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도 시조의 서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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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도 시조의 서정성

Ⅲ. 이영도 시조의 서정성

1. 이영도 시조와 황진이 시조

시조는 고시조와 현대시조가 있다. 그런데 현대시조로서의 이영도 시조라고 할 때 황진이 시와 연관시켜서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감히 단언한다. 우리 고시조에 황진이가 있다면 현대시조에는 이영도가 있다고 金東俊 補訂 『시조문학론』(서울: 宇晟文化社, 1981), 264. 
 

이러한 유사성이 있을 것이라는 연구는 구체적으로 그 유사성을 탐색함으로써 확실한 논증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영도 시조와 황진이 시조는 고대와 현대의 공간개념이 확실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연결되어진다고 인식되고 있는 것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각 작품 및 주인공의 특징에 해체되어 있는 특징을 모아보아야 할 것이다. 동시에 유사성뿐만 아니라 상이성도 내재할 것이라는 가정을 해 본다.




1). 미인과 시조

(1). 이영도의 아름다움과 사랑 시조

미셀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이 세상에 하나님이 흩어 놓은 기호들을 찾아보는 것이 유사성을 발견하는 일이다 미셀푸코, 옮긴이 이광래 『말과 사물』(서울: 민음사, 1987), 101 참조.
 하였지만 우리들의 마음에 있는 아름다웁기를 바라는 신비의 환상개념이면서 신비롭기 까지 한 여인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진다. 신이 만들어 놓은 걸작품에 감탄하고 유혹당하면서 이끌리듯 문학 작품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아름다움에 대한 환상적 상상력의 날개는 이영도와 황진이 두 여인이 모두 아름다웠다는 것에 머물게 된다.
이것은 한국시조가 서정적이라는 데서도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서정시는 일반적으로 대상을 바라보며 시적인 감흥이 일어나고 그로 인하여 작품이 표출되는데 인간관계일 경우 그 주제는 아름다운 여인과의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하게 된다. 어느 영화를 보거나 문학작품을 보아도 미인은 필히 작품의 주인공이 된다.
실제 이영도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이영도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다정다감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 보다는 맑고 고요하고 격조 높은 시를 쓰고 시를 이야기하고 또 시를 생활하고.........우리 시대에 와서도 일찍부터 시조 여류 시조작가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 아니었지만 그 중에서도 여름밤 구름을 뚫고 나타나는 달처럼 모두들 쳐다보도록 맑고 환한 모습을 드러내 보인 두드러진 여류시조작가..... 이은상, 이영도 시조집 『言約』 (서울: 중앙출판공사, 1976), 序. 

“...인간 이영도는 아름다운 시인이었다. 시인 이영도는 맑고 흰 살결 곱게 매만진 머리, 그리고 잘 어울리던 한복차림, 멋을 알고 멋을 부리던 한국의 멋진 여인이었다” 김남환 『落江』19집 (대구: 영남시조학회,1986), 25.
 

이영도의 아름다움에 대한 극찬은 그가 시조시인이었다는 점으로 하여 더욱 가미된다.
이 아름다운 시인 이영도는 그의 작품세계에서 실화적인 일화를 표출한다.

조심히 이 한 밤을 자취 없이 오는 눈
그의 가슴처럼 넓고 고운 사랑일레
이 산천 허물도 없이 한 품안에 안겼네
- 이영도 「눈」

어루만지듯
당신
숨결
이마에 다시하면

내 사랑은 아지랑이
춘 삼월 아지랑이

종다리
노오란 텃밭에
나비
 나비
  나비
  나비
- 이영지 「아지랑이」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과 귀 기우려 기다리네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 이영도 「무제」

실제 청마 유치환시인의 편지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를 책으로 펴 낼 만큼 일화를 남긴다. 

그때 한창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는 청마 선생님의 편지가 책으로 나와 세상이 떠들썩했던 때였으므로 청마선생님에 대해서도 여쭈어 보았다. .....청마와 시조와 노을을 사랑한 여인...... 정표년, “이영도 시인의 생애와 문학,” 『시조생활』창간호 (서울: 시조생활사, 1989), 106/  “청마와 시조와 노을을 사랑하시고,” 『낙강』19집 (대구: 영남시조문학회, 1976). 34.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느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 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에게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 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유치환  「행복」

유치환의 「행복」전문이다. 삶의 고귀성은 사랑을 통해 극대화할 수 있으며 인간다운 인간애는 ‘천년 싱싱할 수 있는 사랑이 표현된 유치환의 행복 윤재천, ‘천년 싱싱할 수 있는 사랑,’ 『문학예술』(서울: 문학예술사, 1990), 98.
일 수 있다. 이러한 편지를 이영도 시인에게 보낸 것을 그녀는 책으로 엮어 냈다. 따라서 그녀의 주변을 알고 있는 시조시인들은 그녀의 작품을 평가할 때 유치환 시인과 관련짓게 된다.

그대 그리움이
고요히 젖는 이 밤

한결 외로움도
보배 냥 오붓하고

실실이 푸는 그 사연
장지 밖에 듣는다
- 이영도 「비」

위의 시조를 정완영은 이렇게 평한다.

이영도 선생의 알뜰한 작품이다. 그리운 사람을 못내 그리워하는 곡진한 심정이 잘 담겨 있다. 言短意長. 이 짧디 짧은 단수 하나로 하여 우리들은 몸도 마음도 온통 촉촉하게 젖어드는.... 정완영, 『시조창작법』(서울: 중앙신서, 1981), 30.
 

짧디 짧은 단수 하나로 곡진한 정을 이영도 시인은 시조작품 「비」와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특정인물을 독자로 하여금 연상시키게 하는 것은 작품의 객관적 평가 이전에 풍문으로든 혹은 실제 보았던 기정사실에 대한 이영도 시인과 유치환과의  사랑이라는 선입 관념의 상상으로 문학작품을 바라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영도 작품을 유명한 황진이 시조와 관련시켜 미화시키는 일반적 인식은 그녀의 아름다운 분위기와 어울리는 시조와 더불어 일상생활에서 경험되어졌던 그들의 사랑과 연관시킨다. 또한 그녀의 멋과 시조와 생애와의 관련성이 신비한 분위기에 있어서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영화의 주인공처럼 살기를 희망한다. 더구나 사랑의 이야기가 첨가되는 문학스토리는 기록이 없더라도 마을마다 고을마다 사랑의 전설이 여주인공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있다. 여주인공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주 신비하게 엮이어 지면서 애틋한 슬픔을 지니거나 아니면 아주 통쾌한 즐거움을 선사하면서 아마 이 세상에 사람들이 살아 있는 한 두고두고 전하여 질 것이다. 이영도나 황진이나 모두 여성이면서 이 아름다움과 겻 들여진 이야기를 전하여 준다.





(1). 황진이의 아름다움과 그의 시조

이영도의 시조를 논할 때 그녀의 아름다움과 그의 작품과의 연관성을 두려하는 것처럼 황진이의 아름다움과 그의 시조도 같은 맥락을 가진다.
황진이와 벽계수와의 일화는 황진이의 아름다움이 논하여 진다. 

黃眞伊松京名妓也 色藝俱絶 宗室碧溪守者 思欲一眄 서유영, 黃眞伊松京名妓也 色藝俱絶 宗室碧溪守者 思欲一眄 而眞高自標致 非風流 名士不得親 乃謀於蓀谷李達 達目 公欲 一眄眞娘 能從吾言乎 碧溪守曰 當從君言矣達曰  挾琴隨後 乘小驪過眞娘之家 登樓賖酒而 常飮 彈琴一曲 則眞娘必來坐君傍矣 君視若無見 則起乘驪而行 則眞娘亦當隨後而來 若行過吹笛橋而不顧則必不成矣  碧溪守從其言乘小驪 使小童挾琴而過眞家登褸 酒餘而飮 彈琴一曲 則起乘起而去 眞果追綜而來 當吹笛橋 問於琴童智其碧溪守也 乃曼聲而歌曰 〈靑山裏碧溪守水莫跨過去來休, 一到滄海難再見 那得不少 留明月滿空山 臨去願一遊〉 碧溪守聞此歌不能去到橋遠回顧 遽落驪眞娘笑曰 此非名士乃風流郞也 旣徑遠 碧溪水慙恨不己;「錦溪筆談」下卷에서.


황진이는 아름답고 그리고 예술에 능하다고 전하여 진다. 이미 알려져 있는 벽계수와의 일화는 서유영의 금계필담錦溪筆談을 통해서 보면 벽계수의 시각을 자극시키기 위해 그의 앞에서 서서 시조를 읊는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라
일도 창해 면 다시 오기 어려웨라
명월이 만공산 니 쉬어간들 엇더리         
- 진청診靑 286 최남선본 청구영언 문고본, 고금가곡에는 허강許彊작으로 되어 있고, 가곡원류에 황진이로 되어 있다. 靑山裏碧溪水容易東流彌莫誇一倒滄江離再見具留明月暎婆海東小樂府.

- 黃眞伊 甁歌:539
명월은 황진이의 또 다른 이름이다. 위의 시조에서 “명월이 만공산니....”로 표현한 것은 그 스스로 아름다운 여인이 있으니....라고 말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학론은 흡인본능설이다. 흔히 아름다운 여인을 달덩이 같다고 하는데 황진이는 자신을 명월 달덩이로 하여 벽계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러한 흡인 본능성과 관계되는 벽계수의 관심도 우선은 황진이의 아름다움에서 시작된다.
서동이 지은 서동요도 선화공주의 아름다움에 있다. 다음은 선화공주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록이다.

聞新羅眞平王第三公主善花(一作善花)美艶無雙削髮來京師 以薯草.창..乃作謠 誘群童而唱之云? 향가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어 적는 향찰 표기에 의해 기록되어 전하는 신라 및 고려 시대의 시가를 말한다. 「삼국유사」에 실린 14수와 「균여전」에 실린 11수 등 모두 25수의 시가이다. ‘나라 노래’, ‘우리 노래’ 등으로 향가라는 명칭 외에 도솔가사뇌가사내 등으로 불린다. 우리나라 최초의 정형시 4구체와 8구체, 10구체로 4구체는 민요적 시형, 8구체는 4구체를 중첩시킨 시형 8구체에 감탄사로 시작되는 낙구 2구를 보태어 10구체이다. 민요적 성격임으로 광범위한 작가층이다. 그 중 ‘서동요’는 현전 향가 중 가장 오래된(眞平王代, 6세기 전)「삼국유사」권2 ‘武王’조에 실려있다. 가사는 3구절에, 총 25자의 한자로 기록된다.
善花公主主隱 선화공주니믄 善花公主니리믄
他密只嫁良置古 그지 얼어두고 그 어러 두고
薯童房乙 맛둥방 薯童 방
夜矣卵乙抱遣去如 바 몰 안고가다 바매 알 안고 가다
<원문> <양주동 해독="해독"> <김완진 해독="해독">
      武王(古本作武康.非也.百濟無武康): 第三十,武王名璋.母寡居.築室於京師南池邊.池龍交通而生.小名薯童.器量難測.常掘薯.賣爲活業.國人因以爲名.聞新羅眞平王第三公主善花(一作善化).美艶無雙.剃髮來京師.以薯餉閭里童.童親附之.乃作謠.誘群童而唱之云.善化公主主隱他密只嫁良置古薯童房乙夜矣卯乙抱遣去如.東謠滿京.達於宮禁.百官極諫.竄流公主於遠方.將行.王后以純金一斗贈行.公主將至竄所.薯童出拜途中.將欲侍衛而行.公主雖不識其從來.偶爾信悅.因此隨行.潛通焉.然後知薯童名.乃信童謠之驗.同至百濟.出母后所贈金.將謀計活.薯童大笑曰.此何物也.主曰.此是黃金.可致百年之富.薯童曰.吾自小掘薯之地.委積如泥土.主聞大驚曰.此是天下至寶.君今知金之所在.則此寶輸送父母宮殿何如.薯童曰可.於是聚金.積如丘陵.詣龍華山師子寺知命法師所.問輸金之計.師曰.吾以神力可輸.將金來矣.主作書,幷金置於師子前.師以神力. 三國遺事 卷二 武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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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이름은 선화善花인데 일명 선화善化라로도 불리어진다. 화花 나 화化는 선화의 ‘선’이 셋째임으로 셋째 딸인 셋희이다. 즉 셋째 딸 양주동, 『고가연구』(서울: 박문관)., 433.
  善化公主主隱他密只嫁良置古薯童房乙夜矣卯乙抱遣去如.
이다. 한국민속에 따르면 혼인미담으로 셋째 딸은 물어보지도 말고 데려 간다는 속설이다. 따라서 셋쩨 딸은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말이다. 서동요에서도 서동이 반한 것은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어서이다. 만일 서동이 실제 인물이 아니고 서동요가 백제와 신라와의 유대관계를 위한 의도적인 인물의 작품 이재선, 『향가의 이해』(서울: 삼성미술 문화재단)., 188∼199.
이라고 본대도 비단 한 여인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된다.
이 아름다움은 수로부인에게도 해당 삼국유사 권 2, 수로부인에서
된다.

紫布岩乎邊希자포암호변희
執音乎手母牛放敎遣집음호수모우방교견
吾肹不喩慚肹伊賜等오힐불유참힐이사등
花肹折叱可獻乎理音如화힐절질가헌호리음여
븕게 핀 바희 
자 은 손 암 쇼 노시고
나 안디 븟그리샤
곶을 것가 받오리이다
- 실명노인 「헌화가」 김완진, 『향가 해독법 연구』(서울대학교 출판부, 1980)., 70. 참조


일연이 지은 헌화가는 신라 성덕왕 시절 강릉태수가 아내 수로부인水路婦人과 동대산에서 발원한 맑은 물이 골곡포를 이루는 넓은 계곡 사이에 5리나 되는 암벽이 병풍을 둘러쳐 있는 절경가를 지나가다 벼랑 바위에 붉게 핀 철쭉꽃  갖기를 바라자 이를 실명노인이 꺾어 준다는 이야기이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실명노인은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없을뿐더러 수로부인의 아름다움도 볼 수 없다. 그런데도 꽃을 꺾어바친다. 조건으로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친다이다. 이후 이 실명노인과 수로부인 이들은 골곡포를 떠난 지 이틀째 병곡의 대진마을을 지나던 중 갑자기 먹구름과 함께 바다에서 파도가 일며 해룡이 수로부인을 바닷속으로 데리고 들어갔고 동행하던 실명노인이 즉석에서 ‘해가海歌’를 지어 마을 사람들과 노랫소리가 용궁에까지 들리도록 부른다.

龜乎龜乎出水路구호구호출수로
掠人婦女罪何極약인부녀죄하극
汝若悖逆不出獻여악패역불출헌
入網捕掠燔之喫입망포락번지끽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어놓아라
남의 아녀자를 약탈한 죄가 어찌 크지 않으리오
네가 만약 거절하고 내어놓지 않는다면
그물을 놓아 기필코 잡아다 불에 구워먹으리

거북이는 수로부인을 돌려주었고 실명노인은 강릉까지 동행하였다. 수로부인의 아름다움은 물가나 큰 연못을 지날 때마다 일어난다.
그 후 강릉까지 따라갔던 실명노인은 영덕 36429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군청길 116번지 돌아온다. 감사의 선물로 정숙한 부인을 얻어 잘 산다는 이 전설은 부경리에서 고려 중엽까지 전해지고 남정면 정수사 승려들에게 알려지고 당시 군위 인각사에서 일연一然이 『삼국유사』 집필에 기록된다. 유일하게 장소가 알려진  「헌화가」와  수로부인을 살리기 위한 ‘해가’도 『삼국유사』 기이편 가락국기駕洛國記에 「구지가龜旨歌」와 기록과 비슷하다. 모두 수로부인 아름다움에서 일어난 기록이다.
‘아름다움;의 어원은 ‘안음답다’의 활음조현상 언어이다. 안음은 자기 품 안에 안음이다. 팔을 안으로 구부려 안는 행위는 사랑으로 보듬는 일이다. 마음속에 대상에 대한 사랑이 있으면 아름답게 대상이 보인다. 소월의 시 「진달래꽃」에서도 “아름 따다” 시어가 있다. 약 꽃 진달래꽃을 한 아름 따서 가시는 님이 못가도록 하는 약효의 꽃이다. 불가능을 가능의 세계로 만드는 기적이 일어난다. 눈으로 볼 수 없었던 실명노인조차 아름다움 곧 내가 할 수 있는 마음의 폭을 가진 일일 때 꽃을 꺾어 줄 수 있음을 전한다. 사랑으로 대상을 향하면 아름다움의 분위기가 된다. 아름다운 일이다. 안음다운 일이다. 그러기에 모두 결혼할 때 자기 아내를 평생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있어서 포옹할 수 있는 일을 만든다. 내가 다스릴 수 있는, 안을 수 있는 대상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일이다.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란 미모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만큼 가장 여성스럽고 그리고 남자에게 기댈 줄 아는 여성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다. 신에게 안기는 처용랑의 아내는 남편이 ‘밤드리 노니다가 들어와 보니’이다. 아내를 혼자 있게, 안아주지 않고 밤늦도록 혼자 놀다 와 보니이다. 그럼으로 이 보호받을 대상을 보호하고 있는 않는 남편에게서 아름다운 여인은 안기지 않았다.

2). 이영도 시조와 황진이 시조와의 상이성

(1). 이별에의 절망

아름다운 여인과 그리고 그의 대상과의 관계는 이별의 아픔이 주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또한 인간 누구나 정을 갖지 않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누구나 이별의 사실을 갖지 않는 경우도 없다는 보편성을 지닌다.

어져 내일이야 그릴줄 모르던가
이시라 더면 가랴마 제구테야
보내고 그리난 정은 나도몰라 노라        - 황진이 병가甁歌 25 이 시조의 작자가 규장각본 가곡원류에는 김헌으로 되어 있음



비록 신에 가까운 의지적인 행동으로 님을 보낸다 할지라도 그 이별 뒤에 절망감과 아쉬움은 어떤 대책이 없다. 그 결과 눈물과 한숨의 가장 애절한 시조가 표출된다. 이러한 시조는 매창의 작품도 있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도 져도 날을 생각난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도다
- 매창
울며불며 잡은 사매 떨떨이고 가들마오
그는 장부라 도라가면 잇건마난
소첩은 아녀자라 못내 잇슴네
- 계량
(2). 이별에의 승화

눈물과 한숨과 애절한 뒷모습은 정든 뒤라 하더라도 고시조 특히 황진이 시조와는 다른 승화의 이미지를 보인다.
이영도는 님과의 이별 뒤 시조작품으로 승화의 이미지를 보인다.

어느 먼 그리움에 저렇듯 도사리고
마음속 어인 고독 차라리 비수 같아
창창한 서역 만리를 홀로 가는 쪼각달

이 무슨 결별이뇨 돌아올 기약 없어
한 하늘 억만성과 초롱을 밝혀 들고
말 없는 눈짓 모우고 지켜 새는 이 한 밤
- 「새벽달」

1수에서 비록 ‘하늘’시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물질계의 다른 시어를 통해 ‘하늘’의 이미지에 있게 되는데 ‘홀로 가는 쪼각달’이 그 예가 된다. 그리고 2수에서는 ‘한 하늘’로 구체화 되면서 우주의 삶이 즉 전 생애가 이 하늘로 확대된다. 따라서 이영도의 시어 분포는 특이한 환상 세계를 보이기 시작하는 바 하늘 시어가 가장 많고 또한 새 종류가 많아 비상을 꿈꾼다.
청정집 이영도, 「청정집」(서울: 문예사, 1954).
의 시어 분포를 보면 상승적 시어에 인간 시어에 인간 시어는 선인 · 스님 · 선풍도골, 날짐승에 · ‘봉’ · 용, 자연어는 해 · 달, 문명어에 잔 ·  탑(2), 하향적 시어 자연어에 쪼각달, 문명어 무덤(2), 비수 · 솥(2) · 순수 인간 시어에 아이(4) · 임(2) · 그대(2), 신체는 가슴(5), 날짐승은 백로 · 제비, 자연어는 구름 · 하늘(7) · 별(3) · 꽃 · 구름(2) · 해(2) · 호수 · 바람(2) · 은하 · 무지개(3) · 물(2) · 꽃(2) · 구름다리, 문명어는 심지 · 밭고랑 · 화관 · 무릉, 이성적 시어에 약수, 경험적 이간 시어에 아이 · 지아비 · 지어미 · 며느리 · 여인 · 할머님(2) · 선생님 · 봉사, 신체 시어에 가슴 · 날짐승은 제비 · 갈매기 · 뻐꾸기(2) · 두견(2), 지상동물은 닭, 어류는 물고기, 벌레는 매미, 열매는 초목에 꽃잎(2) · 뜰(3) · 휘장 · 장독대 · 항아리(2) · 괭이 · 산집 · 창(3) · 소슬대문 · 추녀 · 잔 · 집 · 부엌(2) · 등 · 제상 · 등불(3) · 다락 · 항도 · 의상 · 돛배(2), 고유어에 직녀성이 있다.
『언약』 이영도, 『언약』(서울: 중앙출판공사, 1975).
 시어 분포에는 상승적 시어로 문명어는 탑 · 첨탑, 고유어은 골고다 · 직지사, 하향적 이미지는 자연어에 강산 · 동지,  문명어에 창살 · 묘지, 순수 인간 시어에 어머님 · 지아비 · 지어미 · 아기(2) · 당신(2) · 당신(2) · 아가 · 동자, 신체에 몸 · 가슴, 날짐승에 학(2), 초목에 진달래(3) · 복숭아꽃 · 살구꽃 · 벚꽃, 자연어에 하늘(3) · 산 · 구름 · 이슬, 문명어에 옷자락 · 백자, 경험유추 시어에 인간은 어머님(2) ·  엄마 · 아빠 · 농부 · 아낙네 · 손녀, 신체에 이마 · 얼굴 · 가슴(3) · 태 · 손 · 옷자락 · 갈퀴손 · 오관 · 귀 · 눈매 · 젖 · 어미. 닐짐승에 종달새 · 철새 · 뻐꾸기(2) · 맷새 · 노고지리, 지상동물에 닭, 어류에 양뼈, 벌레에 귀뚜라미 · 고추잠자리 · 나비, 열매에 은행, 초목에 나무 · 풀잎 · 장다리꽃(2) · 복사꽃(2) · 꽃잎(3) · 들국화, 자연어에 대지 · 바위(2) · 구름 · 산하(2) · 하늘 · 바람 · 고개 · 강산 · 산골, 문명어에 초가 · 신 · 눈 · 종 · 은실 · 산마을 · 주막 · 등불, 고유어에 동작동 · 인정전 · 영등포 · 절두산 · 내장산 · 낙동강이 있다.
그 중에서 ‘하늘’ 시어가 든 시조들은 다음과 같다.

서리 찬 하늘을 이고 가지 끝에 붉은 열매
모진 그 세월에 안으로 영근 사랑
애락은 낙엽에 지우고 오직 남은 기약이여!
- 「과果」
파도에 딩굴어도 실버들에 휘감아도
설레어 그 하늘가 깃들 곳 없는 자락
메아리 구천을 돌아 먼 울음 학 울음!
- 「바위 Ⅱ」
매미는 한결 붉게 물이 들라 피어 있고
산에는 뻐꾸기 타이르듯 울어 쌓고
먼 하늘 속은 메 끝엔 타오르는 노을 빛
- 「석양」
쫒기는 삶에도 생각은 잠잠하다
한 줄기 내린 뒤엔 앞산도 낯이 설고
시원히 열리는 저 하늘 바다 뵈는 내 가슴
- 「우후雨後」

이제 비상의 시작은 성경의 번역 언어인 ‘궁창’으로도 표현된다.
 
여기는 슬기의 이방 당신마저 외면하면
목마른 소망들이 지향 잃은 벌판인데
먼 궁창 대귀 권 밖에선 달빛보다 곱다던가

주여! 이젠 그 못 자국 만지게 하옵소서
우러르던 첨탑들도 허울로만 남아 선 자리
기댈 곳 없는 내 의지 홀로 추청秋晴을 간磨다
- 「추청秋晴을 간磨다」

인간과 인간과의 이별관계가 한과 슬픔과 절망만으로 그 모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승화되어 지향적인 차원으로 이어지는 인간승리의 바람직한 모습이 투영된다.
이영도의 ‘하늘’시어 빈도수보다 조사한 바의 50인의 시인들 중 가장 ‘하늘’시어를 많이 사용한 시인으로는 송욱이 있다. 송욱은 그의 시집 『나무는 즐겁다』 송 욱, 『나무는 즐겁다』(서울:민음사, 1979).
에서 ‘하늘’이 이영도 시인과는 달리 표출된다.

물과 돌이 합창하는
개울소리는
빗소리처럼
하늘에 어울리다
하늘에 찬다
- 「개울」
언제나 떳떳하게
가운데를 걷기는
칼날을 밟기보다
하늘에 오르기…
- 「우주시대중도찬」

나는 어느 어스름
무덤에는 죽은 살마
거리에는 산송장들
갈대끼리 자라며
기대어 산다
어찔하여 뒤덮을 하늘
시내끼리 흐르며
목 놓아 산다
- 「어느 어스름」

비행기도 타지않고
모내기도 하지않고
하늘을 가는
신선이란 모조리
도적놈들

하늘처럼 미친다
- 「삼선교」

영원히 깃들이는 바다는
다만 등을 어루만질 뿐
붉은 피가 날물처럼
손을 들고 소리치며
하늘 끝으로 사라진 뒤에
- 「영원히 깃들이는 바다는」

고래를 타고 하늘에 올라가도
별처럼 하늘에 가득 차기로서니

하늘에 다닫는 사다리라도
- 「외로운 영혼 앞에서」
새벽 다섯 시 엷푸른 하늘에

높푸른 하늘은
하늘과 구름을 싣고 달린다
- 「설악산 백담사」

송욱 시에서 하늘 시어가 표출된 시 제목은 「겨울에 꽃이 온다」 · 「살아가는 두 몸이라」 · 「출렁이른 물결을」 · 「時體圖」 · 「시인」 · 「햄리트에게」 · 「소나기」 · 「바다」 · 「개울」 · 「암무지개아가씨」 · 「산이 있는 곳에서」 · 「비와 매미」 · 「우주시대중도찬」 · 「나는 어느 어스름」 · 「삼선교」 ·「영원이 깃들이는 바다」 · 「외로운 영혼 앞에서」 · 「설악산 백담사」 · 「여의주」 · 「아악」 · 「제주 섬이 꿈꾼다」 · 「쥴리에트에게」  등이 있다.
그런데 송욱 시에서 하늘은 항상 나와는 떨어진 높은 세계이거나 아주 낮은 세계로 역설된다. 그에 비하면 이영도 시인의 하늘은 심지어 문명어의 은유를 통해 그의 내면적 심상의 세계를 승화시키는데 물질계의 최다 빈도 시어가 타시인보다 가장 높음에도 그 원인이 있다.
이영도 시조는 다른 시인들보다 물질계의 최다 빈도 율을 가진다. 특히 물질계의 자연어와 문명어의 분포율이 각각 30%로서 동일 분포율을 보인다. 이것은 시어의 절대적인 시적 대치어 이영지, 『이상시 연구』., 135∼137; 『이상시의 시학 연구』(서울:창조문학사, 2016)., 259.
로서의 호용 가치율이다. 님이라든지 당신이라든지 하는 인간 시어를 사용하지 않고 님과의 이별 슬픔도 눈雪 시어를 통해 십자가의 상징성으로까지 확대 승화시킨다. 이 점은 이영도 시인의 연시조일 경우 고시조에서 보이는 은유와 동일하다. 한과 이별과 슬픔이 물질계의 시어로 대치되면서 그 의미를 하늘이미지로 하고 있는 데에 그녀가 늦게 기독교 종교를 가지면서 일어나는 특이한 현상이다.

눈이 오시네 당신 가고 점점이 자욱마다
덮어도 덮어도 번지는 장밋빛 호곡號哭의 월휘月彙
쟁쟁히 아픔을 밝히며 이 한밤을 쌓이네

그 밤 닭 울기 전 너는 세 번을 부인한 이름
오늘 내 불면의 밤을 3억의 3만으로 쌓이네
쟁쟁히 말씀을 밝히며 이 한 밤을 쌓이네
- 「강설」

이러한 이영도의 시조작품 1수는 경험적인 이별의 슬픔이 내재하고  2수는 이와 관련된 승화의 세계가 전개된다. 1수의 당신이 가고 난 뒤에 내리는 눈과 그의 심상세계인 장밋빛 호곡의 슬픔 이미지는 2수에서 신앙과 말씀으로 승화한다. 셀리가 절망을 이기는 방법으로 인간마음을 시속에서 되살리는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듯이 Cedric H. Whitman, Euripides and Ful Circle of Myth., 28.
 이영도는 그의 내면적 슬픔을 그의 신앙차원으로 승화시킨다. 이러한 시조작품의 경향은 불꽃으로서의 꽃의 시적 표현으로 은유한다. 이러한 상승적 이미지가 되어가는 시 작법의 변형스타일은 그녀의 현실과 비현실사시의 칸  막이를 헐고 사물화의 동일시가 되는 일이다.
그녀의 작품은 차츰 기원형식으로 되고 있다.

다만 주여, 주여
- 「흐름 속에서」

주여, 이젠 그 못 자국 만지게 하옵소서!
- 「추정을 간다」

이젠 숨결 고루시고 어진 눈매 돌리소서
서성이는 계절의 길목 죽지 지친 목숨 위엔
그 말씀 말씀만이 아닌 다만 손길로서 거두소서

이간에 검을 전하려 오신 주여!
카인의 그 피 흥건히 질척이는
그 터진 상잔의 호곡위에 인자 다시 보내소서

-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 온 줄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  –마태복음 11장 34절
- 「갈원」
등이 굽은 예순 해여!
- 「흐름 속에서」

사랑이여, 애증이여!
- 「검을 쪼는 애증이여!」

겁을 쪼는 까마귀여!
- 「종」

꿈을 쫒던 나의 새여!
- 「연」

원수도
회억에 뜨는
꽃잎 같은 이름이여!
- 「봄」

그 꽃잎
낱낱이 어리는
고향하늘 메아리여!
- 「보리 고개」

한 줄기
칠흙을 밝혀
아른아른 발원이여!
- 「장명등」

목 마른
고비를 넘어
등이 타는 조국이여!
- 「입춘」

어머님!
흰 눈을 내려
약손으로 덮으소서
- 「등불」

이러한 기원 형식의 표출은 김현승 시에서도 볼 수 있다. 하늘을 꿈꾸는 자는 하나하나 촛불을 켜고 또 하나의 꽃이 불로 빛나는 기원이 된다. 가스똥 바슐라르, 이가림 역 『촛불의 미학』(서울: 문예출판사)., 129.
 기원 이미지는 불꽃이어서 불꽃에 대한 명상은 삶을 높이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 가을에 접어들었음에도 삶을 더욱 연장시키는 일종의 초생명적 비약이다.

멀리 멀리 흘러갔던
보랏빛 구름들과 바다 거품 속으로
그만 나의 연륜들을 불러들이자

나로 하여금 돌아오는 길목에 서게 하여 다오!

나의 시는
수요일 기도보다 가벼웠고
너무나 오래인 동안
나는 나의 체온을 비워 두었다

나의 가는 목에 어느덧
바람이 차면
저버린 꿈들의 포장지, 지는 낙엽들을 모아
지금은 나의 옛집을 바를 때…

나로 하여금 돌아오는 길목에 서게 하여 다오!
그림자와 같이 길던
한숨마다 멀리 저바리고
- 김현승 「가을의 위상」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김현승 「가을의 기도」

넓이와 높이보다
내게 깊이를 주소서
나의 눈물에 해당하는

산비탈과
먼 집들에 불을 피우시고
가까운 곳에서 나를 배회하게 하소서

나의 공허를 위하여
오늘은 저 황금빛마저 그 자리를
떠나게 하소서
당신께서 내게 약속하신 시간이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기적들을 해가 지는 먼 곳으로 따라 보내소서

지금은 비둘기 대신 저 공중으로 산 까마귀들을
바람에 날리소서
많은 진리들 가운데 위대한 공허를 선택하여
나로 하여금 그 뜻을 알게 하소서

이제 많은 사람들이 새 술을 빚어
깊은 지하실에 묻을 시간이 오면
나는 저녁 종소리와 함께 호올로 물러가
나는 내 사랑하는 마른 풀의 향기를 마실 것입니다
- 김현승 「가을의 시」

김현승 시는 고독한 촛불의 불꽃으로 타올라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서 심오한 혼의 고독한 수직성으로 직립해 있다면 이영도 시조의 타오르는 촛불의 이미지인 기원은 감추어진 사랑, 탁 터놓고 고백할 수 없는 불꽃의 감상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외로운 불꽃이 된다. 영감의 불 속에서 열렬한 삶을 전개해 나가는 이영도 시조에서의 기원은 따사하고 감미롭고 사랑스러운 기원이 된다.
2. 환상의 문학

1). 무릉에서 님을 만남

이영도 시인과 그의 작품과의 관계는 이중구조이다. 그의 생애가 하나의 환상적 시의 구조로 되어 있고, 이와 관련된 환상의 세계는 다시 다음의 「무릉」시에서 환상의 이중구조가 되어 있다.

무릉에 이르르니 물은 한결 조요하고
만정 꽃구름이 서운인양 부시는데
그윽한 풍류 소리가 넋을 절로 앗아라

무지개 구름다리 층층이 건너가니
영롱한 산호루는 호심에 잠겨 있고
선인이 연사를 띄워 손짓하여 부른다

꿈속에 그리던 임을 황망히 우러르니
서릿 빛 긴 나룻에 춘풍이 감도는 듯
봉의 눈 어린 미소는 나를 잊게 하여라

백포 황건으로 나타나는 선풍도골
취기 도도하여 호창한 신선들은
백옥경 감로를 떠서 내게 잔을 권하나

가만히 고개를 드니 해가 이미 겨웠는데
열린 장지 밖에 낙화는 분분하고
먼 저자 인마소리만 요란하게 들린다
- 이영도 「무릉」
이 시조에서 님은 꿈속에 그리던 임이다. 꿈속이라 함은 환상의 세계무릉이다. 

2곡은 어디메오 화암의 춤만커다
벽파의 곳츨 띄워 야외로 보내노라
사람이 승지를 모르니 알게 한들 엇더리
- 이이 「석담 구곡가 2구」

두류산 양단수를 녜 듯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겻셰라
아희야 무릉이 어듸메오 나는 옌가 하노라
- 조식

명리예 뜨시업서 비오새 막대집고
방수심산하야 피세대에 드러오니
어즈버 무릉도원도 여긔런가 하노라
- 박인로

취하야 누얻다가 여를 아래 나리려다
낙홍이 흘려오니 도원이 갓갑도다
인세홍진이 언메나 가렷나니
- 윤선도

무릉 어제 밤의 구름이 머흐더니
다정한 봉황이 교태 계워 싸호다가
인간의 떠러딘 지찰차자 무슴 홀다
- 정 철

망해를 뷔야 신고 죽장을 흣더디니 도화핀 시내길이 방초주에 니어세라 닷붓근 명경중 절로 그린 병풍 그림재 벗을 삼고 새와도 함께가니 도원은 여긔로다 무릉은 어디메오 … 마의를 니믜차고 갈건을 기우 쓰고 구부락 비기락 보난거시 고기로다
- 정 철 「성산별곡」

도화동 나린 물이 불사주야하야
낙화조차 흘러오니 천태인가 무릉인가
이따히 어딘게오
- 박인로 「독럭당」

열읍 수령이 상국의 법을 밧아
에미일십이 원근업시 다갓하니
엊그제 석호촌이 무릉도원 되엿난가.
- 박인로 「영남가」

무릉이나 무릉도원의 구분은 심상세계의 만족감을 지시해주는 곳으로 설명될 수 있다. 무릉도원과 무릉의 차이는 복숭아꽃이 핀 봄의 계절을 배경으로 하여 마음의 만족을 느끼는 곳이 시작된다. 이러한 아름다운 경관과 심상의 세계는 마음을 신체 부위에 지시하려고 한다면 심장 부위가 될 것이다. 이것은 서양인이 머리부위를 가리키기 십상인 것 조명환, 『언어 심리학』(서울: 민음사, 1985)., 182.
에 비유될 수 있다.
그런데 이영도 시조에서는 님을 만나는 무릉이다. 무릉도원의 개념은 마음속의 무릉도 있고 아주 기분 좋을 장소이거나 혹은 절경을 보는 마음의 세계이다. 살기 좋은 곳일 수도 있다. 이영도 시인의 무릉은 초장에서는 물이 조용히 흐르는 곳이다 .즐기는 상상력을 조용히 흐르는 물로 한다. 봄의 태양이 비추어진 무릉이다. 감성적인 곳이다. 거울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을 일치 시키는 이미지이다. 이영도 시인의 무릉은 아름다움 곧 아름다웠던 환상의 세계이다. 이 나르시즘의 응시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해 님프를 그린다. 이영도 시조에서의 무릉에 이르르니 한 것은 이 자연이 아름다우니 나도 아름답고 또 내가 아름다우니 님도 아름다우니가 된다.
중장에서는 꽃구름이 있는 곳이다. 이 꽃구름은 꽃과 구름으로 나누어진다. 꽃은 식물이고 구름은 물질이다. 꽃구름은 물질계 시어이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꽃은 구름덩이 즉 꽃 덩이 구름으로 전환하여 가장 아름다운 꽃 덩이가 된다. 이 전이의 법칙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아름다움이 있는 결과로 인한 꽃 덩이다. 꽃은 바슐라르의 역동 원소론의 이미지에서 바람으로 형성되어 있다. 꽃 덩이 속의 시인 마음은 이미 꽃 시인이 되어 가장 아름다움을 지닌 불꽃이 된다. 이 점은 수로부인과 연결된다. 누구를 사랑하는 꽃이 된 이영도 시인이다. 종장에서는  풍류소리가 나는 곳으로 된다. 풍류는 흥을 기본으로 한다. 앞의 초장에서 조용히 흐르는 물이 봄의 이미지라면 중장에서 누구를 사랑하는 흥이 종장에서 그 깊이를 더하여 넋을 잃는다.
2수의 무릉은 초장에서 무지개 구름다리가 있는 곳이다. 무지개는 하늘 저편 비온 뒤에 그 신비함을 드러낸다. 이 무지개와 구름다리가 합쳐서 이쪽과 저쪽을 균등하게 왕래한다. 인간세계와 무릉과의 왕래이다. ‘건너가니…’로 하여 이미 이동이 있다. 중장에서는 이영도 시인의 무릉이 되는 목적지인 산호루다. 누각은 정자보다 대규모의 크기로 높고 넒다. 관악루기에 ‘위에는 호남악양 현서문이 있“고 아래에는 동정호 군산이 있어서 경치는 지극히 아름답다고 하였다’ 국어일보사 정장본편 제3집인 『고금문선』 101페이지 在洞庭一湖 遠山谷長江 浩浩蕩蕩 내가 보니 파릉의 뛰어난 풍광은 동정이라는 한 호수 있으니. 銜遠山, 呑長江, 浩浩蕩蕩, 橫無際涯 (함원산 탄장강 호호탕탕 횡무제애) 먼 산을 머금고 장강을 삼켜 힘찬 기세가 끝 간 데를 모르고 朝暉夕陰, 氣象萬千 (조휘석음 기상만천) 아침에는 햇살이 눈부시고 저녁에는 노을이 아름답고 날씨는 천변만화 조화를 부리니 此則岳陽樓之大觀也, 前人之述備矣. (차즉악양루지대관야 전인지술비의) 이것이 악양루의 큰 볼거리로서, 옛사람들도 모두 이를 기술해두었다.然則北通巫峽, 南極瀟湘, (연즉북통무협 남극소상)그런즉 북으로는 무협으로 통하고 남으로는 소수와 상강으로 이어져遷客騷人, 多會於此, 覽物之情, 得無異乎? (천객소인 다회어차 남물지정 득무이호)유배 온 사람과 시인들이 이 곳에 많이 모이니, 관람하는 감정이 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至若春和景明, 波瀾不驚, (지약춘화경명 파란불경)따뜻한 봄이 되면 경치가 맑고 밝고 물결도 일지 않아上下天光, 一碧萬頃 (상하천광 일벽만경)위아래 하늘빛이 한결같이 푸르러 끝 모르게 드넓다.沙鷗翔集, 錦鱗游泳, (사구상집 금린유영)모래 가에는 갈매기가 날아 모이고, 비단 빛 물고기들은 헤엄쳐 놀며,岸芷汀蘭, 鬱鬱青青. (안지정란 울울청청)강 언덕의 지초와 물가의 난초의 향기가 자욱히 퍼지고 무성하다. 漁歌互答, 此樂何極? (어가호답 차락하극) 고기잡이 노랫소리가 화답을 하니, 이 즐거움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이영도 시인의 산호루는 산호로 이루어진 누각이니 호화롭기 그지없다. 이 산호루는 님이 연사를 띄워, 나를 타고 오라고 부르는 곳이다. 이 때 님은 선인으로 황홀한 장소로 인도한다.
이 황홀한 장소는 춘향과 이 도령이 만나는 광한루에 비교되어진다.

광한루전 도하야 하마셕에 선듯나려 누상에 올나가니 고대사망등가긔 울총울총 영리하져 방자가 사면지면 다 고하다 동편을 가르치며 구름밧긔 은은하게 지리산남 녹인디 신션니려 노난듸요 서편을 가르치며 엄숙한 뜬 긔운이 광광모를 뫼셔시니 영이한 일 만삽지요 남편을 가르치며 져 소을 너머가면 구레가 접계온다. 화긔연곡승 지지요 북편을 가르치며 져거슨  교룡사셩 좌도관방즁디디요 저집 일흠 영쥬각 저 다리는 오작교요 도령님 드르신 후 네 말 듯고 경긔보니 이게 어듸 인간이냐 내 몸이 우화하야  천상에 올나왔나 뒤 짐지고 긔르면서 혼자 탄식하난 마리 광한루는 죠타마만 향아는 어듸가고 오작교 분명하니 진녀성을 거의볼듯
- 신재효 판소리  「춘향가」

그들의 만날 장소는 동편에 ‘선유지’ 서편에 ‘영지’ 남편에 ‘선경’ 화개동이 있다. 이 환상의 분위기는 이 도령이 반할 수 있는 곳이다. 그 속에 선인이 되어 있는 상태로 춘향을 만난다.

배회고면 하노라니 난듸업난 일륜 명월 옥운간에 오락가락 정신을 제우 수습하야 유심히 다시 보니 미인이라
- 신채호 판소리 「춘향가」

님 과의 만남은 아름다움이 있어 마음속에 환상인 무릉을 만난다.

2). 님의 모습

(1). 선인

선인은 늙어도 죽지 않는 사람으로 예로부터 선의 원류를 ‘청구’라 하였는데 이른바 동방선계인 곧 조선이었다. 이 선인을 이영도는 ‘꿈속에 그리던 님을 황망히 우러르니’라 하였다. 속세를 떠나 선경에 살며 구름과 학을 벗하고 불노장생의 법을 닦는 님으로 이영도의 님은 영원의 존재이며 속세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님이다.

(2). 봉

이영도의 님은 상상의 상서로운 새가 된다. 이 신비의 새는 닭의 머리와 뱀의 목과 제비의 턱과 등을 가진 새로서 용 · 거북 · 기린과 함께 4령의 하나인 새다. 봉황이 아닌 봉이 됨으로써 여성인 이영도는 봉이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비상의 날개를 지니고 더 높은 세계에서 노니는 이들은 인간의 이상에다 날개를 달고 있는 상징성을 지닌다.

(3). 신선들

이제 이영도 시인의 심상세계에서 님은 단수 개념이 아니라 복수의 님으로 발전한다. 한용운도 님은 그리운 모든 것이라 하였다. 환상의 모든 희망과 꿈속에서의 갖가지 이상추구는 그의 님적 대상이 된다. 물질계 시어의 그의 관심도는 이상향에의 추구이며 가장 바람직한 세계로 날개를 달고 오르게 된다. 이 때문에 이영도의 물질계에 대한 그의 관심도는 구름이 되어 보는 것
에 있다.

정녕 윤회 있어 받아야 할 몸이라면
아예 목숨을 랑 허공에 앗아지고
한 오리 연기로 올라 구름이나 되려오

무수한 해와 달을 품안에 안아보고
삼라만상을 발아래 굽어보고
유유히 산악을 넘는 구름이나 되려오

저녁놀 비껴 뜨면 꽃구름이 되었다가
때로는 한 하늘 먹장으로 덮어도 보고
아침 해 솟는 빛 앞에 몸을 맡겨 타려오

아득한 소망대로 이우러 지량이면
인간을 멀리하여 무량한 하늘가로
닻 없이 떠서 오가는 구름이나 되려오
- 이영도 「구름」

문학작품 속에 환상 이미지는 역동성으로 확대될 수 있다. 괴테는 말하기를 동서시편 속에서 selige sehnsucht를 동경주제로서 등장시킨다. 어떤 불행이 일어나기 전에 스스로 불행 속으로 의지만을 가지고 달려드는 존재는 엠페도글레스 콤플렉스에 해당된다. 바술라르는 꿈의 세계 속으로 빠져드는 것은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인 양면성이라 하였다. 그리이스 철학자 엠페도글레스(Empedocles, 493∼439 B.C)는 자신이 신이 되기 위해 에트나 화산에 뛰어들어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시키려 본능에서 자신을 파괴시키고 다시 재생의 기회를 얻으려 했다.
인간 내면의 원초적 심상세계를 지적한 것이다.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걸쳐진 불의 다리
존재와 비존재의 끊임없이 공존함이여
pont de few jet&eacute; entre &#341;eel at irr&#279;el
co-existence &aacute; tout instant de l󰐊treet du non-󰐊tre 칼 마르틴 에즈반(Carl –Martin Edsman), 『성스러운 물』lgnis divinus 륜트사 간)., 203∼259 참조.


존재와 비존재를 연결하는 관계는 한 시인의 심오한 혼이 그 시인의 피안을 통해서 가지게 된다. 이 현상은 하나의 비상이라고 할 수 있는 바. 이 상징은 한 시인이 외곬으로 한 세계를 깊이 꿈꿀 때 표출 될 수 있다. 환상의 성스러운 불꽃이 된다. 이처럼 한 시인의 신념을 높이 끌어 올리는 마음은 이영도 시인에게 작품 내에서의 승화이다.










4). 환상에서 깨어남

‘가만히 고개를 드는’의 이영도 시조에서 무릉의 환상이 깨어남은 절망에 있지 않다.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번 흔들지 못한 체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 이영도 「탑」

비록 ‘하늘과 땅’만큼의 거리가 있다할지라도 그 긴장거리에 있는 나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 있다. 무릉이 아닌 현실의 ‘오후’는  허난설헌의 선적 요소와 비교할 수 있다. 계량에 부친 동서남북상하  방향은 선계의 가장 아름다운 세계다. 동서남북으로 연결된 환상 세계는 각 방위에 따라 ‘천선天仙이 되었다가 ’계량하‘에서 급기야는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머리로 하늘을 향하되 땅에서 발을 뗄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모습이다. 이와는 달리 이영도 시인에겐 방안과 방밖의 엄격한 구분에서 환상의 시세계가 구분된다.
조신의 꿈에서 보면 김시랑을 만나 40여년의 생활을 즐긴다. 부부는 몹시 가난하여 아이들을 둘이 서로 맡아 가지고 꿈에서 깨어난다. 이 때 조신의 머리는 하얗게 세어 있다. 이 허무의 세계와는 달리 이영도는 그의 내면세계를 다시 신앙의 힘으로 극복한다.

이영도 시조는 그의 미모와 관련된 전통적 문학속의 여인분위기와 밀접한 맥의 선상에 놓인다. 환상의 문학이라고 할 수 이영도의 생애와 시조작품은 2층 구조로 되어 있다. 하나는 황진이 시조와의 유사성 이영지, ‘이영도 시조와 황진이 시조의 유사성과 상이성’ 『새국어교육』 46., 149∼180.
이고 하나는 그의 시조를 신비의 세계로 끌어 올리는 데 있다. 특히 무릉의 환상성을 강조하는 바, 그녀의 시조는 물질계 시어인 자연어와 문명어를 문학성으로 끌어 올린다. 이들 언어에 가장 많은 빈도를 보이면서 시조적인 신비의 세계를 강조한다. 그의 내밀 시어를 통해 물질 언아로 승화시키면서 이영도 시조는 사랑과 이별과 승화의 시조원리인 심장 육구적인 곡선을 그린다. 이 곡선은 비상의 곡선이며 꿈과 현실을 승화시키는 절대의 신과 그 초월의 경지를 현실에서 끌어올리는 힘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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