의 뜻이며 ‘쎌라으’발음일 경우는 원형 싸메크가 바로 물고기가 원형이므로 물고기가 되어 눈으로 보이게 되는 일이 반석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의 암호는 물고기입니다. 이 반석에서 ‘물이 나온다는 것은 말씀이 나온다 뜻입니다. 반석은 이삭이 낳음, 발꿈치, 반석, 야곱이기도 합니다. 성경의 베드로를 예수님은 반석이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의 어원은 ‘다르’이고 우리가 아는 ‘대대로’와 연결됩니다. 첫어휘에 ‘베’가 붙던지 ‘바브’가 붙던지 모두 접두사 역할을 합니다. 전자 ‘베다르’는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금과 은으로 만든 화반석이고 후자 ‘베다르’는 또 라는 의미가 첨가되면서 강조의 의미가 강해집니다.
그다름에 반석을 ‘쭈르’로 발음하는 경우는 향기가 ‘쭈르르’흘러나오는 경우를 반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코가 꿰인자는 향기가 쭈르르 흘러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반석과 관련한 하나님의 정의는 향기머리를 가지신 분이지요. 이 향기머리는 온 몸 가득히 하나님의 백성을 구하려는 변하지 않은 마음을 가지신 분임을 지칭합니다. 우리나랏말에 ‘주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전히 마음을 다 주려하는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들사이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분깃이라 하였습니다. 
② 공덕은 ‘포알’ 을 기본형으로 하는 바 본문은 ‘포알로’ 입니다. 이 포알로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뜻인데 곧 하나님의 일은 다름 아닌 입으로, ‘퍼 올’ 일이 반석과 관련됩니다. 말씀으로 하시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 눈으로 보여 지게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퍼 올 일은 하나님의 마음깊이가 들어있는 것을 가져오는 일입니다. 공덕 또한 하루이틀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쌓아온 일관성 있는 결과이지요.
③ 공평의 조건은 모든 길이 공평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길이 다름 아닌 한국말에서의 ‘다리’라는 표현입니다. 길을 히브리어로 ‘다리’인 ‘데레흐’로 하며 본문은 ‘드라카이브’입니다. 길이란 다름 아닌 다리길이며 다리 아래에는 물이 있음을 시사하는 바 글자풀이로는 가슴에 있는 머리로서 마음을 뜻합니다. 곧 마음이 곧 길이 되는 것이며 그것은 말씀 위에 있을 때에 길이 되는 것입니다. 
④ 진실함을 특징으로 하는 ‘아무나’는 누구나 하나님께 나아오면 구원을 받는 의미입니다. 말씀으로 영원하기를 바라는 의미입니다.

5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는 사곡한 종류로다

6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

나의 존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존재입니다. 이 표현을 성경은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냐’로 합니다. 이 때 ‘얻으신’은 ‘꺼내’를 기본형으로 하는 본문 ‘꺼내어’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하나님께서 꺼내어 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그대로의 모습을 닮은 분깃, 사람이지요. 하나님 일을 해야 하는 분점이 되는 것입니다. 

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모세는 마지막 설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 3번을 내리는데 곧 ‘기억하라’ ‘생각하라’ ‘물으라’ 명령합니다. 제일먼저 기억은 ‘자카르’를 기본형으로 하는 본문 ‘즈코르’입니다. 남자의미로 발음되는 이 ‘자카르’는 한국발음에 접근한다면 ‘자기라’입니다. 한국말에 가장 회자하는 이 ‘자기라’는 말은 바로 남자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자기라고 단정하는 말입니다. 글자의 뜻은 연장을 지키는 머리입니다. 그럼으로 남자가 지닌 가장 소중한 부분을 언급하며 인간을 생산하게 되는 연장을 지칭하는 남자 특유의 전용어입니다. 
그 다음에 ‘생각하라’는 ‘빈’을 기본형으로 하는 본문 ‘비누’입니다. 한국의 ‘비누’는 누구나 늘 씻는 일상사에서의 필수품이지요 늘 잘못을 씻는 일을 담당하는 비누입니다. 이 일이 바로 생각하라입니다.
마지막 ‘물으라’는 ‘사알’을 기본형으로 하는 본문  ‘스알’입니다. 진실을 알려 물을 때는 억누르지 않고 ‘사알’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실을 밝힐 수 있습니다. 그래야 마음에 있는 생각이 바깥에  나올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 그것은 아비에게입니다. 히브리어로 ‘아비’ בא 아비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이 아비는 바로 우리들의 일상사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아비의 존재감입니다. 우리의 삶은 바로 나의 사랑하는 육신의 아비에게 물어야 하고 더 나아가 신앙인은 하나님 아버지에게 물어야  실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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