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눈꽃 송일 보면서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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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눈꽃 송일 보면서 (미국)

오애숙 0 1970
일반계시를 통해 나부끼는 그런 날
 
                                                                                                                                                            은파 오 애 숙
 
  와, 눈이 내린다. 하얗게. 온 세상을 티끌 하나 없이 덮어 줄 눈이다.
  비록 TV 드라마에서 보는 눈이지만. 문득 어릴 때 불렀던 동요가 눈과 함께 나부낀다.
“송이송이 눈꽃 송이 하얀 꽃송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꽃송이 나무에도 들판에도 동구 밖에도 골고루 나부끼네 아름다워라. 송이송이 눈꽃 송이 하얀 꽃송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꽃송이 지붕에도 마당에도 장독대에도 골고루 나부끼네 아름다워라. ”(동요-눈꽃 송이-)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가 잡다한 모든 것을 덮어주듯 ‘우리의 마음도 깨끗하게 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 까’라고 잠시 생각에 잠겨 봅니다.
 
    며칠 전 아버님께서 한국에 다녀오셨습니다. 한국의 12월을 생각해 보면, 서울의 하늘에서 내리는 것은 거의 눈雪이라 싶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엘니뇨 현상으로 비가 더 자주 내린답니다. 행사가 있어 20일 동안 서울에 갔다 오신 아버님께서 기대하던 눈이 안 오고 비가 내려  집에만 계셨기에. 눈이라도 한 번 봤으면 좋았을 텐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아쉬움을 표하셨답니다. 하얀 눈송이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기다리는 자연 현상물 중 하나라 싶습니다. 훼모라치는 겨울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눈을 볼 수 있어 겨울을 기대했고, 푸근한 생각을 했습니다. 눈 덮인 산야는 청량제 역할을 해 주는 매개체 였다 싶습니다. 눈은 언제든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어린 시절 눈싸움, 눈썰매, 눈사람 만들기... 이젠 그때의 그 추억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LA의 겨울은 포근한 봄날 같습니다. 하지만 우기로 비가 내려 본격적으로 겨울이 도래한 것을 느껴봅니다. 얼마 전 비가 온 이후부턴 제법 추워졌습니다. 사시사철 계절 옷을 바꿔 입지 않아도 춥지 않다 생각했는데 역시 겨울은 겨울입니다. 살고 있는 집의 거실에 창문이 많은 까닭이라 싶습니다. 실내 온도를 높이기 위해 지혜롭게 창문과 베란다로 나가는 문 브라인스blinds 위에 커튼을 하나 더 쳐야겠다 생각하게 하는 날입니다. 12월도 이젠 중순이 넘어갔습니다. 곧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성도들은 성탄절로 기쁨이 넘치고. 아이들은 선물 받을 생각으로 기쁘고. 백화점이나 상가는 매상 올리는 것으로 기쁘고. 이래저래 두루두루 기쁩니다. 하지만 성탄절의 본래 의미는 인류 위해 한 아기가 나셨고. 그 아기는 33년의 생애 속에 성경대로 본을 보이시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갈보리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습니다.
 
  인류 역사상 성경이 베스트셀러인 이유는 성경은 수많은 선지자와 제자들의 기록을 합본한 것으로 구약(39권)은 예수그리스도가 구세주로 나실 것을 예언한 것이고. 신약(27권)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기록한 것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이루신 역사서 이기 때문입니다. 각자 처한 장소에서 느끼고 본 바를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역사서 입니다. 구약은 수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여 기록된 역사서이고, 신약은 구약성경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룬  예수그리스도가 그림자된 사건의 집약이라고 성경학자는 그렇게 표현합니다. (단지 이루워 지지 않은 사건은 다시 오실 메시아입니다. 다시 오실 메시아는 심판의 주로 오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그神가 사람을 통해 이루신  그의 이야기 History입니다. 즉 그의 이야기가 역사가 된 것이지요. 인류 역사는 예수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 기원 전(구약)과 기원 후(신약)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사건을 합본한 역사서가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의 핵심은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예수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이고. 로마서 3장 23절의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느리라.」입니다.

  하나님은 죄 때문에 멸망받을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예수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겠노라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셨습니다. 몇백 개의 예언 중 예를 들어 본다면 미가 선지자는 “에브라다(베들레헴)야 너는 작을지라도 너의 근본은 최초니라” 예언하셨습니다. (베들레헴은 보잘것 없는 곳입니다. 하지만 미천한 곳에 태어나신 그분은 바로 최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그 말씀이 빛으로 오사 어둠움을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동방박사가 별의 징조를 보고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되었던 것도 별의 징조를 통해 메시아가 나실 것이 예언되었기에 그 당시 널리 펴져 있는 소문을 기억한 박사들이 큰 별이 관찰되어 왕께 경배하겠다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그의 삶은 구약의 성경상 예언된 말씀의 삶이었습니다. 십자가상의 돌아가심과 부활하심 그 모든 것들이 예언되어 이루어지셨습니다.
 
  특별히 이사야 53장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돌아가시는 상황을 그대로 보고 묘사하듯 기록된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겪는다 하였노라」(이사 53장 4절)라고 기록되었습니다.『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 하리로다.」 (이사야 53장5절~11절)
 
  저는 모태 신앙은 아닙니다. 하지만 3세부터 스무 살 이전엔 성경지식이 없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서 53장과 시편 22편의 말씀을 설교 시간에 듣거나 기록된 말씀을 어디선가 발견해도 십자가상 돌아가셨던 모습을 상세히 기록했다고 생각했었답니다. 훗날 이사야가 예수님보다 700년 먼저 태어나 예언한 말씀이라는 걸 알고, 어찌 이렇게 세밀하게 예언될 수 있을까! 너무 놀라워 그후부터 놀라운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아직도 구약을 읽으면서도 이사야 53장의 말씀을 금기사항으로 읽지 못하게 한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싶습니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를 보혈寶血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라고 가사를 작사해 곡을 붙였지요. 저 역시 언제인가 그런 비슷한 가사를 써서 성시를 쓴 기억이 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품에 가려면 반드시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를 용서 받은 후에 갈 수 있는 곳이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피 흘림이 없은 즉 사赦(용서)함이 없다. (히 9장 22절)」라고.  이 말씀을 쉽게 설명해 보면, 몸이 더러우면 물과 비누로 청결하게 씻습니다. 하지만 사는 동안 사소한 작은 죄를 그대로 가슴에 묻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큰 죄든 작은 죄든 그 죄를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흥부전을 읽어 보면, 흥부가 먹을 양식이 없어.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벌 받고 돈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흥부가 다른 사람을 대신 벌 받을 수 있는 것은 근본(사람)이 같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또님, 저 대신 우리 집 강아지를 벌해주세요.”라고 말했다면 아마도 능멸했다고 뼈도 못 추렸을 것이라 싶습니다. 하나님 역시 인류의 죄를 위해 근본이 같은 아기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에베소서 2장 8절)라고.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단지 조건은 예수그리스도를 구원의 구세주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즉, “나는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만에 살아나신 것을 내가 믿습니다.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세요.”라고 입으로 시인是認하며 마음으로 구원의 주라 받아들이면 됩니다.
 
 『행위에서 난 것도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엡 2장 9절)」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입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시인했을 때 구원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10:9)」 성경 말씀대로 먹과 같은 검은 죄가 흰 눈보다 더 깨끗하게 용서받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들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대속代贖의 은총’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대속이란 대신 죄를 갚아 주셨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많은 교인은 “대속의 은총”을 저버리고 제 잘난 맛에 따로국밥인 것이 오늘날 교인이라 싶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어 언젠가는 거듭남의 비밀을 알기 원합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라고.(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자녀의 특권을 아는 자는 늘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려고 노력하리라 싶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강령이니까요.
 
  TV 화면에서 본 눈 덮인 하얀 세상을 떠올려 봅니다. 동요처럼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눈꽃 송이가 지붕에도 마당에도 장독대에도 나무에도 들판에도 동구밖에 골고루 나부껴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것은 영구한 것은 없습니다. 밤새 눈이 내려 세상을 하얗게 덮고 있을 때는 아름답지만, 곧 새 아침 동이 트면 태양열로 기온이 올라가면서 눈雪이 물이 될 때 더 추한 모습이 됩니다. 우리네 삶에서 하나님 없이 자기 자신이 의가 되어 행하는 모든 것 자체가 하나님께는 오히려 합당하지 못함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진한 감동으로 눈과 함께  일반계시가 나부깁니다. 비록 TV 화면에서 보는 눈 덮인 들판이지만. 신약 성경 로마서의 말씀과 에베소서의 말씀이 가슴으로 다가오는 그런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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