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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학의 우수성 김소월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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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5-07 00:06
우리문학의 우수성 김소월시에서
 글쓴이 : 李英芝
조회 : 1,995  
   우리문학의 우수성 김소월시에서.hwp (171.0K) [1] DATE : 2016-05-07 00:06:41
Ⅱ. 현대시조와 현대시

1. 시조의 보편성

적어도 시조가 민족 문학적이라면 시는 세계는 세계문학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문학이 동서의 구분이 있을 때 한계성을 가져온다 김윤식, 『한국근대문학연구』(서울: 일지사)., 205∼215.
고 비판되기도 하지만 김윤식 학자가 시조시인도 아니고 평가할 그 가치 기준을 어디에 두는지 의심스럽다. 이에 대한 반기로 지극히 민족적인 것은 세계적이라는 극과 극의 상호작용을 말 할 수 있다. 가장 시적인 특성을 지닌 시가 시조의 특징으 가진 이야기라면 소월시를 말할 수 있다. 본 연구자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소월시의 의미구조는
전통시 시조와 그리고 연구한 바에 따른 오감도의 구조와 같다.
그 리듬구조는 다음과 같다.


전통시와 그리고 가장 현대적이라는 이상의 오감도의 김소월 시 「진달래 꽃」이나  산유화가 지닌 리듬이 같다. 
『진달내 』시집 김소월(1902~1934)이 생전에 낸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 초판본(사진)이 1억3500만원에 낙찰됐다. 경매사 화봉 등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고전문화중심에서 열린 제35회 화봉현장경매에서 김소월의 <진달래꽃> 초판본이 처음 9000만원에 경매를 시작해 1억3500만원에 팔렸다. <진달래꽃>은 1925년 12월26일 매문사에서 간행한 시집으로, 책 제목과 같은 시 ‘진달래꽃’을 비롯해 ‘먼 후일’ ‘산유화’ ‘엄마야 누나야’ ‘초혼’ 등 작품 127편이 16부로 나뉘어 수록돼 있다. <진달래꽃>은 총판매소에 따라 중앙서림 총판본과 한성도서주식회사 총판본으로 나뉘는데 이 책은 중앙서림 총판본이다.
 

이 가지는 시어의 긴장관계는 아주 다른 시들과 동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조나 이상의 오감도가 가지는 전통성 위에서 논의될 때 보다 더 친근감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그만큼 인구에 회자하는 이유는 바로 시가 지니는 긴장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소월시와 시조와의 연관서은 전래적인 자기나라 문학이 깊숙히 주눅이 들채 특성마저 애매하게 된 현 시점이기에 시어기호의 분석을 통하여 구분하여 보아야 함은 우리의 과제이다. 어느 지경까지 가서는 공통적인 동일성과 필연성은 우리나라 운문형태 문학이 바로 이 시조의 보편성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관심으로 시조집 25권과 시집 25권을 분석하였다. 이영지, ‘이상시에 나타난 시어의 이미지 연구’ 『열므나 박사 회갑기념논문집』한샘. 참조.
 시 연구가에 의해서는 그 보편성이 도출될 수 있기 때문 최일수, ‘문학의 세계성’ 현대문학 제 12권 36호.
이다. 학문의 연구는 ᅟᅵᆫ중하고 체계적이다. 시조가 지니는 보편성을 50명 조사중에서 36명이 시조적 보편성을 지니고 있었다. 김소월은 시조적 시인이라 볼 수 있다. 김소월 시인은 민족적 시인이라 할 수 있다.
매일 마다 시간마다 달라지는 인간의 불연속적인 감성의 세계에서 현대시조는 인간을 위주로 한 것이라고 본다면 시는 메카니즘적 굴가능의 영역에 머물고 있다. 신라본기 진흥와조에 보면 우리나라에는 풍류의 사상이 있다고 했다. 유교나 불교나 도교나 두루 포하한 것이라고 고운 최치원이 난랑이라는 활의 비문을 통하여 인용하고 있다. 현실사외에서 바르게 살며 또 영원을 믿고 자연 속에서 고르게 사는 우리 고유의 영생에 대한 자각은 자연과 더불어 영생하는 모습이다. 곰마저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인간위주의 유추상상은 사람을 중요시하는 영역이다. 이 유추의 영역이 시보다는 시조에서 높이 나타나는데 이 유추의 영역은 전통성에 연계된다. 비록 현실의 유한한 삶 속에서 그것도 일상에서의 환멸과 권태, 땀 흘리는 고통이 따르는 현실이라 할지라도 시조의 특징이라면 경험적인 일상의 기록을 너무 야단스럽지 않게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데 있다. 이 백분율 차례는 조운 98% · 이병기 96% · 이은상 90% · 김오남 80% · 정훈 70% · 정인보 69% · 최성연 66% · 서정주 65% · 김소월 65% · 박병순64% · 정지용 64% · 이호우 63% · 윤금초 62% · 이영도 60% · 박남수 58% · 정완영 57% · 김광균 57% · 황석우 56% · 이태극 55% · 유치환 51% · 최승범 50% · 최남선 50% · 김현승 50% · 노천명 45% · 김상옥 45% 의 순서이다. 이와 비교하여 경험유추적인 시 이미지를 가장 낮게 접근하는 박영희 10% · 이육사 18% · 이상 21% · 박두진 22% · 윤곤강 23% · 송욱 25% · 송욱 25% · 김영랑 26% · 한용운 27% · 윤동주 28% · 박경용 31% · 김기림 32% · 조지훈 32% · 김춘수 32% · 김수영 33% · 서벌 33% · 박목월 36% · 하한주 37% · 장하보 38% · 송선영 39% · 이상범 30% · 정소파 40% · 장순하 40% · 신석정 43% · 전원범 44% · 김광섭 45% · 의 순서이다.
경험적인 유추는 일상의 즐거움 보다 일상성의 고통 Dabid Bioney, Myth Symbolism and Truth, Thomas A Sebeok Indiana University Press, Bloomingtion and London.
과 슬픔이 표면화 Cedric H. Whitman, Euripides and The Full Circle of Myth, Havard University Press, Cambridge, Massachusetes., 107.
 되는 시인들의 경험유추는 사람이 끊임없이 과학문명을 발전시키고 편리를 위한 갖가지 문명도구를 이용하지만 그러한 기계마저 시속에서는 계속 부정적인 경험으로 시화 Paul Ginestier, The Poet and The Machine, translated by Martin B, Friedman Newhuven; The University of North Caralina Press., 23∼30.
되는 경향이다. 따라서 한국시들이 한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설도 이러한 한의 관점보다는 시의 경험 곧 이미지를 시로 하는 시인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 하겠다. 따라서 한국시의 단절성 내지는 불행개념이나 슬픔의식은 세계문학적인 보편성이다. 곧 세계적인 공감대에 편승하는 문제이다. 다만 그 문학성을 어느 각도로 조명하는가가 문제이다.
현실 삶의 다반사적 일상성을 통해 가능한 세계의 일도 얼마만큼 순수성으로 인지하느냐는 관점에서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 64% · 박목월의  『청록집』 51% · 김영랑의 『영랑시집』 46% · 김상옥의 『초적』 42% · 최남선의 『백팔번뇌』 42% · 신석정의 『촛불』 40% · 이육사의 『육사시집』 38% · 노천명의 『산호림』 37% · 『창변에서』 37% · 전원범의 『걸어가는 나무들』 35% · 박경용의 『치류집』 31% · 이상의 『이상시집』 · 조지훈의 『청록집』 · 정완영의 『백색부』 · 박병순의 『낙수첩』 · 30% · 이영도의 『청정집』  · 박두진의 『청록집』 39% · 이상범의 『일식권』 27 % · 장하보의 『한야보』 · 윤둥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김현승의 『견고한 고독』 26% · 박영희의 『회월시초』  · 정소파의 『슬픈 조각달』 % · 정완영의 『채춘보』 25% · 김수영의 『김수영 시집』 24% · 최승범의 『계절의 뒤란에서』 23%의 순서이다. 시조와 시의 어떤 차이를 탐색하고자 상 이미지 기호권과 하의 이미지 기호권을 구분하여 본다면 상위권  이미지 기호일 경우 시조와 시의 비율은 11:14의 비율이다. 순서에 있어서도 상위권의 시어기호일수록 시가 순수유추 기호에 머문다. 하위권의 비율을 보면 조운의 『조운시조집』 1% · 이병기의 『가람시조집』 4% · 하한주의 『태양의 노래』 6% · 정훈의 『벽오동』 · 이은상의 『노산시조집』 · 『노산시조선집』 · 『푸른 하늘의 뜻은』 9% · 정지용의 『지용시선』 10% · 김기림의 『기상도』 % · 최성연의 『은하』 ·        윤곤강의 『만가』 12% · 김오남의 『김오남 시조집』 · 김광균의 『와사등』 13% · 황석우의 『자연송』 15% · 윤금초의 『어초문답』 16% · 박남수의 『사슴의 관』 · 『초롱불』 17% · 서정주의 『서정주 시선』 · 유치환의 『청마시초』 · 이호우의 『이호우 시조집』 18% · 김소월의 『소월시집』 19% · 정인보의 『정인보 시조집』 · 서벌의 『하늘색 일요일』 20% · 이태극의 『꽃과 여인』 · 송욱의 『나무는 즐겁다』 · 김춘수의 『처용가』 · 김광섭의 『겨울』 21%로 되어 있다. 가장 낮은 순수유추의 기호들이 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분포도는 시조집과 시집이 12:13으로 비슷하지만 비율이 10% 이내에 들어 있다. 시의 순수유추적 이미지 기호가 한용운의 『님의 침묵』인 경우 64%인 것이나 박목월 · 김영랑의 경우 51.46%인 것은 조운 · 이병기 · 하한주 · 이은상 · 정훈 등의 아주 낮은 시조시인의 분포도와 좋은 대조를이룬다. 매우 많은 현상은 아니지만 순수의 세계는 현실적인 비애를 반드시 승화시키는 특징을 지닌다. 이 세계는 현실적인 비애를 가벼움으로 여과작용을 하는 것이 되고 잠재적인 힘 혹은 잠재적인 힘의 실제적인 발현상태로서 정신작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현실적인 인간 이상을 늘 비상할 수 없으므로 순수세계의 과님도는 높을 수 없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순수경험이란 언어, 상식, 과학, 이론 등의 모든 의미구조를 가능하게 하여 지탱해 주는 확실한 밑바탕이다. 편견을 없애고 모든 이차적 개념을 생각하지 않는 원초적 지각을 의미한다.
우리의 이성은 주어진 환경이나 자연을 재조명하여 자기것으로 만든다. 이성유추의 제일 높은 빈도는 19%이며 제일 낮은 경우가 0%이므로 백분비율의 5붖듸 1분포권에 들고 있다. 이것은 시조와 시를 막론하고 높은 비율이 될 수 없는 시론적인 원리가 된다. 시가 목적성을 띌 수 없다는 것은 곡 목적으로 쓰여진 시는 시적 가치를 저하시키는 작법이기도 하다. 이 분포율의 상위권은 시조와 시의 비율이 9:16이어서 목적적인 시가 시조보다 많다. 그 차례를 보면 『침류집』 19% · 『지용시선』 18% · 박두진 『청록집』 17%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6% · 『이상시집』 · 『육사시집』 · 『겨울비망록』 15% · 『진달래꽃』 · 『계란의 뒤란에서』 14% · 『견고한 고독』 · 『리호우 시집』 · 『청마시초』 · 조지훈의 『청록집』 13% · 『일식권』 · 『만가』 12% · 『김수영 시집』  · 『처용가』  · 『촛불』  · 『사슴의 관』 11% · 『한야보』 % · 『하늘색 일요일』  · 『어초문답』 · 『나무는 즐겁다』 10% · 『기상도』 9%이다. 이와는 반대로 하위권의 분포는 시조와 시가 16:9의 비율이어서 시조가 이성적으로 쓰여 지기보다는 감성적인 특징을 가진다. 인간이 인간의 힘으로 완전성을 기하리라는 인간의 사고는 항상 회의적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한국인이 모험심을 즐기지 앟는다는 뜻이다. 곧 자연 그대로를 시화하거나 혹은 순리적인 것에 익숙해져 있는 것을 상징한다.
한국인들은 신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현대시조와 현대시의 비율은 8:17이다. 따라서 시는 현대시조보다 신계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백분율이 아주 낮음으로써 문학작품과는 종교와는 엄연하게 구분되고 있어 관심이 있다하더라도 시어로서 승화하여 표출시킨다고 보겠다. 신이나 인간 및 동물과는 달리 식물에 대한 관심은 시조 쪽이 더 높음으로서 현대시조의 특징이 된다. 물질에 대한 비율관계는 자연어와 문명어로 나누어  지는바 시조와 시의 관계가 상위권에서 15:0의 비율이 되고 하위권에서 11:17이 된다. 따라서 현대시조는 현대시보다 작품 속에 자연적인 물질계의 시어가 더 많이 배열되어 있고 반대로 물질계와 문명어 시어는 상위권에서 13:12로 나타나고 하위권에서 12:13으로 나타나서 거의 비슷하다.
이처럼 뚜렷한 시조와 시의 구별은 비교적 시조시인들이 자연에 관한 시어를 즐겨 사용하고 경험유추를 시인들보다는 더 많이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경험이라면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많은 것이 인생살이라고 할 때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시조라면 결국 한이러던가 이별을 전제로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이별과 한을 전제로 할 경우 가장 두드러진 시인이 소월이 있다. 소월은 그의 시를 통해서 이별의 한과 슬픔을 그 극한의 시어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우리들이 좋아하는 시인이 되었기도 하다. 그만큼 우리의 정서와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김소월시를 통해서 그의 뚜렷한 특징이 무엇이며 그 특징은 어떠한 시어로 구성되었는지를 살펴 우리나라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정서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된다. 

2. 소월시에서의 시조적  특징

1). 소월시의 공감대
소월시를 분석하여 본 결과 분포비율이 경험유추에 최다빈도 현상을 보인다. 특히 그 차례가 시조들의 특징에 가깝다. 그 차례는 조운 시조집(98%) → 가람시조집(96%) → 노산시조집 → 김오남시조집 → 벽오동(정훈시조집 70%) → 은어(최성연 6%) → 진달래꽃(김소월 시집 65%)의 차례에서 보여진다. 거기에다가 소월은 명사시어 첫글자 초성자음을 선호하는 ‘ㄱ’이 102회로 가장 많다. 이영지, 소월시에 있어서의 긴장관계,명지어문학9집, 명지대, 1990. 6.).
 따라서 가장 목구멍으로 토하듯 불러내는 시이기에 더욱 우리에게 호소력으로 다가온다. 이른바 막힌 마음의 소리를 시로 정서화 한 것이다. 그러나 소월시의 우수성은 시가 지니는 외연과 내포를 잘 드러내서 시적 가치를 높이는데 있다. 겉으로는 여성적이고 이별의 시로만 일관된듯한 모습이 그와는 전연 다른 내포가 있는 시일 것이라는 가설을 가진다. 이 때의 내포는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은근과 끈기를 말한다. 일제 강점기하의 시대상을 말하더라고 우리 민족이 일제의 강압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를 통해 우리민족의 영원성을 의미로 숨기고 있다는데 있다. 
시의 내포는 어떠한 분석으로도 사실상 내포 그 자체로 머무는 애매성을 지니는 위험성이 있다. 그래서 흔히들 소월시가 극한의 이별시로 이해되는데 있다. 더욱이 산문처럼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 논문을 통해 시의 내포에 대한 접근은 시의 외연에 의해서만 본연의 관념을 찾는 길만 있다.
1). 소월시의 초성시어음가

(1). 가마귀 시어의 긴장관계
소월의 명사시어 첫글자 초성자음 선호도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언어 ‘ㄱ’이 102회로 가장 많다.
소월시 전체는 ‘가....’ ‘기....’ ‘그....’ ‘고....’등의 ㄱ초성자음으로 시작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몇 예만 들어보기로 한다.

⓵. ‘가’로 시작된 시어들.

가고싶은...
가고마랏느냐 -「바다」 에서
가고 오지 못한다 - 「나는 세상을 모르고 사랏노라」에서
각금 각금 - 「춘향과 이도령」에서
가기도 햇소 - 「춘향과 이도령」에서
가나니(2회) - 「첫치마」에서
가노랍니다 - 「失題」에서
갑니다 - 「산우헤」에서
가느스름한 - 「분얼굴」에서
가는 봄(3) - 「첫치마」「봄비」에서
가는 님은 - 「半달」에서
가늣한 손가락이 - 「꿈으로 오는 한」에서
갈내갈내 갈닌길 - 「길」에서
갈닙의  노래  -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에서
가다가(3)  - 「들도리」에서
가도가도  - 「왕십리」에서
가다오다  - 「朔州龜城」에서
가도 아주가지는(2) - 「개여울」에서
감도록(2) - 「닭은 꼬꾸요」에서
가라시구려  - 「못니저」에서
가라닙고도  - 「달마지」에서
가로막킨  - 「산우헤」에서
가람(2)  - 「失題」에서
가람이지요  - 「春香 李都令」에서
가람(2)  - 「失題」에서
가로막고  - 「밤」에서
 가마귀 한쌍 - 「찬저녁」에서
 가마귀 가왁가왁 - 「길」에서
 강물을  - 「記憶」에서
 가마귀 한쌍 - 「찬저녁」에서
 갈봄녀름업시  - 「山有花」에서
 간밤에 - 「부헝새」에서
 가마귀 한쌍 - 「찬저녁」에서
  가슴뛰노는 - 「닭소래」에서
 가슴엔 - 「달마지」에서
 가시는 거름거름 - 「山有花」에서
 가시님 - 「금잔듸」에서
 가시옵소서 - 「진달래꽃」에서
 가실길에 - 「진달래꽃」에서
 가실때에는(2) -「 진달래꽃」에서
 감으면 - 「닭은꼬꾸요」에서
 가을 - 「찬저녁」에서
 가을밤에 - 「希望」에서
 가을봄 - 「꿈길」에서
 가잇슬텐고 - 「삭주귀성」에서
 가을밤에 - 「希望」에서
 가쟈고(3) - 「달마지」에서
 가지게되엿노라 - 「꿈으로 오는」에서
 가튼말도 - 「나는 세상 모르고 사랏노라」에서
 가튼저녁 - 「눈오는 저녁」에서
 江邊살자(2) - 「엄마야 누나야」에서
 江村(3)  - 「江村」에서

ㄱ초성자음이 양성모음인 ㅏ와 같이 ‘가’가 되는 시어들이다. 이들은 거의 떠나는 이미지이다. 이러한 시어의 외연은 소월 시가 지닌 존재들과의 거리감 또는 사람들과의 이별의 시로서 해석되어지는 면과 동일시된다.
이러한 떠남 이미지에 대한 공감대형성은 ‘까마귀’시어가 다빈도 현상으로 들어남으로써 시의 외연은 크게 김 시인을 이별의 시인으로 현재 해석되고 있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한번
저산에도 까마귀
서산에는 해진다고
지저깁니다

압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년달아 흐릅듸다려
- 김소월 「가는길」

「가는길」시는 “저산에도 까마귀/ 서산에는 해진다고/ 지저깁니다”로 되어 있다. 이에 이 시를 내포적인 의미로 접근하여야함으로 일반적으로 까마귀를 시에서 많이 활용하는 김현승 시인의 시를 참고하도록 한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무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 김현승 「가을의 기도」

김현승시 「가을의 기도」의 “까마귀 같이”는 김현승의 다른 시에서도 나타나는 까마귀의 이미지가 지닌 고독한 영혼의 갈 길을 의미하는 많은 빈도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김현승 시 외에도 고시조에서도 ‘까마귀’는 그 빈도가 높다.

수풀에 까마귀를 아이야 좇지마라
반포효양反哺孝養은 미물도 하는구나
나 같은 고로여생이 저로 부러하노라

뉘라서 까마귀를 검타 흉타하돗던고
반포보은反哺報恩이 긔아니 아름다운가
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허하노라
- 박효관

까마귀가 검은 그 모양과는 달리 효의 이미지가 발견됨으로써 까마귀의 일반적인 불길한 외연의 의미가 전환하여 인간의 갈 길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이에 김소월시인에게서의 가마귀 역시 다빈도 현상에 따르기 때문에 그 의미가 어떠한지 탐색이 필요하다.

.......
울짓는 까막까치 놀나난소래
........
두새업는 저 가마귀 울짓는 저 까치야
- 김소월 「몹쓸꿈」에서

저 가마귀 한 쌍 바람에 나래를 펴라
-- 김소월 「찬저녁」에서

어제도 하로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엿소
- 김소월 「길」에서

이 시는 일반적인 철자법인 ‘까마귀’의 ‘까’가 아니라 부드러운 음운인 ‘가마귀’를 의도적으로 선택함으로써 시의 내포가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유추의 가능성은 김시인의 「가는길」 시 끝 연에서 물의 흐름이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로 되어 있음과 리듬을 같이 하면서 나쁜 이미지가 아닌 갈 길을 안내하는 이미지이다. 이상의 오감도에서도 긍정적인 상징체가 제목에 가마귀 ‘오烏’로 되어 있다. 따라서 불길한 의미가 아니다.

2. ‘그..’시어의 특징

소월시는 ‘ㄱ’초성자음이 ‘ㅡ’와 합하여 만들어 내는 ‘그...’시어가 가장 많다. ‘그...’라면 ‘그대’를 생각하게 되는데 한용운 시어의 ‘님’이 186회 ‘당신’이 295회나 되면서도 ‘그대’시어가 없는 것과 좋은 대조가 된다.
김시인의 ‘그...’시어로 시작되는 예를 들어본다.

⓶. ‘그’로 시작된 시어들
 
그것이 - 「자나 깨나 안즈나 서사」에서
그곳에서 - 「무덤」에서
그계집 - 「분얼굴」에서
그냥 - 「꿈으로 오는 한사람」에서
그날까지 - 「사노라면 사람이 죽는 것을」에서
그냥갈까 - 「가는길」에서
그네들도 - 「훗길」에서
그는  - 「꿈으로 오는 한사람」에서
그 누가(2) - 「가을 저녁에 오는 봄」에서
그 내님도 -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에서
그늘깁퍼 - 「가을 저녁에」에서
그늘닙새를 - 「녀름의 달밤」에서
그늘이나 - 「오는날」에서
그대(3)  - 「니젓든 맘」「분얼굴」에서
그대가(3) - 「무언」「귀뚜람이」「개여울의 노래」에서
그대만 - 「닭소래」에서
그대는 - 「니젓든 맘 분얼굴」에서
그대로 - 「꿈으로 오는 한 사람」「달마지」에서
그대를 - 「가을아츰에」에서
그대여(5) - 「기억」 「옛날」 「님과 벗」 「바다가 변하야 뽕나무밧된다          고」에서
그대요  - 「안해」「몸」에서
그대의 가슴속의 - 「가을아츰에」「불운에 우는 그대여」에서
그대의 - 「불운에 우는 그대여」에서
그대 잠든 품속에 - 「구름」에서
그대 한테로 - 「새벽」에서
그대는 먼첨 - 「묵념」에서
그대의 잠든 몸우에 - 「묵념」에서
그대의 이름을 - 「초혼」에서
그대의 손의 - 「여수」에서
그대은 모르고(2) - 「촛불을 켜는밤」에서
그래도 - 「먼 후일」에서
그런데 - 「옛니야기」에서
...그려 -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에서
.그럴듯한 - 「후살이」에서
그런날이오(2) - 「비단안개」에서
그림자 - 「먼후일」에서
그립은(3) - 「풀 따기」 「바다」에서
그림자 갓치 - 「해가 산마루에 저무러도」에서
그리워 - 「비단안개」에서
그런때러라 - 「비단안개」에서
그립다 - 「기억」에서
그립은 한때는 - 「가을아츰에」에서
그립은 끗테는 - 「옛날」에서
그리하면 그 亦是 그럿듯한도 한 일을 - 「生과 死」에서
그를 -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보냐」에서
그러나그러나 - 「새벽」에서
그리는 - 「새벽」에서
그러나(10) - 「오는밤」 「찬저녁」 「무심」 「부귀공명」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보섭대일 땅이 잇섯다면」
            「사노라면 사람이 죽는것을」에서
그림자 가득한 - 「무덤」에서
그립은 바다 - 「여수」에서
그리합니까 - 「개여울」에서
그래도 - 「가는길」에서
그리합니까 - 「개여울」에서
그래도 그들은(2) - 「촛불을 켜는 밤」에서
그래서 - 「산」에서
그럴말로 - 「사노라면 사람이 죽는 것을」에서
그러면 - 「사노라면 사람이 죽는것을」에서
그림자뿐인 줄을 - 「희망」에서
그림장이 - 「전망」에서
그리워 오네 - 「닭은 꼬꾸요」에서

소월 시에서는 ‘그....’로 시작하는 언어가 가장 많은데 특히 ‘그리움’ ‘그림자’ ‘그대’ ‘그여자’...등이다. ‘그...’어감이 가져오는 먼 곳에 있는 대상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시의 외연으로 한다.

박게는 눈이 와라
고요히 창 아래로는 달빛치 드러라
어스름 타고서 오신 그 여자는
내 꿈의 품속으로 드러 함빡히 저젓서라
그만 그 여자는 가고 마랏느냐
다만 고요한 새벽 별 그림자 하나가
창틈을 엿보아라
- 김소월 「그 옛날」
못니저 생각이 나겟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니칠날 잇스리다

못니저 생각이 나겟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니저도 더러는 니치오리다

그러나 또한긋 이럿치요
그립어 살뜰히 못닛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 김소월 「못니저」

해가 산 마루에 저무러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맑은 아츰이라고 할 것입니다

땅이 꺼져도 하늘이 무너져도
내게 두고는 끗까지 모두 다 당신 때문에 잇습니다

다시는 나의 이러한맘뿐은 때가 되면
그림자갓치 당신한테로 가우리다
오오 나의 애인이엇든 당신이어
- 「해가 산 마루에 저므러도」

눈물이 비단안개에 들니울 때
그 때는 차마 닛지못할때러라
만나서 울던 때도 그런 날이오
그리워 밋친날도 그런때러라

눈물이 비단안개에 들니울 때
그때는 홀목숨은 못살때러라
젊은 계집 목매고 달닐때러라

눈물이 비단안개에 들니울 때
그때는 종달새 소슬때러라
들에랴 바다에랴 하늘에서랴
아지못할 무엇에 취할때러라

눈물이 비단안개에 들니울 때
그때는 참아 닛지못할때러라
첫사랑 잇든 때도 그런날이오
영 리별 잇든날도 그런 때러라
- 김소월 「비단안개」

소월에게 있어서 여자는 이 여자도 아니고 저 여자도 아닌 ‘그여자’이다. 홀로된 여자이고(「후살이」) ‘달아래 멋업시 섯든 그여자(「기억」) 이다. 이 경험 속에 ’그여자‘는 어스름 타고 내 꿈의 품속으로 들어와 안기는 ‘그 여자’이고 고요한 새벽에 그만 가버리고 마는 ‘그 여자’이다. 어스름 타고서 오셨다가 고요한 새벽에 가는 ‘그 여자’와 같이 있는 때는 밤이다. 이러한 그리움의 대상은 「못니저」시에서 보면 못 잊는 시간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이 시에서 역시 이런대로 한 세상이 아니고 ‘그런대로 한세상’과 같이 ‘그...’로가 강조된다.
‘그러나’ ‘그립어’등과 같이 울음 우듯 목구멍 막힘 소리로 일관한다. 그것은 낮이 아니라 ‘해가 산마루에’ 걸린 때이다. 때는 낮이 아니라 해가 산마루에 걸린 때이다. 그 시간은 낮이 아니라 ‘해가 산마루에 저무러’(「해가 산마루에 저무러도」)오는 시간에서 시작하여 ‘밝은 아츰’ 때가 오는 때이다. 여기에서 김소월시가 가지는 은유의 극치인 밤을 지나 아츰이다. 
‘그림자’같이 늘 따르는 존재는 김시인에게 ‘그..’가 따라다닌다. ‘눈물이 비단 안개에 들니울 때’의 ‘그때’(비단안개)이다. ‘그리워 밋친날’이고 ‘홀 목숨은 못살 때’이고 ‘밋지 못할 때’이다. 그 때는 ‘첫사랑 잇든 때’이고 ‘영 리별 잇든날’이다. 따라서 ‘영이별’한 시간은 ‘시’의 외연이 된다. 김소월시의 이러한 외연은 오히려 김소월시를 높이 평가하는 내포를 탐색하게 된다. ‘꿈은 그 옛날에서’와 같이 ‘그여자’가 되고 만 상황에서도 ‘새벽’ ‘창틀’의 시어로 하여 영 이별이 아닌 시의 내포를 만든다. 이러한 시의 내포는 ‘시 「못니저」에서도 잊음과 못잊음의 긴장관계에서 못잊음이 가지는 의미는  시 「해가 서산마루에 저므러도」에서 ’그림자갓치 당신한테로 가우리다‘로서 영이별이 아닌 상황으로 내포의 긴장관계를 지닌다.
이와 같이 ‘그....’로 시작하는 그 먼 곳의 시적 외연의 다빈도성은 겉으로 볼 때 당연히 김 시인의 시가 지닌 ㄱ초성자음과 결부되면서 어둡고 쓸쓸하고 외롭고 고독하고 불행한 소월 시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함을 반전하는 의미를 탐색하게 된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현대시의 명사시어 첫글자 초성은 최빈도가 ㅂ → ㅇ → ㅅ → ㄱ음운의 차례 인 것을 보면 김 시인은 그의 내면과 긴밀성을 가진 한의 정서와 연결된다. 김 시인에 같이 공감대가 형성된 시인은 서벌과 이영도 그리고 박목월 윤동주 윤금초 정완영 장순하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과의 변별성은 ‘그리움’이나 ‘그대’등의 ‘그..’로 이미지하고 있다. 이러한 변별성은 김 시인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순수 시인이기에 당시의 처한 현실과 가정의 어려운 당시의 현실이 민족 시인으로 되게 하였다.
참고로 하여 보면 ㅂ음가선호의 시인은 장하보 → 이은상 → 이은상 → 이태극 → 전원범 → 윤곤강 → 김영랑 → 조지훈 → 정훈 → 박영희 → 송욱 → 박경용 → 이육사 → 이병기에서이다. 이병기가 가장 높다. 이들 특징은 리얼리틱성을 전제로 한다. ㅅ 음가는 박남수 → 서정주 → 김광균 → 유치환 → 송선영 → 김기림 → 김춘수 → 이상 → 김광섭 → 이상범 → 정지용 서열이다. 이들은 모더니즘 시 및 인생파 시인들의 모임이다. 특히 김소월의 경우 양성 모음보다는 음성 모음 선호도로 하여 특히 ㄱ음선호도로 하여 목구멍소리가 의미하는 절규의 이미지의 시인이다. 슬픔의 극한을 들어낸 절창을 읊는 결과가 되었다. 시의 외연이다.

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samsu kap san kanwn kilwn kokewi kil
- 김소월의 3.4연

이러한 /k/g의 머리음가는 그의 시도적인 시이다.

물 구슬의 봄 새벽 아득한 길[gil]
하늘이며 들 사이에 넓은 숲
젖은 향기 불긋한 잎 위의 길[gil]
실그물의 바람 비쳐 좋은 숲
나는 걸어가노라 이러한 길[gil]
밤저녁의 그늘진 그대의 꿈[kum]
흔들 니는 다리 무지개 길[gil]
바람조차 가을 봄 걷히는 꿈[kum]

이러한 ㄱ자음의 특징은 님의 대상을 ‘그대’라고 하는 것과 연계된다. ‘그.....’의 시어들은 시적화자 옆에 없는 대상을 외연으로 하였다. 시의 외연이다. 내포는 아니다.

3. 소월시의 긴장관계

(1). 소월시에서의 시간
소숼시에서의 시간은 이야기시간으로 전개된다. 그것은 소월과 님과의 관계로 님이 소월 곁에는 없는 시간에서 비롯된다.

세월이 물과 같이 흐른 두 달은
길어둔 독엣물도 찌엇지마는
가면서 함께 가쟈하든 말슴은
살아서 살을 맞는 표적이외다

봄풀은 봄이 되면 도다나지만
나무는 밋그루를 꺽근셈이요
새라면 두 죽지가 상한셈이다
내몸에 꼿필날은 다시업구나

밤마다 닭소래라 날이 첫시면
당신의 넋마지로 나가볼께요
그믐에 지는 달이 산에 걸니면
당신과 길신가리 차릴때외다

세월은 물과 가치 흘너 가지만
가면서 함께 가자 하든 말슴은
당신을 아주 닛든 말슴이지만
죽기 전 또 못니즐 말슴이외다
- 김소월 「님의 말슴」

위의 시에서 소월시의 님이 되는 대상은 세상에 존재하지 아니하는 데 있다. 그런데도 이 세상에 님을 존재하게 하는 시간은 첫 시이다. 12시가 아닌 첫시인데서 이 시의 큰 시적 가치가 있다.
이 논증을 밝히려면 다음의 시를 더 보아야 한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말업시 고히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
아름따다 가실길에 뿌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거름거름
노힌 그 꽃을
삽분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김소월 「진달래꼿」

흔히 이 시를 이별의 시로 생각한다. 그러나 만약을 전제로 한 미래시간 ‘....실때에는’으로 하여 아예 시작이 미래시간으로 설정된다. 시의 아이러니로 하여 이별의 시간일 때에는 이라는 개념이 설정된다. 따라서 지금이 아니다. 미래이다. 지금 헤어진 것이 아니다.
첫째 사랑이 식어 님이 가실때의 이야기시간인 이별과
둘째 님이 이 세상에 없는 시간과 그리고 병으로 하여 만날 일이 없는 때이다.
따라서 상대에 대한 미움과 죽음과 죽음상태까지 가설로 설정된다. 따라서 시적 화자의 내포는 이와는 정반대이다. 이러한 가정은 그 상태가 아직도 상대에 대한 연연한 상태에 있다. 만약에 상대가 나를 버리고 갈 상황이 일어날 때라면 그 시간을 회복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 전의 사랑으로 되돌리려 한다. 왜냐하면 진달래꽃을 진정으로 사랑하여 달라는 뜻의 의미로 님이 가시는 길에 놓겠다는 것이다. 미래형이다. 현재가 아니다.
그리고 병의 여건으로 인한 헤어짐이라면 그 병을 고치겠다는 의지가 있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 일 때는 사랑의 묘약이 되는 진달래를 그 약으로 사용하겠다는 또한 상대방이 나를 미워하는 이유로 하여 이별일 때에는 나의 사랑으로서의 약은 상대방의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하도록 하는 시간에 서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미래형이다.
소월시에 따른다면 사랑의 묘약이 되는 진달래꽃을 한 아름 따다가 가는 길에 뿌리는 시간이 된다. 꽃길은 가장 아름다운 길임에 비추어본다면 아름답게 꾸미는 시간은 진달래꽃 향기에 취하도록 하는 시간이다. 반대로 그 꽃길이 아닐 때 그 길은 님이 가시는 시간의 길이 아니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가실 때와 같은 미래시간이다.
둘째로 앞으로 다가 올 죽음을 전재로 한 이별의 시간일 경우 소월시의 애절함은 그 극치에 도달한다. 이것은 이 시가 만일if의 시제형으로 출발함에서 이 시의 내포가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더욱 시에서만 가능한 죽음으로 가는 길을 막는 시간이 전개된다. 셋째 또한 서로 사랑하는 연인사이라 할지라도 병이 들어있을 경우  이 시간이야말로 약으로 고칠 시간이 필요하며 병이 점점 깊어가는 길을 막으려 하는 시간이 된다. 
진달래꽃은 어떠한 꽃인가? 조선조 4대 세종대왕이 유호동 노중래 박윤덕에게 명하여 재래의 향약방을 저본으로 많이 중보하고 다시 침구법 1476조 향약본초제법 모두 85권, 1633년 전기, 세종때의 향약 집성방을 증간한 것임.
등을 보태 간행한 향약집성방에 진달래꽃이 약제로 되어 있다. 또한 민속에서도 약술을 만드는 재료로 진달래꽃을 사용한다. 이와 연계하면 소월시에서의 “약산” 진달래꽃은 약이 되는 진달래꽃이 많은 산, 즉 진달래꽃의 약으로서의 효용이 제시되고 있다.
따라서 이 시의 경우 지금은 아니지만 미래 그 어느 때 님이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님에 대한 처방으로 가실님을 못 가게 막는 약 꽃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겠다는 뜻이다. 님이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라는 시적 모호성으로 인하여 이 시는 사랑의 이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소월의 아버지 죽음 혹은 삼촌의 방랑 그리고 학교 친구 병환의 죽음 등으로 인한 시적 은유일수도 있다. 때문에 병의 은유이던지, 아니면 죽음의 은유이든 ‘가실때’라고 하는 미래시제와 함께 강하게 삶의 영원성을 역설하게 된다. 또한 보기 싫어 떠나는 님이라 하더라도 진달래꽃의 약이 되는 효과는 계희영이 말 한대로 소월의 외숙 경삼이가 일찍 일본에 가서 대학을 나와 신의주에서 방랑해도 그의 처가 그렇게 살다가 죽은 남편을 원망하지 않고 계희영 편저, 『소월전집』(서울: 장문각, 1970), 232-235.
 사랑하는 마음을 읊었을 경우 또한 사랑하는 남편을 삶으로 환원시키는 데에 소월의 시적 깊은 탁월성이 있다.
이때의 진달래꽃의 약이 되는 효과는 효력을 발휘하게 될 것도 자명한 일이다. 왜냐하면 “가실 길에” “아름 따다” 뿌리기 때문이다. ‘아름따다’의 시어는 ‘아름’과 ‘따다’로 구분된다. ‘아름’은 ‘안다’의 명사형 어미인 ‘안음’의 활음조의 유음화 현상이다. 불가능이 아닌 가능을 전제로 한 이 복합어는 『진달래 꽃』 초기 발표에서는 “한아름”이라고 되어 있어서 더욱 이 시의 의미 가능성을 제시한다. 약이 되는 진달래 한 아름의 다발은 그만큼 약효를 더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업시
고히고히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의 약산
그 진달래꽃을
한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길 발걸음마다
뿌려 노흔 그 꽃을
고히나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흘니우리다
- 김소월 「진달래꽃」(민요시) 김소월, 『진달래꽃』 (「개벽」2주년 기념, 임시호: 1922), 146-147.


 약이 되는 진달래꽃을 한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는 것은 님이 잘 가라고 뿌리는 약꽃 진달래꽃이 아니라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길에 역겹지 않도록 만드는 약이다.
인간은 누구나 땅을 디디고 그 위에서 발걸음을 걷고 있다. 따라서 소월시에서의 ‘가시는 거름거름’은 약꽃 진달래꽃이 뿌려진 길을 가게 된다. 그것은 지시대명서가 암시하는 바 “노힌 그 꽃”에서 딴 길이 아닌 못가도록 약이 되는 꽃 길을 밟고 가게 된다.
이러한 관계로 하여 “고히나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는 설의법에 해당한다. 우리말에는 설의법이 다양하게 사용되는데 예를 들면 ‘가볼테면 가봐’라든지 혹은 ‘언제든지 보내드리겠습니다’ 혹은 ‘가시옵소서’들이 사실상 상대방이 가실 수 없는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그 의미이다. 앞의 시에서와 같이 “고히나” 시어에 의하여 ‘고히 잘도 가겠다’라고 하는 정반대의 뜻이 은유되어 있어서이다. 잘도 가시겠수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못간다는 말이다. 
“고히나” 시어는 부정 의미이다. 따라서 1연의 님이 나를 역겨워하며 “가실 때”라고 하는 상황이 반전한다. 이것은 한시의 경우 전이며 시조의 경우 종장초구에 해당한다. 평시조의 종장의 역할을 하는 3연만으로도 이 시는 완성된 단계이다. 그럼에도 첫연과 중복되는 4연을 생략해도 무관한 반복리듬이다. 4연은 허구의 리듬이다. 이미 약으로 고쳐진 님의 병은 “죽어도”가 있을 수 없으며 둘 사이에 단절의미인 죽음이 전개될 수 없다. 따라서 4연은 무의미한 리듬이다. 시는 절제된 시어의 시행이 있지만 시의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위하여 없어도 좋을 싯구가 놓인다. 허사적 리듬이다. 시조 종장 끝구 리듬이다.
따라서 이제까지의 시적 내포로 보면 「진달래 꽃」시는 약藥 꽃이기에 님과의 이별 혹은 죽음 혹은 이별 혹은 병으로 인한 이별을 막는다. 이것은 고대시가에서의 “철 치마가 다 닳아 없어져야만 님과 나와 이별한다”던지 “구운밤 닷되가 다시 싹이 나야만 님과 나와 이별한다”와 연결이 된다. 소월의 「진달래꽃」 시는 이별의 시가 아니다. 
2. 소월시에서의 삶과 죽음의 거리

시적 언어의 특성에서 긴장관계는 그 거리가 멀면 멀수록 더욱 고조된다. 이 점에서 소월시는 외연인 죽음 이미지와 내포인 삶의 이미지가 뚜렷하게 긴장관계가 놓이면서 시의 우수성이 드러난다.  때문에 이에 대한 해소가 필요하게 된다.

⑴ 나와 넋과의 거리

세월이 물과 가치 흐른 두 달은
길어둔 독엣물도 썩엇지마는
가면서 함께가쟈하든 말씀은
살아서 살을 맛는 표적이외다

봄풀은 봄이 되면 도다나지만
나무는 밋그루를 꺽근셈이요
새라면 두 쥭지가 상한 셈이라
내 몸에 꼿 필 날은 다시 업구나

밤마다 닭소래라 날이첫시면
당신의 넉마지로 나가볼때요
그믐에 지는 달이 산에 걸니면
당신의 길신자리 가릴때외다

세월은 물과 가치 흘러가지만
가면서 함께 가쟈 하든말씀은
당신을 아주 닛든 말슴이지만
죽기 전 또 못 니즐 말슴이외다
- 김소월 「님의 말슴」

퍼르스름한 달은 성황당의
데군데군 허러진 담 모도리에
우둑긔 걸니웟고 바다우의
가마귀 한쌍, 바람에 나래를 펴라
그러나 나는, 오히려 나는
소래를 드러라 눈 섞인 물이 썩어 내리는
땅 우에 누어서 밤마다 누어
담 모도리에 걸닌 달을 내가 또 봄으로
- 김소월 「찬 저녁」

위의 두 시는 두 개의 상반된 상황에서 출발한다. 첫째의 「님의 말슴」은 님과 이별 즉 삶과 죽음의 다른 현실에서 죽음이 아닌 삶으로 님을 당기는 상황이고 둘째의 「찬 저녁」은 살아있는 나는 죽음의 상징성에서 그래도 삶을 향한 자세의 달을 쳐다봄이 전개된다. 그러나 이 둘의 공통점은 님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혹은 죽음과 같은 현실이라도 소월 시로 하여 그 죽음의 세계를 삶으로 전이시키는 데 있다.
우선 「님의 말슴」에서 1연은 길어둔 독의 물도 두 달이면 썩어진다는 사실성을 발단으로 하면서도 님이 죽음으로 가면서 함께 가자한 말은 살아서 살을 맞댄 이유라고 하여 인연의 관계를 확실히 하고 있다. 따라서 독의 물이 비록 썩었을지라도 사람과의 사이에 놓인 죽음은 삶과 살과의 관계로 하여 인간은 다른 물질과는 다름을 암시한다. 때문에 죽은 님은 몸의 살도 썩었지만의 “....지만”이 첨가되면서 시의 내포가 외연과 다름으로 반전된다. 님이 죽음으로 인하여 살아있는 풀이나 새라하더라고 말하자면 나무 밑그루를 꺾은 셈이 되고 새라면 두 쥭지가 상해서 날지 못한 것과 같지만의 “....지만”으로 역설한다. 반전된다.
따라서 이러한 죽음, 곧 나와 님과의 거리의 긴장관계는 「님의 말슴」시의 3연에서 날이 첫 시면 “넉마즈로 나가볼때요” “길신가리 차릴때”가 됨으로써 해소되고 있다. 이 “넋”은 한 밤과 관련되면서도 옛 성현들이 만나던 넋과 직결된다. 정몽주는 그의 삶이 죽음으로 가는 상황 속에서도 넋을 만나는 일로 죽음을 초월하는 기를 발휘하였다. 또한 「찬 저녁」시에서와 같이 썩어내리는 “따우헤”라 하더라도 이 죽음의 뜻은 밤마다 “담 모도리에 걸린 달을 내가 또 봄”으로 하여 다시 살아난다. 달은 그 순환 법칙으로하여 영원의 뜻에 있다.
이 두시의 공통점은 물이 썩었다는 데 있다. 이것은 인간육체가 썩음에 비유되기도 한다. 또한 인간 몸속에 피가 썩음의 의미로까지 확대된다. 그런데 넋과 만남이나 달을 본다는 것은 현실의 일상성을 초월하는 내포를 소월시는 지니게 한다.
이와 관련하여 다른 시에서도 반복되고 있는지 알아 볼 일이다.

(2) 꽃피네와 꽃지네의 거리

산에는 꼿피네
꼿치 피네
갈 봄 여름 업시
꼿치피네

산에
산에
피는 꼿츤
저만치 혼자서 피어잇네

산에서 우는 적은 새요
꼿치죠와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꼿지네
꼿치지네
갈 봄 여름 업시
꼿치지네
- 김소월  「산유화」

이 시는 우선 시에서부터 긴장관계에 있다.

산 꽃










꽃 산

산 꽃



1연과 4연이 동일외연에 있고 2연과 3연의 새와 산만 제외하면 동일외연에 있다. 때문에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모를 내포성의 모호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 시의 내포적 시어는 새와 산이다. 이것은 산유화의 시가 산의 새가 존재하는 이유로 귀착된다. 때문에 산유화의 제목이 예시하듯이 산에 꽃이 있음을 강조한다.
그런데도 이시가 모호성을 지니는 것은 4연의 ‘산에는 꼿지네/ 꼿치지네/ 갈 봄 녀름없이/ 꼿치지내’가 1연의 ‘산에는 꼿피네/ 꼿치피네/ 갈 봄 녀름없이/ 꼿치피네’와 긴장관계에 놓인다. 그리하여 김동리가 이 시의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의 뜻이 저만치라는 거리감이라 하여 소월의 자연과의 거리 혹은 소외당한 소월자신의 고독한 심리상태가 하였다. 이 때문에 소월시 제목이 산무화山無花가 아닌 산유화山有花 곧 산에 꽃피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소월시 전체가 전제가 어느 분야에 서든지 어울리지 못하고 격리된 이미지에 있다는 큰 오류를 범하였다.
시가 지니는, 더욱이 좋은 시일시록 시의 애매 모호성은 높다. 다만 아주 중요한 내포는 더욱더 연구가에 의하여 시의 가치가 밝혀질 뿐이다. 산유화가 산에 꽃이 있음을 주제로 한 것이라면 ‘저만치 홀로 피었네’는 실제 산에는 꽃이 피네가 복수개념의 꽃이 많은 뜻이 있음으로써 시의 은유적 긴장이 된다. 시적 긴장이 있을수록 극과 극의 대응관계는 극적인 유기성을 좋은 시는 가지게 되는데 꽃의 존재 즉 산에 있는 많은 꽃들의 삶의 존재와 관련된 이 꽃이 ‘피네’의 꽃 핀 수많은 꽃이라 하더라도 언제나 홀로 피어 있는 존재이다. 존재 그 자체 한 송이의 꽃이다. 하나의 존재에 하나의 삶만이 있다. 모든 존재는 하나의 존재이며 하나의 삶만 살 수 있다. 대신 살아 줄 수 없다. 하나의 존재가 두 개의 삶이나 남의 삶을 가질 수 없다.  ‘산’에 저만치 홀로 핀 존재 그것은 존재 모두가 홀로 저만치 영광스럽게, 홀로 저만치 자랑스럽게 피는 존재이다.
이에 대한 해석자료로는 ‘가을 봄 녀름 업시/ 피네’에 있다. 자연의 순환성에 비추어 본 이 시의 기간은 이(二)년이다. 겨울을 지난 가을과 봄과의 관계는 일년이면 피었다가 스러지는 꽃도 아니고 겨울에도 시적 화자 필 꽃이다. 시의  내포는 적어도 겨울을 지나 잘 피고 있는 봄의 꽃이다. 그럼으로 2년이다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봄에 핀 존재 꽃이다.
이러한 꽃의 저만치 홀로 피어있는 꽃의 존재를 왜 새가 좋아하지 않겠는가! 저만치 홀로 피어있는 산에 핀 꽃을 산에 사는 작은 새가 그 꽃이 좋아 산에 있게 된다. 이 시의 새는 큰 새가 아니며 보통새도 아닌 ‘작은 새’이다. 이러한 꽃의 저만치 호로 피어있는 꽃의 존재에게는 산에 사는 작은 새가 그 꽃이 좋아 산에 있게 된다. 작은 새는 저만치 가을 봄 여름 없이 피는 꽃이 좋아 사는 큰 존재이다. 가을봄 여름이 아니라 가을 봄 여름 없이이다. 계절을 쭈욱 이어서 사는 꽃을 작은 새는 좋아하며 산에 산다. 이 진달래 꽃 시의 ‘그 꽃’처럼 시에서 ‘꽃이 좋아’의 꽃은 가을과 겨울과 봄 여름에 영원토록 피는 꽃이다. 따라서 산에 사는 보잘 것 없는 작은 새는 이 꽃이 좋아 산에 삶으로서 산은 삶의 동산이 된다. 우리의 삶이 있는 동산이다.
동시에 4연의 ‘산에는 꼿지네/ 꼿치지네/ 갈 봄 녀름업시/ 꼿치지네’이다. 흔히 이 시구 때문에 소멸이미지로 이해하기 쉬우나 이는 한국시의 전통성을 모르고 한 말이다. 바로 시조의 경우 종장 4구에 해당하는 ‘하노라’류의 생략형 어미와 연계된다. 없어도 좋을 싯구를 그냥 시의 아름다움을 위해 놓아준 시이다. 한국인들은 여백의 미를 즐긴다. 이 여백의 리듬 그냥 있으나 마나한 존재로 그러나 어울림의 아름다운 리듬으로 놓여진 시의 율격이다. 이 「진달래 꽃」시 4연은 시조처럼 허사적 리듬을 가진다.
그 증명은 시 제목이 말하는 「산유화」이어서이다. 시제목이 ‘산무화山無花’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산에 사는 작은 새가 꼿치 좋아 살 듯이 산에 사는 작은 새는 꽃이 없다면 싫어 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4연의 /산에는 꼿지네/ 꼿치 지네/ 갈 봄 녀름 업시 꼿치 지네/는 없어도 좋을 허사적 리듬이지만 시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존재하게 된다. 이영지, 「시조의 신화소고」 국어국문학 전국발표대회(1989. 6. 20/발표장소 서울: 외국어대학교).

 이로써 소월시는 시조적 리듬을 가진다.

4. 소월시의 대화체

1). 동일성

소월시를 보면 그리움 혹은 이별의 슬픔 그리고 한없이 자신을 낮추는 이미지로 하면서 어법이 대화체이다.

봄 가을 밤마도 돋는 달도
「예전엔 밋쳐 몰낫서요」

이럿케 사무치게 그리울줄도
「예전엔 밋쳐 몰낫서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줄은
「예전엔 밋쳐 몰낫서요」

이제금 저 달이 서름인줄은
「예전엔 밋쳐 몰낫서요」
- 김소월  「예전엔 밋쳐 몰낫서요」

위의 시는 대화체로 되어 있다. 님은 현재 없는 상태이나 달에게 고백하듯 님을 대하듯 대화를 하고 있다. 달과 시적 화자는 동일성에 있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고 슬픔에 겨워 달을 슬프다고 의인화하는 자연과의 달을 보며 객관하여 분석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기쁠 때는 쳐다보지도 않다가 한없이 슬픈 나와 동일시 하는 것은 내가 한없이 슬픈 현실에 처하고 있다는 시적 외연이다. 그리하여 둘이 같은 처지가 되면서 속삭이고  있다. 이처럼 나를 보다 낮게 즉 자연과 함께 슬픔으로 노발리스적 콤플렉스에 젖어 있는 것은 한국시의 표면적인 특징이다.
님은 잘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만의 이 슬픔은 어쩌면 나만이 슬플수도 있다는 가정에서 시작된다. 대상을 향하여 보이지 않지만 대화체 형식으로 고백한다. 따라서 겉으로 보기에는 그 대상마저 슬픔으로 의인화하는 시를 통해 한의 비극의 시로 보인다. 그리고 소월시는 경험유추가 만들어낸 시적 화법이다. 
그러나 이를 반전하는 가치는 이와는 전연 다른 의미가 있음을 대화체로 하는데서 밝혀진다.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안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
- 김소월 「먼 후일」

님은 절대적 존재인데 나는 그 보이지 않는 허상에서도 나를 낮추고 님에 대한 수동적 자세에 있다. 이 시에서 ‘당신’이라는 존재는 먼 훗날에도 잊지 않으리라 하고 있다. ‘당신’이라는 존재는 나무랄 수 있는 존재이고 또 만일 잊었다고 한다면 크게 꾸지람 할 수 있는 존재이다. ‘당신’즉 님의 존재는 나보다 높고 좋으며 주인이 되고 있다. 이 나를 낮추는 슬픔의 대상으로 시가 전개되다가 어느 사이 님이 나무라고 있음으로써 나도 님을 아니 잊고 님도 나를 아니 잊는 님과 나의 동일성에 도달한다. 황진이 시조 「어져 내일이야“ 스타일이다. 
대화체의 본질적 목적은 두 대상과의 단절된 관계를 해소하는 데 있다. 시적 용어로 본다면 긴장관계를 대화체의 연결고리로 동일화에 도달한다.



2). 나의 낮음

그러면 이러한 님과 나의 마음은 사실상 ‘나무라는 님’ 혹은 ‘그래도 나무라는’님으로 못잊어 하는 나와 같은 수평구조인데 어째서 님은 늘 나를 두고 떠나고 나는 그리워 하는 관계일까?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 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우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  김소월 「초혼」

헤어진 관계의 절절함이다. 삶과 죽음의 관계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메아리일 뿐이다. 님과 나의 달라진 상황에서 님의 위치와 나의 위치는 각기 달라져 있다. 님은 죽은 자이기에 더욱 절대적 존재이며 변함이 없는 위치로 굳혀져 있다. 나는 현실 세상을 살아가는 위치에 있음으로써 눈물과 한숨에 젖어 있다.
이 원초적 그리움의 실제적 무게는 님이나 내가 같다. 따라서 소월시의 경우 앞의 「님의 말씀」 시에서 본바와 같이 넋 맞으러 가서 님을 만나거나 달을 통해서 단절된 대화의 길을 열고 있다.
이와 같은 소월시의 설음에 겹도록 부른 불균형적인 세계는 소월시만의 특징일까? 시는 나의 문학적 얼굴이며 특히 한국말에만 있는 특징으로 하여 예를 들면 님을 죽인 나는 미망인이고, 상대방은 님이고 나는 ‘저’이며 ‘소첩’이 되고 또 죄인이 되며 ‘소자’가 되어 자기를 낮춘다. 그러기에 유독 한국시들은 정서를 바탕으로 한 울음의 문학으로 찢어진 옷 사이로 살결이 보이는 문학이다. 깨어지고 소외된 자의 비명처럼 들리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 문학에서 이 가치는 무엇일까? 김소월 뿐만 아니라 한국문학은 님은 존재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이제까지 이해되어 왔다. 님이 없음으로 하여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없고 밝은 밤일수록 혹은 집집마다 피어오르는 연기에서 혹은 달에서 님을 떠올리게 되며 님의 부재는 더욱 그리운 존재여서 님은 먼 곳에 있는 님의 의미로 강조된다. 이러한 소극적이고 자학적인 듯 싶은 시의 외연은 기실 나를 철저히 낮추는 겸손의 민족 언어 내지 사상과 직결한다. 님은 떠났는데 유독 나만이 애태우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도 오히려 이러한 시의 외연은 님으로 하여금 다시 돌아오게 하는 근본을 가진다. 여기에 한국 고유의 시조적 가치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왜 그토록 좋아하는가! 왜 예수님을 그토록 좋아하는가! 나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하나님이고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목숨을 담보로 나를 살려준 분이기 때문이다. 그토록 그리워하는 자에게 언제나 대상은 돌아오게 되어 있다. 이 기독교정신은 서동요의 선화공주를 얻게 되었었다. 이것은 절대적 행복을 추구하는 한국정서이다.

3. 배수의 기쁨

이러한 불균형적 나의 상황에서도 나는 변하지 않는 외곬의 사랑의 세계에 들어 있는 아니마의 세계이다. 이것은 소월이 그의 넋의 대상 혹은 영혼의 세계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어서 혼과 대화를 하였다. 이 문학적 상상력은 영혼을 가진 인간에게 전달되는 호소력이다. 마음이 쇠잔하여 절망에 절망 혹은 슬픔에 슬픔을 더하다가 마침내 무섭고 환상적인 삶의 힘이 솟아나 이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인들은 김연아 같은 선수가 나온다. 한국의 환경과 지역적 조건에서 세계를 사로잡은 불가사이한 힘이 솟는다. 신비한 힘이 솟게 된다. 불이 나면 나도 모르게 그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는 괴력을 발휘하는 불가사이의 힘이 우리에겐 있다. 한국 고유의 힘이다. 
가벼워진 바위와도 같이 슬픔을 지워버린 고통이 오히려 기쁨을 만들어내는 삶의 원동력이다. 슬픔을 이겨버린 힘은 오히려 기쁨을 만들어가는 기쁨이 된다. 이 아니마의 세계는 거대한 힘이다. 특히 소월시의 특징은 초혼사상으로 이별의 상황이나 그 것을 미래형으로 가정하면서까지 현재를 행복하게 한다. 아름다운 초혼을 불러내는 힘이며 승화시키는 역설이 되면서 님에게서 떠나지 않는, 아니 떠나지 못하는 정신을 지탱한다. 이영지, “한국현대시의 이미져리”,『명지문학』12, 131.
 한국을 떠나지 못하는 그래서 오천년이 이어져 오는 한국의 힘이다.
님으로 세계를 믿고, 사랑하고, 창조하며 그의 마음에 저장된 열기로 살아간 소월은 불가해한 시, 사랑의 시는 아무리 깊은 슬픔이라하더라도 시화하여 우주적으로 퍼져나가 이 세계의 일체의 것에 아름다움을 부여해주는 원동력이 된다. 인구에 회자하고 또 회자한다.

한인석 16-06-15 14:35
 
공부 잘하고 퍼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