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문학대상 수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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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문학대상 수상자들

李英芝 0 10076
□ 제21회 창조문학대상 시부문 수상자 김재준 작품선
사랑 놀음 9편
                    김 재 준

잡풀을 뽑는 아가에겐
말이 들리지 않는다
트랙터 소리에 아가는
함지박에 눌러 앉아
꽃바람에 사랑을 탄다
아들 녀석의 콧노래가
아쉬운 봄에 끌려갈 때
당황한 까치 날개짓으로
귓볼을 놀라게 하고
또 한 까치 그 뒤를 쫓는데
석양은 해를 눕히고
사랑은 어둠과 숨박꼭질한다
그래 그러자

길게 뻗은 그림자의
행렬이 낯을 가릴즈음
우리 이렇게 앉아보자
그믐달 넘어오는 바람에
으스스 떨어가며
쌓인 그늘의 가장자리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드래도
따뜻한 기운을 찾아보려
쪼갠 그림자로 사랑을 나누자
이 밤이 아름다울 거라고
그네를 타자

하얀 벽을 올라
푸른 하늘을 만나면
오지의 낙원이 반긴다
뉘야
초록빛 그네를 타고
굴뚝에 연기 나는 곳에
고구마 던져 구울까
송사리 꼬챙이에 끼어
개울녘 갈대 불에 구울까
뉘야
산 너머 바다의 고향
뻘밭으로 가자

뉘야

바다가 보이는 어느 쪽에
탱자나무 울타리하고
유자 향기 땡기는
바닷바람과 함께
긴 밤을 보내자꾸나

석양녘 뻘밭 가까이
반짝. 노니는 떼몰이 도요새
게에 쫓긴 짱뚱어
꼬리 휘말아 뛰고
하늘 닿는 노을빛 물결
우리 함께 살자꾸나


아침나절 솔 향 쑥 나물은
뒷동산 소나무밭에서 나고
저녘 나절 바다 향 쑥 나물은
앞산 너머 바닷바람에서 오고
뉘야
엊저녁에 소식도 없이
내린 비는 말고 가겠지만
넌 언제나 찾아오려나
간밤에 꿈엔 바구니를
이고 왔더구나
꽃다발

뉘야
가만가만 속삭이는
봄내음 흠뻑
꽃비 정겹게 내리는
그런 날
둥근 달 속에
빨간 바구니 하나
두루 뭉실 걸쳐 있다
촛불을 켜 불거나
눈가의 주름진
웃음이 반겨운 듯
케익을 자른다

당신께 드리오
사랑의 메모

꿈으로 젖어보는
내 안의 너를
곱게 접어서
하늘로 띄워
되 오는 무지개사랑을
두 손으로 모아 받을까
아니요

울고 있네요
곁엔 이야기가 없는
봄의 그림자를 밟고
훗날을 기다리며
이른 더위를 견디어요
잃어버려야하는
당신의 모습인데
구름의 형상으로 나타날
남쪽의 하늘은
길게 비가 오네요
눈 오는 날
걷고 싶다
따뜻한 손을 잡아
내 주머니에 넣고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

이런 날은

살갗을 달래가며
입김이 서린 말로
정을 나누며 걷고 싶다
봄의 소리
들리세요
햇볕을 타고
강을 저어오는 소릴
향기 아스름이
모자란 듯
한 끼 나물을 싣고
기지개 펴듯
설 잠 깬 아지랑이
간지럼타는 소릴
몽실 젖어오는
젖가슴에 비추이는
새싹의 춤은
계곡의 얼음을
음지의 눈을 녹이는
소리가 들리세요.





 














□ 제21회 창조문학대상 수상소감

가장 늦게 도달하는 영광된 자리


김 재 준


글쎄요.
가장 높은 곳으로 향하는 길은 가장 늦게 도달하는 영광된 자리가 아닐까하는 푸념 섞인 실소를 흘러보면서 다 지나간 자리 뒤늦게 밟아보는 희열, 늦깎이란 말로 또 한 번 웃어봅니다.
 세월이 흐르다보면 도달점에 한계를 느끼게 되고 한계를 이겨내려면 무한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생활 속의 서사에 정서를 합류한 자작시들에 도취되어 홀로서기로 걸으면서 자연속의 극한세계에서 땅을 일구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익어가고 있는 내가, 끼어있는 것이 자연인의 생활 늦깎이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이런 저를 대상의 물망에 올려놓고 얼마나 고심했을까하는 마음에 심오한 깃발을 내려놓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김 제 준
▪ 「창조문학」(1995년) 시로 등단
▪ 대서 광문중학교 교사 ▪ 창조문학 운영이사
▪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학원 국어강사 역임
▪ 시집: 『세월의 그림자』『늦깎이 인생』
▪ 용문 용숭학원 원장 역임
▪ 현재 일모아(일하는 모습이 아름답다)회장
yunja001@hanmail.net/ kimwon80@naver.com
▪ 02153 서울 중랑구 봉우재로(상봉) 133-701호  010-5351-1441




□ 제21회 창조문학대상 김재준 수상시집 평

서정성의 대화체
-김재준 시인의 시집 『늦깎이 인생』에 부쳐

이영지
(시인 · 문학박사)

김재준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늦깎이 인생』을 상재하게 되었다. 첫 시집을 낸 것이 2년 전인데 또 시집을 내게 되었다.
김재준 시인은 지금부터 20년 1995년에 창조문학 겨울 호로 시「새벽」「풍경」「봄」「가을」4편이 신인상 수상을 한 뒤 당시 그는 시 당선소감을 다음과 같이 밝혔었다.

가느다란 희열, 짜릿한 뼈 속 깊이 와 닿는 밤, 오십의 중반에 선 분명한 현실 앞에서 눈의 추억들이 천정 무늬 속에 잠겨 든다,.
이에 생활인으로서 시 속에 묻히는 것과 활의 굴레바퀴를 맴돌다 신선한 향기에 젖어오는 마음이 있어 고향을 찾는 바램으로 초점의 무늬에 서 보는 것이다.
다시 붓을 잡게 해 준 옛 문우 박문재 시인과 홍문표 박사님, 만족하지 못했으나마 용기를 갖게 해준 창조문학사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 김재준 당선소감 ‘신선한 향기로 젖어오는 마음」

그의 등단 작품은 「새벽」이었다.

바탕 없는 하얀 무늬
붉은 해
안개 감싸고

푸른 요령소리
파문으로 이어지는
내일

햇살에 뛰어오른 잔나비
높새 타고
들어서는

- 김재준 「새벽」창조문학 신인 등단 작품

20년 전의 등단작품이 제시하듯 김시인의 작품경향은 “햇살에 뛰어오른 잔나비 /높새 타고 / 들어서는/ 불” 열정으로 “봄의 가슴을 열어” 20년 뒤에도 사랑의 끈을 대화로 열어 봄을 즐긴다는 점이다. 여기에 늦깎이 인생은 봄을 맞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20년이 아니라 200년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이고 우리나라의 오천년과 이어지는 시의 끈은 서정성이라는 점이다.
이 단단한 끈을 붙들고 있는 김 시인은 이번에 『늦깎이 인생』이라는 시집을 통하여 서정의 고향을 다시 한 번 찾고 있다. 그만큼 우리에게 있어서는 우리 고유문학 특히 한국문학이 서정성이 중요하다. 가장 서정성이라면 가장 오래된 시가 고구려 2대왕 유리왕이 지은 황조가에서이다. 유리왕의 계비 치희와 화의가 서로 반목하면서 치희가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자 뒤 따라갔다가 끝내 혼자 오면서 "훨훨 노니는 노란 새는 암수 서로 의지하는데 나는 혼자구나. 누구와 더불어 돌아갈꺼나"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사기 고구려 본에 있다. 
이러한 서정은 그 이후에도 계속 되어오면서 황진이시조나 그리고 김소월 시로 이어진다. 시대의 구애되지 않는 우리의 서정성이 김재준 시의 서정적인 대화체에서 그대로 그 끈이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김재준 시인의『늦깎이 인생』이 보여주는 서정성은 ‘뉘야’라는 대상과의 사랑이야기를 호소력 있게 대화체로 접근하고 있는 점이다. 대화의 끈은 사랑을 주제로 한다.
시적 화자가 대화체를 통한 고유의 사랑을 공유하고 있는 뉘야는 혼자만의 독백이 아니라 늦깎이 삶의 가치를 안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집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참다운 삶을 안내하는 이 시집은 외로움이나 괴로움보다는 삶의 긍정적인 생활방식을 통해 일상의 참맛을 전재로 하면서 주어지는 들판의 삶들에서 벌어지는 생물과 식물에 대한 살아있는 것들의 그 찬란한 몸짓을 함께 공유하기는 물론이려니와 김 시인이 같이 누려가고 있는데 있다. 바로 김 재준 시인이 보여주는 향토성에 젖는 사랑이야기는 그 대화의 대상자 뉘야와 더불어 같이 사랑의 이야기 대화체로 들려주면서 옆에서 속삭이듯 소곤소곤 이야기 해주고 있다.
일찍이 황조가를 비롯하여 황진이 시조 그리고 소월시의 서정성은 모두 시적 화법으로 한 대화체임에 비추어 보면 매우 단단한 전통계열에 속하는 서정 시인이 된다. 김재준 시인의 더욱 매력적인 것은 사랑이라는 구체적 시어를 사용하기보다 일상에서 연인 끼리 하는 육감적인 자연스런 일상의 대화를 시어로 건져 올리고 있는 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평소 하는 그리고 연인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랑 내음새의 대화체 그대로 옮겨놓아 호소력과 정감을 같이 얻어내고 있다. 평소 대화체 그대로가 시의 제목으로 옮겨 앉는다. 그 제목들은 김 시인의 『늦깎이 인생』1부  ‘그네를 타자’ 는 1부 첫 제목부터 충격적으로 닥아 오기 시작한다. 「사랑 놀음」을 비롯하여 「그래 그러자」「그네를 타자」「뉘야」「뭐해유」「짓」「가자구요」「쑥」「그 여름 날」「꽃 한송이」로 한다.
봄의 서정을 이미 20년 전 신인 문단 등단 때 노래했는데 그대로 『늦깎이 인생』에서 오히려 구체적으로 2부 ‘베네치아 카페에서’에서 한창 불같은 여름날의 열정을 늦깎이의 봄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봄의 소리」「봄 편지」「봄나들이」「봄이 오는 소리」「봄의 노래」로 한다. 「하얀 나비」로 날아오르는 늦깎이 인생을 구체화한다. 역시 대화체 그대로의 제3부도 ‘밭에 살라하네’ 제목 부터가 그러하다. 인생 늦깎이에서 새로이 경험하는 사업을 신선한 제목으로 하고 있다. 일평생 농부가 아니던 삶에서 전연 다른 사업이 전개되면서 새로이 만나는 늦깎이 인생의 경이로움이 그대로 묻어나「밭에 살라하네」「장끼」「배추꽃」「두꺼비」「월세 방 청개구리」등의 작품이 쏟아져 나온다.
옆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대화체 형식의 이 서정성의 근거가 되는 김재준 시인의 원본 이력은 학원장으로서 그리고 국어강사로서의 실력이 그대로 그 끈을 놓지 않아서이다. 오늘이 있기까지 즉 어떻게 이러한 서정적인 시를 쓰게 된 것인지를 바로 국어교사로서의 시를 쓰던 고향 이력이 되어 바쁜 학원장이었던 시절도 함께 있었던 서정 그대로 시를 만든 것이다. 삶을 시로 만드는 작업은 늦깎이 인생의 노하우이다. 함부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밭의 채소들이 햇살을 받으면서 자라는 경이로움으로 동화되면서 즐기는 늦깎이 인생이다.
즐기면서 생업에 주력하는 일은 멋지게 사는 삶이다. 이러한 시의 소이를 밝히는 이 지상에서 살아온 날들은 어제와 오늘의  단절이 아니라 지금의 김 시인이 있음을 밝히는 가장 떳떳함을 공개한다. 늦깎이 인생의 황금시대를 여는 비결을 이 시집에서 공개하고 있다.
숱한 사람들이 숨기고 있는 지난날의 이력이 아니라 정말 인생의 맛을 전해주는 그 사랑의 끈을 대화로 여전히 시의 끈으로 하는 은근과 끈기의 서정성은 시로 재탄생되어 오늘의 영광을 가져올 수 있는 일이다.

1 사랑시의 대화체

김 시인의 시는 사랑시의 대화체이다. 사랑시라는 의미만으로도 격조 높게 이끌어 갈 수 있는데 김 시인의 열정은 이 사랑시를 대화체로 하고 있다는 데에 시의 우수성이 있다. 시의 대화체란 누구와 대화하는 내용이 담기는 이야기식의 대화시다. 고백이나 독백의 혼자만의 대화시도 있겠지만 김 시인은 이야기 식의 서정이 담긴 ‘뉘야’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의 개인 서정을 아예 김재준 시인은 시집 그 많은 순서의 처음에「사랑 놀음」이라는 충격으로 전해준다.

잡풀을 뽑는 아가에겐
말이 들리지 않는다
트랙터 소리에 아가는
함지박에 눌러 앉아
꽃바람에 사랑을 탄다
아들 녀석의 콧노래가
아쉬운 봄에 끌려갈 때
당황한 까치 날개짓으로
귓볼을 놀라게 하고
또 한 까치 그 뒤를 쫓는데
석양은 해를 눕히고
사랑은 어둠과 숨박꼭질한다
-「사랑 놀음」

길게 뻗은 그림자의
행렬이 낯을 가릴즈음
우리 이렇게 앉아보자
그믐달 넘어오는 바람에
으스스 떨어가며
쌓인 그늘의 가장자리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드래도
따뜻한 기운을 찾아보려
쪼갠 그림자로 사랑을 나누자
이 밤이 아름다울 거라고
-「그래 그러자」

사랑 놀음의 가장 처음 하는 일은 잡풀을 뽑는 일이다. 이러한 값어치의 사랑 놀음 가치는 삶의 질을 열어 놓는 일이다. 시적 화자는 ‘아가’이다. 귓불을 붉히는 어여쁨을 선사하는 여인으로 하여 감히 아주 저돌적으로 그의 사랑내력을 밤과 어둠의 시간으로 정하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야기를 쪼갠 그림자로 택한다. 육감적인 시어들을 구체화하면서 사랑방법은 따뜻한 가슴으로 늦깎이의 인생답게 “쪼갠 그림자로 사랑을 나누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대화체 형식은 시집 제목이기도 한 「그네를 타자」에서 더 구체화된다.

하얀 벽을 올라
푸른 하늘을 만나면
오지의 낙원이 반긴다
뉘야
초록빛 그네를 타고
굴뚝에 연기 나는 곳에
고구마 던져 구울까
송사리 꼬챙이에 끼어
개울녘 갈대 불에 구울까
뉘야
산 너머 바다의 고향
뻘밭으로 가자
-「그네를 타자」

“뉘야”는 김 시인의 공개적 시적 대상이다. 첫 시「사랑 놀음」에 대한 구체성으로 안내되는 “뉘야/ 초록빛 그네를 타고/ 굴뚝에 연기 나는 곳에/ 고구마 던져 구울까”라 한다. 초록빛 그네의 젊음으로 사랑하는 뉘야를 태우고 굴뚝에 연기 나는 곳에 고구마를 구을 김 시인의 늦깎이의 능력을 보여준다. 그러기에 그네를 타자는 것이다. 이러한 김 시인의 시적 대화의 구체성은 호소력으로 대상이 그렇게 하지 앓으면 아니 될 참맛을 굴뚝에 연기 나는 곳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산 너머 바다의 고향 뻘밭으로 가자는 청유형이다. 
뻘밭으로 가야하는 이유는 같이 긴 밤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바다가 보이는 어느 쪽에
탱자나무 울타리하고
유자 향기 땡기는
바닷바람과 함께
긴 밤을 보내자꾸나

석양녘 뻘밭 가까이
반짝. 노니는 떼몰이 도요새
게에 쫓긴 짱뚱어
꼬리 휘말아 뛰고
하늘 닿는 노을빛 물결
우리 함께 살자꾸나
-「뉘야」

아예「뉘야」라는 시 제목으로 하는 사랑하는 대상과 함께 가는 곳은 바다가 보이는 어느 쪽에 탱자나무 울타리 하고 유자향기 땡기는 바닷바람과 함께 긴 밤을 함께 보내자꾸나 이다. 이러한 설득력은 하늘 닿는 노을빛 물결이 있어서이고 이곳에서 ‘뉘야’랑 함께 살자이다.
함께 하고 싶은 여인 뉘야의 매력은 무엇일까! 뉘야의 모습은 난 모양이다.

목을 길게 빼고
새벽이 오는 창으로
기지개를 펴는 미소

가슴으로 꼭 쥐었던
꿈의 얘기들은
너를 향해
훨훨 날려 보낸다
-「란」

훗날 애타게
기다릴 것이 있다면
해맑은 웃음 하나
잊을 수 없는 것이
한 세월 함께 갖는
마음이러니
-「미련」

미소가 아름다운
당신의 모습으로
-「봄의 모습」에서

김 시인의 뉘야는 난 같은 여인이다. 이 난 같은 여인은 김 시인의 내 안의 너로 자리 잡고 있다. 그녀의 모습은 “해맑은 웃음 하나”를 가진 여인이고 그 해맑은 “미소가 아름다운” 사람이다. 이토록 전 생을 걸어 좋아하는 대상의 모습은 이미 김 시인도 물들어 인생의 좌표가 되어있고 뉘야 여인으로부터 김 시인에게 다가오는 선물이다. 

뉘야
가만가만 속삭이는
봄내음 흠뻑
꽃비 정겹게 내리는
그런 날
둥근 달 속에
빨간 바구니 하나
두루 뭉실 걸쳐 있다
촛불을 켜 불거나
눈가의 주름진
웃음이 반겨운 듯
케익을 자른다

당신께 드리오
-「꽃다발」

뉘야는 정말 “바다가 보이는 어느 쪽에/ 탱자나무 울타리하고/ 유자 향기 땡기는/ 바닷바람과 함께/ 긴 밤을 보내자꾸나” 하는 그런 사이로 “우리 함께 살자꾸나” 한다. 아주 구체적인 대화의 대상 호격「뉘야」이 뉘야는 김 시인의 깊은 내면 속에 자리 잡혀 더러는 직접 마주대하지 않더라도 김 시인 삶의 이정표가 되어 있다. 아침나절 솔 향 쑥 나물 같은 모습으로 뒷동산 소나무밭에서 나고 저녘 나절 바다 향 쑥 나물이 앞산너머 바닷바람에서 오는 뉘야의 그 쑥 같은 여인이다. 쑥의 나물이미지보다 쑥이라는 의태어로서의 시 은유를 통해 김 시인은 뉘야의 대상에 대한 육감적 표현으로 대한다. 막연한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가장 사랑하는 여인으로서 자리 잡혀 꿈에서조차 바구니를 이고 오는 여인이다. 바구니를 든 여인이다.
이 여인과 김 시인의 시적 화자 사이에는 미움이 없다. 아주 가까이에서 바구니 선물을 주고받는 사이이다. 바구니 안에 든 것은 가만가만 속삭이는 봄 내음이다. 정겹게 내래는 정이다. 둥근 달이다. 그냥 달이 아니라 둥근 달 속에 이다. 더군다나 빨간 바구니 하나이다. 시적 화자와 뉘야 사이에 사랑이 두루 뭉실 걸쳐있다. 그 다음 행위는 촛불을 켜 불거나라고 권유한다. 이 때 드러나는 모습은 눈가의 주름진 얼굴이다. 늦깎이 인생이다. 반겨운 사이이다.
이 둘은 케익을 자른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누가 누구에게라는 말은 없지만 “당신께 드리오”이다.「꽃다발」시이다. 서로 꽃다발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이다. 사랑의 꽃다발을! 그러기에 김 시인과 뉘야는 함께의 뉘야이고 하자꾸나 하면 따라 나설 뉘야이고 꽃다발을 주면 받을 사이이며 또 뉘야가 전해주는 꽃다발을 받을 김 시인의 시적 화자자신이다. 꽃다발을 받을 만한 늦깎이 인생이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도 이어지는 끈으로서의 뉘야이다. 김 시인의 사랑하는 대상 뉘야와 더불어 늦깎이 인생의 행복노래는 꿈으로 젖는 나날이다. 

꿈으로 젖어보는
내 안의 너를
곱게 접어서
하늘로 띄워
되 오는 무지개사랑을
두 손으로 모아 받을까
-「사랑의 메모」

늦깎이 인생은 두 손으로 모아 받을 사랑, 무지개 사랑이다. 무지개는 오색찬란한 빛으로 하늘 저 편에 떠 있는 내 안의 너이다. 너 안에 있는 나이다. 이런 늦깎이 인생을! 그런 뉘야를 곱게 접어서 하늘로 띄우는 김 시인의 나날은 지금의 우리의 시를 쓰는 늦깎이 인생이다. 사랑의 시 이야기 전개이다.

날 어쩌려구요
혼자라 일컫기에는
너무 빠르잖아요
어떻할까요
희미하고 초라한 곳에서
험 없는 길을 걸을래요
그렇다말고
햇살 따라 걷노라면
거짓 없는 거울이지요
-「가자구요」

가자구요! 단호하게 내 딛는 늦깎이 인생은 거짓 없는 거울이다. 거짓 없는 둘이 하나가 된 둘의 모습이다. 일반적인 전통의 님이 이별의 한을 노래하고 있는데 반하여 김 시인의 뉘야는 거짓 없는 지금의 거울이다. 늦깎이 인생이 같이 가고 있는 찬란한 길이다. “거짓 없는 거울이지요” 거짓 없는 거울로 둘은 봄날의 꼬리를 물고 일어서 걷는다.

봄날의 꼬리를 물고
바람이 불던 날
오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갈 때
아침 햇살로 만든
핏빛 꽃 아름 들이
계곡에 흘려
영혼의 빛이려니
여기옵소서
-「철쭉꽃」에서

참 만나는 이와는 영혼이 하나가 되는 사이이다. 약속의 다리에서 만나는 ‘뉘야’이다. 황조가 서정의 정서에서 고려가요 서경별곡에서 그리고 가시리로 이어지는 더구나 소월의 진달래꽃으로의 그 긴 끈을 단단히 붙잡고 김 시인의 늦깎이 인생은 사랑하는 이와 영혼이 하나가 되는 삶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그렇다면 김 시인의 시적 화자가 시를 통해 제목에서까지 “아니요”라고 하는 시 「아니요」시는 무엇인가?

울고 있네요
곁엔 이야기가 없는
봄의 그림자를 밟고
훗날을 기다리며
이른 더위를 견디어요
잃어버려야하는
당신의 모습인데
구름의 형상으로 나타날
남쪽의 하늘은
길게 비가 오네요
- 「아니요」

강하게 부정하고 있는 김 시인의 「아니요」의 단호성은 바로 비로 인한 그의 대상의 못 만남에서이다. 결단코 만나야 할  님은, 그리고 하나가 되는 뉘야를 만나는 날은 비가 아니 오고 구름이 뭉게뭉게 피는 남쪽의 하늘이어야 한다. 구름은 신학적으로 보면 말씀이다. 그리고 이 말씀이라는 경어의 표현은 절대자 님의 모습이다. 그러기에 김 시인이 추구하는 위안과 위로와 삶의 가치를 실어주는 님은 해가 비치는 햇살 따라 드러나는 구름을 가진 그리고 그 맑은 구름을 보는 일이다. 수평적으로 바라보는 대상도 아니고 밤에만 만나는 대상도 아니다. 맑은 날 남쪽하늘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마음의 대상이다. 사랑하는 이다. 시이다. 평생 그토록 사랑의 끈을 놓지 않는 시이다.
시인이 왜 시를 써야 하는가! 시인의 숨김없는 정서를 은밀한 목소리로 읊는 서정시가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이나 이별의 한을 넘어서는 그 끄나풀을 놓지 않는 믿음이 서정은 그 옛날 정과정에서 구운밤 닷되를 구워 그 밤이 싹이 나야만 님과 나와 이별하고 철 치마가 다 닳아야만 님과 나와 이별한다는 이 한국고유의 서정성에서 김 시인은 그의 정서의 끈을 잇고 있다.
이러한 서정적 끈기는 김 시인이 늦게 새로운 사업에 골몰하면서 경이로운 새로운 일상을 맞는 일상에서도 시의 기록으로 사랑의 끈을 그대로 유지한다. 바로 삶을 즐겁게 살면서 그 안에서 시를 건지는 일이다. 이러한 일기기록형태의 김 시인의 사랑 시는『늦깎이 인생』을 봄으로 바꾸는 활력소가 된다.
 
 2. 봄의 삶으로 바꾸는 늦깎이 인생

늦깎이 인생에 도전장을 내민 김 시인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냄새가 사는  사랑의 삶을 사는 일이다. 그것은 살닿음이다.
“따뜻한 손을 잡아/ 내 주머니에 넣고/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   

걷고 싶다
따뜻한 손을 잡아
내 주머니에 넣고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

이런 날은

살갗을 달래가며
입김이 서린 말로
정을 나누며 걷고 싶다
-「눈 오는 날」

들리세요
햇볕을 타고
강을 저어오는 소릴
향기 아스름이
모자란 듯
한 끼 나물을 싣고
기지개 펴듯
설 잠 깬 아지랑이
간지럼타는 소릴
몽실 젖어오는
젖가슴에 비추이는
새싹의 춤은
계곡의 얼음을
음지의 눈을 녹이는
소리가 들리세요.
-「봄의 소리」

누구세요
깨운다 맑은 공기속으로
아침 햇살에 눈은 잃어도
귀를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소리
새벽에 온 편지
향기 짙은 나물의
정성이 담긴 손맛
잔잔한 물결처럼
이어지는 도마소리
들려주는 지지배배
누구세요
제비는 엄마 목소리를
멈춘다
-「봄 편지」

새벽에 일찍 밭에 나가 만나는 새싹들의 행렬은 새벽에 온 편지이다. 여기에 곁들여 향기 짙은 나물의 정성이 담긴 손 맛을 느끼는 일이다. 그냥 새싹이 있는 들의 광경이 아니라 이 나물들을 정성들여 해 주는 손맛을 느끼는 삶의 경험이다. 도마소리이다.
살 닿음의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는 곳에는 도마소리가 있다. 그러기에 삶의 형태가 바뀌어 져도 그 안에서 건져 올리는 하늘 저편의 말씀이 전해주는 경이로움에 취하는 일이다. 시를 듣는 슬기로움이다. 들려주는 지지배배 음성이다. 누구세요 하며 대화체로 한다.
김 시인은 『늦깎이 인생』을 통하여 그래도 미련이 남는 인생이라면 대화의 고리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못내 아쉬운 마음이라면
노란 꽃무리로 만들어
낯선 흰나비 끌어들일까
못 난 게 서운한 마음이라면
유채꽃 이름 빌어 들여
선남선녀의 무대가 될까
냄새가 아픈 마음이라면
아기야 꿈으로 가는 길을
향기로 이어 고리를 만들자
-「애기개똥풀」
 
김 시인은 인생의 늦깎이에서 미련에 대한 마음의 구체성을 고리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이 아쉬움에 대한 정의를 못내 아쉬운 마음이라면 노란 꽃무리로 만들어 낯선 흰나비 끌어들이든지 아니면 유체 꽃 이름 빌어 들여 선남선녀의 무대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 다 그만 두고라도 늦깎이 인생에서의 정답은 이 늦깎이 인생을 “아기야 꿈으로 가는 길을/ 향기로 이어 고리를 만들자”라고 제안한다.
역시 대화체로 호소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고리를  대화의 끈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고리로 엮어진 끈을 만들기를 김 시인은 시적 화자를 통하여 대화체 형식으로 청유하고 . 사랑의 끈으로 엮기를 소망한다. 그러기에 이 자리는 영광의 자리이다. 단단한 사랑의 끈으로 만들어진 향기를 고리로 한다.  사랑의 끈으로 역어진 고리로 너와 내가 어우러지며 같이 즐기는 늦깎이 인생이 만들어내는 자리이다. 


















□ 제21회 창조문학대상 시부문 수상자 채영선 작품선

향연 외 9편
채 영 선


아그네스, 듣고 있니
어금니 푸른 어둠을 뚫고
별 하나 별 둘 불붙이는 소리
잠들어 마른 가지 위에
파식파식 심어지는 불꽃

아그네스, 듣고 있니
사륵사륵 가시나무
옷자락 끄는 소리
낮은 무릎으로 가을 지피는
멀고 먼 발자국 소리

아그네스, 듣고 있니
품고 다듬어 삭은 전설
금빛으로 타오르고
사나운 들풀마저 물들이면
황금 신전으로 달려가는 소리
아그네스, 보고 있니
뜨락에 찾아온 애꿎은 사랑
뼈아프게 흩어진다 해도
꺼진 불꽃으로 재가 되어도
떨어지는 것이 아름다운 계절

아그네스, 듣고 있니
후드득후드득 조각나는 심장
달빛에 여울져 타는 기다림
작은 별 하나 머물기 전
빗살에 멍울지는 가을 소리소리
병풍

뿌리 깊은 냄새
달디 단
어머니 가슴팍 냄새
두 손 모아 디밀던
옥양목 이브자리 파리한 솔기
눈 감고 들이 마십니다
부득부득 안겨주신 장미 꽃 무리
아득한 숲길에서
깊고 긴 어머니 눈길처럼
하얀 나비 그렁그렁 눈을 맞춥니다
나직하게 부르시며
꼬옥 여며주시던 어머니 손길이
비단 장미 넝쿨에 고여 있습니다
모진 세월 북새를 해도
가시가 가시가 아니라고
풋내음 성성하던 어머니 웃음소리
들릴 것 같아
들릴 것만 같아서
도루 눈을 감는 아침입니다
손길 멈추는 곳에

가시나무 열매가
붉게 익어도
유리 그릇 안에서
돌아가는 바람

희디흰 크림으로
몸을 감추고
눈이 부시는
너의 우유 빛 잠옷

기침도 안하고
문을 열어 미안해
언제나 혀끝에
감기고 마는 것을

아침이면 꼭
챙기는 거 알면서
하필이면 거기
쇠창살에 기대어
초침 소리에 일어나는
인내와 침묵을
두 얼굴의 시계는
기억하고 있을까

소리 멈추는 곳에
기쁨은 체리를 꽂고
손길 멈추는 곳에
환희는 꽃을 피우지

레이스 하얀 틈새로
지켜볼 거야
꽃밭에서

라일락도 지쳐버린 6월 끝마디
백합 꽃 송이송이
카드 섹션을 합니다

자색 눈짓으로 문을 열더니
오렌지 향기 폴폴 날리다가
어지러워 노래진 얼굴
긴긴 낮과 씨름하던 오후
해쓱하니 창백한 모습으로

꽃나무 그늘에서 벌이는 향연
친절한 친구는
백합이 아니라 나리라고요

싱거운 콧김을 날리며
그늘마저 날아간다 해도
릴리라 부르렵니다
봄의 언덕을
못. 본. 척. 지나온 저 꽃 !
바위 고개

마음은 휘파람 불며
고갯마루 올라가지만
눈물 뿌리는 가을이 시립니다

주워 담을 수 없는 상념으로
모자이크한 마음은
스러진 낙엽이 되었습니다

아껴둔 시간을
하얀 명주 보자기로 싸매어
정갈한 반지 고리에 넣어두고 싶습니다

겨울비에 녹아버린 첫눈처럼
서리를 맞고 있는 그리움
소나무 깜박이불도 풀이 죽었습니다

윤삼월부터 기다린 고요한 아침
수줍은 기도를 싣고
희망의 수레는 달려갈 수 있을까요

알뜰한 정오 한 가운데
별 그림자 엮어 드리운 문지방
졸던 시간 기어코 마침표 찍는 날에
가보지 않은 길

찾아온 것처럼 떠나고 싶었던
끝이 보이지 않는 골목에서
굴참나무 사이 작은 샛길로
꿈결처럼 내다본 세상의 색깔과
두근거리는 이야기가 없다면

달빛으로 동여맨 여정 뒤에
떠오르는 항구의 등대에서
눈동자에 파고들던 아스라한 빛살
아 그건 넘어질 때마다 생각나는
따뜻하고 달콤한 생수의 말씀

미지의 세계 속으로 달려간
주인 잃은 기억들이
방랑자 되어 흔들거리면
어린 사과나무의 눈웃음 속에 
말도 없이 지나가버린 소중한 시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어제와 어제의 어제
의무감으로 지켜온 과거의 과거
아직 용서하지 못한 실수와
다시 되풀이할 실수도
돌아보게 해주시는 당신은

마주할 수 없이 안타까운 눈길로
깊은 욕망의 어둠 속에서
내밀한 의지의 다리를 꺾어
다시는 돌아설 수 없도록
어제와 오늘의 죄인을 강권하시는
영혼의 닻 생명의 주님

나무야 미안하다
미안하다 나무야
가시도 없는 네 살을 발라
팔랑거리는 상념을 발라놨으니
이슬 머금어 결 곱던 계절
잔가지에 매달려 애원하던 별빛은
눈물겨운 기억으로 돋아나고
쓸데없이 빌려온 언어 한 다발
기나긴 독백의 시간을 걸어
함몰된 동공의 깊이만큼
푸르게 떨리는 낭떠러지 저곳에

숱하게 분지른 네 허리는
식지 않을 인연이 될 수 있을까
기왓장처럼 켜켜 쌓을 수 없는
진실을 닮은 오류 한 묶음
한 조각 불완전한 희망을
손바닥에 새기고 돌아온 편지처럼
가지런히 빛나는 눈웃음 사이로
모두발로 달려간 모차르트처럼
에덴 울타리 너머로 사라져간
나무야 미안하다
영혼의 미로

눈 딱 감고 딩동-

겉옷 벗은 영혼 살짝 두드리면
맑은 영혼에서는 햇빛소리
아픈 영혼에서는 달빛소리
고독한 영혼에서는 장마 빗소리 들린다

멀고도 깊은 영혼의 미로
눈물 시내 자갈길 무릎으로 걸어야
다가갈 수 있는 영혼의 창문

영혼의 창문 앞에 가만히 서면
맑은 영혼의 노랫소리
아픈 영혼의 신음소리
고독한 영혼의 한숨소리 들린다

옹골진 고치에서 비단실 엮듯
두레박 없는 짙푸른 우물에서
소망 한 줌 길어 올릴 수 있을까
눈가에 주름이 생겨도 좋아
검버섯 주눅이 들어도 괜찮아
별과도 바꿀 수 없는 그대의 목숨
가슴 펴고 주님 앞에 설 수 있다면

오늘도 갸웃거리며
마음 옷깃 여미고 걸어가고 있다
아픈 종소리 밀려오는 영혼의 골목길
꿩에게

달콤한 옥수수를 많이 먹어도
칠면조가 될 수 없다
칠면조와 다툴 수도 없다
이곳은 칠면조의 땅인 걸
그 큰 칠면조의 부리를 보아
한껏 멋을 낸 깃털을 보아
아무리 네 빛깔이 고와도
그 위엄을 따라갈 수 없는 걸
살 한 바탕 날아가 내려앉은 네게
몇 발작이면 갈 수 있는 긴 다리
빨리 뛰려고 하지 않는 다리
자기 땅인 걸 아는 듯이

콩밭 언덕에서 너를 보았다
꿈일까 생시일까
고향 땅의 꿩이 이곳에서 날다니
반갑고 고마웠다 잠시라도
내 나라 내 땅에 온 것 같아서
고운 빛깔 긴 꼬리
이름처럼 대견한 장끼 까투리
물설고 낯 설은 땅에
어찌 왔는지 알 수 없으나
알아주는 이 없어도 낙심하지 말고
콩밭이 지천이니 잘 살아다오
칠면조와 함께
두더지의 가을

여름내 마주보던
나뭇가지 마주치는 소리
그날을 예감하고
꼬리 무는 매미 소리
고요와 상념 사이 반짝이던 환상은
거미줄에 매달려 빛나고 있다
툭툭 떨어지던 가을이 유리창 두드릴 무렵
길 찾는 바람 따라
길 찾는 나그네 길을 떠난다
꿈을 향하여 곧은 길
욕망을 향하여 굽은 길
거듭하다보면 어느새
낯선 고향 초입새
밤길 가는 그에게 내일이 있을까
밤길 가는 그에게 먹이는 보일까
내려다보면
약속한 듯 만나는 곧은 길 굽은 길
새벽이 오도록 가보아야
거기가 거긴데
우연과 필연이 빚은 틈새로 밀려드는
날내 나는 소음
호흡이 멈추는 순간까지
틈새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이 밤도
한 번 건드리면 무너지는 길
한 번 밟으면 날아가는 길
눈이 있어 슬픈 가여운 목숨이여
송편 이야기

반죽할 일이 없는 세월에
반죽을 합니다
꼭 익반죽이라고
바다 건너 어머니는 메아리 하시고
건성으로 대답하는 마음만 막내
어쩌다 뒷마당으로 분가해 온 몇 뿌리 쑥
온 동네 가을 잔치 벌이는 국화
풀 죽은 푸른 반죽
어지러운 노란 반죽
눈짓으로도 섞으면 안 됩니다
반죽은 반죽이니까요
끓인 물도 마음처럼 쉽게 식는다는 걸
가르쳐 준 반죽
섞이는 것도 스며드는 것도
맘처럼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보여준 반죽
끓인 물 한 국자 더 부으니
죽이 되어버리는 반죽
뜨거운 것이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녹아져야 엉겨 붙어야 된다는데
반죽이 좋으려면
얼마큼 녹아져서
얼마나 엉겨 붙어야 하는 걸까요
















□ 제21회 창조문학대상 수상소감

그 손길 안에서

채 영 선
 

들리는 듯 안 들리는 듯 앞서 가시는 걸음을 감히 여쭙지도 못하고 따라 나선 길 보일 듯 말 듯 굽이진 길 너머에 언제나 기다리시던 그윽하신 눈매 어쩔 수 없어 맨 손 부비고 서면 다가와 어루만지시는 따뜻한 체온 눈물 머금고 조아립니다
감히 받을 수 없는 귀한 상급을 베풀어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귀한 가르치심과 기도와 사랑으로 이끌어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부족한 저의 시집을 붙잡아주신 심사위원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가장 사랑스런 언어로 자연과 인간의 심연을 표현하는 문학의 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소중한 역할을 담당하는 <창조문학 > 위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과 축복이 언제까지나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채 영 선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 졸업
▪감리교 신학대학원졸업▪기독교대한감리회전도사
▪국어교사, 중고등학교 학원선교
▪한국과 미국 연합감리교회에서 목회 동역
▪미주문학 신인상 시, ▪창조문학 수필 등단
▪‘아이오와 글 사랑’ 인도 ▪수필집;『영혼의 닻』
▪시집; 『사랑한다면』『미안해』『향연』
▪메일; chaeyoungsun@gmail.com




□ 제21회 창조문학대상 채영선 수상 시집 평

시와 자연과 당신의 향연
-채영선 시인 시집『향연』에 부쳐-

홍 문 표
(문학박사․시인․평론가)



채영선 시인이「향연」이라는 시집을 낸다. 첫 시집 『사랑한다면』둘째 시집 『미안해』에 이어서 세 번째 시집 『향연』이란 시집을 내게 된 것이다. 지난해에는 『영혼의 닻』이란 수필집을 냈다. 채 시인은 시집이나 수필집의 제목만 보아도 그의 문학적 안목과 품격을 느끼게 한다. 모두가 평범한 제목이 아니라 독특한 문학세계를 드러내는 세련된 아우라가 있다.
요즘은 시인도 많고, 시집도 많다. 그만큼 시가 생활화되고 대중화 되었다는 것은 이 각박한 시대에 반가운 일이나 문제는 중구난방으로 범람하는 시의 홍수 속에 시의 진가가 헐값으로 남발된다는 것이다. 사실 시의 본질은 시류에 영합하는 대중문화가 아니라 늘 시대를 뛰어넘고, 속된 현실의 욕망을 벗어나 보다 진실 되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예언하는 광야의 목소리라는데 있다. 그러기에 시는 언제나 진지해야 하고 엄숙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풍요롭고 감동적인 노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일찍이 박용철 시인은 그의「시적 변용의 길」이라는 글에서 시는 곧 시인의 삶 자체이자 유일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일이 있다.
“너는 먼저 쓴다는 것이 너의 심령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박고 있는 일인가를 살펴보라 그리고 밤과 밤의 가장 고요한 시간에 네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것을 쓰지 않고는 죽을 수밖에 없는가.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죽어도 못 배길 그런 내심의 요구가 있다면 그 때 너는 네 생애를 이 필연성에 의해서 건설하라” 이 엄숙한 경고를 명심하면서 시인임을 자처하는 오늘의 많은 시인들이 정말 쓰지 않고는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적인 필연성이나 절박감을 가지고 시를 쓰는 것인지, 그리고 시를 쓸 때 자신의 심령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박고 있는 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오늘의 시인과 시를 비판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그만큼 오늘의 많은 시인들이 대중화 세속화에 영합하여 시의 본질이나 시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사례가 너무나 많음을 염려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혼잡한 시단의 타락에서도 불구하고 의연히 시의 본령을 지키고, 진지하고 엄숙하게 그러면서도 풍요로움이 있고 ,성숙함이 있고 영혼의 자유로움이 있는 시에 열중하는 시인이 있음을 기쁘게 생각하며 채영선 시인 또한 그러한 시인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반가운 마음을 금치 못하기 때문이다.
채영선 시인은 이번 시집 제목을『향연』이라 했다. 그리고 향연이란 말은 이번 시집에 수록된 한 작품의 제목이기도하다. 향연이란 아주 성대하게 벌어진 잔치를 말한다. 잔치라면 음식관계를 생각하는데 사실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축하하고 즐기는 모든 행위는 모두 향연이 된다. 그러기에 플라톤은 여러 철인들이 모여서 에로스에 대한 토론을 벌리는 것을 향연이라고 했다. 향연은 축하할만한 주제가 있고, 모두가 즐거워할 수 있는 사건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번 채 시인이 상상하고 있는 축하할만한 주제는 무엇이고, 시를 통해서 함께 즐거워하고자하는 시적 콘텐츠는 무엇일까.
그는 서문에서 낙엽소리가 들리는 가을이지만 오히려 가을을 기다리는 것은 여름에 정열을 나눠준 태양으로 옹골진 결실에 대한 기대, 수고와 헌신을 아끼지 않는 마음이 텅 빈 거리와 산골짝 들녘, 그리고 허허로운 우리의 가슴에 채워지는 풍요로운 사건을 은혜로운 향연의 메아리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이번 시집에 담고 있는 작품 「향연」은 구체적으로 어떤 시적 향연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일까.

아그네스, 듣고 있니
어금니 푸른 어둠을 뚫고
별 하나 별 둘 불붙이는 소리
잠들어 마른 가지 위에
파식파식 심어지는 불꽃

아그네스, 듣고 있니
사륵사륵 가시나무
옷자락 끄는 소리
낮은 무릎으로 가을 지피는
멀고 먼 발자국 소리

아그네스, 듣고 있니
품고 다듬어 삭은 전설
금빛으로 타오르고
사나운 들풀마저 물들이면
황금 신전으로 달려가는 소리

아그네스, 보고 있니
뜨락에 찾아온 애꿎은 사랑
뼈아프게 흩어진다 해도
꺼진 불꽃으로 재가 되어도
떨어지는 것이 아름다운 계절

아그네스, 듣고 있니
후드득후드득 조각나는 심장
달빛에 여울져 타는 기다림
작은 별 하나 머물기 전
빗살에 멍울지는 가을 소리소리
- 「향연」전문

인용한 작품「향연」은 시적 화자가 아그네스라는 시적 청자에게 질문하는 돈호법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돈호법은 어떤 대상에게 말을 걸어 강한 정서적 환기를 요구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아그네스는 특정 인물일수도 있지만 사실은 자신을 포함안 모든 대상들에게 어떤 사실을 보다 강하게 환기시키고자하는 화자의 간절함을 대신하는 이미지일수도 있다. 그만큼 이 시는 시적 화자가 경험하고 있는 향연의 감동을 모두가 공감하고, 함께 축제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내심을 지니고 있다.
시적 화자는 먼저 아그네스에게 듣고 있느냐는 도치법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렇게 듣고 있느냐는 질문을 1연, 2연, 3연 그리고 5연에서도 반복되는 강한 리듬까지 조성하고 있다. 따라서 듣고 있느냐는 질문은 역설적으로 들어라, 또는 알아야한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무엇을 들으라는 말인가. 1연에서 들어야 할 것은 어둠을 뚫고 별 하나 별둘 불붙이는 소리다. 그런가 하면 마른 가지에 파식파식 심어지는 불꽃 튀는 소리다. 마치 연회장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처럼, 축제의 장을 여는 불꽃놀이처럼 이 작품의 향연은 불꽃쇼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 불꽃놀이는 어둠이란 시간적 배경과 마른나무 가지라는 공간에서 일어난다. 여기서 어둠과 마른나무가지는 2연에서 가을이라는 계절을 명시함으로 모두가 싱싱한 여름을 지나 가을로, 생명력이 넘치는 시간에서 쇠락의 시간으로 전환하는 시간과 공간인 것을 암시한다. 그런데 시인은 이 쇠락의 시간에 오히려 어둔 밤에 불붙는 별의 소리를 듣고, 마른 가지에게 파식파식 타오르는 불꽃 튀기는 소리를 듣는다.
2연에서는 황홀한 불꽃 튀는 소리에 이어 발자국 소리를 배치하지만 3연에서는 다시 축제의 향연으로 돌아간다. 삭은 전설이 금빛으로 타오르고 사나운 들풀마저 물들어 마침내 황금신전으로 달려간다는 향연의 절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5연에서는 애꿎은 사랑이 뼈아프게 흩어짐을 말하고 있고 꺼진 불꽃으로 재가 되어도 떨어지는 것이 아름다운 계절이라 했다. 그렇다면「향연」의 표면적 의미는 단풍이 주는 황홀한 자연의 축제이면서도 마침내 낙엽으로 지는 계절의 무상함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4연의 마지막 행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름다운 계절이라는 말은 결코 쇠락이나 소멸의 무상함이 아니라 소멸의 아름다움이다. 따라서 계절도 인생도 가을은 슬픔 소멸이 아니라 황홀한 소멸이 된다. 여기에 채 시인의 이번 시집「향연」이 보여주는 가을 축제의 진정한 미학이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래서 그의 가을 축제는 쓸쓸하게 끝나는 향연이 아니라 아름다운 향연이며 행복한 축제가 된다. 그리고 이처럼 떨어지는 것이 아름다운 계절은 5연에 이르러서도 절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달빛에 여울져 타는 기다림이 되고 작은 별 하나가 머물기 전의 멍울지는 가을 소리가 된다.
채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가을을 소재로 한 시들이 많다. 그리고 그 모든 가을의 시들이「향연」처럼 황홀한 축제를 갖는 것은 아니다. 소멸에 대한 아쉬움도 있고, 쓸쓸함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쉬움과 쓸쓸함마저 거대한 자연의 향연이며 향연이야말로 더 크고 넓은 신의 섭리라는 관점에서 보고 있다. 그러기에 향연은 가을 단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봄 · 여름 · 가을 · 겨울, 어느 때나 이루어지는 자연의 잔치라는 데 시인의 놀라운 시적 혜안이 있다. 

마음껏
흩날릴 거야
눈치껏 흔들리면
가로막는 건 없어

잠간
숨을 멈추어야 해
머금은 만큼
아프게 서야 하니까

무지개 이고
날아갈 거야
은빛 거울 속으로

숨 막히도록
반짝이고 싶었어
보석이 되고나면
끝내 사라져야 하겠지만
- 「봄비」전문

그대가 있어
향기로운 그늘을 보았습니다
뿌리 없는 소음을 몰고
휘돌아 여울지며 지나가는 시간
사라지는 환희에 담긴 짙은 어둠을

그대가 있어
못다 핀 것이
아름다운 것임을 알았습니다
떨리는 어깨 감싸 안아주는
미완성 속에 출렁이는 완전함을

그대가 있어
가시의 침묵을 보았습니다
불타던 해거름 속
수군거리던 발걸음 흩어져 가면
하나 둘 별 세고 싶은 마음을

그대가 있어
미덕의 의미를 배웠습니다
-「장미, 그대」전문

눈이 오네요
하늘도 땅도 지워지네요

아쉬운 손길에 제금 나던 파밭
비스듬히 저울질하던 산 겨드랑이
돌고 돌아 어딘가에서 스러질 산길
우두커니 입 벌린 쓰리기통 하나
길모퉁이 가난한 현수막 너나없이 사라지네요

멀리 있어 그리운 것부터
너무 가까워 겸연쩍은 것까지
잊지 않고 찾아오는 질긴 외풍에
지친 몸매 감추고 싶은 마지막 계절

모아둔 별빛 구름자락 묵직해지면
흔들어 털어내는 은빛 추억가루
연인들 어깨 위에 흩어지는 꽃잎처럼
해끗해끗 날리며 손짓하면서
지워버리자고
덮어버리자고
때로는 못 본 척하라고 하네요
-「겨울 이야기」

「봄비」에서도 아름답고 강렬한 향연을 확인하게 된다. 의인화되는 봄비의 독백은 “무지개 이고/ 날아갈 거야/ 은빛 거울 속으로” 치닫게 되고 마침내 “숨 막히도록/반짝이고 싶었어“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런데 보석이 되고 나면 끝내 사라져야 할 것을 예견한다. 이는 앞서 「향연」이 갖는 황홀한 축제와 소멸의 아름다움이 여기서도 확인되는 그의 시적 미학이다. 이러한 시학은 여름의 「장미, 그대」에서도 나타난다. 1연에서 ”그대가 있어/ 향기로운 그늘을 보았습니다“라고 했다. 향기로움은 장미의 아름다운 세계이지만 동시에 그늘이 있는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1연의 마지막 행에서는 “사라지는 환희에 담긴 짙은 어둠을” 보완하여 장미의 빛과 그림자, 향연의 빛과 그림자, 지상의 모든 아름다움의 빛과 그림자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2연에서는 차라리 봉오리 시절이 더 아름답고, 미완성 속에 출렁이는 완전함을 상상하게 된다. 따라서 장미는 단지 아름다운 한 송이 꽃이 아니라 향기로운 그늘을 보게 하고 못다 핀 것이 아름다운 것임을 알게 하고 가시의 침묵을 보게 하고 마침내는 생의 미덕을 배우게 까지 하는 진실이 되고 교훈이 되는 진지한 언어가 된다.
「겨울 이야기」에도 축제가 있고 향연이 있다. 하얀 눈으로 하늘도 땅도 하얗게 지워지는 축제가 있고 향연이 있다. 그러나 4연에서 보듯이 “모아둔 별빛 구름자락 묵직해지면/ 흔들어 털어내는 은빛 추억가루/ 연인들 어깨 위에 흩어지는 꽃잎처럼/ 해끗해끗 날리며 손짓하면서“ 지워버리자고 덮어버리자고 못 본 척하라고 속삭이는 겨울의 은밀한 밀어를 들으며 결국 황홀한 축제와 소멸이라는 빛과 어두움의 역설을 여기서도 확인하게 된다.
이처럼 채시인의 일 년 사계는 그 나름의 축제가 있고, 향연이 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스스로 기뻐하듯이 지상의 사철과 자연들은 언제나 아름다움과 소망과 충만함으로 가득한 축제의 향연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시인은 그 축제의 향연을 다양한 메타포와 리듬을 통하여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의 자연이나 지상의 시간들은 늘 화려함의 뒤안길에 사라져가는 소멸의 그림자가 드리워있다. 그래서 지상의 향연은 늘 미완의 축제가 된다. 그렇다면 온전한 향연은 무엇일까. 결코 그림자가 없는 온전한 향연, 시인은 그래서 그런 향연을 함께 다시 모색하게 된다.

몸과 마음 무거운 겨울을 지나
먼 산기슭 봄이 기웃거릴 때
가슴에는 아지랑이 피어오릅니다
하얀 눈 속에
하얀 꿈을 이고
하얀 밤을 세며 기다리다가
하나씩 머리 들기 시작할 자연
조형물로 가득 찬 세상에서
헛된 그림자에 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
한 줄기 빛을 찾아 나선 길
이름도 모르고
눈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헤어진 야생화와 들풀과
바위와 고목 앞에서
미로를 헤매는 가난한 욕망에게
인내와 절제의 미덕을 가르쳐주고
결실의 계절에 찾아오시는 그분 앞에
아름답고 소담한 열매 가득한
마음 바구니 내어드리고 싶습니다
- 「못다 한 고백」전문

이제야 알았습니다
가로등 잠든 새벽
울타리 향나무 가지 안에서
아침을 깨우는 작은 새 소리
하루를 여는 찬양인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다그칠 수 없는 시간
잠시 멈추어 선 광야 끝
반짝이던 순간 멀어져갈 때
기억하라는 그날의 약속

이제야 알았습니다
기우는 골목 꽃 진 자리
아물지 못한 상처마다
당신이 키우신 열매
알알이 익어 기쁨이 되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혼돈의 하늘 파닥이다가
까만 가슴 채우신 당신의 말씀
머뭇거리던 이 자리
끝내 등불이 되어주시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기어도 즐거운 들짐승처럼
죽은 듯 살아 한마음
그제야 이르는 약속의 땅
온전한 사람으로 거듭나라는
-「당신의 뜻」전문

여기까지 참으셨지요
여기까지 돌아보셨지요

창공을 질러
이마를 비추는
빛나는 보좌 앞에
기다리며 서계신 주님

날아오르는 찬양의 선율
아름다운 곡조와 노래
온 땅에 울려 가득
일렁이며 춤추는 나뭇잎과 꽃송이

스며들어 거룩한 안개처럼
흘러 적시는 생명수 강가에서
짝을 지어 나는 새들처럼
찬미로 채우는 영혼의 바다

하늘과 구름의 휘장 너머
수정 보석 반짝이는 집
-「거기까지」전문

「못다 한 고백」을 보면 그의 향연은 겨울을 지나 먼 산기슭 봄이 기웃거릴 때부터 시작한다. 가슴에는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온갖 자연들이 하나씩 머리를 들기 시작하면 자연의 축제는 무르익는다. 그러나 시적 자아는 조형물로 가득한 인위적인 문명의 현실에서 헛된 그림자에 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미로를 헤맨다. 여기서부터 자아의 영혼은 한 줄기 빛을 찾아 길을 묻는다. 그 때 야생화와 들풀과 바위와 고목들이 인내와 절제의 미덕을 가르쳐 준다. 그제서야 시적 자아는 결실의 계절에 찾아오시는 당신 앞에 아름답고 소담한 열매 가득한 마음 바구니를 내어 드리고 싶다는 고백을 하게 된다. 바로 자연의 향연에서 인생의 궁극적인 향연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자연의 향연, 그리고 인생의 궁극적인 향연이 무엇인가. 그것은 당신의 뜻을 아는데 있다. 조물주의 뜻, 창조주의 뜻,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에서 인간을 창조하시고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하신 그 보시기에 좋았더라와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신 하나님의 독백과 기쁨이 바로 당신의 뜻이고 향연의 진정한 의미가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시인은「당신의 뜻」에서 “이제야 알았습니다”를 연발한다. 1연에서 아침을 깨우는 작은 새소리는 하루를 여는 찬양임을 안다. 여기서 찬양은 지상의 노래이며 동시에 천상의 노래가 된다. 2연에서는 유한한 지상의 시간에서 반짝이던 순간 멀어져 갈 때 오히려 그날의 약속을 안다고 했다. 지상의 향연은 모두가 황홀하지만 이내 소멸하는 허무가 있다. 그러나 천상의 향연은 영원한 황홀의 약속이다.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3연에서는 지상의 낙화도, 상처도 모두가 당신이 키우시는 열매이기에 그 은총의 기쁨을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4연에서는 자연을 비와 햇빛과 바람으로 키우시지만 인간은 당신의 말씀으로 키우신다는 것이다. 말씀은 까만 가슴을 채우고 끝내 우리의 등불이 된다. 그러니 기어도 즐거운 들짐승처럼 오직 한 마음으로, 온전한 사람으로 거듭나야 약속의 땅으로 갈 수 있다는 인생의 궁극적인 향연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약속의 땅, 인간의 온전한 향연은 어디서 이루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여기가 아닌, 거기가 된다.「거기까지」가야만 한다. “창공을 질러/ 이마를 비추는/ 빛나는 보좌 앞에/ 기다리며 서 계신 주님”의 세계, 찬양과 아름다운 곡조와 온 땅에 가득 일렁이며 춤추는 나뭇잎과 꽃송이, 생명수 강가에서 찬미로 채우는 영혼의 바다, 하늘과 구름의 휘장 너머 수정 보석 반짝이는 집, 바로 그런 세계로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온전한 향연의 완성이 된다.
시인이란 무엇인가. 단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럴듯한 말재주로 묘사하는 기술자인가. 그러나 아무리 자연을 묘사한다 해도 자연 그 자체만큼 아름다울 수 있는가. 성경에서 예수님은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는 것이 이 꽃 바로 백합화 하나만 갖지 못하다 하였다. 그렇다. 인위적인 것, 문명적인 것, 시적인 것, 아무리 치장하고 묘사하고 흉내 내도 들에 핀 백합화 한 송이를 따를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다면 시인이 진정 고민하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은 자연의 겉모습이 아니라 자연의 내면에 숨어 있는, 진실을 발견하는 일이다. 자연을 통해서 들려주는 우주의 소리, 바로 조물주의 섭리를 깨달아야하는 것이다.

이처럼 채영선 시인의 이번 시집 『향연』은 사계절이 펼치고 있는 축제를 감동적으로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의 향연이 갖는 황홀한 소멸을 연민하면서 보다 온전한 향연은 지상과 천상이 함께 어우러지는 당신과의 향연인 것을 예언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채시인의 품격이 있고, 감동이 있고, 시적 구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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