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있는 사람에게 오는 너는 행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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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있는 사람에게 오는 너는 행복한 사람

사랑아 사랑아 56
    복있는 사람에게 오는 너는 행복한 사람
   


‘복있는 사람’과 ‘너는 행복자로다’를 구분된다. 복있는 사람은 히브리어로 ‘아시레 하이쉬 아세르’이고 ‘너는 행복자’는 ‘아시레하’ 이다.
이 둘의 차이는 기본적인 복에 대한 언급과 특별한 대상을 향한 점이 다르다. 곧 한국말로 ‘아시레’와 ‘아시레하’이다. 복이  있는 사람을 개괄할 때에는 ‘아시레 하이쉬 아세르’이고 ‘너는 행복자로다’라고 할 때에는 ‘아시레하’이다. 일반적으로 어미에 하가 붙을 때에는 대상에 대한 극존칭인 당신이 된다. 한국에서도 용비어천가에 ‘임금하 아르소서’하여 임금에 대한 극존칭으로 어미에 하가 붙는다. 극존칭은 절대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절대자의 직접적인 눈 앞에 있는 대상인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었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런데 어미에 י(요드)가 올 경우에는 절대자 손이 대상을 행복하도록 만드셨다는, 즉 손을 보았다는 의미의 차이가 있다.  곧 직접적인 대상과 막연한 대상의 차이인바 복있는 사람이라는 객관성과 너는 행복자라고 하는 아주 가까이에서의 사랑하는 대상에게 주는 직접적인 축복의 의미가 강하다.
시편1편의 ‘복있는 사람은’ 그 특징을 아주 간단하게 셋으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는데 있다. 하나님이 만드신 본래의 모습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보기 아주 좋았더라 하시었기 때문에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성경은 복있는 사람을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로 한다. 절대자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사람 자리를 존중하여 절대자와 같은 존재로 만들었다. 곧 신인데 그 신만큼에 버금하는 자유와 권한을 부여하여 신의 자리만큼의 자리를 허용하시었다. 그런데 이와 같지 않음, 곧 절대자의 형상을 닮은 사람 같지 않은 의미일 때를 악인으로 하였으며 머리로 계산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을 악인이라 하였다. 곧 절대자를 따르지 않고 자기가 잘났다고 뽐내는 일이다. 이러한 사람의 특징은 꾀를 가지는 것이 특징인데 이 때 꾀는 히브리어로 ‘에자드’가 기본형이다. 곧 눈으로 보이는 향기를 가슴에 넣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가슴에 넣는 것이 꾀이다. 본문은 우리말로 ‘봤다’발음이다. 눈의 보이는 것. 이미지를 말한다. 이미지란 본래의 것 곧 절대자의 것에 대한 흔적 즉 허상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의 꾀는 허망한 것을 쫓는, 다름 아닌 눈으로 보이는 향기를 말한다. 본래의 향기는 눈에서 보이는 향기가 아니다. 눈으로는 향기가 날 수 없다. 향기는 코로 절대자의 향기가 들어오는 것이다. 악인의 꾀는 향기가 눈으로 보이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악인의 꾀는 눈에 보이는 이익을 추구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 눈으로 보이는 이익을 따라가는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함의  이 주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시조를 창작할 수 있다.

가을 잎 아쉬움을 눈 위에 달고 나면
한 마리 낙엽 잎이 되는 새 나뭇잎 새
그 아래 삼겨 내려온 사랑함의 그리움
              - 「가을잎새」

다음으로 두 번재 복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이다. 히브리어 ‘우브데레흐 하타임 로 아마드’ 이다. 절대자는 사람을 에덴 동산에 두시어 에덴에서 마음대로 절대자의 품 안에서 에덴동산길을 다니게 하였다. 그 길은 바로 서는 일이었다. 그런데 먹지말라는 과일을 따 먹음으로써 죄인이 되었다. 이 죄를 성경은 히브리어 ‘하타아’를 기본형으로 한다. 죄란 절대자의 집안에서 사람이 예수님인양 십자가를 지는 양 하는 일이 죄이다. 본문 ‘하타임’은 피조물인 사람이 하나님의 지붕안에서 지혜있는 양 하는 모습으로 자기자신위에 더 높은 것이 없는 양하는 행동으로 실과를 따먹은 죄인들 곧 복수를 가리킨다. 머리위에 하늘을 무시하고 자기위에 아무것도 없는 신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죄를 지었다. 사람의 죄는 절대자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그 특별한 은총을 오히려 자기가 신인양 행동할 때 죄를 짓는 사람들이다. 자기 위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죄인들의 모습이다. 말하자면 안하무인의 격이다. 이 길에 서지 않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다.
 
파아란 하늘푸름 한조각 내려앉은
머리로 사랑함을 드러내 차츰차즘
오로지 하늘닮기로 줄무늬를 내리기
          - 「하늘푸름 닮기」

끝으로 복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이다. 히브리어 ‘우브모솨브 레짐 로 야솨브’인바 절대자는 사람을 하나님 다음으로 높은 자리에 앉게 하였다. 그럼에도 하나님 자리를 탐내 그 자리에 오르고자 할 때가 오만하다. 이 ‘오만’ 히브리어 ‘루즈’ 기본형 의미는 스스로 향기를 내려고 하는 뜻이다. 본문 오만한 자 ‘레짐’은 스스로 향기를 내려는  오만을 드러내는 사람들이다. 이 많은 복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으로 이 오만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은 극소수임을 암시한다. 절대자의 향기를 내려는 오만의 자리에 앉는 사람들과는 달리 복있는 사람은 말씀을 사모하여  오로지 자신을 연단하는 자리이다.  .
 다음과 같이 시의 기법인 은유법으로 시조를 창작 할 수 있다.

잎새의 푸르름을 접어서 보일께요
깃털의 사이사이 넣어서 보일께요
말씀만 하신다면은 금방날아 오르게
    - 「잎새닮기」

우리 한국인들은 ‘임’이라는 말을 쓴다. 두음법칙에 의하여 ‘님’을 ‘임’이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인 임을 성경은 ‘오직’의미인 ‘임’이라 발음한다. 오직! 이 단어만으로도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임’이다. 그리운 사람 그는 ‘하나님’ 하나밖에 없는 임이다. 그러기에 그의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자는 복이 있는 사람이다. 사람에게서도 사랑하는 사람이면 무조건 사랑하는 사람의 뜻을 따라하게 된다. 그리고 부부가 되어서 그들은 평생 서로 따라하며 닮아간다. 하물며 그 대상이 절대자인데 그는 오직 사랑하는 그분이 되는 것이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우리나랏말에 있는 ‘돌아 와’의 ‘돌아’라는 말이다. 사람이 죽었을 때 존경어로 ‘돌아가시었다’라 하기도 한. ‘돌아가셨다,’ ‘돌아’왔다, 본 아내에게 ‘돌아’왔다라는 말이 회자한다. 히브리어 ‘는 율법의미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하는 법이 율법이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으로 돌아오는 자는 다름 아닌 성경말씀을 늘 읽으며 그대로 하는 자이다. 즐거움이 마음속에 가득하게 되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이다.

사랑의 마음들을 어쩔 수 없어져서 
나앉은 나무위에 마음을 가라앉힐
새파란 사랑음표로 달아보려 합니다
      - 「새파란 사랑음표」

그러기에 복있는 사람은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의 축복을 받게 된다. 복있는 사람에게 절대자의 말씀으로 숨쉬게 하시는 일을 절대자의 손으로 역사하신다. 그러기에 살아있는 복있는 사람의 모습은 눈으로 보여지는 그대로의 우리이다. 복있는 사람 모습은 향기내는 나무이다. 바로 번제드려지는 모습이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사람으로의 향기나는 모습은 절대자가 받아주시는 번제가 되는 것이다. 복있는 사람의 모습은 입으로 말씀전하는 일을 한다. 이 은혜갚기의 삶은 좋은 물이 되는 일이다.
일상의 삶에서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다. 그리고 입으로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다. 복된 말을 전하는 사람은 어느 단체에서든지 머리가 되게 하신다. 우두머리가 되게 하신다.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자와 함께 있는 복된 사람의 모습은 하나님의 집안에 있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개인인 사람이 아니라 절대자의 향기가 넘쳐나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 그것은 개인이 향기가 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향기가 복있는 사람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다.
 
풀잎들 한모서리 풀잎이 자라 생긴
나무의 무대위에 올라가 바라보면
그리움 마음에 새길 풀잎맹서 보여요
- 이영지 「마르지 않을 그리움」

복있는 사람은 의인이 되는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 다른이를 위하여 목숨을 내 놓는 사람은 의인이다. 이 사람은 나라가 인정하여 비를 세워주기도 한다. 그런데 절대자께서 인정하는 의인의 길이 있다. 바로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 히브리어문장 ‘키 요데아 여호와 데레크 자디킴’이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복잇는 사람은 하나님의 손으로 하나님의 가슴과 눈으로 넣으심을 입은 사람이 의인으로 인정받는 복있는 사람이다. 그 혜택으로 복있는 사람은 숨쉬게 되고 그 복있는 사람의 가슴에 절대자가 늘 자리하여 하나님의 향기를 가슴에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시적 표현으로는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이 산이 푸를 때는 푸른 옷을 입고 약간의 봄일 때는 새파란 봄의 옷을 입고 개나리가 노랗게 필 때는 노오란 깃을 달고 다소 따뜻한 날일 때는 다소 따뜻한 분홍의 옷을 입어 그러노라면 절대자가 인정해 주시는 시조 창작리듬을 놓을 수 있다. 

노오란 들길에서 노오란 깃을 달고
빠알간 꽃 앞에서 빠알간 머풀러를
늘이어 사랑을 받는 새야새야 잘했어
                                      - 「닮은 너」

파아란 새털로만 너는 늘 날고파서
파아란 눈동자에 입술을 들어올려
하늘을 보는 버릇이 그대로다 날기로
                                      -「하늘을 보는 버릇」

폴포르 앉자마자 고개를 들리느라
머리의 깃털에서 바람이 일어난다
나무에 새파란 잎이 바람따라 일어나
  - 「나무에 싹이 돋을거에요」

머리에 리본달자 등에도 슬그머니
오르는 리본달기 가만히 따라하자
봄빛이 옴폭들어가 사랑표시 넣는다
    - 「등에다 사랑표시」

풀잎이 꽃 피우지 않으면 샌 언제나
나무에 올라 앉아 빠알간 꽃이 된다
부리와 꼬리 빠알간 꽃이피어 앉는 새
      - 「나무에 앉아 꽃피는 새」

 복있는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자유로이 시조를 지을 수 있다.  그래서 행복자가 된다. 행복한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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