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초와 어머니(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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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초와 어머니(미국)

오애숙 0 1247
귀농의 아름다움 바라보며
                                             
                                                  신선초와 어머니
                                                                                                                                                          은파  오 애 숙
 
  산자락에 봄빛이 살랑인다.  코끝으로 바람이  훅, 하고 스쳐왔다. 풍기는 향이 미나리향처럼 독특하다. 식탁에서만 봐 왔던 신선초, 신선초 들판을 눈이 집어내는 순간이다.
 
  오, 신선초! 이런 걸, 횡재라고 할까. 알고 있는 식물을 발견하면 왠지 기분이 좋고 반갑다. 널따란 푸른 들판이다. 옥색 푸르름 속에 누우니, 마음이 세모시 옥색 치마를 두르고 있는 새색시 같다. 유난히 고운 하늘. 청명함에 가곡 '그네'가 저절로 흥얼거려진다. 마음의 눈으로 그네가 되어 뭉게구름 속을 왔다 갔다 하며 콧노래 부른다.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나가 구름 속에 나부낀다 제비도 놀란 양 나래 쉬고 보더라. ~ 마음의 일만 근심은 바람이 실어가네.-
 
  살랑대는 봄바람이 가슴을 상쾌하게 여는 정오다. 모처럼 친구 집에 방문하여 산자락에서 기지개를 켜고,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옛 생각에 흠뻑 젖어 가사 말의 주인공이 되었다. 평혼함이 마치 잔잔한 호숫가를 거니는 기분이다. 노년을 산자락에서 힐링하며 지내는 것이 바로 이런 기분이라 생각되어가슴을 연다.신혼 때다.  남편이 나이가 들면 농가에 들어가 자연과 벗 삼아 살고 싶다고 했던 말이다. 지금에서야 가슴에 부메랑 되어 살포시 나래 편다. 가끔 잡지 기사에 귀농하는 노부부들을 보았던 기억이 살랑이는 봄바람 속에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정겹기보다는 어려운 길을 왜 택한 것일까. 의문을 가졌던 기억이다. 하지만 친구의 귀농이 처음으로 부럽게 느껴졌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부러움이 메아리친다.

 -아, 옥색의 푸른 들판, 에머란드빛 푸른 마음, 아름다운 산천초목이여. 풀숲에 누워 버들피리불고, 고추잠자리와 숨바꼭질 하며, 옥색푸른물결 넘실거리는 들판에 산다면 이곳이 무릉 도원이라 싶다. 시인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아직 내겐, 그림의 떡이지만 정오의 햇살 속에 부러움이 내내 넘실거렸다.
 
  태양이 머리위에서 윙크하는 정오, 옥색 푸르름에 취해 잠든 사이 친구는 언제 만들어 왔는지. 멍석위에 누워있는 내게 점심을 한상 차려왔다. 오이, 고추, 토마토, 신선초무침, 등.. 신선초는 어린 신선초잎을 따서 무쳐왔다. 요리 방법을 물어보니, 끓는 물에 신선초를 데친 후 먹기 좋게 어림잡아 2~ 3센티 정도로 썰어서 양념(된장, 다진 마늘, 참기름, 통깨)를 넣어 무친거란다. 제법 맛있다. 신선초는 미네랄과 엽록소, 단백질, 비타민이 특히 많으며, 칼슘은 시금치의 거의 5배나 되고 철분도 시금치 보다 월등히 많아서 시금치에는 없는 비타민 B12가 있어 회춘의 약초이며, 불로장수의 약초라고 오래살고싶으면 신선초를 많이 먹어야한다고 밥을 다 먹은 후에도 입에 침도 안바르고 신선초 자랑이었다.
 
  신선초의 향을 코에 대고 맡으니 갑자기 엄마의 사랑이 하나로 어우러져 훅하고 가슴으로 스며든다. 잠시 이민 초기로 뒷걸음친다. 이민 오기 전 유치원 정리로 탈진한 상태였다. 시차적응도 안되어 몇 달 동안 거의 소파가 나의 친구가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신선초를 얻어와 즙을 만들어 주곤 했다. 원기회복과 피로 회복에 좋은 것이라고 했지만 특유의 씁쓸하고 쌉싸한 맛이 싫었다. 먹지 않으려하니 바나나와 함께 즙으로 갈아 주셨다. 이민 와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시절이 오롯이 가슴에서 메아리친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잘 날 없다’고 다 큰 자식인데도 늘 자식걱정에 늘 무릎이 닳도록 두 손 모아 기도하셨던 어머니시다. 신선초는 생명력이 강하여 잘라내도 그 다음날 또 잎이 나온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명일잎(明日葉)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싹이 나오는 것은 4~5일 걸린단다.
 
  신선초는 생명력이 왕성한 야채다. 신선초를 보고 있으니, 마치 어머니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어린 시절, 어머니는 막내를 낳고 몇 해를 식물인간처럼 사셨다. 또한 25년 전 미국에 이민 오실 때, 집 팔아 가지고 온 돈을 세탁업에 손댄다고하다가 다 잃었단다. 결국 음식점에서 일하셨다. 하지만 만고풍산, 세월의 한 삭이고 숨을 거두신 모습은 잠자는 천사의 웃는 모습 같았다. 그 옛날 동생 낳으시고, 오늘내일 하시던 어머님이 자식을 위해 어떻하든 살아 남아야한다는 의지가 기적을 낳은 것이라 싶다. 마치 신선초잎이 누군가에게 꺽이어 잘려나가도 며칠이 안 되어 기적적으로 순이 돋아 나오듯 살아야 한다는 의지의 날개가 구순을 앞에 두고서야 미국 나이로 향연 팔십 육세, 소천하셨다.

  영은 하나님께 갔지만 육체는 흙으로 만들어졌기에 흙으로 되돌아 간 것이다. 지금은 김소월의 시 ‘초혼’의 주인공처럼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 되셨다.’ 어머니가 이생의 짐 훨훨 털고 떠나신것처럼 언제인가 나 역시, 그 절차를 밟고 떠나야하리라는 현실속의 나이가 되었다. 문득 하늘가는 밝은 길이 구름 사이로 열어지는 것 같다. 그동안 살아왔던 지나간 일들이 크로즈업되어 아롱진다. 만약 내가 귀농 한다면 자연이 주는 순리에 역행하지 않고 참된 소망만 바라보지 않겠느냐가 세모시 옥색치마처럼 무소유로 휘날리는 날이다.
 
  실바람이 살랑거린다. 다시 풋풋한 향이 훅하고 가슴으로 파고 들어왔다. 널따란 들녘이 해 맑은 미소로 귀농의 아름다음이 상큼하게 눈웃음치며. 신선한 공기에 속에 가슴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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