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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선 0 865
지구는 70%가 물로 이루어져 있지만 ‘지구’라는 우리말 한자어의 뜻을 풀면 둥근 모양의 땅이라는 뜻이 된다. 사람만 해도 그렇다. 인체의 70%가 물이지만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칭할 때 살덩어리라 비아냥댈 줄은 알아도 물덩이라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물은 이와 같이 수많은 생명체와 사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면서도 좀처럼 사람들로부터 주인이나 귀빈 대접을 받지 못한다.
  물은 흐르는 물질일 때에는 어느 곳에서나 힘의 근원이 되지만 흐르지 못하고 고여 버릴 때에는 부패와 주검의 무덤이 되고 만다. 이처럼 물은 생명체의 몸 안팎에서 바삐 흐름으로써 그 살과 뼈를 이루고, 물은 땅속과 땅 위와 공중을 번갈아 다님으로써 삼라만상이 생기가 넘치도록 돕는다. 특히 아주 얼어붙지 않고 기어이 겨울을 뚫고 나오는 초봄의 샘물과 비 앞에서 내 경우엔 숭고함마저 느끼곤 한다.
  물은 거의 언제나 땅의 중력에 순응하지만 이따금 태양열에 유혹 당하여 운명과도 같았던 중력을 외면하고 마치 혼백이 빠져나갈 때처럼 가늘게 흩어져 공중으로 올라가기도 한다. 물이 빛을 타고 위로 솟는 모습은 매우 은밀하지만, 그 위에 내리는 빛 때문에 드러난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일곱 빛깔 찬란한 무지개이다. 희망이요 약속의 상징으로 무지개만한 것이 있을까? 이는 아마도 그 본질이 물이기 때문이리라.
  눈을 아름답게 하는 데에도 물 만한 것이 없다. 물은 눈을 통하여 깊은 슬픔과 벅찬 기쁨의 전령사가 된다. 촉촉이 젖어 있고 깨끗이 씻긴 듯한 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심장이라면 그것은 이미 사람의 것이 아닐 테다. 하와가 자기 남편에게 선악과를 먹을 것을 권할 때 최후 수단으로 동원한 것이 눈물이었을 거라고 한 어느 시인의 말은 존중 받을 만하다.
  그러나 위에 적은 어떤 것보다 더욱 내 마음을 붙잡는 물의 특징은 ‘물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사실이다. 무슨 예술적인 언어사용의 멋을 부리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물이 마음 또는 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과학적으로 입중한 사람이 있다. 2002년 초가을 우리 서점가를 강타한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이 있는데, 일본의 물 연구가 에모토 마사루의 물에 관한 실험결과를 사진화보와 곁들여 묶은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눈의 결정이 다양하다는 사실에 착안해 ‘그렇다면 물의 결정도 매우 다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뒤로 물의 결정을 찍기 시작했다. 물의 결정은 얼고 녹고 끓는 와중에 다양한 결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저자는 물에게 낱말이 적힌 글을 보여주면서 물의 결정을 관찰해 보고자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되고 그것을 실천에 옮겼는데 여기서 참으로 신기한 결과가 나왔다. ‘사랑, 감사’ 따위의 말 앞에서 나타난 물의 결정과 ‘망할 놈, 짜증나네, 죽여 버릴 거야’ 따위의 말 앞에서 나타난 그것이 서로 너무도 판이하게 달랐다. 한 눈으로 보아도 미추(美醜)가 확연히 구분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물이 있는 곳마다 마음이 있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지구가 마음을 품고 있다는 추측이기도 하고, 인간이면 누구나 70% 이상으로 마음의 영향을 받는다는 깨달음이기도 하고, 나아가 자연에도 지능과 감성이 있다는 믿음이기도 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음에도 나의 마음은 무거워지기만 한다. 지금 내 몸속의 물분자들 얼마나 끔찍한 모습일까? 세상 돌아가는 모습 앞에 마음이 무거워지고 짜증과 분노가 치미는 것이 지금까지의 내 습성일진대,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내 몸속을 흐르는 물분자의 결정을 아름답게 이끌기 위해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하는 걸까? 한 가지 틀림없는 것은 이기적인 이유 때문에라도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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