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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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

사랑받는 이

 

 

이 세상에 살만한 가치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기 원하고 더 나아가 특별한 사이가 되면 사랑을 약속하고 부부가 된다. 그 징표로 아이가 생기게 되는데 성경에서는 유일하게 한나와 엘가나 부부사이의 사랑을 ‘그를 사랑함이라’로 한다. 이 때 두 부부사이에는 아직 아기가 없었고 이에 대해 부인 한나가 너무 고민하여 울고 밥도 먹지 않자 남편 엘가나는 아내 한나를 향하여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라고 위로한다.

 

사랑하는 한나 너무 고민하지 말아요

님편인 내가 열 아들 보다 낫지 아니하뇨

슬퍼하지 말아요

 

이 위로의 말을 듣자 아내 ‘한나는 일어나서’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이 때 성경발음은 ‘받아꿈’이다. 우리나랏말의 ‘받아 꿈’이다. 남편의 위로의 말을 그대로 받아 꿈을 꾸는 여인이 된다. 이토록 남편의 따뜻한 말 한마디 ‘내가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받은 꿈이다.

 

엘가나의 위로의 말을 들은 한나는

남편의 말을 받아 꿈으로 익는 여인입니다

이 세상을 꿈처럼 사는 힘이 나 일어나


사랑받는 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말에 일어나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 이 위로의 힘으로 한나는 하나님에게 나아가 엎드린다. 한나의 기도는 ‘여호와여 만일 돌아보시고’라는 조건으로 ‘남편의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식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이다. 그녀의 아들보다는 남편의 아들이라 하면서 사랑받는 이의 말투가 정말 사랑받을 만하다. 남편의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 일의 사역자로 바치겠다는 것이다.

이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교회의 엘리 제사장은 ‘술취했느냐’고 물을 정도로 영적 눈 어두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사랑받는 여인은 제사장을 우습게 여기지 아니하고 진심으로 제사장을 향하여 ‘하나님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이라 한다.

사랑받는 여인의 태도는 마음의 고통을 어떤 마주한 대상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특징을 지닌다. 그리고 영적 지도를 맡은 제사장이 물었을 때 숨기지 않고 이야기한다. 그럼으로 하여 영적 지도자가 비록 그가 이미 노쇠하여 늙었을지라도 그리고 비록 영적 영안이 어두워 졌을지라도 영적 조언은 효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을 본다. 하나님이 영적 지도자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신도 한나가 구하여 기도한 것을 허락하기를 원하노라’는 축복기도이다. 이때의 ‘기도하고 구한’ 히브리어가 바로 한국말의 ‘살았다’ 말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면서 마음을 진심으로 한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나를 살리는 일이다. 그만큼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메시지이다. 이 축복기도를 받은 한나는 다시는 얼굴에 걱정이 없이 돌아가 음식을 먹는다.

이처럼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적이 일어난다. 남편에게서, 제사장에게서 사랑받는 사람의 특징은 상대방의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주어지는 일은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사랑하는 부부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일 곧 돌아가 부부가 동침하고 사무엘을 임신한다. 이 때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를 생각한지라’의 발음 그대로 “봐 이제 그래라”이다. 번역보다 오히려 원음이 훨씬 우리들 귀에 익숙한 ‘봐 이제 그래라’이다. 하나님이 허락한 임신은 임신 이전에 이미 사랑받는 여인의 얼굴에 걱정이 없어, 슬퍼하는 얼굴을 하지 않는데 있다. 행복한 사람의 얼굴은 평안하고 행복하여 얼굴에 그대로 얼굴에 쓰여진다.

‘한나’ 이름은 묘한데가 있다. 바로 성경본문은 아이를 ‘한나아르’라 합니다. 한나아이이다. 한나는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사무엘이라 하는데 이 이름 역시 한국인들이 잘 쓰는 ‘사모’가 붙는다. 사모하는데 무얼 사모하느냐? ‘엘’은 신의 의미가 첨가되어 있으므로 하나님을 사모, 곧 하나님을 사모하는 일을 성경은 ‘내가 그를 하나님께 그를 구하였기 때문에’이다. 이처럼 기도의 결과는 아들을 낳게 되면 하나님을 위하여 일할 사람으로 간구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일생은 무슨 일을 하면서 일생을 소비한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평생 하나님 일을 할 사람을 구하였기에 임신이 되었다는 뜻에서 사무엘이라 이름지어(삼상 1:20)졌다.

사랑받는 여인의 특징은 남편도 있고 교회의 목사님도 있지만 모든 은혜가 하나님의 은혜이다. 더 나아가 한나가 젖땔 때 까지 오로지 아들 사무엘을 위하여 양육에 전념했다. 이때 ‘젖땔때까지’와 ‘젖을 땐’발음이 모두 한국말에 있는 ‘고마’웁다는 말이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누구나 고맙다는 말을 잘 쓰는데 이 원어가 바로 보답 의미 히브리어 글자 ‘기멜’ 에서 찾아진다. 하나님의 집 안에서 보답하는 의미소(意味素) ‘기멜’은 모세노래 → 드보라 노래 → 옷니엘의 아내와 관련한 우물, 모두 이 ג(기멜)로 시작된다.

이 보답, 곧 은혜갚기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젖을 뗄 때에도 사무엘이 젖을 뗄 때에도 모두 같다. 젖 뗀 후에는 젖을 먹이신 그에게 그 갚음을 할 때이다. 정말로 ‘보답할’ 의미는 우리나랏말에 ‘고맙다’ 기본형에서 온 ‘고마우리’와 히브리어 ‘고마워라’,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젖을 떼고의 ‘봐 이 고마워라’ 우리나랏말의 고맙단 말 그대로다.

그 다음은 사무엘과 사울의 이름에 대해서인데 사울은 왕권정치에서의 첫째 왕이다. 재미있는 현상이 또 일어나는데 우리나랏말에 ‘세울’이라는 말이 있다. 바로 한나가 사무엘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의 이 ‘드리나이다’ 발음이 솨울이다. 그리고 이름을 사무엘이라 한 뜻이 하나님께 ‘내가 그를 구하였다’이다. 사무엘의 가운데 글자 ‘사무’의 ‘무’는 바로 말씀 안에 든 의미로 한다. 곧 사울이라는 이름 안에 말씀의미의 히브리어 ‘무’가 들어가서 사무엘이 된다.

시의 아이러니가 되는 사울 의미는 ‘부탁하다, 요청하다, 드리다’로 본문에서는 VQPP로 칼동사에 수동분사이다. 따라서 여호와를 위하여 드려진 의미이다. 사울과 같은 의미가 작용한다. 이러한 시적 특징은 한나가 하나님께 부탁하여 낳아진 그러므로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다는 뜻이 ‘사울’이고 이름 사울과 같다.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이 주시어서 낳아져서 서원대로 여호와를 위하여 전적으로 바쳐진 경우이고 사람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하여져서 세워진 차이가 있다. 이러한 시적 아이러니를 성경은 더 나아가 지옥 의미까지 스올로 하고 있다. ‘세울’이니 ‘사울’이니 ‘스올’이니 하는 발음 차이는 훨씬 후에 모음 발음이 첨가되면서 차이가 날 뿐 본래 원음은 같다. 그런데도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못 받음을 강조하는 성경 사무엘 이야기는 하나님을 알고와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하여 일어나는 곧 사랑받고 못받음의 일로 갈라진다.

시가 지니는 은유의 법칙과 이중의 의미 모두가 동원된 사랑받는 비결은 바로 기도가 수반된 일이다. 사울왕에게는 기도가 없다. 기도가 없는 곳은 지옥이다. 그리고 낳아준 어머니의 서원기도가 없다. 그리고 또 시가 없다. 한나, 사랑받는 여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고 시를 짓는다.

 

내 마음이 여호와를 위하여 즐거워하며(삼상 2:1)

내 뿔이 여호와를 위하여 높아 졌으며(삼상 2:1)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삼상 2:2)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삼상 2:3)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삼상 2:6)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삼상 2:8)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히 깨어질 것이라(삼상 2:10)


일곱 번을 되풀이하는 여호와의 이름 찬양은 황금율 신성수 시가 되게 한다. 사랑받는 여인은 아들을 위한, 올바른 일을 한다. 한나는 사무엘이 어렸을 때 세마포 옷을 입으며 여호와 앞에 섬겼다(삼상 2:18) 한나는 남편과 매년 제를 드릴 때마다 작은 것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다. 사람은 사랑의 옷을 입는다. 특히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옷을 입는다. 그리고 커서 사랑 갚음으로 평생을 살아가다가 이제 늙었음에도 여전히 사무엘은 기도했다. 이 때 ‘엘- 여호와’와 ‘사무엘’의 ‘엘’리듬 2회의 아름다움이 시적으로 수놓인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절대자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삼상 8:7)

 

이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왕국을 마다하고 인간의 황국을 만들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내리는 가을비의 마음을 본 필자는 시조로 창작할 수 있다.


내 마음 그대에게 알리는 날이에요

주루룩 그리움을 마른 잎 그 위에로

포근히 내려주느라 한 밤 내내 뿌려요

 

은행잎 하나둘씩 땅위로 노오랄 째

날 떠날 그대들의 바다가 이런거라

노오란 슬픔까지를 미리알려 내려요

 

바람에 휙휙날일 바람의 사람들에

섣뿔리 허둥대다 날리고 부서짐에

내 가슴 빠알간 사랑 이 흐름을 내려요

- 이영지 「내 가슴 빠알간 사랑 이 흐름을 내려요」

 

 

사무엘이 하나님께 사람들이 왕권정치가 아닌 인간정치를 하고 싶다고 하는 사실을 기도하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려 한다는 답을 한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자는대로 해 주라시며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은 시적으로도 사랑 받는 모습으로 수 놓아 질 수 있다. 이러한 시적 아름다움으로 사무엘의 기도는 절대자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는 메시지 ‘알-하암’리듬으로 다시 ‘엘’이 반복되게 한다. 하나님과 다수의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가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그들중에서 왕을 뽑으려는 말하자면 인간이 왕이 되고 싶은 내용을 이 ‘알-하암’리듬으로 한다. 백성들이 자기들이 직접 왕을 뽑아 정치를 하겠다고 하자 하나님은 이를 허락한다.

만일 인간이 하나님 없이 정치를 할 경우에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님은 예로 줍(삼상 8:11)니다. 발음그대로 ‘줍’니다. 인간왕권정치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이 지상에서 할 경우에 일어나는 ‘엘 하암’리듬은 왕이 권세를 누리며 말을 타고 ‘펴셔’ 유세할 것임을 사무엘은 그대로 전한다. 이렇게 살게 될 것임을 ‘사레’’로 표현한다. 사실 인간왕국정치에서 일어나는 주종관계가 있음을 제시한다.


벼슬 1000부장과 50부장으로

향로로 요리로 떡굽는이로

집안에서

그들이 말을 달릴 것이며

아들들로 1000부장과 50부장을 삼을것이며

 

또 너희 딸들을 취하여 향로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굽는 자를 삼을 것이며로 한다. 이 때 히브리어 ‘레라카호트’의 ‘호트’)와 ‘울레타바호트’의 ‘호트’와 ‘울레오포트’의 ‘포트’의 리듬으로 그야말로 인간왕국의 천태만상의 마음이 담기지 않는 각종 사태를 알려준다. 그리고 그가 또 너희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도 ‘베에트-세데오테헴’의 ‘베에트-…테헴’ ‘베에트-…메헴’ ‘베…헴’으로 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는 관계를 제시한다. 세금을 내야함을 십일조에 대한 ‘…헴’ 리듬으로 제시한다. 백성들의 십일조가 인간왕국정치에서의 필요조건이 된다. 모두 다수의 인원을 상징하는 리듬으로 한 ‘베에트-…헴’리듬은 소유문제에서도 게속되면서 노비문제도 각종 사람들이 직장에서 그들의 청춘을 없애기까지 평생 메여서 일하는 관계임을 ‘베에트-…헴 베에트-…헴 베에트-…헴’ 리듬으로 한다.

이토록 계속하여 이 리듬의 의미소는 다량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평생 살아갈것인가를 제시한다. 한 분 절대자와 그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절대불가분의 관계를 거부하는 결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 요구에 의하여 실현되면서 드디어는 멸망의 시초임을 암시한다. 하나님 향하기를 거부하는 사회는 멸망할 수 밖에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 거기에는 사랑받는 자의 모습이 없다. 기도가 없다. 하나님께 아뢰는 내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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