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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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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5-24 01:24
보랏빛 추억
 글쓴이 : 오애숙
조회 : 1,527  
수필
 
                          학창시절 보랏빛 추억
 
                                                                                                                                      은파 오 애 숙
 
 
  화창한 날씨다. 낭만의 보랏빛이 물결치는 오월이 되었다. 몇 주 전의 잿빛하늘과 달리, 완연한 여름이 성큼 눈앞에 왔음을 체감한다.
 
  올해도 4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친정아버지의 병간호로 몇 달을 친정집에서 지내다 보니 세월의 흐름도 잊었던 까닭이다. 4개월 동안 새장 속의 새가 되어 바깥생활과 등지고 살았다 싶다. 다행히 병이 호전되어 간밤에 나는, 나의 보금자리로 올 수 있었다. 이튿날에야 현관문을 열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흐드러지게 핀 자카란다가 해 맑게 웃음 짓고 있었다. 대개 자카란다를 낭만의 꽃이라고 부른다.
 
  LA 윌셔거리에는 가로수로 자카란다가 즐비하게 심겨져 있고. 나의 아파트 도로변에도 몇 그루의 자카란다로 심어져 있다. 청명한 아침에 만개해 있는 꽃을 바라보니, 자카란다와 라일락꽃의 보랏빛 물결이 클로즈업 되었다. 보랏빛 물결이 눈가에 아슴아슴 향수 되어 밀려온다. 순간 자카란다의 보랏빛 꽃잎 속에, 풍덩 헤엄쳐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보랏빛 라일락꽃 물결이 흩날리던 학창시절의 어느 날로 곱게 피어났다. 그렇다. 노랫말처럼 ‘잊어버린 꿈의 계절이 너무 서러운 것일까’ 자카란다 가로수 옆에 서서 그 옛날 라일락꽃 향기가 휘날리던 뜰에 거닐었던 때를 서성인다. 이제 나도 옛 추억의 그림자를 하나씩 꺼내고 싶은 나이가 된 것이다. 아, 잊혔던 그 시절이 그립다.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이야기가 새록새록 내 귓가에 속삭이고 있다.
 
  얼마 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아직도 그녀의 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친구는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라일락 사건 기억하니?”라고 물었다. 잊고 있던 나는, 친구의 놀라운 기억력에 감탄사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학창시절에 친구의 집 마당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서로 책을 좋아해 늘 등나무 그늘에서 책을 읽곤 했다. 등나무 뒤엔 담벼락이 있었고, 그 앞에는 라일락이 가로수로 있었다. 라일락꽃이 만개하던 어느 날, 우리는 그곳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친구가 잠깐 집에 들어갔다 온다고 자리 비우는 사이였다. 무엇인가가 휙 하고 내 앞에 뿌려지며 라일락꽃 향기가 코끝을 자극하고 있었다. 담 밖에서 누군가가 한 소쿠리도 아니고 쌀자루 한 부대의 라일락 꽃잎으로 물세례 주듯 머리 위로 뿌린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 “엄마야.” 소리치며 벌떡 일어나서 두리번거렸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친구네, 아빠 친구가 동네로 이사 왔는데 아들이 놀러 와 앨범에서 친구와 함께 찍은 나의 사진을 보고 관심 두게 되어 장난친 것 같다고 했다. 친구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 꽃잎으로 세례받은 얼굴 사이로 빨개진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친구의 부러운 시선은 이내 석양빛 붉은 노을이 되어 있었고. 두 개의 석양이 서쪽 하늘의 붉은 노을빛 속에서, 세 개의 석양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의 친구는 내게 뿌린 꽃잎을 다시 두 손으로 움켜잡아 내게 뿌렸다. 나도 질세라 친구의 얼굴에 꽃 세례 퍼부었다. 우린 서로 깔깔대고 몇 번이고 꽃 세례를 서로에게 퍼 부어주며 장난쳤다. 한참을 서로에게 세례를 주다보니 땀과 범벅이 되어 보랏빛 옷이 되어 있었다. 육체는 기진맥진했으나, 마음은 보라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흐뭇한 마음에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던 기억이 오롯이 내 마음을 살랑거렸다.
 
  꽃들은 대개 만개되기 전부터 그 특유의 향기, 색채, 모양으로 아름다움을 휘날린다. 하지만 사람은 자라나는 과정에서 제각기 다른 모진 풍파와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는 가운데 모나고 거친 마음과 행동이 주워진 삶 속에서 개개인은 사회 속에 둥글둥글한 조약돌처럼 향기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 간다.
 
  갑자기 내게 신고식으로 장난쳤던 남자친구가 궁금해졌다. 내가 미국에 이민 오기 전까지는 그래도 그는 K대학에서 교수로 있었다. 그 친구뿐만 아니라 가끔 소식이 들리는 인물 중 예전에 말썽만 부리던 자가 어느 날부터 철들어 효자가 됐다거나 문제아가 자기 몫을 톡톡히 하는 것을 볼 때, 교육학을 전공한 나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사람은 현재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니다.’라는 긍정적인 반응이 승리의 깃발로 나를 향해 휘날린다. 물론 다 성공의 전차를 밟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인물과 우리 가족만이라도 각자의 특유한 자기만의 향기를 잘 개발하여 휘날렸으면 좋겠다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다.
 
  실바람이 마음에서 살랑인다. 자카란다의 흩날리는 꽃잎이 잔디를 보랏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낭만의 보랏빛 향기에 학창시절의 추억을 가슴에서 열어놓고 연초록의 붓으로 옛 얘기를 수채화로 그린다. 마음이 보랏빛 휠드가 된 느낌이다. 오늘은 왠지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그런 날이다. 가슴 속에서부터 그 옛날 학창시절의 라일락꽃 내음이 추억의 주머니 속에서 아지랑이로 물오른 것이다. 눈가에 그리움에 이슬이 맺힌다. 학창시절의 단짝이던 그녀의 머리는 벌써 반백이 되었다. 이민 일세의 삶 속에서 모진 풍파로 한세월 살아온 흔적일 게다. 하지만 그녀도 옛날이 그리운가 보다. 밑도 끝도 없이 전화로 “라일락 사건 기억하니? 라고 물었으니 말이다. 그녀도 나처럼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라일락꽃 향기 속 추억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보랏빛 향이 내 가슴에서 부수대처럼 솟아오르더니 폭포수로 떠내려가며 흐트러지는 꾳잎 속에서 노랫말이 스쳐 지나간다. ‘우린 서로 행복했었네. 꽃 한 송이 입에 물고 끝나버린 꽃의 계절이 너무 아쉬워…….’
 
  화창한 아침이다. 하지만 아련히 노랫가락이 밀물 되어 가슴에 실바람 타고 조용히 스쳐 지나가다 가슴에 머무는 그런 날이다.ㅗ

오애숙 17-05-24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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