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시인들의 서정성 이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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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들의 서정성 이영지

하나로 정담게 느끼며 조용한 시조의 서정성 -현대시조에 나타난 자연을 중심으로
        문학박사 철학박사 이영지


1. 처음말

오랜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한국전통의 시조는 아직도 그 명맥을 유지한다. 그 이유는 한국인 정서에 맞기 때문이다. 그 특징은 자연서정이다. 한국의 문학작품은 사계절 따라 아름다운 모습을 자연이 다량의 소재로 들어간다. 특히 시조문학작품에서 특별하다. 그러나 개화기 때의 외세에 이한 거친 바람으로 다소 변질되면서도 그 명맥을 유지되고 있는 시조작품들의 귀한 자료를 통해 그 특징을 찾아봄에 이 글의 목적이 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시조시인들이 첫째 자연을 느끼는 감동, 둘째 자연과 사람이 함께 들어나는  정다움, 셋째 한국인의 조용한 성격이 드러나는 고요함의 정서, 넷째 한국인들이 죽어도 못버리는  우리의 개념이 담기는 시조를 이 글을 통하여 찾아보고자 한다. 더불어 한국정서를 잇는 귀중한 자료들을 다시 되새겨보게 된다.

2. 본말

(1). 느끼는 자연
자연을 바라보면서 마음으로 느끼는 그대로를 시에 들어낸 시조는 영국의 자연시인들(nature poets) 특히 워즈 워드가 느끼는 자연과는 다르다. 자연적인 섭리를 그대로 느끼는 자연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감사가 그대로 깊이 자리 잡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감성이 풍부한 시인에 의해 자연 모습 그대로에 대한 느낌(self-thus)을 시에 담는다. 토마스 하디(Thmas Hardy, 1840-1928)의 내재의식이 지닌 장엄하고 음울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이다.

금강이 무엇이뇨
돌이요 물이로다

돌이요 물일러니
안개요 구름일러라

안개요 구름이어니
잇고 없고 하더라
- 이은상 『노산시조집』의「금강이 무엇이뇨」첫수
         
돌과 물뿐인 금강이다가 안개와 구름으로 느껴져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하나의 경지는 이은상과 자연과의 하나가 되어 자연 그 자체가 된다. 
이 감동의 경지는 이태극 시조에서도 나타난다. 

어허 저기 물이 끓는다
구름이 마구 간다

둥근 원구(圓球)가
검붉은 불덩이다

수평선 한 지점위로
머문 듯이 접어든다

큰 바퀴 피로 물들여
반나마 잠기었다

먼 뒷 섬들이
다시 훤히 얼리드니

아차차 채운(彩雲)만 남고
정녕 없어 졌구나

구름 빛도 가라앉고
섬들도 그림 진다

끓던 물도 검푸르게
잔잔히 숨더니만

어디서 살진 반달이
함(艦)을 따라 웃는고
- 이태극 『꽃과 여인』시조집의「서해상의 낙조」전문

이은상의 시조에서는 돌과 물이 안개와 구름으로 대응되면서 리듬을 타고 있고 없고 하다가 시인과 하나가 된다. 이태극 시조에서는 물과 구름과 해가 얼렸다가 살진 함으로 드러난다. 자연서정을 그대로 옮긴 이태극과 이은상의 눈은 자연을 보고 느끼는 감동에서 일치한다. 노산 이은상은 돌과 물의 소재로, 월하 이태극은 해와 달이라는 소재로서 자연의 신기에 젖고 있다.
자연을 보고 그 감동의 느낌을 노래한 시인들과 작품집과 시 제목은 다음과 같다.

정훈의 『벽오동』시조집의 「동학사 가는 길」에서
이은상 『노산시조집』의「천지송」에서
김기호 『풍란』시조집의 「거목앞의」 첫수, 「옥녀폭」에서
정완영 『채춘보』시조집의「내장풍산」에서
정완영『묵로도』시조집의 「단풍」에서
김호길『하늘환상곡』시조집의 「풍경」에서
정순량『향일화』시조집의 「단풍」에서
최진성『방장부』시조집의 「세석평전」「점령지에서」에서

정훈의 「동학사 가는 길」은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의 어울림을, 이은상의 「천지송」은 자연질서의 산수를 산과 물이 합부로 된 것이 아닌 것을 느낀다. 김기호의「거목 앞에서」는 ‘등걸’과 ‘샘’을 같은 등가관계리듬으로 한 삶의 신비를 드러낸다. 「옥녀폭」은 물이 겨우 스며들다가 벼락에서 ‘백설’로 부서지는 ‘황홀’까지의 점층리듬으로 느낀다. 정완영의 「내장풍산」은 희한한 바람으로 바라보는 감동이다. 이러한 리듬은 다른 사물을 같은 의미로 바라보는 시인의 감성이다. 고시조에서나 도덕적 개념의 보편성이나 조선시대 시조에서의 유학적인 자위의 자연과 다르다. 일상성을 떠난 초연의 고차적 자위의 세계 최진원, ‘강호가도와 풍류’ 『성균관대학교논문집』제 11집(1966), 39.
와도 다르다. 마음의 흐름을 중요시했다. 시는 바로 느낌의 정서이다. 자연을 소재로 한 서정성이다. 정이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시인은 자연과 일치함으로써 더욱 전율을 느껴 시조작품이 탄생하게 한다. 자연과 어우러 들지 않으면 불가능한 감각적 경지이다.

화사한 햇볕 타는 속에
꽃물결 노저으며

살포시 날아든다
노랑나비 흰 나비

파아란 이파리에 나래접고
은은한 향기에 입맞춘다
- 최진성 『호접부』시조집의 「호접부」전문

「봄」은 희망의 계절이다. 봄을 즐기는 나비로 보는 시인의 느낌의 서정시이다. 한국인이 지닌 긍정성이다.

잎이 버네 꽃잎이 버네

긴긴 어둠을 깨고
덤불덤불 주저리고

허구한 세월을 딛고
이 한 봄을 손짓하네
- 이태극 『노고지리』시조집의 「개나리」에서

이태극의 「개나리」는 허구한 세월을 딛고 개나리가 한 봄을 손짓하고 있다. 이태극의 개나리 시조와 정완영의 진달래는 서로 다르지만 감동 그 자체에 머무르고 있다. 

어느 산 어느 골에
진달래 안 피랴만

가야산 맑은 물에
발을 담근 늦 진달래

춘삼월 다 이울었는데
철간 줄을 모르네
- 정완영 『묵로도』시조집의 「진달래」전문

정완영의 늦 진달래는 철간 줄 모른다. 이에 시인은 이에 감응해서 스스로 소리 내는 마음 박용철, ‘시적 변용에 대하여. 『삼천리 문학』창간호.
을 드러낸다. 숙련이 아니라 오직 뛰어 오르는 생명의 발성 정지용, ‘시적 옹호’ 『문장』1권 6호.
이다.

(2). 정다운 자연

정다운 자연은 서로 자기의 소리를 내며 서로 속삭이는 음성이 들리는 자연이다. 시조에서는 주로 정겨운 모습들이 서로 자기의 소리를 내 정겨웁다.

맑은 시내 따라 그늘 짙은 소나무 숲
높은 가지들이 비껴드는 볕을 받아
가는 잎 은비늘처럼 반짝인다.
- 이병기 『가람시조집』(1939)의 「계곡」에서

빼어난 가는 잎 새 굵은 듯 보드랍고
자짓 빛 굵은 대공 하이얀 꽃이 열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 이병기 『가람시조집』(1939)의 「난초」에서

우람한 아카시아 그 굵은 가지마다
푸르른 천 만 잎 들 빽빽하게 달려 있고
흰 꽃에 탐스럽게 송이송이 피었네
- 이병기 『망향정』시조집(1940)의 「아카시아」에서

비늘처럼 반짝이는 이슬은 살아있는 생물의 꽃 구슬이 되어있다. 정다웁게 뭉쳐서 있다. 이 시조시인인에게는 반짝 빛나 보인다. 존재의 빛나 보임이다. 서로 빛나며 정다운 사이가 되는 것은 어느 한 쪽을 없애고 승리하는 이미지와는 다르다. 이런 점이 시조문학이 갖는 특징이다. 
이 정다움은 최승범 시조에서 묻어오는 바람결이다. 
    닿소리 ㅅ이
    묻어오는 바람결

    망울 푼 난초 향긴
    찰삭이는 자장가

    꾀꼬리
    노랑 금방울
    초록 깁에 굴리고

    외롭잖은 손발이
    강물처럼 퍼져 가는

    산자락 흐르는
    물줄기 아지랭일 타고

    하이얀
    찔레꽃도 이슬에

    깃을 터는
    푸른 잔치           
- 최승범 『계절의 뒤란에서』시조집의 「5월 소곡」에서

5월에 시인은 시조를 통해 바람결의 향기와 꾀꼬리가 리듬을 타고 깃을 털며 푸른 잔치를 연다. 아지랑이와 이슬은 꽃과 속삭이자 시적 화자도 같이 정다웁다.

나비나래 접어들 듯
따사론 햇살에도
기지갤 켜는
시록의
연푸른 숨결에도
실눈이 흔들리는 속에
개나리 꽃 무더기

순가지 언저리를
송화 가루 날리고
꿀 흐르는 물소리
팔 벼개로 누우면
산새들

고운 목청으로
귀에 감기는
가락
- 최승범 『계절의 뒤란에서』시조집의 「계곡의 미학」전문

최승범의 「계곡의 미학」은 잎들의 ‘연푸른 숨결’과 ‘개나리꽃 무더기’가 정다웁다. ‘송화가루 날리는 솔’과 ‘물’과 ‘산새’와 시인이 같이 정다웁다. 재잘거리며 정다운 눈짓으로 느낀다.

가지에선 새싹들이
눈 비벼 깜박이고

땅 속에선 벌레들이
기지개를 켠다

봄 산은 간지럼장이
까르르르 몸을 꼰다
- 장순하 『묵계』시조집의 「봄 산」에서

 희망의 봄은 시인에게 기지개를 켜는 계절이고 서로 몸을 대며 까르르르 몸을 꼬는 정도이다. 즐거움이 있다. 고대시조가 갖는 엄숙함과 도덕적인 보편성에서 벗어나 현대시조의 특징인 이미지화에 익숙하고 있다.

찰찰찰 시린 물소리
자욱한 산기슭

타는 듯 불 밝힌 단풍
허리 두르고

산마루
추청(秋晴)의 하늘을 인
한 그루 솔
솔향기
- 최승범 『여리오신 당신』시조집의 「찰찰한 시린 물소리」에서
 
소나무는 솔향기로, 산은 불 밝힌 단풍으로, 물은 찰찰찰 흘러 시린 목소리로 정다웁다. 마음이 시릴 만큼의 차고 그리고 깨끗한 정서가 정다웁다.
시인들은 시에서 정답게 밀어를 나눈다.
 
짧은
꼬리 하얀 바람
상냥한 말씨
가벼운 날개의
구름
저 하늘
연못가
맴도는 고추잠자리
흩뿌리는
들깨 향
- 최승범 『여리오신 당신』시조집의 「짧은 꼬리 하얀 바람」에서
 
하얀 바람은 구름과 짝을 지으며 고추잠자리는 하늘에서 들깨의 향기와 정다웁다. 시인도 자연과 정다웁다. 최승범 시조시인은 그의 시조를 통해 현대시조로서의 리듬감각을 한결 “숲의 바람이 와서, 아아치를 이룬, 줄 이랑마다의”의 감각어로 한다. 바람이 시인에게로 정다웁게 오고 있다.
시조형식의 절제된 형식 속에서도 무한한 표현의 가능성을 여는 현대시조의 감각성은 시인의 감동까지 겻들여 있다. 시가 지닌 긴장과 감동사이의 연결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배병창 『이슬과 송학』시조집의 「신록」에서
이복숙 『묵란』시조집의「조춘」에서
정태모 『세판도를 그려야지』시조집의 「꽃씨」에서
최진성 『방장부』시조집의「백부동」에서
이도현 『선비의 머리카락』시조집의 「봄소식」「소곡」
      「하늘이 열리면」에서
박시교 『겨울강』시조집의 「봄에」에서

배병창의 「신록」에서는 꽃이 떨어졌어도 윤기 도는 잎을 시적화자와 같이 하여 정다웁다. 이복숙의 「조춘」은 시공을 초월한 자연과 시적 화자가 정다웁다. 정태모의 「꽃씨」는 봄을 안고 상자 속에서도 생동하는 삶과, 최진성의 「봄」은 삼동을 이겨낸 봄과 정다웁다.「소곡」은 밝은 미래에 대한 느낌을 자신의 미래의지를 일치시킨다.
자연을 통해 시인이 정다웁게 닥아가는 시조들은 어린아이처럼 단순하다. 기쁨과 즐거움과 웃음이 있다. 그리고 애수와 존경까지 겻들인다. 감정이 뒤범벅 F. Schiller, über naire und sentnienl alishe Dichtung(1965 Neclorm), 834.
이 된다. 영원의 순간을 같이 느낀다. 시적 화자가 같이 몰입되기 때문이다.

(3). 조용한 자연
시조시인들은 조용한 편이다. 곧 마음의 안정이 있는 시조시인들이다. 절제된 리듬 속에 몸과 마음으로 둘러싼 사물들과 대화 한다.
 
매미소리 뚝 그치고 사계화(四季花) 주룩진다
천심(天心)엔 구름하나 머무는 듯 지나가고
추녀 끝 비인 거미줄 걸릴 것도 없어라
- 이호우 『리호우 시조집』의 「한낮」에서
 
고요한 한 낮에 시인은 모든 의식의 흔들림 없는 일관성을 드러낸다. 가히 도에 까지 이른다. 조용히 천지는 머무는데 마음은 긴 냇물과 더불어 한가로운 경지이다. 마음의 고요는 킷츠 (Keets)가 예찬했던 권태보다는 더 고차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의 조용함이고 고요함이다. 흔들림이 없다.
 
감나무
짙은 그늘이
우물처럼 피는 한 낮

외딴집 봉당 방에는
아기 혼자 잠이 들고

뻐꾸기 울적마다에
감꽃하나 떨어진다
- 정완영 『꽃가지를 흔들듯이』시조집의 「감꽃」전문
 
정완영의 그늘은 어두은 그늘이 아니다. 그늘이 둘러서서 말없이 있듯이 아가도 잠이 드는 평온이 있다. 이 고요는 아무 탈 없이 흐르는 조용함이다. 
움직임조차 움직이지 않음보다 더 고요하다.

장지 앞 매화가지
봄이 도로 겨웁는데

장독대 항아리를
제여금 차린 맴시

고요히 새는 새벽이
그림보다 고와라
 - 이영도『청정집』시조집의 「눈」전문

장독대에 눈이 왔다. 더구나 봄이 새벽의 이미지와 합하면서 그림보다 고운 고요이다. 이 가치는 시인의 마음의 감동에서 발견된다. 
 
들국화
피어있고

봉우리
봉우리
흰 구름 피어나고

호젓한 모퉁이 돌아
산새소리 고와라
- 박병순 『낙수첩』시조집의 「구릉폭」에서

박병순의 들국화와 흰 구름의 고요는 호젓한 모롱이의 묘사를 덧붙임으로써 고운 산새소리의 청각적 리듬까지 합한다. 더 더욱 조용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든다. 그리스 신화처럼 초로 붙인 날개로 태양까지 날아가다가 초가 녹아 바다에 떨어져 죽는, 자연에 맞서는 역동성이 아니다. 산새소리마저 자연의 고요 속에 들어와 시인의 마음을 녹인다. 고요 속에 몰입되면서  조용한 시인의 모습으로 자리한다.
이 느낌은 마음의 여유로운 한가로움이다.

스산한 바람결에
반짝이는 은빛머리

노을을 비켜선
해맑은 얼굴이여

달빛에
한가론 손짓
귀뚜라미 듣는다
- 이복숙 『묵란』시조집의 「감꽃」에서

이복숙의 「감꽃」은 ‘바람결에 반짝이는 은빛머리’이다. 해맑은 모습으로 느끼면서 바라본 감꽃은 달빛이 비치는 밤에 그 흔들림이 한가론 손짓이다. 이 손짓을 귀뚜라미가 듣는다. 정적 속에서 흔들리는 감꽃으로도 오히려 시인은 한가로움의 여유를 느낀다. 시조시인들의 여유로움은 격동적인 사물이미지보다는 조용한 시상을 찾아낸다.

내 안에
고인
목숨
하늘같이
이쁘다

사슴
발 씻고
간 뒤
잠자리
맴돌다 존다

여름날
물빛을 시세며
오래
꿈을
낚는다
- 한분순 『실내악을 위한 주제』시조집의 「호수」전문

시조시인의 꿈은 고요 속에서만 머물려 한다. 마음은 ‘하늘같은’ 즉 최고의 이쁨이다. 꿈을 낚을 수 있는 곳은 맑고 잔잔한 한 곳 뿐이다. 
조용한 곳을 최고의 경지로 하는 시인의 마음이 나타난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하한주의 『태양의 노래』시조집의 「봄눈」에서
정재호 『제3악장』시조집의「개나리」에서
김기호 『풍란』시조집의 「거목앞의」에서
이채란 『은행잎 지는 뜨락』시조집의「하산계곡」에서
김상훈『변종원』시조집의 「적일」에서
최진성『방장부』시조집의 「백부동」에서

위의 시조들은 한결 같이 봄맞이의 기쁨과 고요를 드러낸다. 봄 이미지는 자연의 푸르름과 시인의 희망이 같이 조용하게 자리잡혀있다. 이 특징은 고대로부터의 시조의 특징이다. 그대로 현대시조에서도 잘 계승되어 있다. 고요가운데 질서를 찾는 서정시다. 움직임조차 조용함이 특징이다.
시조에서는 특유의 한, 하나 표현이 잘 나타난다. 

한 굽이 맑은 강(江)은 들을 둘러 흘러가고
기나 긴 여름날은 한결도 고요하다
어디서 낮닭의 울음소리 귀살푸시 들려오고

마을은 우뜸 아래뜸 그림같이 놓여 있고
읍(邑)내로 가는 길은 꿈결처럼 내다 뵈는데
길에는 사람 한 사람 보이지도 않어라
- 김상옥 『초적』시조집의 「강있는 마을」전문

 ‘한’ 구비 강으로 ‘한 길로 고요하며’로 시조리듬을 채우는 김상옥시조는 어디서 낮달소리 들려도 오히려 더 조용하다. 어떠한 동적 장면을 꺼내놓아도 여전히 조용하다. 아니 고요하다.

봄 볕이 호도독 호독
내려쬐는 달 머리에

한 올기 채송화
발 돋음 하고 서서

드높은 하늘을 우러러
빨가장이 피었다
- 조운 『조운시조집』의 「채송화」전문
 
볕이 호도독 호독 분주하게 따갑게 내려 쬐도 한 올기의 채송화가 손 모두운 열망의 빛은 염원으로 고요하기까지 하다.

뒷 곁에
우물물이
소리 없이 피는 한 낮

감나무 짙은 그늘
대궐보다 높은 고요

접시꽃
타는 눈빛만
집을 지켜 있었다
 - 정완영, 『꽃가지를 흔들듯이』시조집의 「빈집」

정완영의 빈집은 소리없는 한 낮이다. 이 한 낮에 우물물이 고이고 대궐보다 높은 고요의 조용함 속에서도 접시꽃은 집을 지키는 목적을 위한 이유로 할 일을 다 하고 있다. 조용함 속에서도 우주의 이치는 흘러가고  있다.

눈이
살 풋 내려
운치를 돋구는 아침

창 너머
송림 속에
집하나 얽어놓고

소롯이
실눈을 감고
혼자 활짝 웃었다
 - 박병순, 『가을이 칱어가면』시조집의 「봄눈」

「봄눈」에서 시적 화자가 집 ‘하나’ 얽어놓고 혼자 활짝 웃고 있다. 이 웃고 있는 시적 화자는 ‘눈’이다. 눈은 스스로 고요한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가며 확인하고 만족하고 있다.
이러한 조용하고 고요한 세계를 만들어 가는 시조시인들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

정훈 『벽오동』시조집의 「귀가」에서
고두동 『황산시조집』시조집의「풍경 2」에서
이금준 『기우제』시조집의「옹달샘」에서
정완영『꽃가지를 흔들듯이』시조집의 「감꽃」「외딴집」「빈집」「복사꽃」에서
이도현『선비의 버리카락』시조집의 「하늘이 열리면」에서

정훈의 「귀가」는 홀로 빛나는 달을, 고두동의 「풍경 2」는 구름 한 덩이, 이금준의 「옹달샘」은 맷 새 한 마리, 정완영의 「감꽃」은 감꽃 하나, 「외딴집」에서는 초가집 한 채, 「빈집」에서는 감꽃 하나, 등 하나가 강조되면서 고요하고 조용하다.
하나라는 개념은 조용함을 수반한다.

아이들은 따라서고
울안아긴 돌아서고

산언덕 지키듯이
나무 가진 웅웅대고

노오란 얼음판에는
한 낮 해가 조으네
 - 이태극, 『꽃과 여인』시조집의 「동중정」에서

이태극의 「동중정」에서는 움직이는 모습들을 ‘하나’로 만들며 조용한 질서를 만든다.

(4). 우리의 자연
여기에서 우리라는 개념은 한 울안의 연관성으로 한정한다. 신비로운 생기를 가지고 어떤 것이던 조화하는 단계를 거쳐 주위를 둘러싸는 자연은 나와 더불어 우리이다. 우리를 만든다. 서로의 연관성으로 얽혀지면서 우리를 만들어 낸다.

꿈자리엔 꽃이 울고
시새우던 바람 자고

비 개인 이아침을
눈물 빚듯 아래 새겨

그냥 그 눈이 감기는
아 섭리의 감촉이여
 - 이상범, 『일식권』시조집의 「신록에」에서

「신록에」는 바라는 꿈이 있기에 우리가 된다. 섭리로 닥아 오는 우리의 울타리는 절로라는 우리의 의식이다.

산절로 절로 수절로 저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그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하리라
 - 김인후, 「자연가」

사람이 자연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는 일은 자연그대로의 삶을 말한다.

어제 밤 실실 단비
산과 들을 자 적수고

새 아침 하늘 문 열고
종달새 비비비 읊은

저 언덕 할미꽃 하나
고개 들라 함이라
      - 정완영, 『채춘보』시조집의 「종댈새와 할미꽃」에서

할미꽃 하나 고개 들기 위해 비가 오고, 종달새 우는 우리의 울타리는 외롭지 않다.
 
산 이마 짚는
아지랑이 너그러운 손길

허 진 골짜길 메운
푸른 물노래

우유 빛
꽃 태깔에 이어
수근 대는 숲 여울

실버들 눈을 뜨는
연두 빛 숨결로
모질긴 서정도
순히 다스리는 눈매

훈훈한
꽃바람 따라 안팎 없는 한 울안
      - 최승범, 『설청』시조집의 「꽃바람」에서

아지랑이 너그러운 손길에 실버들이 눈을 뜬다. 모질긴 서정도 순히 다스리는 우리의 둘레이다.

어떻게 태어났을까 막내딸 같은 이놈
빙하 굽이돌아 영겁의 돌문 깨고
고 연한 부리를 들어 해를 손짓하더니
      - 장순하, 『백색부』시조집의 「앵두나무는 2」에서

막내딸과 앵두나무가 우리가 되어 있다. 가족 우리 둘레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해의 영원성을 향해 손짓한다. 이로 하여 해까지 우리가 된다.
이러한 주제들을 살린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변학규 『몸살난 진주』시조집의 「풀밭」에서
조재익 『전원』시조집의「비룡폭포」에서
정완영『꽃가지를 흔들듯이』시조집의「까치집」「종달새가          울어싸면」「비 온 뒤 맑은 바람은」「동백꽃」
정완영『채춘보』시조집의「뉘랑뉘랑」「소나기」「들국화」          「추풍령」에서
이도현『선비의 버리카락』시조집의 「하늘이 열리면」에서

고개고개 넘어 호젓은 하다만은
풀섶 바위서리 발간 딸기 파랭이 꽃
가다가 닥어도 보며 휘휘한줄 모르겠다.
      - 이병기, 『가람시조집』의 「대성암」에서

피안의 말씀으로 오늘은 눈이 내려라
자꾸만 잃어져 가는 나의 모습 헤다보면
어디라 후광을 쓰듯 빛이빛이 돌아라
      - 이상범, 『일식권』시조집의 「설일」에서

풀빛 치렁한 목도리 장도 거둔 나의 몰골
바람 같은 눈요기며 오만 호사도 접어 두고
깃털린 애정을 불러 으스러지게 포옹하네
      - 윤금초, 『어초문답』시조집의 「탐색 4」에서

우리를 좋아하는 시인들은 우리를 아주 돈독한 사이로 설정한다.
이러한 주제가 실린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이영도 『청정집』시조집의 「봄 1」「봄비」「흐름 속에              서」에서
임종찬 『청정곡』시조집의「유자」에서
정완영 『실일의 명』시조집의「등성이에 올라」에서
이은상 『푸른 하늘의 뜻은』시조집의「하늘벽」에서
정재익 『무화과』시조집의 「추월(秋月)」에서
양상경 『애타는 밤』시조집의「소나무」에서
조오현 『심우도』시조집의「대령(對嶺)」에서
김해성 『백제금관』시조집의 「월석(月石)의 노래」에서
이도현 『선비의 머리카락』시조집의「산」에서
경  철 『산심의 노래』시조집의「산정」에서
이우종 『모국의 소리』시조집의 「봄의 연가」에서
전원범 『걸어가는 나무들』시조집의「숲에 서면」에서

서로 끈끈하게 연결고리를 만드는 우리의 관계는 한국시조에서 자연의 숨소리가 있을 때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이러한 자연 친화감정은 앓아누운 나의 생각에 이마 끝 짚어오는 산울림이 있어서이다. 나의 형편없는 몰골에도 으스러지게 포옹해주는 자연이 있다. 그리하여 손바닥만한 외로운 인생도 살만하다. 절망의 상태에서 헤메는 나에게 희망을 주는 우리 사이이다. 눈 감아도 떠오르는 고향하늘이여 달이며 살아온 그 언덕길이 유라아다.
자연이 우리로 되어 있어서 언제나 그리운 이미지로 된 시조시인들의 작품은 인간에의 그리움을 넘어 자연을 그리워하며 이상한 힘을 얻는다. 새 삶의 힘을 얻는다.

종소리에 동이 트여
어둠은 엷어가고

찬바람 째고 가는
기적소리 번져 가면

잔 시름
꿈속에 보내고
새가슴이 열린다
      - 조재억, 『전원』시조집의 「새벽」에서

푸른 물에 씻기는
새하얀 모래알들

임자 없는 나룻배에
달빛이 차오르면
물 되어
흐르는 세월
가슴으로 밀린다
      - 전원범, 『걸어가는 나무들』시조집의 「채석정」에서

김오남 『김오남 시조집』의 「봄 5」
조  운 『조운시조집』의「설청」에서
최승범 『설청』시조집의「정(亭)」에서
임종찬 『청산곡』시조집의「춘심」에서
정완영 『묵로도』시조집의 「초춘」에서
변학규 『변학규 시선』시조집의 「봄바람」에서
김월한 『솔바람소리』시조집의「아침창」에서
김상훈 『파종원』시조집의「속 무게」에서

 이들 시조들의 특징은 새벽이 오는 소리 따라 잔 시름 꿈속에 보내고 임자 없는 나룻배에 달빛이 차오르면 물 되어 흐르는 세월이 가슴으로 밀린다. 그리고 물오른 강가의 오리처럼 나도 깃을 씻는 이들 우리들은 세월의 나이만큼 서로 닮아간다.

보리밭 이랑에 서면
종다리로 울고 싶고

3울 산 춘풍에 오르면
진달래로 타고 싶네

돛달면 인생은 편주
하도 더 먼 청해일까
 - 정완영, 『실일의 명』시조집의 「보리밭 이랑에 서면」에서

볼 여린 사슴의 무리
신화같이 살아온 산

서그럭 흔들리는
몸을 다시 가는 곳에

이 고장 마음 색 띄고
도라지꽃 피는가
 - 김제현, 『동토』시조집의 「도라지꽃」에서

보리밭 이랑에 서면 종다리로 울고 싶고 3월산 춘풍에 오르면 진달래로 피고 싶은 이 끈끈한 관계는 신화같이 살아온 우리는 하나의 도라지꽃으로 핀다. 자연이 사람을 손짓하여 부른다.

푸른 도폭
자락 날려
산이 날 오라한다

높은 고개 꺼득이며
산의 품에 안기라 한다

말씀은 아니 하여도
귀에 들리는 그 말씀

멧 더덕 향내 맡으며 머루 다래가 목추기면

내 몸에도 풍기는 내음
햇순 같은 산의 내음

색신(色身)이 흰 구름에 싸여
산이 오라는 대로 간다
 - 김상훈, 『파종원』시조집의 「산이 날 오라 한다」에서

 산이 오라면 가야한다는 우리 의식은 가족적인 관계이다. 일상 생활 부분이다.

꼭두새벽 마다
두어 걸음
앞서
벼겟머리
머리채에
풀 이슬을 부리거니

타남(他南)땅
잔주름 위에
쑥 내음새를 뿌리거니
 - 송선영, 『겨울비망록』시조집의 「쑤꾸기」에서

김시종 『청매』시조집의「청산곡」에서
최승범『설청』시조집의「청매사」에서
이상범『일식권』시조집의 「해토기」에서
정완영 『채춘보』시조집의 「금릉 종다리」에서
이은상 『노란시조선집』의「관음사」에서
황명륜『공지에 서서』시조집의「운달산운」에서
김정희『산여울 물여울』시조집의「신록에」에서

우리의 관계는 너와 내가 자연에 따라 화답한다.  지나 칠가 타이르는 거리 까지 간다. 복숭아를 정으로  느낀다. 종다리는 나를 이끌어 노래를 시킨다. 나를 이끌고 우짖고, 냇물 소리가 나를 끌고 깊은 골로 간다.  꿈꾸듯 일어앉은 신명의 춤을 보고 괴로움을 씻는다. 나는 봄이 깃듯 달빛과 솔잎 하나 물면 청산으로 앉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렇다.
 
그 옛날 대사님
이절에 와 머리 깎고

산과 물 정기 받아
큰 스님이 되신 후에

불마다 임진왜란을
몸소 막으셨대요
 - 정완영, 『꽃가지를 흔들듯이』시조집의
「직지산 그 산 그 물」에서

오로지 하늘바라
청산이여 서 있는가

옹 종기 네 권속들
날개 펼쳐 마주 쥐고

흘러가는 세월에 안겨
오늘날을 맺음인가

무리 지어 사는 곳에
네 없이 어이하리

물줄기 바람소리
언제나 곁에 두고

온갖 것 길러 섬기는
내 벗이여 청산이여
 - 이태극, 『꽃과 여인』시조집의 「청산이여」에서

김시백 『추강산조』시조집의「계절앞에서」에서
이월수 『학연가』시조집의「봄비」에서
정완영 『채춘보』시조집의 「섬 사람들」에서
정태모 『새 판도를 그려야지』시조집의 「산보로에서」에서
최승범 『계절의 뒤란에서』시조집의「설일암」에서
정완영 『꽃가지를 흔들듯이』시조집의「대추 감 시골아침」          「새자전거」「아빠가 취한 달밤」에서
이태극『노고지리』시조집의「고추」에서

자연은 정기를 내게 준다. 그러기에 어떤 위대한 일도 나는 할 수 있다. 이 힘은 자연과 울타리 져야만 가능하다. 까투리가 방정떨며 산길을 찾을 때면 청산도 가슴 헤치며 무너지는 숨소리를 낸다. 이 권속이 지닌 힘은 사람이 풀 섶 바위에 둥지 틀고 살게 하고 그 속에서 모든 일을 하게 한다. 온 갖 것을 길러 청산을 섬긴다. 무리지어 산다. 없어서는 아니 될 존재이다. 이 관계는 오랜 터전에서 같이 살아온 바의 즐거움이다. 지혜는 대추가 할아버지 기침소리로 자라나듯 자라난다.
우리의 고리는 정이다.

눈 내린 뒷날밤은 내 눈물 절로 고이네
잠안 자는 여울소리 거슬러 오르면 내 어린 날
아프게 부끄러웁던 실개울이 남아돌아

어지러운 진달래 꽃그늘에 묻혀 앉아
청승맞게 뻐꾸기 울던 우리 밀어는
어여삐 눈 뜬 첫사랑 가슴 울린 메아리
 - 박재두, 『유운 연화문』시조집의 「여울물에」에서
 
감감히 흘러 보낸
보룡산 내음 띠고

옥양목 두루마기
외사촌과 한나절은

한 십년 거슬러 올라
주막 짓고 앉고 싶다

취하여 싱그러운
밀어랑은 나도 몰라
어느 뉘의 입김 담은
귓 말인가 저 엽 신은

볼 부벼 서로 도타운
하늘가득 하늘소리
 - 이상범, 『일식권』시조집의 「신록원」에서
 
정완영 『묵로도』시조집의「천하추」에서
박평주 『접목소묘』시조집의「소낙비 내리는 밤에」에서
이복숙 『묵계』시조집의 「낙엽」에서
정완영 『실일의 명』시조집 「설일행-유수하(流水河)」에서
리은방 『다도해 변경』시조집의「설악산 기행초」에서
정완영 『꽃가지를 흔들듯이』시조집「새들이 몰고 온」에서

자연과의 관계를 정으로 하는 시인의 마음은 어떤 장소를 통해 추억에 들어간다. 실꾸리 풀리듯 연상 작용을 일으키며 부모를 뵙고 싶고 어떤 대상이 보고 싶다. 내가 아닌 자연이 외로워하기에 가까이 간다. 어느틈에 자연과 합쳐진다. 이 우리는 자연이 외로워서  시인을 불러들인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고운 사람을 불러들인다. 어느새 사람도 자연도 고운 사람이 되어 있다. 따라서 사람이 자연을 따르고 자연도 사람을 따르는 관계가 된다.

모레 알 만한 인연으로
구차리 목숨한 생명

한 개 운석처럼
묘막을 흐르고 보면

나 또한
별무리 속애
이름 없는 한 싸락,
 - 정재호, 『제3악장』시조집의 「성좌」에서
   
아득한 바다위에
갈메기 두엇 날아든다

너흘너흘 시를 쓴다
모르는 나라 글자다

넉넉한 하늘 복판에
나도 같이 시를 쓴다
 - 이은상, 『노산시조선집』의 「나도 같이 시를 쓴다」에서

존재의 정의를 너무 거창하게 잡지 않고 일상의 하늘에 뜨는 달을 보면서 그리고 별을 보면서 사람의 생애도 너무 거창하게 잡지 않는다. 한 조각 에돌다가 없어지는 우리의 삶이다.
그러나 달빛에 대하여는 할아버지의 고고한 삶의 빛이라 했고 달마다 떠오르는 달을 보면서 시적 화자도 마음이 맑아진다 하여 사람과 자연의 모습을 통해 한 가정의 어른이 가진 이미지와 합한다. 해 보다 달을 보면서 일어나는 감성 버릇은 한국 전통의식의 세계이다.
 
김월한 『솔바람소리』시조집「선상에서-폭포 울릉도」에서    리호우 『리호우시조집』의「달밤」에서
배병창 『이슬과 송학』시조집의 「낙엽-추풍감별곡」에서
이복숙 『이복숙시조집』의 「가을」에서
김해성 『백제금관』시조집의「향리」에서
조오현 『심우도』시조집의「일불이문(一不二門)」에서
이은상 『푸른 하늘의 뜻은』시조집의「난초」에서
장순하 『백색부』시조집의 「봉천 답(畓)타령」에서
최진성 『호접부』의 「선창에서」에서
변학규 『변학규시선』시조집의「눈」에서
이상범 『묵향가에 미닫이가에』시조집의「밤의 소사」에서

중추월 밝은 달은 해마다 보았건만
올해 중추월은 어이이리 밝으신고
밝고도 밝은 달이라 고운님을 보고파
 - 양상경, 『애타는 밤』의 「월하음」에서

자리에 다시 누워 자는 듯 눈 감으니
하늘에 떴든 달이 내 품 안에 안겨 있고
지는 잎 부는 바람이 이 밤 새자 하더라
 - 양상경, 『애타는 밤』의 「애타는 밤」에서

달을 소재로 한 시인의 마음은 님을 대한 듯 정겨웁다. 달을 통해 마음이 덩어리로 무게 되어 있다. 이처럼 자연을 보면서 생각이 일어나는 경지는 그곳에서 생활한 지난날의 추억 때문이다.

잊은 벗도 돌아오는
눈물 도는 시절까지

하나의 껍질을 벗고
눈 뜨는지 몰라

하마 먼 종달이 울음
질러가는 생각
 - 김호길, 『하늘 환상곡』의 「봄생각」에서

눈 오시는 날에
절두산 기슭을 거닌다

푸르디푸른 강앞에
목숨의 길을 듣는다

뜨거워
오히려 찬 이마
그 사랑을 듣는다

달리 사루지도 못하고
피 뿌리지도 못하고

다만 주여 주여
뜨물 같은 목마름에

또 하나
나를 겨루어
등이 굽은 예순 해다
 - 이영도, 『언약』시조집의 「흐름 속에서 9」에서

목숨의 존귀성이 상실된 시대의 아픔 앞에서 시인은 달리 어떻게 할 수 없는 목마름으로 서 있다. 오히려 뜨거워서 찬 이마의 이성을 감지하면서도 인간이 갖는 세월의 연민을 느낄 뿐이다. 슬픈 역사 앞에서, 종교적  핍박 앞에서 오히려 살아있음에 대한 고마움 보다는 한계성을 절감하는 시인의 마음은 동질적 마음깊이를 시로 잇게 한다.
이러한 소속개념은 우리 공동체들이 겪는 연계선상에 있다. 사람이다가 자연과 사람이 동일시되는 우리 한 민족의 테두리는 정답게 정을 주고 살아온 서정인 들이다. 분열과 분쟁이 아니라 삶에 대한 정겨운 땅에서 살아온 나날의 일기이다.

4 맺는 말

지금까지의 현대시조에서의 느끼는 감동의 자연과 정다운 자연과 고요한 자연과 우리의 자연을 대별하였다.
느끼는 자연은 객관적 표현이되 감동이 들어가 있다. 정다운 자연은 각기ㅏ 자기의 소리를 내되 싸우지 아니하고 정답게 어울린다. 소곤소곤 작은 목소리로 소리를 하나 더하는 자연이다. 고요한 자연은 조용함을 즐기는 민족성에서이다. 우리 미족의 자부심이다. 평화를 좋아하고 싸움을 싫어한다. 그러기에 긴 역사성이 있다. 고요함이 되기까지에는 갈등, 고난, 가난, 슬픔을 넘어선 고요이다. 알고도 넘기는 덤덤함이다.  시조시인들은 조용히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우리라는 말을 좋아한다. 시조속에서 다량으로 찾아진다. 우리 테두리 속의 부분을 즐긴다. 말하자면 순종을 즐긴다. 한울타리 안에서 즐기며 산다. 자연과 사람이 한 울타리이다. 가족관계이다. 무수한 외침을 받으면서도 결코 나라를 멸망시키지 않는 단속 우리의 울타리는 우리를 지켰다. 전 민족이 단결하여 인위적인 싫어하는 만큼의 자연을 결속을 우리는 좋아한다.

- 이 글은 1981년 시조문학 봄 호에 실린 현대시조에 나타난 자연사상 –작법 상에 나타난 자연을 중심으로-를 수정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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