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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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시조

현대시조에 나타난 자연사상.hwp



현대시조에서의 우리의 서정성 2 - 개화기 이후 1980년대까지의 시조작법 중심으로
 
이 영 지
 
1. 우리의 시조
 
우리라는 말은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통용되는 국민언어이다. 사전상에서는 자기와 함께 자기와 관련되는 여러 사람을 다 같이 가리킬 때, 또는 자기나 자기편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라 하였다. 한국에 있는 시와 시조중 시조가 시와 그 변별성을 유지하는 이유는 뚜렷한 리듬 외에도 작법 상 시조시인들이 유별나게 ‘우리’라는 개념에 집착하는데서 찾아진다. 그만큼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갈등이 아니라 같이 뜻을 합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염원하는 민족언어이다. 이러한 서정은 감동과 정다움을 넘어서서 몇 천 년이 지나고도 변하지 않는 한국인들의 조용함 속에서 용광로처럼 들끓는 한국인이 갖는 우리의 사랑을 지켜온 값어치가 된다. 이 죽어도 못 버리는 ‘우리’의 서정성을 시조시인들이 자연과 더불어 찾고자 함이 본고의 목적이다.
 
(1). 우리사이
왜 한국에는 유독 우리라는 말이 있을까. 우리는 같이 어울려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단일민족을 이루어 왔다의 관계일 때 우리가 된다. 부하나 상사나 지도자나 백성이나 대통령이나 국민이나 목사나 성도가 같이 어우러져 희망을 바라보는 일을 같이 일을 할 때 우리가 된다. 우리가 되는 일은 신비로운 생기로 조화하는 단계를 거쳐 주위를 둘러싸는 자연이 나와 더불어 있다는 행복감에서 우리가 된다.
시조시인은 시조 작품을 통해 우리의 관계를 확인한다.
 
꿈자리엔 꽃이 울고
시새우던 바람 자고
 
비 개인 이아침을
눈물 빚듯 아로 새겨
 
그냥 그 눈이 감기는
아 섭리의 감촉이여
- 이상범, 『일식권』시조집의 「신록에」에서
 
「신록에」시조는 그 서정성을 꽃이 웃는다가 아니고 꽃이 ‘울고’이다. 이 관념어는 한국의 5천년 역사를 거쳐 온 민족의 애환이 은유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피어나는 꽃이 필 수 있는 것은 시새우던 바람이 잘 때 일이고 시간은 비가 개일 때이다. 이러한 긍정성의 정서는 드디어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우리민족의 정서가 공감되어있다. 그러기에 이 아침은 눈물 없이 맺어진 결과가 아니라 눈물 빚듯 아로 새겨져서 된 지금의 아침이다. 꿈이 이루어진 우리이다. 섭리로 닥아 오는 우리의 울타리는 절로라는 우리의 의식이다.
 
산절로 절로 수절로 저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그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하리라
- 김인후, 「자연가」
 
자연의 울타리 안에서 자연이 보호되어지는 안에서 자연과 더불어 하나가 되는 사람은 사람이 자연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서 사는 일이다. 이때 자연과 나는 하나이여 우리이다.
 
어제 밤 실실 단비
산과 들을 자 적수고
 
새 아침 하늘 문 열고
종달새 비비비 읊은
 
저 언덕 할미꽃 하나
고개 들라 함이라
- 정완영, 『채춘보』시조집의 「종댈새와 할미꽃」에서
 
이 시조에서 비와 종달새와 할미꽃과 시인과 우리가 되는 일은 동적인 “어제 밤 실실 단비/ 산과 들을 자 적수고” 난 뒤이고 “새 아침 하늘 문 열고/ 종달새 비비비 읊은” 과거형이다. 우리는 하늘이 도운다는 말을 잘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하늘과 더불어 살아 이들의 뜻을 알아차리려 했다. 우리민족은 비 내리는 일을 고맙게 여긴다. 그것은 자연의 생동감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지는 은혜의 비이기 때문이다. 새 아침이 하늘 문 열고 종달새 비비 울게 한다.
정완영 시조시인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꽃도 울고 새도 울고로 표시한다. 이 운다는 표현은 정말로 슬퍼서 우는 일이 아니라 민족정서상 울음의 개념에 친숙해져서 그 뜻이 내포된데 있다. 왜 웃는 일이 아니라 운다고 하는 정서가 발달되었을까. 그것은 기나긴 역사 속에서 형성된 공감대 형성이다. 사람이 슬픈 일이 있을 때 우는 울음을 자연의 꽃과 새에 비유하는 것은 같이라는 우리를 만들어 내는 유일한 요소이다. 행복할 때 보다 슬픔이 있을 때 같이 울어주는 위로가 있어 견딜만한 나날이 된다. 슬픈 사건에서 절망을 시조로 읊는 것이 아니라 이미 꽃과 새와 더불어 위로를 받을 때는 지난 밤 실실 단비가 내린 뒤이다. 그럼으로 하여 한국민족은 결코 슬프지 않는 우리의 관계를 형성한다.
바로 정완영 시조에서의 우는 까닭은 “저 언덕 할미꽃 하나 고개 들라 함이라” 할미꽃 하나 고개 들기 위해 비가 오고, 종달새가 운다. 이의 시적 내포는 시조작품을 통하여 시인에게도 이제 고개를 들게 하는 힘을 가진다. 이러한 우리의 관계는 오랜 역사를 지켜온 일로 결코 우리에게 결코 외롭지 않게 하는 힘을 준다.
산이마 짚는
아지랑이 너그러운 손길
 
허 진 골짜길 메운
푸른 물노래
 
우유 빛
꽃 태깔에 이어
수근 대는 숲 여울
 
실버들 눈을 뜨는
연두 빛 숨결로
모질긴 서정도
순히 다스리는 눈매
 
훈훈한
꽃바람 따라 안팎 없는 한 울안
- 최승범, 『설청』시조집의 「꽃바람」에서
 
특히 최승범 시인은 산이마 짚는 산의 의인법으로 우리관계를 형성한다. 산이 너그러운 손길로 닥아온다. 의인법으로 되는 시조작법을 통하여 산이 너그럽게 닥아 온다. 그러기에 아지랑이 손길로 골짜기 메운 푸른 물노래가 있다. 물노래는 푸른 빛깔이 되고 시인으로 하여금 골짜기 가득 매운 푸른 기운을 얻는다. 물노래는 시인의 노래가 되어간다. 이러한 우리 사이에 우유빛 꽃태깔이 태어난다. 아름다운 봄 동산을 여는 푸른 노래는 시조작법에서 진동을 세 번한다. 산이 너드러운 손길로 닥아오고 아지랑이가 닥아오고 푸른 물노래가 닥아와 우리가 된다. 이러한 작법상의 진동은 수근대는 숲 여울이 되어있다. 이 안에서 실버들이 눈을 떠서 우리가 된다. 더구나 연두빛 숨결로 숨을 쉰다. 살아있음의 역동적 산살이 우리 안에 있다. 살아있음의 현장이다.
그런데도 시조시인은 한국적 정서가 모질긴 서정이라 하였다. 이 모질긴 서정은 온갖 어려움을 넘어선 뒤에 오는 서정이다. 한국 정서의 본바탕이 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밀려오는 외세나 혹은 침략이라도 그 궂은 날씨를 잘 견디어 낸 뒤에 오는 우리사이가 되어 있다.
(2). 돈독한 우리사이
 
세상을 순히 다스리는 눈매는 우리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돈독한 관계에서 탄생한다. “훈훈한/ 꽃바람 따라 안팎 없는 한 울안”이 되어 있다. 한데 어울린 우리의 둘레는 줄 곳 당해온 역사의 현장이나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견디어 온 슬기로움 속에 훈훈한 꽃바람 따라 안팎 없는 한 울안이 되어 있다. 한 울타리에 있다.
우리의 관계는 서로의 마음을 한 다발로 엮어져 돈독한 우리 사이가 되어 있다. 이러한 돈독한 우리 사이는 앵두나무가 되어 있다.
 
어떻게 태어났을까 막내딸 같은 이놈
빙하 굽이돌아 영겁의 돌문 깨고
고 연한 부리를 들어 해를 손짓하더니
- 장순하, 『백색부』시조집의 「앵두나무는 2」에서
 
앵두나무가 막내딸 같은 이놈이 되어 있다. 앵두의 여성이미지를 ‘이놈’이라 하여 남성화자인 시조시인은 그 이유를 밝힌다. 다름 아닌 빙하 굽이돌아 영겁의 돌문 깨고 온 생명의 탄생이기에 ‘이놈’이 된다. 연약하여 잘 넘어지는 여성 이미지가 아니라 남성이미지로 강요하면서 그 끈질기게 생명력을 나타낸 앵두나무가 이놈이다. 이에 앵두나무가 우리가 되면서 이번에는 막내딸이 되어 있다. 가족 구성인 막내딸과 나인 사람은 어려움의 삶을 견뎌낸 끈질기고 살아온 동일체가 되면서 앵두나무와 같이 우리가 된다. 돈독한 우리 가족 둘레이다. 이들은 함께 해의 영원성을 향해 손짓하며 해까지 간다.
이러한 주제들을 살린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변학규 『몸살난 진주』시조집의 「풀밭」에서
조재익 『전원』시조집의「비룡폭포」에서
정완영 『꽃가지를흔들듯이』시조집의「까치집」
「종달새가 울어싸면」「비 온 뒤 맑은 바람은」「동백꽃」
정완영『채춘보』시조집의「뉘랑뉘랑」「소나기」「들국화」 「추풍령」에서
이도현『선비의 버리카락』시조집의 「하늘이 열리면」에서
 
돈독한 우리 사이의 가족 둘레는 몸살 난 진주이며 풀밭이며 비룡폭포이며 꽃가지이며 종달새이며 바람이며 소나기이며 들국화이다. 선비의 머리카락이며 하늘이다.
실제의 삶에서 우리가 되 시조시인들의 삶은 자연과 더불어 가족관계가 되면서 사른 삶이기에 호젓은 하다마는 휘휘한줄 모르게 사는 삶이 된다.
 
고개고개 넘어 호젓은 하다만은
풀섶 바위서리 발간 딸기 파랭이 꽃
가다가 닥아도 보며 휘휘한줄 모르겠다.
- 이병기, 『가람시조집』의 「대성암」에서
 
우리사이가 돈독해지면 질수록 같이 영원성에 드는 일이다. 바로 삶이 휘휘하고 호젓하기에 닥아 가는 관계이다. 우리 우리 우리 사이가 되어 피안의 말씀으로 서는 일이다.
 
피안의 말씀으로 오늘은 눈이 내려라
자꾸만 잃어져 가는 나의 모습 헤다보면
어디라 후광을 쓰듯 빛이빛이 돌아라
- 이상범, 『일식권』시조집의 「설일」에서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일은 피안의 말씀이 나에게 닥아 오는 일이라 이상범 시조시인은 시조로 읊고 있다. 그것은 영원성에 드는 일이 바로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맞는 일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은 말씀이다. “아나”받으라며 내리는 피안의 말씀이다. 우리사이가 돈독해지며 영원성에 드는 일이다. 피안의 말씀 속에 드는 일은 삶이 휘휘하고 호젓하여도 모두가 우리가 되어 삶을 살아가게 한다. 애정을 가지는 일이다.
 
풀빛 치렁한 목도리 장도 거둔 나의 몰골
바람 같은 눈요기며 오만 호사도 접어 두고
깃털린 애정을 불러 으스러지게 포옹하네
- 윤금초, 『어초문답』시조집의 「탐색 4」에서
 
우리사이에 일어나는 일은 나의 몰골에서 뚜렷해진다. 바로 삶을 “풀빛 치렁한 목도리 장도 거둔 나의 몰골”이 되어 있다. 우리 중에 나의 모습이 되어 있다. “바람 같은 눈요기며 오만 호사도 접어 두고/ 깃털린 애정을 불러 으스러지게 포옹하네” 결정적인 우리가 될 수 있는 것은 포옹에 있다. 우리의 다양한 품 안에서의 사건은 포옹으로 더욱 돈독한 우리가 되어 간다.
 
이영도 『청정집』시조집의 「봄 1」「봄비」
「흐름 속에서」에서
임종찬 『청정곡』시조집의「유자」에서
정완영 『실일의 명』시조집의「등성이에 올라」에서
이은상 『푸른 하늘의 뜻은』시조집의「하늘벽」에서
정재익 『무화과』시조집의 「추월(秋月)」에서
양상경 『애타는 밤』시조집의「소나무」에서
조오현 『심우도』시조집의「대령(對嶺)」에서
김해성 『백제금관』시조집의 「월석(月石)의 노래」에서
이도현 『선비의 머리카락』시조집의「산」에서
경 철 『산심의 노래』시조집의「산정」에서
이우종 『모국의 소리』시조집의 「봄의 연가」에서
전원범 『걸어가는 나무들』시조집의「숲에 서면」에서
 
위 시조들을 통해 서로 끈끈하게 연결고리를 만드는 우리의 관계는 한국시조에서 둘레둘레 한 울타리가 되어 주는 돈독한 사이가 되어 있어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앓아누운 나의 생각에 이마 끝 짚어오는 산울림이 있어서이다. 나의 형편없는 몰골에도 으스러지게 포옹해주는 돈독한 우리가 있다. 그리하여 손바닥 만 한 외로운 인생도 살만하다. 절망의 상태에서 헤메는 나에게 희망을 주는 돈독한 우리 사이이다. 눈 감아도 떠오르는 고향하늘이며 우리가 살아온 그 언덕길이 있다.
이러한 우리에게고 가는 길은 고향의 길로 가는 길이다. 이곳에 있는 보고 싶은 이의 그리움을 넘어 그곳에 있던 모든 것들 그 안에서 내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새 삶의 힘을 얻는 원천이 된다.
 
종소리에 동이 트여
어둠은 엷어가고
 
찬바람 째고 가는
기적소리 번져 가면
 
잔 시름
꿈속에 보내고
새가슴이 열린다
- 조재억, 『전원』시조집의 「새벽」에서
 
고향에 있던 모든 것 들 그 중에서도 종소리가 일면 언제나 일어나던 버릇들이 지금의 나가 되었기에 어둠이 엷어질 수 있었다. 물리적인 새벽의 모습이었지만 내 안으로 들어와 일어나는 일의 습관은 돈독한 우리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냥 종이 아니라 “종소리에 동이 트여/ 어둠은 엷어가고”이다. 이 종소리와 더불어 울려주는 기적소리가 새벽을 일으킨다. 이 동적이미지는 우리를 깨우는 소리이다. 알림의 소리이다. 그래서 일상에서 일어나는 잔 시름이 없어지는 우리의 관계가 된다. 나 홀로가 아니라 이 민족이 같이 일어서는 꿈이 있어서이다.
 
찬바람 째고 가는
기적소리 번져 가면
 
잔 시름
꿈속에 보내고
새가슴이 열린다
- 조재억, 『전원』시조집의 「새벽」에서
 
이들 시조들의 특징은 새벽이 오는 소리 따라 잔 시름 꿈속에 보내고 임자 없는 나룻배에 달빛이 차오르면 물 되어 흐르는 세월이 가슴으로 밀린다.
 
푸른 물에 씻기는
새하얀 모래알들
 
임자 없는 나룻배에
달빛이 차오르면
물 되어
흐르는 세월
가슴으로 밀린다
- 전원범, 『걸어가는 나무들』시조집의 「채석정」에서
 
시조시인들이 그들의 시조에서 우리사이를 확인하는 일은 없는 나룻배에 달 푸른 물에 씻기는 새하얀 모래알들에서 찾아진다. 그리고 임자 없는 나룻배에 달빛이 차오르는 우리가 된다. 이제 사람이 빠져버린 자연이 돈독한 우리가 되는 것은 달빛이 차오르기 때문이다. 달이 지는 것이 아니라 시조의 문맥을 통하여 달이 차올라 물이 된다. 이러한 시적 은유는 푸른 물과 흐르는 세월과 달빛이 동격을 이루는 등가관계가 되면서 흐르는 세월을 이겨나간다. 순전한 돈독한 우리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러한 주제의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김오남 『김오남 시조집』의 「봄 5」
조 운 『조운시조집』의「설청」에서
최승범 『설청』시조집의「정(亭)」에서
임종찬 『청산곡』시조집의「춘심」에서
정완영 『묵로도』시조집의 「초춘」에서
변학규 『변학규 시선』시조집의 「봄바람」에서
김월한 『솔바람소리』시조집의「아침창」에서
김상훈 『파종원』시조집의「속 무게」에서
 
그리고 물오른 강가의 오리처럼 나도 깃을 씻는 이들 우리들은 세월의 나이만큼 서로 닮아간다.
 
보리밭 이랑에 서면
종다리로 울고 싶고
 
3울 산 춘풍에 오르면
진달래로 타고 싶네
 
돛달면 인생은 편주
하도 더 먼 청해일까
- 정완영, 『실일의 명』시조집의 「보리밭 이랑에 서면」에서
 
볼 여린 사슴의 무리
신화같이 살아온 산
 
서그럭 흔들리는
몸을 다시 가는 곳에
 
이 고장 마음 색 띄고
도라지꽃 피는가
- 김제현, 『동토』시조집의 「도라지꽃」에서
 
보리밭 이랑에 서면 종다리로 울고 싶고 3월산 춘풍에 오르면 진달래로 피고 싶은 이 끈끈한 관계는 신화같이 살아온 돈독한 우리사이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의 도라지꽃으로 핀다. 자연이 사람을 손짓하여 부른다.
 
푸른 도폭
자락 날려
산이 날 오라한다
 
높은 고개 꺼득이며
산의 품에 안기라 한다
 
말씀은 아니 하여도
귀에 들리는 그 말씀
 
멧 더덕 향내 맡으며 머루 다래가 목추기면
 
내 몸에도 풍기는 내음
햇순 같은 산의 내음
 
색신(色身)이 흰 구름에 싸여
산이 오라는 대로 간다
- 김상훈, 『파종원』시조집의 「산이 날 오라 한다」에서
 
산이 오라면 가야한다는 우리 의식은 가족적인 관계이다. 일상생활 부분이다.
 
꼭두새벽 마다
두어 걸음
앞서
벼겟머리
머리채에
풀 이슬을 부리거니
 
타남(他南)땅
잔주름 위에
쑥 내음새를 뿌리거니
- 송선영, 『겨울비망록』시조집의 「쑤꾸기」에서
 
김시종 『청매』시조집의「청산곡」에서
최승범『설청』시조집의「청매사」에서
이상범『일식권』시조집의 「해토기」에서
정완영 『채춘보』시조집의 「금릉 종다리」에서
이은상 『노란시조선집』의「관음사」에서
황명륜『공지에 서서』시조집의「운달산운」에서
김정희『산여울 물여울』시조집의「신록에」에서
 
시조시인들에게서 우리의 관계는 너와 내가 자연에 따라 화답하는 관계가 되어 있다. 지나 칠가 타이르는 거리 까지 간다. 복숭아를 정으로 느낀다. 종다리는 나를 이끌어 노래를 시킨다. 나를 이끌고 우짖고, 냇물 소리가 나를 끌고 깊은 골로 간다. 꿈꾸듯 일어앉은 신명의 춤을 보고 괴로움을 씻는다. 나는 봄이 깃듯 달빛과 솔잎 하나 물면 청산으로 앉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렇다.
그 옛날 대사님
이절에 와 머리 깎고
 
산과 물 정기 받아
큰 스님이 되신 후에
 
불마다 임진왜란을
몸소 막으셨대요
- 정완영, 『꽃가지를 흔들듯이』시조집의
「직지산 그 산 그 물」에서
 
오로지 하늘바라
청산이여 서 있는가
 
옹 종기 네 권속들
날개 펼쳐 마주 쥐고
 
흘러가는 세월에 안겨
오늘날을 맺음인가
 
무리 지어 사는 곳에
네 없이 어이하리
 
물줄기 바람소리
언제나 곁에 두고
 
온갖 것 길러 섬기는
내 벗이여 청산이여
- 이태극, 『꽃과 여인』시조집의 「청산이여」에서
 
김시백 『추강산조』시조집의「계절 앞에서」에서
이월수 『학연가』시조집의「봄비」에서
정완영 『채춘보』시조집의 「섬 사람들」에서
정태모 『새 판도를 그려야지』시조집의 「산보로에서」에서
최승범 『계절의 뒤란에서』시조집의「설일암」에서
정완영 『꽃가지를 흔들듯이』시조집의「대추 감 시골아침」
「새자전거」「아빠가 취한 달밤」에서
이태극『노고지리』시조집의「고추」에서
 
자연은 정기를 내게 준다. 그러기에 어떤 위대한 일도 나는 할 수 있다. 이 힘은 자연과 울타리 져야만 가능하다. 까투리가 방정떨며 산길을 찾을 때면 청산도 가슴 헤치며 무너지는 숨소리를 낸다. 이 권속이 지닌 힘은 사람이 풀 섶 바위에 둥지 틀고 살게 하고 그 속에서 모든 일을 하게 한다. 온 갖 것을 길러 청산을 섬긴다. 무리지어 산다. 없어서는 아니 될 존재이다. 이 관계는 오랜 터전에서 같이 살아온 바의 즐거움이다. 지혜는 대추가 할아버지 기침소리로 자라나듯 자라난다.
우리의 고리는 정이다.
 
눈 내린 뒷날밤은 내 눈물 절로 고이네
잠안 자는 여울소리 거슬러 오르면 내 어린 날
아프게 부끄러웁던 실개울이 남아돌아
 
어지러운 진달래 꽃그늘에 묻혀 앉아
청승맞게 뻐꾸기 울던 우리 밀어는
어여삐 눈 뜬 첫사랑 가슴 울린 메아리
- 박재두, 『유운 연화문』시조집의 「여울물에」에서
감감히 흘러 보낸
보룡산 내음 띠고
 
옥양목 두루마기
외사촌과 한나절은
 
한 십년 거슬러 올라
주막 짓고 앉고 싶다
 
취하여 싱그러운
밀어랑은 나도 몰라
어느 뉘의 입김 담은
귓 말인가 저 엽 신은
 
볼 부벼 서로 도타운
하늘가득 하늘소리
- 이상범, 『일식권』시조집의 「신록원」에서
정완영 『묵로도』시조집의「천하추」에서
박평주 『접목소묘』시조집의「소낙비 내리는 밤에」에서
이복숙 『묵계』시조집의 「낙엽」에서
정완영 『실일의 명』시조집 「설일행-유수하(流水河)」에서
리은방 『다도해 변경』시조집의「설악산 기행초」에서
정완영 『꽃가지를 흔들듯이』시조집「새들이 몰고 온」에서
 
자연과의 관계를 정으로 하는 시인의 마음은 어떤 장소를 통해 추억에 들어간다. 실꾸리 풀리듯 연상 작용을 일으키며 부모를 뵙고 싶고 어떤 대상이 보고 싶다. 내가 아닌 자연이 외로워하기에 가까이 간다. 어느 틈에 자연과 합쳐진다. 이 우리는 자연이 외로워서 시인을 불러들인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고운 사람을 불러들인다. 어느새 사람도 자연도 고운 사람이 되어 있다. 따라서 사람이 자연을 따르고 자연도 사람을 따르는 관계가 된다.
 
모레 알 만한 인연으로
구차리 목숨한 생명
 
한 개 운석처럼
묘막을 흐르고 보면
 
나 또한
별무리 속애
이름 없는 한 싸락,
- 정재호, 『제3악장』시조집의 「성좌」에서
아득한 바다위에
갈매기 두엇 날아든다
 
너흘너흘 시를 쓴다
모르는 나라 글자다
 
넉넉한 하늘 복판에
나도 같이 시를 쓴다
- 이은상, 『노산시조선집』의 「나도 같이 시를 쓴다」에서
 
존재의 정의를 너무 거창하게 잡지 않고 일상의 하늘에 뜨는 달을 보면서 그리고 별을 보면서 사람의 생애도 너무 거창하게 잡지 않는다. 한 조각 에돌다가 없어지는 우리의 삶이다.
달빛을 보면서 할아버지의 고고한 삶의 빛이라 했고 달마다 떠오르는 달을 보면서 시적 화자도 마음이 맑아진다 하여 사람과 자연의 모습을 통해 한 가정의 어른이 가진 이미지를 하나로 묶는다. 해 보다 달을 보면서 일어나는 감성 버릇은 한국 전통의식의 세계이다.
김월한 『솔바람소리』시조집「선상에서-폭포 울릉도」에서
리호우 『리호우시조집』의「달밤」에서
배병창 『이슬과 송학』시조집의 「낙엽-추풍감별곡」에서
이복숙 『이복숙시조집』의 「가을」에서
김해성 『백제금관』시조집의「향리」에서
조오현 『심우도』시조집의「일불이문(一不二門)」에서
이은상 『푸른 하늘의 뜻은』시조집의「난초」에서
장순하 『백색부』시조집의 「봉천 답(畓)타령」에서
최진성 『호접부』의 「선창에서」에서
변학규 『변학규시선』시조집의「눈」에서
이상범 『묵향가에 미닫이가에』시조집의「밤의 소사」에서
 
중추월 밝은 달은 해마다 보았건만
올해 중추월은 어이이리 밝으신고
밝고도 밝은 달이라 고운님을 보고파
- 양상경, 『애타는 밤』의 「월하음」에서
 
자리에 다시 누워 자는 듯 눈 감으니
하늘에 떴든 달이 내 품 안에 안겨 있고
지는 잎 부는 바람이 이 밤 새자 하더라
- 양상경, 『애타는 밤』의 「애타는 밤」에서
 
달을 소재로 한 시인의 마음은 님을 대한 듯 정겨웁다. 달을 통해 마음이 덩어리로 무게 되어 있다. 이처럼 자연을 보면서 생각이 일어나는 경지는 그곳에서 생활한 지난날의 추억 때문이다.
 
잊은 벗도 돌아오는
눈물 도는 시절까지
 
하나의 껍질을 벗고
눈 뜨는지 몰라
 
하마 먼 종달이 울음
질러가는 생각
- 김호길, 『하늘 환상곡』의 「봄생각」에서
 
눈 오시는 날에
절두산 기슭을 거닌다
 
푸르디푸른 강앞에
목숨의 길을 듣는다
 
뜨거워
오히려 찬 이마
그 사랑을 듣는다
 
달리 사루지도 못하고
피 뿌리지도 못하고
 
다만 주여 주여
뜨물 같은 목마름에
 
또 하나
나를 겨루어
등이 굽은 예순 해다
- 이영도, 『언약』시조집의 「흐름 속에서 9」에서
 
목숨의 존귀성이 상실된 시대의 아픔 앞에서 시인은 달리 어떻게 할 수 없는 목마름으로 서 있다. 오히려 뜨거워서 찬 이마의 이성을 감지하면서도 인간이 갖는 세월의 연민을 느낄 뿐이다. 슬픈 역사 앞에서, 종교적 핍박 앞에서 오히려 살아있음에 대한 고마움 보다는 한계성을 절감하는 시인의 마음은 동질적 마음깊이를 시로 잇게 한다.
이러한 소속개념은 우리 공동체들이 겪는 연계선상에 있다. 사람이다가 자연과 사람이 동일시되는 우리 한 민족의 테두리는 정답게 정을 주고 살아온 서정인 들이다. 분열과 분쟁이 아니라 삶에 대한 정겨운 땅에서 살아온 나날의 일기이다.
 
3 맺는 말
 
개화기 이후 1980년대까지 주로 마음이 담기는 서정적 작품을 통하여 느끼는 감동의 자연과 정다운 자연과 고요한 자연과 우리의 자연을 대별하였다. 이 중에서 논의된 앞의 우리의 시조들은 하나같이 우리사이에서 일어나는 돈독한 일이 일어나며 한국민족들은 모두 하나로 묶이어 일어섰다. 어려울 때마다 말없어도 격려해주며 돈독한 사이가 되어준 온갖 주위들과 살며 시조작품을 써 왔다.
이렇게 느끼는 자연은 객관적 표현이되 감동이 들어가 즐거웁고 마음의 안식을 얻으며 기쁨이 있다. 정다운 자연은 자기의 소리를 내되 싸우지 아니하고 정답게 어울린다. 소곤소곤 작은 목소리가 정겹다. 고요한 자연은 조용함을 즐기는 민족성에서이다. 우리 민족의 자부심이다. 평화를 좋아하고 싸움을 싫어한 우리들은 그러기에 긴 역사성이 있다. 고요하면서도 조용한 우리들의 정서는 하루 오랜 한국의 정서이다. 이 서정성이 들어난 시조의 이 조용함은 조용히 움직이어 큰일을 하나로 만들어 내는 민족이다. 그러기에 우리민족, 우리 강산, 우리나라, 우리 아내 그야말로 우리를 계속 읊조리며 시조 작품을 통해 정겨웁게 엮어낸다.
시조시인들은 우리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래서 시조 속에서 다량으로 찾아진다. 우리는 순종을 즐긴다. 한울타리 안에서 즐기며 산다. 자연과 사람이 한 울타리이다. 가족관계이다. 무수한 외침을 받으면서도 결코 나라를 멸망시키지 않는 우리의 울타리는 우리를 지켰다. 우리 민족은 단결하며 자연을 즐기며 시를 좋아한다1
 
 
- 이 글은 1981년 시조문학 봄 호에 실린 현대시조에 나타난 자연사상 –작법 상에 나타난 자연을 중심으로-를 수정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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