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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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

우리말에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하였습니다. 다윗이 복 받은 이유증에 하나는 하나님을 극구 찬양하는데 있었습니다. 얼마나 그 찬양이 지나칠 정도로 심한지 시편 29편은 여호와를 18회로 부르며 아부합니다. 거의 매 절마다 여호와를 2회의 리듬으로 반복합니다. 그리고 여호와로 하여 귀하게 된 우리는 아름다웁고 귀한 삶을 살며 여호와에게 그 영광을 돌려야 한답니다. 이 말을,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로 3회 그리고 여호와의 소리를 6회로 하여 총 26회로 합니다. 이 26회는 여호와의 수치입니다. 성경의 히브리어는 그 수치를 가지고 있는데 여호와의 수치는 수치의 합 5 + 6 + 5 + 10=26입니다. ‘여호와’가 18회 사용되는데 ‘라여호와’ 4회, ‘여호와’ 14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의 ‘아부’가 3회입니다. 다른이는 몰라도 하나님께 하는 아부는 다름 아닌 숨 쉬려 하나님 안에 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발해주는 소리 ‘콜’이 6회이다. 오늘날 콜센타라고 말하듯이 콜은 하나님이 부른다는 의미가 있고 이 하나님의 부름은 하나님이 중심을 잡아주시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름아닌 소리는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신 20장 8절에서 보여요
 
우리가 하나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시는데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아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윗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잘 전달해주는데 있습니다. 시편 29편에서 제일먼저 다윗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라고 곧 히브리어로 아부하라고 합니다. 무려 이 아부를 3회 반복합니다. 
우리들은 상을 받을 때나 공식적으로 어떤 좋은 일이 있을 때 대중 앞에서 오늘의 이 영광을 누구에게 돌립니다라고 말하는 예의를 갖춥니다. 바로 다윗이 하나님을 향하여 하면서도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너희 권능 있는 자들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너희들 자신이 아니라 그 영광을 하나님께 계속 돌리고 돌리고를 반복합니다. 돌리고 돌리고가 ‘야하브’를 기본형으로 하는 아부 입니다. 이 아부는 사전상

衙府아부 일본어 관청
阿父 부친 중국어
亞父 아버지 다음가는 존재 아버지에 버금가는 뜻 공신
雅部 아악에 사용되는 악기명 편경과 함께 사용되는
餓莩 굶어 죽은 사람
阿附 남의 비위를 맞추어 알랑 거린다

아부(阿附)에 해당하는 것으로 남의 비위를 맞추어 알랑 거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 다윗은 그의 시로 하나님을 향한 노래를 부른다고 이해보렵니다.
16세기 음유시인적 아부 <리처드 스텐걸의 아부의 기술>을 통하여 귀족의 손에 자란 고아출신의 시인 12세기에 활동했던 마르카브루의 시가 있습니다. 농부의 딸을 완전히 사로잡습니다.

고귀한 집안의 어린 처녀여!..
어머니와 함께 이토록 예절바르고 상냥한 처녀를 낳았으니
그대의 아버지는 천상 기사였을 것이오..
그대를 자세히 보면 볼수록
그대가 더욱더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내 기쁨 그만큼 커진다오.

*카베스탄의 시

그녀의 순백은
상아의 그것보다 더욱 희다네.
순백이 빛날 때 햇빛조차 초라하기 그지없네,

2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을 거룩한 옷을 입고라 하였습니다. 이에 옷의 중요성을 제시합니디. 왜냐하면 하나님도 그의 모습들 드러낼 때 거룩한 옷을 입으셨다 하였습니다. 한글 그대로 ‘입으셨다’입니다 왜 입으셨을까요 원어에서보이는 바 목적형 ‘라멧’이 어두에 와서 그 분이 사랑하는 백성들을 위해서 존귀 ‘호드’와 권위 ‘하다르’의 옷을 입습니다. 둘 모두 그의 사랑하는 백성이 숨 쉴 수 있게 해 주시는 옷입니다. 바로 여호와란 글자에서 이 숨 쉼이 두 번 들어 있습니다. 이 옷을 입으셔서 시편 29편은 얼마나 하나님이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향하심을 알게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삶에서 마음으로 그리고 실제로 거룩한 옷을 입습니다. 
 시인인 다윗은 먼저 여호와를 위하여 영광을 돌리고 권능을 돌리고 능력을 돌립니다. 그런 다음에는 옷 입는 것조차 여호와를 위하여 거룩한 옷 ‘하더라 카데쉬’를 기본형으로 본문에서는 빼어나다의 옷을 입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옷을 잘 입습니다. 아주 빼아 나게 잘 입습니다. 아주 뛰어나게 좋은 옷을 입습니다. 몸과 마음으로 잘 입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잘 믿는 백성은 그 얼굴에 광채가 납니다. 모세가 그랬지요. 그래서 모세는 그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습니다.

3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뇌성을 발하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시편 29편에서는 여호와의 소리를 6회나 반복합니다. ‘콜 여호와 알-하마임’ 그리고 여호와 알-마임 합니다. 마 알 마 임이라 들리네요. 똑같은 문구를 반복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 강합니다. 물, 우리들의 삶 위에 늘 말씀하시는 이 소리는 중심을 잡는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하나님이 중심을 잡아 주시는 소리이지요. 중심을 잡아 주시는 소리가 박혀있습니다. 콜 여호와 바코아으 여호와를 박고 마음에 박고 우리는 살면서 여호와의 소리가 늘 배여 있습니다. 콜 여호와 베하다르입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배어있는 삶은 중심을 잡아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힘있어입니다. 그리고는 위엄차도다로 바뀌어 갑니다. 이제는 나의 일생을 좌우하는 음성은 더  나아가 나를 위하여 백향목을 꺾는 콜 여호와 소베르 아라짐입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내게 알아집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백향목을 꺾어부셔버리겠다하셨습니다. 꺾어부셔버리겠다의 부셔버리겠다는 한국말 그대로부셔버리입니다. 성경에서 그토록 칭찬되던 백향목을 왜 하나님은 꺾어부스시겠다는 것일까요. 그리고 레바논 시룐으로 들송아지 같이 뛰게 하셨다 하셨을까요. 바로 이사야 선지자는 백향목 나무를 세상의 자랑으로 비유했음에서 찾아지며 이에 탈무드에 따르면 히브리 사람들은 올리브 동산에서 백향목 나무를 태우면서 새해를 맞았다고 합니다. 세상자랑거리를 태우는 거죠. 그리고 시룐 가장 높은 곳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점령하지 못한 곳(수 13:5; 삿 3:3)으로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신 11:24). 이스라엘의 실제상의 경계는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수 11:17)까지로 기록됩니다. 따라서 인간 여호수아가 못한 곳을 하나님이 대신하여 없애 주시어 이스라엘 위상을 높여 주시려 합니다. 소리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중심을 잡으시는 모습입니다.

7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8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하시도다
9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으로 낙태케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 전에서 모든 것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감싸고도는 일은 그분의  찌렁찌렁한 음성에서입니다. 그 음성이 이번에는 물이 아닌 활활 타는 불을 갈라놓으십니다. 콜 여호와 호째브 라하보트 에쉬입니다. 이 여호와의 소리가 불을 지르는 모습이 아니라 불을 가르시는 모습입니다. 불을 조종하시는 일입니다. 불을 지르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이 엄연한 하나님의 일을 여호와의 소리로 합니다.
계속하여 똑 같은 문법규칙으로 7절과 8절과 9절에 계속됩니다. 물 위에 있던 여호와의 소리로 인하여 흔들리는 모습을 계속 3회 반복합니다. 이 흔들림의 표시를 홀 기본형으로 합니다. 우리 귀에 익숙한 홀이 다름 아닌 하나님의 공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자기의 우주삼라만상이 하나님의 홀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님의 지붕아래, 곧 이 세상의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손 안에 든 세계임을 말하고 이 안을 주인이신 하나님 마음대로 흔든다는 표현이 됩니다. 이 안에는 주인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
그 첫 번째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대로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가에서 하나님 뜻대로 나타내지 아니한 연고, 즉 반석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우성에 모세는 반석을 두 번 내리침으로써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여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냅니다. 콜 여호와 아힐 미드바라 가데스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삼라만상 주관은 삼림속에서의 암사슴들이 새끼를 낳게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말 그대로 아일놓다로 합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새끼를 낳는 일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의 신비입니다. 더구나 암양을 복수로 하여 암양들을 나타냄으로써 이 암양들이 새끼를 낙태한다는 본문번역은 잘못된 것입니다. 수많은 암양들이 새끼를 놓는 일이 정상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어른이 그렇게 ‘하사’ 할 때 드러내서 하시는 일을 보게 되는데 바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여주시는 눈앞에 펼쳐지는 삼림의 모습입니다. 삼림이 펼쳐지는 모습을 우베바에헤소프-에아로트 우베헤요칼로 쿨로 오마르 카보드라하며, 계속하여 암사슴이 새끼를 놓는 일과 그리고 이러한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지는 삼림 속에서의 진풍경은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나는 자연의 소리임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현상들 하나님의 소리는 가장 대표적이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수 때 노아를 배에 태워 살려내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물 위에 좌정하신일입니다. 물을 다스리고 불을 다스리는 하나님은 영원토록 그 권위가 변함없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은 그의 사랑하는 백성에게 복을 주시고 평강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소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겁주려는 것이 아니라 안위를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소리입니다.

가뭄에 타던 마음에 물이 내려요
한 밤 내 마음에 물이 내려요
한밤 내 사랑하는 이를 위해
밤을 새우는 이에게 주룩주록 내려요

하하 배꼽이 울리도록
물 위에 웃는 소리를 돌리고 돌리고
배꼽이 당기도록 
한 달에 하루를 뺀 29일을 몽땅 
그대를 부르며
물기로 거룩한 옷을 입고
아부해요

숨 한 번 크게 쉬고 두 번 쉬게 하시려
아들 두신 물위의 그대 소리를
콜센터에 배달 헤 딜랬어요
물 끼 돌아
말씀에 코를 들이박고
광채 나도록 씻으며
여호수아도 정복 못한
헬몬산의 백향목을 꺾어부스러뜨려
송아지처럼 뛰게 하시는
모세도 못 들어간 가나안을

제게는 믈 위에서 소래 내시며
밤새껏 당신생각을 몽땅 드리는
저의 물 위에서 소리하시는

저를 사랑하시는 그 거대한 몸짓
물 위에서 소리를 발하시는
단비가 내리는 날이에요

사랑아 사랑아 90
-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시 29:1-11
나를 사랑하는 거대한 몸짓이 들려요(20150712) 李英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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