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리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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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리듬

제2장  물의 리듬


 제1절 물에 마음이 비추인다

물에는 사람의 마음이 비추인다. 아름다운 생각을 하면 물이 아름다운 결정체를 만든다. 물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 물은 살아 있는 증거로 숨을 쉰다. 그러나 이 물이 아무리 몸 안에 들어온다 하더라도 목숨은 하나님이 살리셔야 한다.
시인은 물로 그리움의 시를 쓴다. 말, 말씀으로 초월의 시를 쓴다. 이때 물은 단순한 물이 아닌 2차적 의미로 바뀐다. 시의 특성이다. 바로 물이 쌍수인바 이 물로 하나님은 깨끗한 물을 바라셔이다. 이 사역을 시인이 담당한다. 물은 시적으로 말하면 1차적으로 물리적인 먹이 물 생수이고 2차적 의미로는 생명수로 바뀐다. 이 물은 먹는 문제이다. 마음의 문제이다. 물에 마음이 비취이면 사람의 마음도 비추인다.

1. 물의 신학과 문학


사람은 물을 마신다. 하나님은 깊은 수원에서 만들어 내시는 그의 물을 그의 백성에게 흡족히 마시우신다. 인체는 70%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서는 매일 2.5ℓ의 물을 먹어야 한다. 한꺼번에 많이 마셔도 안 된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매 식사 시 1컵 30분마다 1 4컵씩 마시면 좋다. 늘 하나님은 물의 분량을 정하신다. 물은 마신 후 30초가 지나면 혈액에 도달한다. 물은 1분후면 뇌조직과 생식기에 도달한다. 10분후면 피구 20분 후면 심장 간 신장 각종 장기에 영향을 준다. 사람 체중에서 물이 1~2%만 빠져 나가도 갈증 5%가 빠져나가면 반 혼수상태 만일 12%만 물이 없으면 사람은 죽는다. 성인이 하루 마시는 2750 제곱리터의 양을 역추적 하면 사람은 물 위에 떠 있다.
물로 된 사람은 글을 쓴다. 그 중에서도 마음의 정서를 드러내는 문학만이 가질 수 있는 물 말씀으로 작품을 쓴다. 하나님 흔적의 시다. 가면 즉,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의 흔적 사람은 진짜 사람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랑하는 글을 쓴다. 그만큼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 그러기에 자기가 잘난 양 우상을 섬기지 말라! 문학 이미지도 하나님 뜻 전하는 도구로 쓰인다.
진짜인 하나님은 자기를 절대적으로 들어내지 아니하신다. 다만 흔적을 남기신다. 여기에 문학의 중요 맡음이 있다. 문학은 이미지로서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한다. 말씀을 전달하는 글을 통하여 하나님의 천기가 누설되지 않게 문학으로 하나님의 흔적을 남긴다.
 하나님은 땅을 권고하사 물을 대어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하시었다. 정화수인 새벽우물 한천수인 찬물 국화 수 납설수인 섣달에 온 눈 물 추로수인 가을의 아침이슬 등은 사람에게 치유의 효과가 있다. 하늘에서 내리는 물이 어디에 내리느냐에 따라 전연 다른 작용으로 인간의 몸에 미친다.
문학에서는 물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 곧, 사물어를 통하여 사랑 이별 님 등으로 쓰여 진다. 곧 마음의 정서를 말 해 준다. 물은 주역 물 궤로 표시된다. 물은 스며든다는 의미이다.
물은 스며들며 흐르는 순리를 가진다. 물이 좋은 것은 흐르기때문이다. 마음도 물로 흐른다. 이퇴계는 인간본성을 찾는 성인의 진리 찾기로 상대방을 향한 경 철학에 두고 물과 관련한다. 철학과 문학과를 접맥하여 시를 썼다. 물이 흐르는 이치를 말한다.
물은 그리움의 정서이다. 그리움이란 물에 내 얼굴을 비추어 내는 맑은 마음을 말한다. 마음을 맑은 물에 비추어 보는 일이다. 물로 구성된 사람은 마음이 얼굴에 나타난다. 특히 사랑은 그리움으로 나타난다. 그리움은 미움이 아니다. 문학은 그리움이나 보고 싶음을 표현한다. 사랑에 대한 맑은 마음 절절한 진실 이 밑바탕에는 상대방에 대한 절절한 존경과 그를 향한 경사상이 있다.
물은 언제나 앞서거나 다투지 않는 포용력을 가진다. 바다는 흐린 물이거나 탁한 물이거나 가리지 않는다 海不讓水.
. 물이 마음과 긴밀성을 갖는 것은 문학이다. 물의 2차적 이해는 마방진과 관련된다. 황하의 지류 낙수강에서 올라온 거북이 등에 그려진 그림과도 관련된다. 숙종 때 최석정은 구수략에서 물은 도에서 생긴다 했다.
물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비 눈물 시냇물 홍수 이슬이 된다. 어디에 담기느냐에 따라 강 바다 우물 샘 비 구름 물동이 물그릇 물병 물 잔이 된다. 마음에 담기면 마음의 물 눈물 그리움의 문학이 된다. 물은 마음을 전달한다.
시는 시적으로 은유된 상상력이다. 물의 상상력은 우리를 맑은 물이 되게 깊은 물이 되게 한다. 느끼는 상상력은 사물을 보며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적은 의미를 부여한다. 빨간 색을 보는 감정과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바라보는 마음은 다르다. 아름다운 순결을 체험한다. 흰 눈과 검은 눈에서 무게는 느낌이 다르다. 시인이 대상을 바라보며 감사한 마음이면 꿈꾸는 행복의 미학이 된다. 물은 늘 스며들어 언제나 시인에게 늘 스며 아름다운 시가 되게 한다.
아름다운 마음은 행복이 샘솟는다. 좋은 물을 먹으면 아름다운 시가  태어난다. 좋은 말씀을 먹으면 새로운 삶이 된다. 물위로 걸어갈 수 있다. 하늘로 솟을 수 있다. 물은 늘 수직적으로 흐른다. 하늘로 오르거나 땅으로 떨어진다. 늘 물속이다. 말씀 속이다. 시 속이다.
본 연구자는 우리나라의 대표 시집 50권을 자료로 연구 한 바 조운 시조는 물 시어로 물은 조운 시조에서 무려 14회 쓴다.

사람이 몇 생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이나 전화해야 금강의 물이 되나 금강의 물이 되나
샘도 강도 바다도 말고 옥류 수렴 진주 담과 만폭동 다 고만두고 구름 비 눈과 서리 비로봉 새벽안개 풀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연주 팔담 함께 흘러
구룡연 천척절애에 한 번 굴러 보느냐                 
  조운의 「구룡폭포」

조운 시조의 「구룡폭포」는 물 샘 강 바다 옥류 진주 담 구름 눈 서리 새벽안개 이슬 구슬구슬 팔담 구룡연으로 14회 변화한다. 이 14회는 7의 반복 리듬으로 문학과 신학이 연결 되게 한다.

2. 정서

성경의 2회 자리는 예수님 족보와 관련된다. 마음이 물로 하여 신학과 문학이 같게 한다. 1차적 의미에서 2차적 의미로 이동 마음이 담긴 초월성으로 한다.
소설가 김동리는 무녀도에서 모화가 욱이의 예수 믿음 때문에 아들을 죽게 하고 모화도 물에 빠져 죽는데 오직 십자가를 설명하기 위해 물이 재생이미지이게 했다. 불교 시인 서정주도 물의 변화를 지니는 기독교적 특징을 찾았다. 마음을 다시 고쳐먹는 물을, 말씀을 통하여 시인은 님을 대신하는 비나 눈물로 언어를 바꾸면서 그리움의 정서를 드러낸다.
그리움의 정서는 사람의, 시인의 삶을 살찌운다. 마음을 너그럽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즐거웁게 하고 그리고 눈으로 보는 모든 사물을 좋은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눈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눈이 아름다운 사람은 일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모든 것이 고마웁고 그리고 무엇이든 베풀고 싶다. 가지지 않아도 배부르다.

가만히 오는 비가
락수져서 소리하니

오마지 안흔이가
일도 없이 기다려져
  최남선 「혼자 안져서」에서

그대 그리움이
고요히 젖는 이 밤

한결 외로움도
보배냥 오붓하고

실실이 푸는 그 사연
장지 밖에 듣는다                         
  이영도 「비」

물의 성질을 가진 비는 1차적 의미에서 그리움이라는 2차적 의미 눈물로 시인이 바꾼다. 시인은 시적 화자와 그리운 대상과의 연결을 그리움, 보고 싶음의 2차적 의미로 비를 통해 바꾼다.
최남선의「조선 유람가」는 무궁화를 상징성으로 한다.
다음은 「조선 유람가」이다.

한 팔을 남南에 던져 금수삼천리
무궁화 향내 덥힌 대조한반도
산아니 놉흐시냐 물이 곱고나
백화가 얽흐러 진 문화의 동산               
  최남선 「조선 유람가」

시적이 될 수 있거나 그렇지 않는 차이는 특히 물을 소재로 할 경우 시적이 되는 그리움이라는 마음의 정서로 바뀌어 진데 있다. 우리 시인 50시인 중 한용운시인의 순수 유추는 64%이었다. 한용운의 님은 186회 그리운 것은 모두 님이다. 사랑하는 여성을 위해 암자에서 쓴 시라는 이야기가 구전되지만 당시 나라 잃음 서러움을 극복한 의미로서 은유 이영지, Ibid.
된다. 김소월
시도 사랑하는 여성과의 이루지 못할 사랑을 ㄱ음가로 한다. 「산유화」시에서 김소월은 마음속의 울음을 우리나라의 문학 정서를 영원성으로 한다. 좋은 시일수록 2차적 의미가 시에는 있는게 시의 묘미이다.

1). 물과 마음자리의 정서

김영랑이『영랑시집』의 7항을 “눈물에 실려 가면 달빛으로 눈물을 말릴 가 보다"로 묘사했다. 이슬처럼 고운 눈물의 주인공이 된다. 갖 결혼한 아내와의 사별 때문에 시인의 눈물이 깊은 정서 자리로 잡아서이다. 눈물의 영롱한 이슬시학이다. 눈물이 하늘로 향해 오르는 불꽃이 된 순수한 마음의 눈물이다. 박목월의 “(가시내사 가시내사 가시내사)”의 눈물은 카타르시스의 눈물로 내면의 목소리를 낸다. 
퇴계는 마음을 잘 다스리는 방법을 물로 표현하였다.
 
저 푸른 맑은 안개 앉았는 땅을 사서
드맑은 시냇물을 가까이 옮겨 왔다
서로들 깊이 사랑할 물과 돌이 사는데 
    이황의 『퇴계집』 「계거잡흥」에서 필자 역

퇴계는 시냇가의 외딴 집으로 옮겨가서 살았던 이유를 순응하는 물의 순리로 묘사한다.  깊은 철학으로 승화한다. 자연 속에 있는 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 사상이 도출 된다.
하나님의 흔적을 퇴계는 파아란 물의 마음안정으로 한다.

이슬의 파아란 풀 물가에 제잘제잘
아아주 작은 연못 모래도 안 보이고
저 새는 하늘 구름 드날며 오가지만
제비가 맑디맑은 물결칠까 정말정말 두렵다 
  이황『퇴계집』 필자 역

물이 파아랗다는 히브리어가 그 본산지다. 파아라 파아라아, 푸르게 푸르게 등이다. 물로 마음을 얻는 마음의 행복 향기로 한다. 퇴계는 이 理의 값어치를 극히 높고 상대가 없으며 명할 뿐 명을 받지 않는 절대의 상재적 흔적으로 한다. 하늘 뜻을 받드는 경 철학은 한걸음 뒤로 물러서 마음의 물로 성리학적 전통의 하늘과 사람 관계를 하늘의 명령을 받은데서 본다. 이 성 性이 하나의 이 理라는 본체론을 깊은 물에서 건져낸다.

2). 수 5와 히브리어 숨 쉼 자리

하늘에 대한 경외심이 이퇴계에서 발견되는 것은 천리를 지킨 신앙적 성격에 가깝다. 숨쉴 수 있어서이다. 거경 궁리론을 내세운 퇴계의 경외철학은 하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거의 신앙적이다. 심心 성性 정情의 문제를 하늘로부터 받은 명령이라 받든다. 그래야 사람의 숨 쉼으로 보는 하늘의 명령 절대시의 경敬 철학은 가히 신앙적 차원이다. 곧 태극보다 더 높은 위치에 계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다. 태극이라 한 이 퇴계의 마음 한가운데에는 사랑이 앉아 있다.
수로는 5이다. 색채는 황색이다. 땅의 숨 쉼 어머니의 마음의 중심자리이다. 히브리인들은 항상 그 중심부에 하나님을 두었다. 문학에서도 마음의 중심 자리에 절대자가 있다. 이 흔적은 5의 자리이다. 숨 쉼의 헤 이 마음 중심자리는 사랑이다. 사랑에 아파하는 마음이다. 아프다, 아파의 아파는 엎드리다와 엎어지다이다. 한국어와 히브리어가 같다.

(1) 우리나라 전통 시 시조와 그 둘레

우리는 누구를 부를 때 야하고 부르거나 기분이 아주 좋을 때 두 손을 높이 들며 야! 한다. 이 야가 여호와의 준말 야이다. 이 야 야 의미소는 숨 쉼이고 수치는 5이다. 한국 시조 초 중  종장이 각기 15자인 것의 의미 핵 5이다.
시조는 생명력을 지닌 리듬 15자수 초 중 종장이 합하여 45 자수이다. 5 중심으로 한 2차적 의미 5의 3회 리듬이다. 이상 시 문장 수 5의 리듬에서도, 대한민국 5월도 생물이 잘 자라는 때이다. 밀로의 비너스상과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과 파르테논 신전에서 발견되는 황금 분할 비율 오각형 3등분 가장 짧은 선과 긴 선의 비율 황금분할비율이다. 피타코라스는 신을 1,  2를 남자, 3을 여자, 2+3은 결혼이라 했다.

(2) 시조와 시와 성경의 동일성

시와 시조의 가장 큰 장점은 은유이다. 시조와 시와 성경의 동일성이 되는 원동력은 모자람에서 일어나는 신비 별 모양의 오각형이다. 조화와 아름다움, 즉 미학의 서정성이다. 이 서정성 오각형의 신비는 완전한 도형 안의 오각형이 그 예이다. 한 원은 절대 상징인데 이 안에서 피어나는 우주의 신비의 유추는 오각형 리듬이 말해 준다.
문학에의 접근은 문학이 그리움을 전제로 한 즉 한 원안에 오각형이 상징하는 모자람의 미학을 전제로 한다. 오각형은 별 모양이 그 예이다. 별은 문학 특히 시와 시조와 그리고 성경에서는 한 별을 예칭하여 예수그리스도를 지칭한다. 시인들은 이 별을 그리운 대상의 사물화로 지칭한다. 한용운은『님의 침묵』에서 당신을 296회 시인 홍문표는 『늘 푸른 강물이듯이』에서 당신을 51회 사용한다. 홍 시인은 기독교 시인답게 1, 2, 3, 4, 5, 6, 7, 8, 9호에는 당신 시어가 없다가 10호에 가서야 처음으로 당신이라 부른다. 만해가 하나의 점이 곧 우주의 원리와 통하는 동심원의 원리 불교적 관점이라면, 동천은 기독교 시인으로서 믿음의 하나님에게 대한 존칭으로 호칭을 5부로 은유했다.
오각형에 대한 5의 개념은 오월과 시인 시집을 5부로 나눔 등이 그 예이다. 이의 설명은 홍문표 시인의 경우 시는 먼 훗날 다시  지상에서 당신이 15회이다. 5의 3번을 이루는 내재적 리듬이다. 당신의 전체리듬은 5 5 10 5 5 10 3 3의 흐름을 지닌다. 곧 5 5 10, 5 5 10의 반복 리듬이고 3 3 또한 3의 반복 리듬이다. 곧 10 10 10 3 3의 리듬이고 5로 구분되는 리듬이다. 내재율 리듬의 수 5와 10의 의소는  성경의 생명에 대한 의미지수 헤 5의 숫자 개념 5의 반복 리듬이다. 시적 신화소 5는 엄원식의 수비학에서의 5와 연계되며 윤태주의 마방진 중심수 5와 비교된다. 히브리 수 5는 헤 로 숨 쉼 의미다.
5를 가운데로 한 마방진이다. 이상 시 「시제 5호」는 신의 존재에 대한 절대성이 2차적 의미로 된다. 하나님이 그 의미를 생명이 잉태되는 흔적으로 하였다. 이상시「시제 5호」는 안으로 숨어든 시적 화자가 동 서 남 북의 흔적을 제하고도 살아남는다. 4각 모서리들이 떨어져 하나님이 생명을 살리심을 뜻하는 숨구멍이 있다. 사방 알아봐 네 모서리 뚫린 안에서 살아남는다.
  그림 넷 모서리마다 다 뚫려 있다. 이토록 신비하게 뜻을 전한다. 그리고는 제목을 시제 5호 ‘전후좌우를 제하는 유일의 흔적에 대하여’라고 했다. 이토록 숨쉼의 흔적이 찾아지는 데는 성경 히브리어 5 수치는 숨 쉼 의미 헤  이다. 천재 이상은 그림으로도 모자라 문장 수 또한 5회로 한다.

3). 17과 유월절과 생명살림의 신비

하나님이 만든 세상을 스스로 좋았더라 하시는 감탄은 우리나라 시조 종장에서 감탄의 3글자로 구성된다. 이 감탄의 자리가 5째자리이면서 17의 의미지수이다.
신성 수 17은 신성수다. 시조와 이상 시에서 발견된다.
 이상 시 오감도에서 문장 수 5오감도 시제 9호 5오감도 시제 11호 5오감도 시제 13호는 수직리듬 15로 합이 15가 되면서 양옆으로 각기 10호와 6호에서 각기 6회의 문장수로 하여 이상 시에서 17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다시 13호의 5회와 14호에서 문장수가 12로 하여 합이 17을 만들어 낸다. 
이상 시에서의 중앙 자리가 되는 문장회수 5와 배치 자리 값에서 문장회수 17이다. 이는 신학신성수와 밀접하다. 곧 좌 우 균등의 합수이다. 문장 회수 5가 자연스레 중앙에 오면서 그 좌 우 균등 배열에서의 문장 회수 합계 17이다.
성경에는 신성한 수비학 숫자 17이 있다. 영국 에이레 리머릭과 시조 비교 연구에서도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기독교 시인 홍문표 시에서도, 17의 신비한 하나님 나의 존재는 당신시어보다 17회가 더 많다. 17은 연금술이다. 17은 유월절 정월 십사일과 3일 후의 17일 즉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자와 타임머신을 탄 정월 14일과 부활 후의 3일을 합한 숫자이다. 17일은 유월절 정월 14일을 지난 3일이 더해진 데에서이다. 유월절 후 어린양을 잡는 날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날 17일은 하나님이 생명을 살리시는 날이다. 이 17의 신비는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람 이름을 아브라함이라 하라 하시었고 사래를 사라라하라 하시었다. 그리고 할례를 행하라 하시었다. 1에서 17까지를 더하면 153이다. 베드로는 고기를 153마리 잡는다.
물 위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신 흔적은 17인데 이 17이 이상 시 「오감도」10호 11호 13호의 문장 수가 6 + 5 + 6= 17수에서 찾아진다. 이 17은 이상시 오감도의 시적 화자가 손으로 사수하며 홍수를 지킨다. 그런데 그 리듬이 좌 우 균등리듬이다. 의미리듬에서도 하나님의 손에 의한다. 바로 비둘기 12호는 평화 상징이다. 수직 리듬의 손 9호 손 11호 팔 13호로 홍수를 막는다. 노아 홍수 때 애굽 군대들이 하나님 백성들을 쫓아오자 하나님은 맞불로 막았듯이 이상 시도 아주 큼직한 손 15호 시어로 한다. 하나님 손 곧 큼직한 손이 시적 화자에게 악수를 청한다.

3. 향기와 이슬
 

죽을 수밖에 없는 시적 화자 이상에게 시를 통해 악수를 청하는 분은 하나님만이 가능하다. 오늘날도 여전히 우리 인간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이다. 향기가 있다. 손짓을 받은 시적 화자 이상 시인이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다.
홍문표 시인 또한 당신을 처음과 끝 3회의 감탄 의미로 한다. 진리에 대한 동경으로 시적 화자 나는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존재  하이얀 꽃  보석  장미  빠알간 사랑 순서로 이동을 한다. 뜨거운 심장에서 사랑이 피어난다. 예수님의 자리를 시적 은유로 시인은 1차적 평안에서 2차적 너를 위해 죽는다로 이동 하나님을 향한 절절한 사랑을 극대화 시킨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늘 하나로 강조된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강 하나는 늘 푸르게 흐른다. 이 푸르게가 바로 우리말 그대로 푸르게이다. 하나님의 강이 푸르게 흐른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강이 푸르게 흐른다. 이 하나님의 강은 성경 전체에서 단 1회 사용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나의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역시 1회이다. 라헬이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나의 부끄러움을 단 한 번에 없앴다에서도 완료형 시제로 한 1회뿐이다. 예수님의 한 번 뿐인 십자가 의미이다. 이 하나는 참으로 유일한 성경의  절대존재를  지시한다. 하나님의 강이 푸르게 흐르는 강은 절대 사랑의 타자성이다. 14호에서 모자14호를 벗어 은혜를 받는 것으로 표시된다.

1). 향기

우리나라 문학에는 춘향이가 있다. 사랑 향기이다. 청춘 남녀의 봄 향기가 나는 나이는 18세이고 그 의미 자체가 봄 향기이다. 봄 향기는 1000리나 가기 때문에 아무리 먼 곳에서도 젊은 남녀들이 자기 짝의 향기를 찾아 서로 달려 만난다고 이세보는 말하였다. 춘향전은 우리나라의 문학정서 그 자체이다. 영국의 에이레 지방의 리차드 러트는 춘향의 향기를 리머릭 시조 형식을 빌려 창작하면서 외국인의 입장에서 우리나라 사람 춘향 향기를 맡았다.
그리고는 시조 형식의 에이레 지방의 속요로 창작하였다.

Spring fragransce, the pride of Nam won,
Rejected all mail hengrers on
till one day in spring
With a rich and then it wason
  Richard Rutt The Korean tome, 1971, 11. 6.


남원의 춘향이는 뭇 남성 거절하고
어느 날 봄 속으로 헤엄쳐 잠기누나
님과 만 한데 어울려 사랑 속에 잠기네   
  이영지 시조작품으로 번역

동 서 고금을 통하여 사랑받고 있는 춘향이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춘향 즉, 봄 향기 춘향전에도 있다.
황진이도 향기를 시조로 표현하였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웨라
명월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황진이

황진이의 “청산리 벽계수” 시조는 청산 속에 있는 폭포수를 의인법으로 하여 실제적인 벽계수와의 사랑이야기를 달로 전해준다. 생명을 잉태하는 물의 향기의미는 달 속 이영지, “봄향기 리듬에 있다. 서정시인 황진이는 그녀의 달 속에 들어가 상대방이 쉬어가기를 원했다. 문학만이 가질 수 있는 달 향기다. 향기를 맡으면 물이 오른다. 사랑하는 관계가 되면 윤이 난다. 오른다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헨드폰 이름을 비롯하여 올레길이 유명하다. 제주지방에는 올레 길과 오름길이 있다. 해오름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상표로도 쓰인다. 우리들은 상대방을 향하여 올레한다. 꿈 가지고 오라는 뜻이다. 우리는 꿈을 들고 사랑하는 이에게 간 꿈은 일어서라는 의미다.

2). 이슬

꿈을 들고 사는 사람은 이슬을 먹고 산다. 이 이슬은 정화 이미지이다. 생명을 살린다.

찢어진벽지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이것은유계가연결되는비밀한통화구다 어느날거울가운데의수염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날개축처어진나비는입김에어리는가난한이슬을먹는다통화구를손바닥으로꼭막으면서내가죽으면앉았다가일어나드키나비도날라가리라이런말이결코새어나가지않게한다
  이상 「오감도」 시제 10호」
 
죽어가는 나비가 살아나는 이유는 입김에 어리는 가난한 이슬을 먹어서이다. 이 살아나는 문제는 신앙과 관련되어진다. 이상의 경우에는 정지용과의 친분을 생각할 때 카톨릭교와 관련되어 진다. 충분히 기독교적이다.
이슬과 기독교 문학과 관련성은 홍문표의 시에서도 나타난다.

나는 수줍은 장미 한 송이
별이 초롱한 시각이면
바람 부는 언덕에 올라
당신 창가에 머무는 피리를 불고
새벽이면 온 몸을 풀어
길섶에서 반짝이는 이슬이게 하소서
  홍문표 「늘 푸른 강물이듯이 16」에서

기독교 시인만이 가질 수 있는 특성, 하나님 그 분에게 서원하는 삶을 반짝이는 이슬로 한다.
문학에서는 이슬이 늘 향기를 가진다.

구름사이로 흐르는
달빛에 빛나면서
이슬이 타는 냄새라고
이렇게 아찔하게
달디 달 수 있을까
  고원 「백년에 한번」에서

이슬이 타는 냄새가 난다. 시인의 내밀한 경험에서 오는 이슬은 승화이미지다. 문학적 요술이기도 한 시인의 신에 대한 목소리다.

4. 문학과 신학의 그 2차원적 관계


  1). 이차원의 공통성

본 연구자는 원을 중심으로 하여 반드시 두 개의 쌍이 주역에 있음을 연구하였다. 쌍 리듬이다. 주역의 64궤는 커다란 하나의 큰 원을 그리면서 나란한 쌍의 선을 그린다.

 인류 전체가 느끼는 기능적 표현이 위 표에서 보인다. 각기의 쌍은 0도 30도 90도 180도의 관계에 있다. 30도는 평안한 자세이다. 예를 든다면 경주 불국사좌상은 바다를 30도 자세로 바라보면서 앉는다. 아기가 엄마 품에서 정서의 안정을 느끼는 각도이다. 아가가 젖을 먹는 30도는 하나님의 품에 안긴 하나님의 자녀들이 느끼는 안정성이다. 90도는 바로 옆 자리다. 부부는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일 수 있다. 가장 친밀하면서도 가장 소원한 관계 180도는 가장 먼 그리운 님이다.
한용운은 그리운 것은 모두 님이라고 하였다. 결핍된 요소들이 그리움이 되어 시의 소재로 등장한다. 이상은 오감도를 통해  처음과 끝 시어를 연결하면서 꿈의 세계를 표출한다. 원의 형성은 1호와 15호가 가장 가깝고 가장 먼 거리이지만 하나님의 “손”이 “악수”를 함으로써 이어진다. 하나님이 나와 악수하시면서 붙들어 주어야 살 수 있는 나! 이상 시인의 신앙의식이다.
이상 시 시제 15호에는 큼직한 손이 있다. 이 신의 손이 1호와 연결된다. 악수로서이다. 이상 시 시제 15호에서 아해라는 시적화자 내가 무서워하는과 1호에서 무섭다고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시적 화자 나에게 악수를 청하심이 15호이다. 이 연결되는 시의 특징으로 하여 1호와 15호와가 시어로 연결된다. 시제 15호에서 이상은 시적 화자의 목숨이 살아있게 한 이유를 큼직한 손 즉 내가 산 것은 큼직한 손이 나에게 악수함으로 써이다. 신의 뜻이다.

작가 이상은 시인의 개인적인 자유를 추구하지만 거부할 수조차 없는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시어 자신을 살려주심을 천재적인 시적 화법 악수로 한다.
순종하기까지는 시인의 내적인 변화가 있다. 1 4화까지 순종하여 순환하다가 5 8호까지 불순종을 시로 전한다. 불순종하는 마음은 어떤 것과도 악수를 하지 않는 마음이다. 행복 할 수 없다. 그 예는 5~8호에서 제시된다. 역순환은 불순종이나 거역을 같은 시어들을 반복시키지 않고 단 1회성으로 표시하였다. 하나님의 뜻을 거절한 역순환은 이스라엘 백성들 멸망이었음을 성경은 제시한다. 
다음은 이상의 “이상”과 “이하”가 어떻게 다른지를 구분하게  하는 오감도. 시제 1호 4호의 하나님께 순종할 때를 “이상”시어를 순종으로 한다. 불순종의 역순환 8호 5호는 불순종 할 때 “이하”시어로 거꾸로 향한다. 그러기에 이상은 절절한 하나님에게의 순종을 역설하면서 신을 향한 절대 믿음을 원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드디어는 15호에서 1호로 도저히 믿기지 않는 절대자가 손을 내밈으로 하여 시적 화자는 살아난다.
이상 시인의 시는 기독교적 심상에 있다. 그 가치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시로서 전하는데 있다. 하나님이 나와 악수 하시어 이상이 바라는 열망이 무엇으로 채워졌느냐와 누구에게 사로잡혀 있느냐를 보여준다. 이 2차적 이상시의 진리는  이상 시인의 배경에서도 카톨릭과 관련한 문우 정지용과의 관계에서 확인된다. 이상 시의 근원은 기독교와 연관된다.
이상은 그의 시들을 통해 1차적 언어를 넘어서서 2차적 의미에서 신의 뜻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뜻을 전하고자 한다. 이 실천은 이상이 이상의 가족을 위하여 죽음을 감수해야 함을 주제로 한다. 신의 안전에 내가 낙상하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시로 투영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이상의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에게 임하는 은혜를 받음에 대한 감동이 주제이다. 이상의 「육친」시에서는 신神) 크리스트 시어들이 사용되었다.
결과를 이상은 반복의 리듬 즉 쌍의 리듬을 통해 처음의 ①과 ②를 통해 그 답을 알린다.

1호 ①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② 그중의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2호 ① 나의아버지가나의곁에서조을적에 
    ② 아버지의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
3호 ① 싸움하는사람 
    ② 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
4호 ① 환자 
    ② 책임의사

위 시제 1, 2, 3, 4호는 신의 뜻을 거절하지 않고 아멘하며 순종하는 인간의 노력이 처음 ①과는 전연 다른 ②가 되게 하였다.
그렇다면 순환 O 형태와 하나님의 백성이 그에게로 돌아오는 U유턴 form에서의 동적 이동의 변별성은 무엇인가?

문학에서의 순환성과 신학에서의 U form과의 변별성을 위해 우선 위 표  표 G 1 도표를 참조할 수 있다. 님과 나의 일은 외연상 순환성이다. 그러나 문학이 가지는 2차적 리듬, 곧 문학에서의 신의 주제가 담긴 시의 내포가 있다. 시가 가지는 서정성이다. 문학과 신학 모두 은유 혹은 이미지가 숨어있다. 이러한 2차적 의미는 하나님의 흔적으로 남은 이 세상의 모든 만물에서 은유되어진다. 황진이 시조 “어져 내일이야.”와 황진이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모두가 그 공통점이 순환성이되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2차적 내포 돌아옴이다. 황진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 안이 중요함을 제시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 안에 들어가 있다. 임을 보내놓고 그리워하는 내 일에서 나타난다. 초장과 중장이 상응관계이면서 한 쌍을 이룬 다음 종장에서 합일이 나타난다. 문학의 가장 핵심인 님의 심층 깊이는 하나님 마음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하나님 마음이 있다. 하나님의 안이 님이다. 이것은 정의 세계이다. 한국인은 정서적이다. 복을 받는 이유 하나님의 품안으로 돌아옴이다. 님의 품안으로 돌아옴!

황진이 「어져 내일이야..」의 시조나 「청산리 벽계수야」 모두 외연은 순환 형식이다. 그러나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정 때문이다. 그리움은 그에게로 돌아온 마음이다. 외연은 순환성이되 내포는 절절한 그리움이다.

문학에서의 외연 O form은 이은상 시조의 산山 ⇄ 수水⇄ 천天의 순환성이다. 이은상의 「고향바다」 홍문표 시집 모두 순환을 선호한다.

2). 문학과 신학의 결정적인 차이


「훈민정음제자해」에서는 순환을 의미하는 ㅇ에 상대하여 버금가는 글자는 없다 하였다. 이상은 오감도 시제 4호에서 영문제로 다루었다. 이 퇴계는 태극을 사람이 사물보다 귀한 것은 경사상이라 하여 사람의 마음 문제 곧 영문제를 언급하였다. 퇴계 곧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자신을 낮게 엎드리며 두 손을 높이 든 U 모형의 철학은 청량산의 기개환경과 더불어 하나님께로부터 얻은 마음 곧 영의 관한 지혜이다. 
우리나라사람들은 낮게 몸을 낮추며 U 모형 깊숙이 들어앉아 나이 드신 분을 향하여 어르신이라 부른다. 상대방을 존경하는 사상은 기독교 사상이다. 내가 상대방을 섬기고 나를 낮추는 사랑이 들어 있는 삶은 태극보다 더 높은 분이 있다는 경사상이다. 하나님께서 남을 높이는 자를 들어 쓰신다. 이 퇴계의 삶은 심심산골에 후학이 구름 떼처럼 몰려 올 때에도 자신을 높이기는커녕 아주 작은 공간, 겨우 몸을 뉘일 수 있는 공간을 사용하였다. 남을 높이며 나아가는 사상은 기독교 사상이다. 그럼으로 이 사상은 마루 밑을 파고 그 속에 숨겨지는 지혜의 제자들로 하여금 이 지혜의 책들이 전 세계에 남겨져 있다. 태극보다 더 높은 하늘의 뜻을 전하는 일은 허나님의 뜻이다. 순환성과 하나님께로 되돌아오는 근본적인 차이는 후자가 사상이고 전자는 그 사상을 담는 형식의 관계이다. 한국인들이 잘 쓰는 말 갯불도 없다의 이 갯불이 전해주는 바 하나님 집 안에서 은혜를 갚는 일이다.
프라이는 원형인 순환형식을 제시하였다.이 방향보다는 하나님 잔 안에 들어있는 유턴방향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 마음이 잠시 이 세상에 왔다가 가는 가치는 복 받을 만한 마음의 자리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사람이 다른 사물과 다른 점은 마음이 있어서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이 세상은 천국이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이 천국을 붙잡은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다. 복을 누리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한 사람의 얼굴에는 미소가 감돌고 얼굴이 평안하다.

제2절  물의 신학

시인들은 어떤 형태로든 그리움을 그의 창작 작품에서 신의 뜻을 전한다. 그런데 문학작품에 사랑이 없다면 죽은 문학이다. 문학이 아니게 된다. 사랑에는 눈물이 수반된다. 하나님이 백성들을 돌아오게 할 때의 흘리는 눈물은 물 말씀의 물이다. 물은 히브리어로 마이다. 우리도 걸핏하면 말 할 때마다 마… 한다. 이 마는 히브리어 어디에서든지 성경 언어 앞에 쓰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 물임을 증명한다. 이스라엘에는 물 학문이 발달하고 이 물 물 맴과 물 멤 사이에 하나님의 손이 있는게 물 마 임 히브리어를 썼다. 나의 사랑하는 마 임이다. 님의 말씀이 들어 있다. 님의 마음이 들어 있다. 물에 대고 말을 하면 물이 알아듣고 아름다운 꽃무늬를 이룬다. 물에는 생물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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