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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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

오애숙 0 494
입동(立冬) /은파 오애숙



벌써 겨울 문턱이다. 에머란드빛 푸름이 늦 가을 끝자락 뒤로 사라진다.


산야의 만추의 풍광도 소슬바람 사이로 갈대 숲에서 잠시 노닐다 왔던 길로 되돌아 간다는 겨울 문턱에 들어 섰다. 늦가을 끝자락이 뒤로 손내밀더니, 24절기의 19번째로 태양 황경이 225도가 된 것이다. 올해 양력으로 입동은 11월 7일에 해당하는 날이다. 모두 바짝 긴장하며 서둘러 겨울 채비한다. 어린시절 기억으로 조국에서는 이무렵 밭에서 무와 배추를 뽑아 김장을 담았다. 입동 전후 5일에 담근 김장이 제일 맛이 있다고 해 서둘러 김장 했던 기억, 이역 만리 타향살이에 휘날려 온다.

내 어린 시절, 고무장갑이 나오기 전의 김장하던 기억 스치 운다. 그 시절에는 초 봄까지 먹을 반찬을 위해 배추김치와 백김치, 동치미, 물 김치, 갓 김치 등등 김장을 위해 어머니는 채소를 씻어 소금에 절였다. 양념을 위해 바늘을 까서 으깨고, 새우젓과 멸치젓을 달였다. 여러 날 혼 힘을 다하였다. 당시 5접을 담았던 기억도 난다. 성도와 함께 교회 성가대와 시집간 언니에게 보낼 것과 이모집에 보낼 김치도 함께 담았던 기억도 있다. 빨리 김치가 시어 질까 봐 추운 날에 담았기에 고추가루에 물든 손이 얼 정도가 되어 손이 시려워 호호 불며 힘겨워 하시던 모습도 눈에 선하다. 지금은 LA 마켙에 가면 계절에 상관 없이 얼마든지 종류 별로 채소를 구입할 수 있어. 한 두 포기만 사서 김치를 담가 먹던가. 상품으로 나온 김치를 사서 먹는다. 김장 역시 점점 사라져 가는 문화라 싶다. 



입동에는 치계미(雉鷄米)라고 하는 미풍양속도 있었다. 여러 지역의 향약(鄕約)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계절별로 마을에서 자발적인 양로 잔치를 벌였는데, 특히 입동(立冬), 동지(冬至), 제석(除夕)날에 일정 연령 이상의 노인들을모시고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는 것을 치계미라 하였다. 본래 치계미란 사또의 밥상에 올릴 반찬값으로 받는 뇌물을 뜻하였는데, 마치 마을의 노인들을 사또처럼 대접하려는 데서 기인한 풍속인 듯하다. 마을에서 아무리 살림이 없는 사람이라도 일년에 한 차례 이상은 치계미를 위해 출연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도랑탕 잔치로 대신했다고 한다. 입동 무렵 미꾸라지들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도랑에 숨는데 이때 도랑을 파면 누렇게 살이 찐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단다. 이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여 노인들을 대접하는 것을 도랑탕 잔치라고 했단다.

황사이는 들녘이다. 산야 만추의 아름다움을 자랑 하던 풍광은 다 어디갔나. 나뭇잎은 왔던 길로 돌아가고 있다. 또한 동면 하는 동물은 굴 파고 들어선다. 가끔 사람도 겨울이 되면 동면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신은 우리에게 만물을 정복하라고 지혜를 주셨다. 그 지혜로 우리 인간은 과학을 발전시켜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인생의 겨울이 있는 법이다. 아직 인생의 겨울 만나기 전이다. 하지만 왔던 길 되돌아 갈 길 생각해 보는 그런 날이다.

바람이 분다. 오늘 따라 하늘빛 향기가 가슴으로 휘날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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