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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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숙

李英芝 0 1281
□ 제20회 창조문학대상 시부문 수상자 김혜숙 작품선
경계境界  외 9편
                    김 혜 숙

동지 지난 바람 속에선
몸살을 한다
나목들 사이에 선
단풍나무, 차마
밀착하는 제 살을 털어내지 못해
마른 손가락을 오므려
바람을 만진다

해 진 뒤 잔광처럼
담벼락 밑 희끗한 잔설처럼
영하의 거리는 팽팽한데
단풍나무 지난 가을의 꿈을 꾸고 있다

나무속에 얼었던 물결이 풀리는가
신갈나무 참나무 팥배나무 산수유
온 나뭇가지에 돋아난 돌기들
임부의 유두처럼 거뭇거뭇하다

허공에 갈래 줄을 그으며 떠나가는
기러기 떼 
옥화란
         
책상 모서리에 앉은
분청자기 화분에
미끈한 세 촉의 옥화란이
내 마음 파아랗게 물들이네

어느 날 불현듯
꽃대 하나 올라 와
다섯 송이 꽃망울

해와 달이 뜨고 지니
꽃망울 하나 두울
얼굴 드러내 하얗게 웃는다

나는 먹물에 마음 풀어
한 촉 두 촉 난을 치니
방안 가득 그 향이 은은하네

젖은 누더기를 벗는다
                                     
밤은 깊어

솔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

선 방 창에 비친
그림자는

나뭇잎을 두드리는
가을비에
젖은 누더기를 벗는다 
그리움

그때
그가 말했다
나는 리처드닉슨이
부럽지 않소

나는 섹스피어에게
질투를 느끼오
왜냐고?
나보다 먼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느꼈으므로

여자가 말했다
내가 목숨을 잃는다면?

그가 말했다
나는 젊은 베르테르가 되겠소

여자는 열락悅樂에 젖어들며
오! 그대는 나의 호흡이예요

그러구러
밤과 낮이 오고 간
사십 성상星霜*
다 바랜 벽화를 보듯
여자는 추억을 더듬는다
 
*십년




다시 애가 되어서                     
                                       
칠십대 중반의 서리 내린 할머니가
종로 6가 창신동에 있는 박 소아과朴 小兒科로 들어섰다
어떻게 오셨어요, 간호사의 낭랑한 목소리
 “감기가 들어서…….”
할머니!  여기는 애들만 오는 소아과병원小兒科病院이에요
 “응, 알고 있지!”
       
웃음소리로 진료실診療室
문이 열리고
홍안紅顔의 원장선생님이
즐거운 눈빛으로
“들어오시지요.”
       
“내일 한 번 더 오세요. 할머니!”
할머니 주름이 날아간다                         

아버지
             
그 날 선산先山에서 아버지를 광중壙中*에 하관下官* 하는데
“일을 해야지” 아버지의 말이 귀를 울린다

지주의 장남으로 태어나
젊어서는 김화군金化郡의 정구 선수였다

장년壯年에 들어서는
재산을 관리 하던 집안 집사執事를 압박하여
금고 열쇠를 받아 내
친구에게 양복을 사 입히고
일본으로 만주로 함께 유람하며 탕진했다

8 15해방, 6 25사변으로 세상이 바뀌고
가세가 기울면서 아버지는 삶에 대한 후회와 고통을
감당 못하셨는가 정신 줄을 놓았다

때때로 먼 허공을 바라보며 앉아 계시거나 온 집안을
들락날락 하면서 “일을 해야지”하시던 아버지

* 시체를 묻는 구덩이 속
* 관을 광중에 내림

어머니 

은행에 다니다 명퇴를 하고
뒤늦게 운전을 배우는
할머니의 막내딸

오늘 마지막 주행시험을 보러
집을 나섰다

쫓기듯 현관에 들어서는 막내딸
엄마! 나 백점 먹었어

그래? 수고했다
내가 낳은 자식들은 다 보통은 해

방 한 구석 방석 위에 앉아
코를 묻고 있던 눈치 훤한 누렁이
할머니 쪽으로 고개를 뽑으면서
나 두(컹컹)




자장가 ­ 전설
 
할머니! 옛날 얘기 해줘
오늘은 그냥 자자
 “으응 싫어”
옛날에 처녀 셋이
산에 나물을 뜯으러 갔대
 “응”
한참을 가는데
높다란 바위 아래
고사리가 무더기로 나 있드랜다
처녀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신나게 나물을 뜯어
바구니에 담는데
커다란 바위틈에 예쁜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놀고 있더래
“그래서?”
처녀들은 바구니를 내려놓고 다가갔대 
아이 예뻐라 하면서 꼬물대는 고양이 새끼를   
품에 안고 뽀뽀를 하는데
바위 꼭대기에서 으-흥 하는 소리가 나
쳐다보니까
큰 호랑이 한 마리가 바위 위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더래
 “아이 무서워, 그래서?”
처녀들은 깜짝 놀라 정신없이 뛰어 집에 왔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대문밖에 바구니가 놓여 있었대
호랑이가 제 새끼를 예뻐해 준 것이 고마워서
집집마다 바구니 속에 잘 생긴 산 삼 한
뿌리를 넣어다 주었대 
“으응, 그랬구나”

이제 그만 자자
“응” 손녀는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수묵 담채화水墨 淡彩畵
                                     
머얼리 운무雲霧에 가리운
산 능선들
가물거리는 기억처럼 아련하네

기암절벽
바위틈을 비집고 모로 나온
소나무들
외줄 타는 곡예사처럼 기우뚱
온 몸으로 대명천지大明天地를 들이마시네

산중턱
고즈넉한 亭子 안
갓 쓰고 돌아앉아 생각에 잠긴
사람은 이응노 화백畵伯인가

산 아래
앞치마 두르고 걸어오는 여인
똬리를 받쳐 인 물동이 속
출렁이는 마음은 

멧새 한 쌍 날아오르네

나도 오르네

도시의 아침         
                                                   
무슨 소리에 잠이 깼다                         
고쳐 누워 다시 잠을 청한다
신경을 거슬리는 초침 소리
벌떡 일어나 불을 켜고 도로 눕는다 

벽에 늘어진 족자 속
뱃머리에 앉은 사공
물살을 가르며 삐걱삐걱 노 젓는 소리
허공을 날으는 물새 소리
캘린더 속 목련, 꽃잎 벙그는 소리
       
10층에서 물 내리는 소리
부스럭 툭, 신문 들어오는 소리
귀에 익은 우유배달 아주머니 잰 발걸음 소리
동틀 무렵 창 밖 
선홍의 십자가 총총, 하늘로 피어오르는 기도소리
         
포개놓은 성냥갑 같은 아파트 유리창
햇살 부서지는 소리
도로에서 들려오는 지하철 공사 굉음소리
열 받은 주전자, 수증기 뿜어내는 소리
       
소리에 소리가 눌리고 솟는 도시의 아침


 














□ 제20회 창조문학대상 수상소감

외길 인생


김 혜 숙


창조문학 운영이사로 활동해 오던 중 뜻 밖에도 이번에 대상을 받게 되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부족한 작품을 높이 평가 해 주신 문학박사 홍문표 교수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도와 격려를 아낌없이 주신 이영지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는 외길 인생을 걸어오던 공직公職을 마치고 사회활동을 해 오면서 뒤 늦게 새얼문학에 입문하여 시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시를 통해 모든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고 지나온 제 자신을 관조觀照 하며 대 자연을 통해 인생을 배웁니다. 인생은 고뇌라 하였던가요. 때로는 시가 얼어붙어 풀릴 때 까지 기다리는 고통을 느끼면서 보이지 않는 저 높은 곳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고통을 감내堪耐 하노라면 어느덧 그 님(詩)이 오시리라는 믿음으로 . 그렇게 시를 써 오다 2009년 창조문학 봄 호에 등단하면서 신인상을 수상한 그 때의 기쁨과 설렘이 있어서 시 ‘봄이 오는 소리’로 답례하고자 합니다. 

봄이 오는 소리...

  울 안 백목련 나무 한주엔
  크고 잔가지 끝에 솟아나
  하늘을 바라보는
  붓봉 같은 꽃망울들

  엄동설한 견디어낸
  백목련 나무는
  겨우내 굳은살로 감싸던
  꽃망울 표피를
  조각조각 털어내며
  솜털 두른 속옷을 벗어낸다

  붉어가는 햇살에 속옷도
  벗으면서
  순 백의 얼굴을 드러내겠지

  봄이 오는 소리
  뛰는 내 가슴소리

저에게 창조문학대상을 선정해주신 홍문표 총장님과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문우 여러 선배님과 후배님들 새해엔 더욱 문운이 함께 하시기를 .....,
고맙습니다.


* 김 혜 숙
․모범 공무원 표창 (내무부 장관)
․우수 공무원 표창 (내무부 장관)
․30년 봉사상 (인천시장)
․녹조 근조 훈장 (대통령)
․인천광역시 시민상 수상 (인천시장)
․사회복지시설 비교 시찰 (미국)
․여성단체 자매결연차 (중화민국)
․하와이 주립대학 연수 (미국)
․여성공직자 해외연수 (일본)
․여성사회교육기관장 국외정책연수 (미국, 카나다)




□ 제20회 창조문학대상 시부문 김혜숙 작품평

경계를 넘어 시의 세계로
-김혜숙 시인의 시집 『경계』에 부쳐

홍 문 표
(평론가 · 시인· 전오산대학총장)



김혜숙 시인이 이번에『경계』라는 시집을 낸다. 우선 시집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김 시인은 이번 시집의 제목을 『경계』라 하였다. 사전적으로 말하면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분간되는 한계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들 인생에게는 너무나 많은 경계가 있다. 국가적으로는 국경이 있고 우리의 경우엔 동족인데도 총부리를 겨눈 가혹한 분단선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인간들은 저마다 땅에 경계선을 긋고 집집마다 탱자울타리를 하고 철조망을 치고 콘크리트 담벼락을 쌓는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외적인 경계일 뿐이다. 내적으로는 얼마나 많은 경계선을 긋고 있는가! 저마다 개성이니 자존심이니 존재감이니 하면서 서로 간에 가지각색의 울타리를 치고 자신의 아집 속에 칩거한다.
그런데 경계란 그처럼 너와 나, 주체와 객체의 넘나들 수 없는 경계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조치하는 언행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니 경계는 이래저래 접근하기 어렵고, 넘어서기 어려운 어떤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조금은 위태롭기도 하다.
그렇다면 김시인은 어째서 이처럼 다양한 의미와 생각을 심각하게 던져주는 경계라는 말을 시의 제목으로 하여 이번 시집에 도전하였을까. 그 진실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이번 시집 속에 수록된 「경계」라는 그의 작품을 먼저 살펴보아야 하겠다.
                 
동지 지난 바람 속에선
몸살을 한다
나목들 사이에 선
단풍나무, 차마
밀착하는 제 살을 털어내지 못해
마른 손가락을 오므려
바람을 만진다

해 진 뒤 잔광처럼
담벼락 밑 희끗한 잔설처럼
영하의 거리는 팽팽한데
단풍나무 지난 가을의 꿈을 꾸고 있다

나무속에 얼었던 물결이 풀리는가
신갈나무 참나무 팥배나무 산수유
온 나뭇가지에 돋아난 돌기들
임부의 유두처럼 거뭇거뭇하다

허공에 갈래 줄을 그으며 떠나가는
기러기 떼 
-「경계」
 
김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말하고자 하는 경계는 어떤 기준에 의해서 분리된다는 한자어 경계境界를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시에서 제목이란 그가 드러내고자하는 작품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깃발이기에 그 작품의 내용을 분석해보아야 한다.
시인은 첫 연에서 동지 지난 바람 속에서 몸살을 하는 단풍나무의 마지막 안간힘을 보여준다. 동지冬至는 바로 날이 짧은 날이다. 하지로부터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면서 동짓날에는 극도로 낮이 짧아 혹독한 추위와 밤이 극점을 이루는 날이다. 그렇다면 동지라는 경계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밤과 낮의 경계요, 겨울과 봄의 경계요 어둠과 빛의 경계요 나아가서는 겨울의 죽음에서 봄의 재생으로 전환하는 경계다. 이처럼 동지의 경계는 모든 것이 끝나는 생명의 종점으로서의 경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다시 시작되는 출발점으로서의 경계라는 의미를 아우르게 된다.
그렇다면 김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경계를 제목으로 한 것은 두렵거나 답답한 마지막의 경계가 아니라 어둠에서 밝음으로, 겨울에서 봄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부활하는 희망과 기쁨의 경계가 되고 있음을 예견하게 한다. 그래서 알몸으로 떨고 있던 단풍나무가 마른 손가락으로 동지가 지난 생명의 바람을 만지게 된다.
그러한 행위는 2연에서 비록 해진 뒤 추위는 아직도 영하의 겨울이지만 그래도 단풍나무는 지난 가을의 화려했던 시절을 꿈꾸며 소망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출발점으로서의 경계는 3연에서 신갈나무, 참나무, 팥배나무, 산수유 등에서 더욱 확실한 징후를 보이고 있다. “온 나뭇가지에 돋아난 돌기들/ 임부의 유두처럼 거뭇거뭇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김 시인의 이번 시집이 보여주는 경지는 더 이상 갈 수 없는 철조망이거나 아니면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콘크리트 담벼락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는 희망과 창조의 출발점이고 전환점으로서의 경계가 분명해지는 것이다. 이를 다시 재확인하는 구절이 바로 마지막 연 “허공에 갈래 줄을 그으며 떠나가는/ 기러기 떼”다. 기러기는 겨울의 시작이 아니라 겨울이 끝났음을 알리는 새로운 시작의 경계선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김 시인의 경계는 어둡고 추운 경계선을 확실히 하는 철조망이 아니라 그 경계를 넘어 밝고 따뜻한 세상으로 넘어가는 경계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이번 시집 경계가 주는 메시지일 뿐만 아니라 그의 시학이고 그의 인생철학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 시학이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제 1부에 배열된 시들이다.

책상 모서리에 앉은
분청자기 화분에
미끈한 세 촉의 옥화란이
내 마음 파아랗게 물들이네

어느 날 불현듯
꽃대 하나 올라 와
다섯 송이 꽃망울

해와 달이 뜨고 지니
꽃망울 하나 두울
얼굴 드러내 하얗게 웃는다

나는 먹물에 마음 풀어
한 촉 두 촉 난을 치니
방안 가득 그 향이 은은하네
-「옥화란」

밤은 깊어
솔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

선 방 창에 비친
그림자는

나뭇잎을 두드리는
가을비에
젖은 누더기를 벗는다 
-「젖은 누더기를 벗는다
         
고갯마루를 훑어 내린 바람
갈대숲을 모로 누이고

고요 속에 잠긴 호수를 쓸어       
햇살에 물든 수면
비늘처럼 반짝 인다

덕숭산德崇山 가는 길목
붉게 탄 나뭇잎이
후려치는 바람에 찢겨


발등에 떨어진다   

바람은 자고
어둠이 길 섶 마른 숲을 지우는데

나뭇가지 사이 흐르는 별빛은 
나를 싣고
-「바람은 」

작품 「옥화란」은 난과 나와의 관계에서 옥화란이 어떻게 경계를 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옥화란은 단지 관상식물일 뿐이다. 과학적으로 보면 나와 옥화란은 인간과 식물로서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이 과학적 경계다. 그러한 과학적 경계를 시인은 시적 경계로 전환시켜 나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첫째 연에서 옥화란이 내 마음을 파랗게 물들인다 했다. 원래 내 마음은 색깔이 없다. 그것이 내 마음의 경계다. 그런데 옥화란과 내가 시적인 상상력을 통해 새롭게 경계를 넘는다.
그런데 이런 경계 넘어섬은 바로 시의 본질이고 시의 정신이기도하다. 시가 무엇인가. 그것은 메타포metaphor다. 메타포란 원래 넘다cover와 이동하다carrying란 뜻이 합성된 말이다. 따라서 시의 본질은 기존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가는 과정이다. 그러한 시학에 충실한 것이 바로「옥화란」의 경계 넘기다. 3연에서 옥화란 꽃망울이 “얼굴 드러내 하얗게 웃는다”했다. 이것도 경계 넘기다. 얼굴이란 의인화도 그렇거니와 “하얗게 웃는다”도 경계 넘기다. 이런 경계 넘기는 마지막 연의 ‘먹물에 마음 풀어’도 그렇다.
작품「젖은 누더기를 벗는다」에서는 “선 방 창에 비친 그림자는// 나뭇잎을 두드리는/ 가을비에// 젖은 누더기를 벗는다” 했다. 여기서 그림자란 시적 화자의 번뇌 망상에 있는 자화상이다. 그러한 자아가 ‘누더기를 벗는다’했다. 이것은 시적인 경계의 벗어남이기도 하지만 번민하는 영혼의 경계를 벗어나는 종교적 의미마저 포함하고 있다.
작품「바람은」은 바람의 경계 벗어남이 잘 드러나고 있다. 바람은 자연 현상 일뿐이다. 그러한 과학적 경계가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 시적인 경계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 시에서 바람은 자연현상이 아니라 매우 의지적인 바람이 된다. “고갯마루를 훑어 내린 바람/ 갈대숲을 모로 누이고// 고요 속에 잠긴 호수를 쓸어/ 햇살에 물든 수면/ 비늘처럼 반짝인다” 여기서 바람은 제멋대로 부는 바람이 아니라 자연을 다스리는 바람, 고갯마루를 훑어 내리고, 갈대숲을 모로 누이고, 호수를 쓸어내린 나뭇잎을 후려치는 의지적인 바람이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일상적이고, 과학적인 사물의 경지를 넘어 시적인 경계로 나아가려는 시인의 진심은 또 무엇인가. 그리고 시인이 시를 쓰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그 점 또한 중요한 문제다. 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은 단지 어떤 사물을 아름답고 멋지게 꾸미는 수사학적 기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를 통해서 어떤 세계를 꿈꾸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김 시인은 인용한 세 시만 보아도 「옥화란」에서는 묵향과 난향과 내 마음 함께 어우러진 “방안 가득 그 향이 은은하네”의 세계다. 서로가 기존의 경계를 풀고 어우러져 향기가 나는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젖은 누더기를 벗는다」에서는 그림자로 있던 세속의 경계, 바로 누더기의 세계에서 누더기를 벗는 실상의 세계를 회복하는 것이다.「바람은」에서는 바람이 헝클어진 자연을 평정시킨다. “나뭇가지 사이 흐르는 별빛은/ 나를 싣고”의 세계가 된다. 바람이 과학의 경계를 넘게 되자 별빛이 나를 실어 우주와 나, 자연과 인간, 별과 내가 화해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세계가 된다. 이렇게 시인은 기존의 경계를 벗어나 향기 나는 세계, 실상의 세계, 화해의 세계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제 2부의 시들에서는 할머니와 어머니와 가족들이 중심을 이룬다. 가족이란 무엇이고 혈연이란 무엇인가. 요즘 핵가족 시대에 접어들면서 노인에 대한 관심이 문제가 되고 있다. 철저히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세대 간의 갈등을 빚게 되고 분열을 야기하게 된다. 그것이 물신시대 가족과 혈연의 경계다. 여기에 시인은 그러한 이기적 경계를 넘어 가족은 여전히 따뜻한 것이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여전히 자애와 모성이 있고 그래서 끈질긴 혈연의 정을 느끼는 따뜻한 세계를 소망한다.
                                       
칠십대 중반中盤의 서리 내린 할머니가
종로 6가 창신동에 있는 박 소아과朴 小兒科로 들어섰다
어떻게 오셨어요, 간호사의 낭랑한 목소리
 “감기가 들어서…….”
할머니!  여기는 애들만 오는 소아과병원小兒科病院이에요
 “응, 알고 있지!”
       
웃음소리로 진료실診療室
문이 열리고
홍안紅顔의 원장선생님이
즐거운 눈빛으로
 “들어오시지요.”
       
“내일 한 번 더 오세요. 할머니!”
할머니 주름이 날아간다                         
          -「다시 애가 되어서」

은행에 다니다 명퇴를 하고
뒤늦게 운전을 배우는
할머니의 막내딸

오늘 마지막 주행시험을 보러
집을 나섰다

쫓기듯 현관에 들어서는 막내딸
엄마! 나 백점 먹었어

그래? 수고했다
내가 낳은 자식들은 다 보통은 해

방 한 구석 방석 위에 앉아
코를 묻고 있던 눈치 훤한 누렁이
할머니 쪽으로 고개를 뽑으면서
나 두(컹컹)
-「어머니」

「다시 애가 되어서」는 노인을 배려하는 젊은 의사의 사려 깊은 인술을 드러내면서 환자를 돈으로 보는 일부 물신주의적 의사들의 경계를 넘는다. 감기 걸린 할머니가 소아과에 들어왔다. “할머니! 여기는 애들만 오는 소아과 병원이에요” “응, 알고 왔지!” 할머니가 소아과에 들어온 이유가 무엇일까. 할머니는 소아과인줄 알고 왔단다. 여기에 노인의 삶, 노년의 꿈이 있다. 늙으면 어린아이가 된다는 말도 있지만 여기엔 젊어지기를 바라는 노년의 내면적 연민을 담고 있는 것이다. 내일 또 오라는 말에 “할머니 주름이 날아간다” 현명한 의사의 배려와 노년의 숨길 수 없는 생에 대해 집착이 잘 조화를 이룬다. 노년과 젊은이의 경계 허물기다.
「어머니」는 딸이 늙었어도 여전히 어린 딸이고, 늙은 딸도 어머니 앞에서는 여전히 응석을 부리는 어린 딸이다. 분열된 가족과 혈연의 경계를 넘어 여전히 따뜻한 모성과 효성으로 뭉쳐진 아름다운 경계를 꿈꾸고 있다.

제 3부에서는 이쪽 경계에서 저쪽 경계, 말하자면 차안此岸의 세계에서 피안彼岸의 세계에 대한 꿈을 몇 편의 작품으로 배치하고 있다.
                                     
머얼리 운무雲霧에 가리운
산 능선들
가물거리는 기억처럼 아련하네

기암절벽
바위틈을 비집고 모로 나온
소나무들
외줄 타는 곡예사처럼 기우뚱
온 몸으로 대명천지大明天地를 들이마시네

산중턱
고즈넉한 정자亭子 안
갓 쓰고 돌아앉아 생각에 잠긴
사람은 이응노 화백畵伯인가

산 아래
앞치마 두르고 걸어오는 여인
똬리를 받쳐 인 물동이 속
출렁이는 마음은 

멧새 한 쌍 날아오르네

나도 오르네
-「수묵 담채화」
                     
그녀는 시커먼 흙탕물에
몸을 담가
뿌리를 내린다

그녀는
정성을 다 해
제 몸을 닦으면서
온 몸에 구멍을 내고
단전호흡으로 앙금을 내려
몸을 정화 한다

그녀는
몸을 불려
연 잎을 키워 내
연 숲을 만들고,
꽃대를 뽑아 올려
하나 둘 꽃봉을 피워내며
화관을 만들어
저 하늘에 공양 한다

나는 구멍이 숭숭 난 연근蓮根을 사다
조림을 해 밥상에 올린다
-「연화」

텃밭에 
나란히 고른 연둣빛 
파 군단
하늘을 우러러 촉수를 세우고 서 있다

파들,
아침 햇살을 들이마시고
고요히 번지는 달무리와 교감을 하고
나르는 나비, 새들과 마주치는 눈빛으로 소통을 하고
바람이 등허리를 후려칠 때 
자세를 가다듬고,
퍼붓는 소나기에 목욕을 하면서
몸을 단단히 부풀려
진초록 옷으로 갈아입는다 

환하게 속 비운 파들
소명을 다 할 채비를 한다

내 손에 먼저 뽑혀 나온 파
마늘과 함께 곰국에 들어가
누린내를 없애고,
김치, 생선조림, 나물 무치는 어머니 손끝에
휘감겨 향과 맛을 보태며 
맛에 조화를 이룬다

나는 한방에 감초와 같은 파를 송송 썰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때때로 불러내
음식을 조리調理 한다
-「파」
 
「수묵 담채화」는 화폭에 담겨진 세계를 시의 언어로 다시 그린 것으로 이는 시적 화자가 꿈꾸는 상상력의 공간일 수 있다. 2연에서 바위틈을 비집고 돋아난 소나무들이 외줄 타는 곡예사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온 몸으로 대명천지大明天地를 들어 마시기 위한 것이라 했다. 바로 어두운 세속의 경계를 넘어 사방이 확 뚫인 광명정대한 세상을 바라는 화자의 이상이 바위틈을 비집고 돋아난 소나무의 지조가 있다. 그것은 산 아래서 물동이를 받쳐 든 여인도 그렇고 멧새들도 그렇고, “나도 오르네”로 마무리 하여 시인 자신 의지도 그러함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이러한 대명천지의 꿈은「연화」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연꽃을 여인으로 한 이 시는 연꽃이 시커먼 진흙탕의 세속적 경계에서 벗어나 어떻게 자신을 정화하고 마침내 꽃을 피워 하늘에 공양하고 인간에게 공양하는 가를 잘 드러내고 있다. 2연에 “그녀는/ 정성을 다해/ 제 몸을 닦으면서/ 온 몸에 구멍을 내고/ 단전호흡으로 앙금을 내려/ 몸을 정화한다”고 했는데 이는 연꽃의 성장과정이지만 사실은 한 구도자의 정진수도과정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연꽃으로 피어나 하늘에 봉양한다 했다. 이는 진흙의 경계를 넘어 연꽃의 경계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불교적 사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공양정신은「파」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파는 먼저 하늘을 우러러 촉수를 세운다. 그리고는 햇살과 달무리와, 나비, 새들과 눈빛으로 소통을 하고 바람이 등허리를 후려칠 때 자세를 바로하고 소나기에 목욕하고 마침내 진초록 옷을 갈아입는 과정은 결코 파의 성장만이 아니라 이는 시적 화자가 꿈꾸는 살신성인의 정진 수도의 과정이다. 
한편 제 4부에서 시인의 관심은 각박한 도시 생활의 빛과 그림자를 통해 경계를 넘는다.

무슨 소리에 잠이 깼다                         
고쳐 누워 다시 잠을 청한다
신경을 거슬리는 초침 소리
벌떡 일어나 불을 켜고 도로 눕는다 

벽에 늘어진 족자 속
뱃머리에 앉은 사공
물살을 가르며 삐걱삐걱 노 젓는 소리
허공을 날으는 물새 소리
캘린더 속 목련, 꽃잎 벙그는 소리
       
10층에서 물 내리는 소리
부스럭 툭, 신문 들어오는 소리
귀에 익은 우유배달 아주머니 잰 발걸음 소리
동틀 무렵 창 밖 
선홍의 십자가 총총, 하늘로 피어오르는 기도소리
         
포개놓은 성냥갑 같은 아파트 유리창
햇살 부서지는 소리
도로에서 들려오는 지하철 공사 굉음소리
열 받은 주전자, 수증기 뿜어내는 소리
       
소리에 소리가 눌리고 솟는 도시의 아침
-「도시의 아침」
         
구월로 극동아파트 앞길을 가던
순이, 보도 불럭 틈새로 올라온 민들레
한 송이를 본다

대 낮 봄볕으로 치장을 하고
오가는 이들과 눈을 맞추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애처롭다 
해가 언덕을 넘고 밤이 되면
스쳐가는 발길에 차이고 밟혀 
온 몸에 상처를 입을 저 민들레                 
어느 바람이 너를 이곳에 떨구고 갔느냐
순이는 제 모습을 보는듯하다

방직공장에 들어가 돈을 벌어
소작小作을 하는 부모님께 땅을
사 드리려는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왔다, 허나
대합실에서 직업알선을 가장한
중년의 포주抱主에게 이끌려
어두운 동굴로 빠져들었다   
자포자기한 순이, 밤과 낮이 바뀐
한 많은 세월을 보내면서
부모님께 땅을 사드리고
동생들 학부교육을 시켰으나
가족들은 집안 혼사를 앞둔
가문의 수치라 여겨
받아들이지 않았다

병든 몸을 이끌고 동굴에서 벗어난 순이는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다가 민들레를 본다
-「민들레를 본다」

인천 가는 전동차에 들어선 노부부老夫婦
햇살 묻은 경로석에
서둘러 몸을 싣고
숨을 고른다

눈 감고 앉아 있던 할아버지
“누구냐 응, 사이즈는, 그래 됐다”
“누구유?”
“며느리야, 내 바지를 샀대, 당신 것두”
“내 것 두?”
“응, 그래 알았다”
“사지 않기를 잘했네“

노부부老夫婦 입가에 복사꽃이 환하다   
 -「복사꽃이 환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지팡이를 짚은 한 노인이 나온다
수위가 달려와
차를 잡아 놨어요 하면서
노인을 도와 택시에 앉히고
잘 다녀오세요 할머니

서울대학병원 정문 앞
한 할머니가 불편한 몸으로
택시에서 내린다
차례를 기다리고 섰던 청년이 다가가
노인을 부축하며, 어디로 가세요? 혼자오신 것 같은데
내과로 가려구

할머니! 할머니 차례가 아닌데요. 간호사가 제지 한다
알고 있어, 노인은 막무가내로 들어간다 
할머니! 순서를 지키셔야지요, 의사의 말이다
아니,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치고받고  싸우는 판인데
이 늙은이 하나 순서가 뭐 그리 대수라구
의사는 웃으면서 어디가 불편하세요?
내가 이 병원에 입원을 했었는데 여기서 처방해준 소화제가
잘 듣습디다 그런데 약국에는 없대요
그 약을 타 가려고 왔수
처방을 끝낸 의사는
할머니, 앞으로는 보호자 하고 같이 오셔야합니다

내과를 나온 노인은 당혹한 표정이 되어
어찌 이런 일이, 아직도 나를 기다리다니 고맙기도 해라
청년은 다시 노인을 부축해 택시에 태우고
조심해서 가세요 할머니
택시 기사는 난처한 듯 할머니 혼자세요?
젊은이 하고 일행인줄 알았는데
왜 내 돈은 싫어?
집을 찾을 수 있으세요?
몰라, 기사는 떠나지을 못하고 머뭇거린다
엷은 미소를 머금은 노인, 어서 동대문 쪽으로 가요
이문동 삼한 아파트에 도착하자 수위 아저씨가 달려 나와
이제오세요 하면서 노인을 부축한다
노인은 차에서 내린 기사에게 세종대왕 두 분을
건네면서 거스름은 고만둬요 잘 왔시다
고맙습니다 멋쟁이 할머니
기사는 입이 귀에 붙어 떠난다

집에 돌아온 노인
나들이옷을 벗으면서, 세상은 살만해
-「세상은 살만해」

「도시의 아침」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야기한 그림자를 먼저 들고 있다. 도시는 온통 소음천지다. 10층에서 물 내리는 소리, 신문 들어오는 소리, 우유배달 아주머니 발걸음 소리, 기도소리, 지하철 공사 굉음소리, 주전자 수증기 뿜는 소리 등 그런데 소리는 이러한 물리적인 것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인의 상상에도 소리가 있다. 벽에 걸린 족자에서 사공이 노 젓는 소리, 물새 소리, 캘린더엔 목련꽃 벙그는 소리, 유리창엔 햇살 부서지는 소리까지 오버랩 되어 요란하다. 한마디로 도시 생활이란 소리가 가득한 소란하고 숨 막히는 경계다.
문명화, 도시와, 근대화라는 물리적 변화가 인생에게는 보다 복잡하고 소란한 삶을 초래하게 되었음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이 시의 마지막엔 “소리에 소리가 눌리고 솟는 도시의 아침”이라 했다. 문명이란 온통 소리의 전쟁터인 것이다.
도시화, 산업화의 어두운 그림자는「민들레를 본다」에서도 비판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아파트와 보도 불럭으로 상징되는 도시화, 메마른 보도 불럭 틈새에 돋아난 민들레, 민들레는 급격한 산업화로 생의 터전을 잃은 농촌, 농민, 변두리 세대의 가난과 소외의 그늘에서 그늘로 살아야만 했던 여인들의 슬픈 희생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처럼 도시의 어두운 경계에서 그래도 시인은 한 가닥 밝고 따뜻한 경계를 소망해 본다. 그것이 바로「복사꽃이 환하다」이다. “인천 가는 전동차에 들어선 노부부/ 햇살 묻은 경로석에/ 서둘러 몸을 싣고/ 숨을 고른다” 이번 김 시인의 시집에는 유독 노년들이 많다., 어째서 그럴까. 그것은 화자 자신이 노년이란 이유만은 아니다. 오늘날 이 땅의 도시화 주역이 사실은 자식들이나 후손들에겐 결코 그 천형의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평생 온 몸을 희생해 온 세대가 바로 노인 세대라는 점에서 노인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요구됨을 이 시집을 통해 강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복사꽃이 환하다」는 도시의 어두운 경계에서 벗어난 밝은 빛의 경계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이 시에는 ‘햇살 묻은 경로석’이 있다. 노인에 대한 배려의 일면이다. 노인들은 이제 경로석에서 숨을 고르게 되었다. 그 뿐인가. 며느리가 시아버지 시어머니 바지를 샀다는 전화까지 받는다. 그 순간 “노부부 입가엔 복사꽃이 환하다”가 된 것이다. 이는 노년은 배려해야 한다는 시인의 강력한 경계 넘기의 철학이다.
그러한 뜻을 더 강조하기 위해 그는「세상은 살만해」라는 작품을 첨가한다. 첫 연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지팡이를 짚은 한 노인이 나온다/ 수위가 달려 와/ 차를 잡아 놨어요 하면서/ 노인을 도와 택시에 앉히고/ 잘 다녀오세요 할머니” 하였다. 이 구절은 시적으로 세련된 고도의 문장이 아니다. 아주 단순한 일화다. 그러나 이 속엔 강한 메시지가 있다. 얼마나 따뜻한 세상인가. 모든 수위들이 아니 모두가 그렇게 노인을 배려하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아직은 극히 드믄 예에 불과하다. 2 연에서는 서울대학병원에서 차에서 내린 노인을 보살피는 청년의 따뜻한 이야기를 적고 있다. 역시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리 흔한 것도 아니다. 이렇게 시인은 도시의 각박한 어둠의 경계에서 벗어나 밝고 살만한 따뜻한 세상을 꿈꾼다.

이처럼 김혜숙 시인의 이번 시집「경계」는 인습의 경계, 이기적이고 개인적이고 물질적인 경계, 도시문명의 경계, 이러한 울타리 속에서 칩거하는 어둡고 차가운 겨울의 경계를 벗어나 넓은 자연이 있고, 깨달음이 있고, 배려가 있고 존경이 있는 밝고 따뜻한 봄 날 같은 새로운 경계를 실현해 보고자하는 간절한 꿈이 간결한 이미지로 때로는 구수한 이야기로 다양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오늘날 참으로 많은 시집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얼마나 분명하고 사려 깊은 시 정신을 시라는 그릇에 진지하고 아름답게 드러내는 가가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김혜숙 시인의 이번 시집이 보여주는 따뜻한 경계 넘기 시학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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