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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이상의 오감도 시제 1호의 리듬 이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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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5-17 22:11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이상의 오감도 시제 1호의 리듬 이영지
 글쓴이 : 李英芝
조회 : 45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오감도 제 1호의 리듬.hwp (71.5K) [0] DATE : 2019-05-17 22:12:28
⃞ 한국문학심층탐구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오감도」시제 1호
-  시「오감도」 시제 1호의 리듬
이 영 지


1, 「오감도」 시제 1호의 리듬

본 연구는 기독교 관점에서 본 이상시 「오감도」의 시제 1호의 리듬「기독교 관점에서 본 이상시의 「오감도」의 시 제1호의 리듬연구」,『새국어교육』제 67호』(한국국어교육학회, 2004)., 313~335.
이다. 이상의 「오감도」 시제 1호의 시는 기독교 적 관점으로서의 연구가 가능하다를 문제 제기로 한다. 이상은 실제 「육친」이나 「얼마안되는 변해」에서 ‘그리스트’, ‘기독교 순사’ 등의 기독교 시어를 사용하였고 또 기독교 사상에 접근한 저항시를 썼다. 이영지, 『시조창작리듬론』
 이런 점에서 시제1호는 기독교 관점이 용이하게 된다.
이상시의 시 가치는 이상시의 난해성을 극복하고 인간이면 누구나 갖는 어려움에서 하나님을 찾는 결과로 얻어진 해답을 시의 내포로 한다. 기독교 믿음의 시가 되게 한다. 참 삶은 믿음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시의 참 가치를 시의 외연리듬으로 하면서 시가 지닌  내포성의 리듬으로 인하여 시의 거리를 해소한다.
유명한 이상시 「오감도」 시제 1호의 아해들 13인은 열두제자와 예수님과이다. 아해와 아이는 시적 동의어다. 성서 속 아이들은 천국을 갈 수 있는 존재이다.
막다른 골목이라도 텍스트시어로 인하여 인간은 누구나 죽음 앞에서 절대자를 찾기에 접근이 가능했다. 12제자와 예수님이 함께한 13인이 살아남은 일은 이미 예수님이라는 보호자가 있음으로 하여 가능함을 예수님과 보호자가 필요한 아이들로 암시한다.
아이들은 천국들어가기의 불가능의 영역을 가능의 영역으로 한다. 천국 들어갈 수 있는 아이를 성경은 제시한다. 그러기에 시 오감도 시제 1호는 아이들이 죽는 문제가 아니라 사는 문제이다. 어떠한 막다른 골목이라도 예수님이 함께하는 아이들은 천국으로 직행할 수 있다. 이 천국은 죽어서 가는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천국을 말한다. 환경이 허락하지 않아도 좋은 나라 좋은 가정 좋은 나라가 되는 아이들의 천국이 될 수 있다.
오감도의 시제 1호의 ‘13’인의 아해에서 13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들어갈 때 매일 한번 씩 엿새 동안 돌고 그리고 일곱째 날에 일곱 번 여리고성을 돌아 총 13회 여리고 성을 돌았던 일에 접목된다. 이상의 「오감도」 시제 1호의 13인의 이 13 숫자와 같은 조건을 내세워 성경의 여리고 성 점령기는 바로 이상의 오감도에서 일제 강점기하의 우리나라를 되찾는 의미로 연관 짓는 계기로 설정한 것이다. 이상은 나라 찾기에 구체적인 기독교 용어를 사용하였었다.
구체적인 기독교 시어는 다음에서이다.
 
크리스트에혹사한남루한사나이가있으니이는그의종생과운명까지도
내게떠맡기려는사나운마음씨다。내시시각가에늘어서서한시대나눌
변인트집으로나를위협한다。은애ㅡ나의착실한경영이늘새파랗게질
린다。나는이육중한크리스트의별신을암살하지않고는내문벌과내음
모를약탈당할까참걱정이다。그러나내신선한도망이그끈적끈적한청
각을벗어버릴수가없다。
                            - 「육친」《朝鮮日報》, 1936. 10. 9.


관통의벽면에설비된조금밖에안되는애벽을이용해서그는사체가되어가지고운명의미분된차를운산하고있었다. 해답은어디까지나그의기독교순사의공로를주장하였다. 그는 비로소묘지의지위를정의하였다.
- 「알마안되는변해」
1). 열두제자와 예수님

(1). 열두제자와 예수님이 함께한 13인
이상은 그리스트에 대해 깊은 관심을 반복리듬으로 하고 있다.  그의 시에서 그의 삶과 그의 죽음문제까지도 시를 통해 “그리스트”와 “기독교순사” 시어를 사용하여 기독교인의 심상리듬을 들어낸다. 특히 시제 1호에서 보이는 13인이 12제자와 예수님이 함께한 13인이 되는 일이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의 대 전제로 시작되는 리듬대화의 조건은 일제 강점기 상황에 따른 살아남기 위한 긴밀한 시의 텍스트 접근을 성경적 조건으로 하고 있다.
이 공의롭고 긴박한 일제 상황을 시의 외연리듬 13인으로 하고 있다. 이상의 내면심리는「오감도」의 시 제 1호가 개인의 시의 정서리듬보다는 나라전체가 점령당하고 있는 사실성을 해결하기 위한 그래서 공동의 삶이 살아남기 위한 시의 리듬이라는 점에서 이상은 절대자와 관련시키고 있다. 
이상시「오감도」시제 1호는 13인의 시이다. ‘아해’라는 말은 한국 언어에 있는 말이다. 그리고 아해라는 말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더 보편성이 있는 아이라는 말로 바꾸어 시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 그리고 ‘아해’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른이다. 이 어른은 시 내면의 소리로서 예수이다. 왜냐하면 공생의 생활에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과 더불어 13인이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왜 아이들을 택하였을까. 아이들은 아무리 무서운 상황에서도 무서움을 모르는 것이 아이들의 특징이기에 이 시는 시가 지닌 본질적인 아이러니성과 의미의 깊이를 지닌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 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六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 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 「시제 1호」전문
                                                   
13인의 아해는 보편적 개념으로 13인의 아이다. 따라서 이 아이를 통해 이 시를 풀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천주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 11:25∼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라고 기도하고 있다. 이에 이 시를 기독교와 이상시의 연계성으로 한다.
시제 1호의 첫 연은 13인의 아이가 모여 있고 이 아이는 시제 1호 전체 아해이다. 그리고 이 13인이 막다른 골목이 있는 곳까지 달리고 있다. 13인 전체가 결코 죽음을 향해 달리고 있지 않다. 예수님도 어린아이가 되셔서 같이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목적은 살려고 달리는 삶의 주파수들 에모트 미사루, 양억관 옮김, 『물은 답을 알고 있다 1』(나무 심는 사람, 2003)., 79 참조.
이다. 시의 이 리듬은 살아있는 자들의 리듬이다. 그렇다면 이 길은  막다른 골목이라는 텍스트언어로 인하여 삶과 죽음이 존재하는 현실이고 이 현실 앞에서 12제자와 예수님이 함께 13인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는 시의 기독교 관점에 서게 된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시제 1호의 첫 연의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는 괄호로 처진 제한적 조건을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로 내세움으로써 절박성이 대두된다. 육신의 몸으로 이 세상의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오셨듯이 아이가 되신 예수님은 같이 아이들과 같이 아이로써의 삶에서 질주한다. 그러기에 이 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의 죽음상황이 아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까지 우리를 구해 주셨기 때문이다. 여기에 시의 가치가 있다. 아주 긴박한 죽음의 순간에 우리를 구해준 분, 우리들의 일상에서 흔히 보는 보호자가 같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상황이다. 더구나 예수님이라고 할 때 아이들은 전능자를 소망하는 사역의 일을 예수님과 같이 하고 있다. 

(2). 10명의 한 덩어리와 3명의 한 덩어리
이상의 시는 기독교 정신 안에서 일제에 항거하는 시의 은유의 항일 리듬을 썼다. 이영지, ‘순응리듬과 항일리듬’ 『시조창작리듬론』(서울: 양문각, 1997)., 277.
 시제 1호를 통해서 그 홀로가 아니라 예수님 “인자”, 사람의 아들로 오셔서 아이들과 더불어 살아가셨다. 시제 1호는 예수님과 더불어 그의 12제자가 그들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이행되고 있다. 공생하는 조건은 더불어 사는 삶이다. 같이 13인으로 일치된 삶의 문제를 13인을 한 덩어리로 하며 그 13인의 덩어리를 두 덩어리로 나눈다.
시제 1호의 2연은 아해 10명중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로 시작한다. 이 첫 자리는 ‘하나’의 뜻이 있고, 통일 창 2:21, 2:24, 4:19.
과 오직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단일의 날카로운 사납다 단 2:31; 시 57:4; 사 49:2, 잠 27:17, 겔 21:9.
의 의미를 더 가지어 시의 내포가 10명이 한 덩어리가 되어 있다. 형재애 개념도 부각시킨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삶의 첫 모습을 같이 무서워하는 무리 속에서라는 시의 외연을 넘어서게 한다. 같이 정말로 같이 시작되는 시의 리듬은 제10의 아이까지 아주 일치하게 똑 같은 무리가 된다. 그 같은 모습을 “제1의아해” “제2의아해”… “제10의아해”까지 완벽하게 한 무리가 되는 리듬을 탄다. 더불어 먹고 마시면서 공생애를 같이하신 예수님의 삶의 한 덩어리  10/10 이 되어 드디어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된 이 단결력은 서로 다른 자리에 있으면서도 힘을 합할 때의 그 온전한 힘이 살아난다. 괴력이 일어나는 일을 이상은 시로써 보여준다. 이러한 일차적인 합침은 드디어 통일을 이루면서 합치는 힘이 얼마나 더 큰 힘인지를 시는 보여주고 있다.
13명을 한 무더기의 1연으로 하지 않고 “그중의제일의…”라고 하는 “그중의”라는 한 덩이 중의 소속개념을 넣어 시를 쓴 이상은 10으로 한 10/10대라는 10명의 하나로 모두 뭉친 한 덩어리를 제시한다. 이 10은 히브리어로도 부하다의 뜻을 지닌 ‘아서라’ 부유해지다: 욥 15:29; 단 11:2, 치부케하다: 창 14:23, 풍부케하다: 겔 27:33, 부하게 하다: 삼상 17:25; 잠 10:4, 윤택케 하다: 시 65:9, 치부하다: 시 49:16, 삼상 17:25, 부: 왕상 3:13, 대하 1:11, 재산, 왕상 10:23, 대하 9:22, 부귀: 대하 17:5, 18:1, 부함: 에 1:4,렘 9:23.
이다. 아서라! 나서지 말라! 일제에게 엄포를 놓으며 열두제자와 더불어 하나님을 같이 하신 그 분의 이야기가 시 속에 들어가 있다. 열 명 씩 뭉치어 큰 힘을 나타낸 시제1호의 숨은 뜻이다.
시의 외연은 “무섭다고그리오”이지만 바로 부유함이 되는 전부 합쳐진 힘이 한 단계씩 뛰어오름의 수치로 하여 시의 외연과는 전혀 다른 시의 숨은 의미로 반전한다. 무섭고 공포에 떠는 아이들이 아니게 되는 리듬 타기는 “무섭다고그리오”의 리듬이 해소되고 있다. 시의 긴장을 가질수록 이 긴박성 “무섭다고그리오”의 긴박성을 오히려 10명이라는 의미지수로 하여 한 마음 한 덩이의 무서운 힘을 과시한다. 하나하나씩 모여서 된 이 리듬은 새로운 아이를 탄생한다. 무서워 떠는 모습이 아니라 뭔가 보여주는 아이들이다.
이 10명의 아이들은 막다른 골목의 상황아래서도 살게 되는 일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다. 시는 보편성을 시의 긴박성의 외연으로 하는 점이 특징이다. 보편성이란 다름 아닌 사람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지속되기를 바라지 않는 점을 말한다. 이 아주 보편성이고 보면 극도의 어려움 앞에서 누가 도와주면 금시 힘이 솟아나는 기적이 있게 된다. 더구나 구원의 신이 같이 있는 상황은 삶의 공명 파동리듬을 탔다. 그럼으로 하여 힘이 솟아난다. 같이 노래를 부르며 같이 함께 하시는 분에 의해서 이다. 따라서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 절박한 현재의 막다른 골목이 삶의 공간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시 읽기에서도 계속하여 읽다보면 오히려 이 길이 삶의 공간이 된 질주지혜의 시제 1호는 결코 죽음을 향해 전진하는 무리의 발자국이 아니다. 만약 죽음을 향한 무리라면 막다른 골목까지 갈 필요가 없는 낙오자가 있어야한다. 꼭 “제10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가 될 필요가 없다. 
목마르고 메마른 땅에서 일어서는 무리 중 하나가 일어나는 의미의 히브리어 에하드가 있다. 에하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일어선다. 일어나라로 한다. 우리 사투리로 일어나라! 누구야 ‘인나’라 한다. 헬라어인 그리스어에서 인나 인나, 마태복음 9:6: GREEK-ENGLISH NEW TESTAMENT(1971, 21).
 그대로 찾아진다. 38년 된 앉은뱅이 보고 침대에서 일어나 걸으라 명령하는 예수님이 쓰신 말이다.  바로 우리 고어 나이다. 나는 오늘날 발음 은나, 산스크리트어 산스크리트어를 데바나가리어라 한다.
 하나이다. 우리 들은 누구보고 하나 가져오라 할 때 은나(êna: ­1에서부터 1까지 오는 수 이미지의 순수 우리말)! 가져오라다. 라틴어 êna 스테반 원어성경 上(서울: 원어성서원 · 2000언. · 627 · 레위기 5:7,
에서도 그리스어에서도 찾아진 하나 가져오라는 소리 ‘은나! 가져오라’ 우리말 나이다. 세계에서 쓰던 우리 소리중 하나의 예 산스크리트어와 한민족사투리 부로그:
  http://blog.daum.net/paulsong/15863203/
이다.
중요한 하나 곧 하나 온 땅에 구음이 하나 ëv(은나)이요 언어가 하나ëv(은나)이었더라(창 11: 1);
  http://blog.daum.net/paulsong/15863203/
는 일어나 일을 하는 하나이다. 우리가 쓰는 우리말이다. 왜 우리국민이 유구한 역사를 가지느냐의 답이다. 우리 국민은 일어서기 잘한다. 일 나가갈 때도 일 나간다 한다. 바로 첫 시작을 일어나 나간다. 하나와 시작과 절대성 E. W 벌링거 · 장상선 감수,『성경에 나타난 숫자 해설』(서울: 나단 · 2001).,70.
 공유그리움이다. 영어 A · 히브리어 엘레프이다. 엘레프는 소 이미지다. 소는 되새김질로 든든히 먹고 일어선다. 은유법이 되는 사람으로는 나이다. 아담한 존재 아담! 하나님으로부터 온 아담한 나이다.
이 하나 · 나의 귀중함은 아버지와 아들관계로 볼 때는 아버지 일을 많이 하는 아들이다. 이 아들의 귀중함은 아드님 아드님이다. 아드님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에서 원본이 보여주는 큰 글자 둘이 합하여 ‘아드’ 아들이다. 성경은 이 문장을 대문자로 표시한다. 히브리어 쉐마아의 끝 아와 에하드의 드로 모아 이 두 아드님 곧 증거이다. 이 아들은 눈으로 우리들에게 보여준 하나님의 가슴 아들 증거이다. 아드님은 우리들 눈에 보인 바 따뜻한 사랑의 가슴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나 에하드 곧 성경의 하나다. 요드 한 획 천하는 없어질지라도 없어지지 아니하는 한 글자다.
영어 a 바로 에 묵음 에하드에서 묵음 에를 빼버린 하다다. 하다가 하나 에하드가 하드이고 하나이다. 하나 에하드이다. 첫째 날을 한날의 하나 에하드라 한다.
이 한 날을 성경은 전체라는 표현으로 한다. .

① 한 날  하늘  ­ 에트 (1: 1) → 땅  베에트 (1: 1) →
            빛  ­ 에트 (1: 4)

이 하나 에하드 (에하드 · 창 1: 5 · 9 등).는 첫째 로손 로손 · 첫째와 구별된다. 십계명에서도 이 하나는 이른바 첫 계명을 첫째라는 개념으로 하지 않고 10계명 전체를 뜻하는 전체 곧 하나로 한다. 10을 하나로 묶은 하나다. 우리의 애국심과 태극기 하늘 푸르름을 닮으려 사랑으로 뭉친 십계명중 1계명이 십계명 전체를 받아 실천하는 복 받는 나라! 다 바치면 하나님이 10개 중에서 하나만 하시고 9를 돌려주신다.
하나 ד󰖎󰔟(에하드 · 창 1: 5 · 9 등).
는 일어서라 의미로 그리고 일을 시작하는 의미로 일어선 표시이다. 이 표시는 하나님 손이다. 하나님의 손 · 곧 예수님 손 하나로 한 하나 개념은 10 : 10이 하나 곧 절대자 그 분의 손으로 한다. 성경은 하나님을 그(He)로 한다. 하나님 사 43: 10­12 · 44: 6.
은 품 군들을 향하여 한 데나리온의 약속으로 하신다. 우리 사람은 하나님 손에 의해 좌우되는 한 생애 한 알의 씨앗이다. 한번뿐인 생애 ·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한 생애 · 이 한 생애는 시조작품을 쓰는 시인에 의하여 남겨진다. 한 생애 시조작품 한 편 곧 전부이다.
한 날은 욤 에하드로 발음된다. 한 날은 첫째 둘째의 첫째가 아닌 한 날이다. 에덴의 강도 처음 강을 첫째 강이라 번역 되었지만 원문은 한 에하드 강 비손 강 한 강이다. 비전의 강,. 미래가 있는 강 이 강은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을 입으로 끝까지 말씀전하는 한 생애 사역 강 한 강이다. 비손의 위치는 확실하지 않다. 유토피아 강! 세상에서는 없는 에덴의 강이다.
하나의 중요성은 숨 쉼 헤에서 드러난다. 숨 쉼 사이에 예수님 상징 연장이라는 히브리어자인글자에서 숨쉬기가 두 번 들어가는  하자하브이다. 이 하자하브는 숨 쉼 표시 하 · 하가 양쪽에서 안의 연장 예수님으로 하여 숨 쉰다. 사람은 숨 쉬어야 산다. 예수님이 있어서다.
한 강이 우리에게 친근감이 가는 것은 이 한 강 표현인데 이 한 강이 백제시대에는 욱리하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울타리가 되어준 큰 강 이다. 하나의 한 강이라면 대한민국 서울에 있는 한 강을 떠 올린다. 이 한 강 이야기는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모래땅이 숭숭 구멍이 나 있는 사금 땅이 옳은 금을 만들기 위해 빙빙 돌아 춤추며 위로 위로 오른다. 한 강은 금을 만드는 비전의 강이다. 말씀 싸 바른 강이다. 금을 만들기 위해 흐르는 강이다. 목적이 있는 삶 · 금을 만들기 위해 있는 한 강이다. 주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좋아하며 흐르는 강이다. 좋은 비전이 있어서이다. 두 번의 숨 쉼 하 하 웃으며 사는 삶이 된다. 이 하하 웃는 웃음은 강이 그 예다. 강이 하하 한자로 강 河 하하 웃음 강이다. 
성경은 이 숨 쉬는 삶이 즐거움이 되는 이유를 내가 숨 쉬며 살 수  있는 것으로 한다. 예수님이 두 손을 들고 있는 하솨함 한다. 양쪽에 하 하를 놓고 웃는다. 그 분이 나를 위해 일 하심에 웃을 수 있다. 십자가의 달린 그 분때문에 나의 가치는 귀하다. 웃음이 나는 생애이다. 나의 귀한 존재가 일하고 나서 자기 위해 저녁에 땅에 배 델려면 낮에는 금이 섞인 모래가 있는 한 강에서 일을 해야 한다. 그 일하는 모습은 빙빙 돌아 하늘로 오르는 모습이다. 처음 천천히 돌다가 차츰 빨리 빨리 돌아가며 햇 가닥 돌아가기까지 가야 금 보다 나은 하늘로 커다랗게 오를 수 있다. 시를 쓸 수 있다. 커다랗게 빙빙 돌며 위로만 올라야 금을 만들어 내는 시인이 된다.
시만이 가질 수 있는 생성생태상황의 열린 시학으로 바뀐 것이다. 오늘날의 현실로서는 기술문명, 유전공학, 난치병 등의 심각한 상황 바로 무섭다고그리오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명의 아이라도 무서운 아이가 있음으로 하여 그 희망의 끈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둘로 늘어나는 한 마음과 한 곳을 향하여 위를 바라보며 예수님과 함께 가장 바람직한 단체 공동의 힘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 10명으로 구성된 무섭다고 그리오의 아이들만 10명이 구성되었다는 것은 바로 이 10명 인원은 하나의 교회가 설 수 있는 인원수이다. 그리고 10명이 모이어 새벽기도를 할 인원이면 일반적으로 그 교회는 백 명이 모이는 교회이다. 그러기에 오감도 시제 1호는 1명이 막다른 골목으로 쫓겨 가는 리듬이 아니다. 단체가 무섭다고 그리오의 아이들이 모일 수 없다. 단체가 모이면 큰 힘이 생기는 것이 이 세계내의 법칙이다. 꽃들도 모이면 군락을 이루고 풀도 모이면 군락을 이루며 단체가 모이는 일은 나쁜 의미로는 형성될 수 없는 수치이다. 단체 행동은 무슨 일이나 해 내는 힘을 이 우주는 가지고 있다. 역할을 담당하려 모이어 일어선다.
이상 시에서는 두 개의 단체가 형성되어 있다. 바로 첫째 10명과 두 번째 단체 3명의 단체이다. 3명 덩어리 리듬이 박자를 맞춘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 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죽음에서 일어서는 무리들의 리듬은 “제1의아해”부터 “제10의아해”까지 뿐만 아니라 “제11의아해”부터 “제13의아해”까지의 집단이다. 드디어 두 개의 큰 집단리듬이 형성된 시의 외연리듬이다. 따라서 이 시는 시의 내포가 더욱 강조되어 13이상으로 늘어나는 수치의 순서를 암시한다. 왜 계속 이어지지 아니하고 두 개의 큰 집단리듬을 형성하는가는 성경이 제시하는 2의 리듬이 주는 절대성이어서이다. 사람으로 치면 다시 거듭남이요 우리가 익숙히 아는 둘째 사람 예수에 대한 의미심장한 전달방식의 리듬이다. 이 두 개의 커다란 집단리듬은 한 단계씩 올라가 다져진 한 덩어리의 단체리듬덩어리가 더 하여졌다. 이러한 시의 외연상의 두 집단의 리듬으로 하여 절대자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 된다. 죽음에서 건져진 아이들의 리듬반복이다. 죽음에서 일어나서! 성경표현대로라면 하마 꿈이 일어나서이다. 벌써 꿈이 일어선 웅성거림이다. 웅성거림 리듬! 갈망의 리듬이며 소리소리 지르는 외침이며 노호하는 아이들이 웅성거림이다. 우리들의 문제에서 삶의 문제보다 더 절박한 문제가 무엇이 있겠는가! 삶의 권리를 주장하는, 희망하는 그리고 그 희망이 이루어짐에 감격하는 소리! 
이 웅성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리듬은 순수하고도 높아 절대자를 감동시키는 주파수이다. 외침리듬이다. 이 큰 집단은 바다의 회오리 물결리듬이다.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의 호소리듬이다. 하늘로 사닥다리를 놓고 올라가 하늘을 울리고도 남는 땅의 소리리듬이다. 모여진 소리의 큰 리듬은 죽음에서 일어서고 있는 무리의 리듬이다. 큰 힘을 발하여  당연히 일어서게 될 곳의 기적이다.
시의 외연 상 “13의아해”까지 갔다. 왜 시의 외연상 “14의아해”가 아닌가! 그것은 시제 3호에서 보여주는 싸움의 승리를 미리 예견하는 의미심장한 리듬이다. 10명은 부하다는 의미인 결코 무서워 떠는 무리가 아니고 더구나 13은 싸움을 이긴 수치이다. 이 시의 내포는 이미 한국인의 독립이 예정된 일제강점기에서의 철저히 시가 지닌 은유로 한국인의 독립을 예견한 선지자적 이상시의 내면구조이다. 지극히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미래에 독립될 것을 암시하는 죽음을 넘어선 의미리듬이다. 이 의미리듬은 1과 2와 3의 하나도 둘도 아닌 셋이 모이어 어울려 한 단체인 10이 모여 그 싸움을 이김의 승리로 한 바로 우리의 힘 합 10을 합한 3 셋의 싸움이니 당연히 이기는 힘을 말한다. 사四, 죽을 사死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삼三 삼 싸움에서 이기고 삶으로 나아가는 의미, 이 3은 셋이 합하여 10이 세 번 합하여 된 일이다.
성경은 우리 셋이 합하여 사람을 만들자 하였다. 13의 사람들은 만들었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셋이 모이어 된 아주 강한 힘을 발하는, 그래서 하나는 쉽게 부러질 수 있으나 셋은 넘어지지 않는 큰 힘을 발휘한 더구나 그냥 3이 아니고 13이다. 10이 더하여진 13이다. 다른 사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독립운동 이미지로 일제상황에서 이상은 시를 차압당하지 않으려 한다.

인간 70 아니 24년 동안이나 뻔뻔히 살아온 사람(나) 나는 그날 나의 자서전에 자필로 부고를 삽입하였다. 이후 나의 육신은 그런 고향에는 있지 않았다 나는 나의 시가 차압당하는 꼴을 목도하기는 차마 어려웠기 때문에
- 「1933. 6. 1」에서

이상은 그의 시「1933. 6. 1」에서 시가 차압당하지 않게 하려 예수님이 이끄는 길에 서 있다. 인간 70이라하였다. 이 70의 수는 성경  이스라엘이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을 섬김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예레미야 25: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예레미야 25:12)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죄악의 세상) 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예레미야 29:10)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역대하 36:21)  그 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년한 같이 칠십년을 잊어버림이 되었다가 칠십년이 필한 후에 두로는 기생 노래의 뜻 같이 될 것이라이사야 23:15)  칠십년이 필한 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권고하시리니 그가 다시 취리하여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며(이사야 23:17)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지 칠십년이 되었나이다 하매(스가랴 1:12)
에서 찾아진다.
예수님을 포함한 13인이 나란하게 줄을 지어 삶의 리듬의 계단을 오르고 있다. 그리고 두 팀으로 나눈 함께의 길이되 둘로 나누는 시제1호의 2연에서 한 덩어리 10명으로 뭉쳐진 아이들이 한 사람씩 다르게 그러나 한 곳을 향하여 그들의 해야 할 일의 계단을 오르면서 일을 담당한다. 더 나아가 셋의 합한 수가 더 높은 삶의 계단을 뛰어오르고 있다. 다른 사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낫다.
대한민국 백성들은 늘 높은 곳을 향하여 오른다. 그래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사방팔방이 강대국들로 둘러싸인 한반도에서 언제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일어섰다. 이 역사는 우연히 얻어진 역사의 기록이 아니다. 언제나 힘겹게 싸워 이긴 역사이다. 향기가 난다. 인내와 은근과 끈기로 일어섰다.

2). 동종요법의 무서운 아해

(1). 하나님이 살려준 아해
땅에서 부르짖는 절규는 하늘에서 들어주는 법이다. 절규를 들어주는 이는 절대자 하나님이다. 아해들의 첫 번째 집단의 리듬인 10명의 리듬 안에는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의 아해가 들어있어서 해결의 실마리를 열어간다. 이 극적 타결의 리듬은 이미 절대자와 함께한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가 되는 응답의 상승곡이다.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오감도 시제1호의 리듬은 사실 처음부터 무서워떠는 아해리듬이 아니다. 이 시의 내포노출은 이에 대한 실증으로 이미 암시되어진 절대자의 음성이다. 13인 예수님과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어서이다.  막다른 골목에 선 아해를 향해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라고 말씀하시는 자가 있다. 누가 말했겠는가! 그 분이시다.
이 시의 의미가 사실은 시의 내포로 숨어 있었다. 그 증거는 시 문장 전체가 명령체로 되어 있으며 대화를 듣는 아해로 하여금 대화를 받는 사람에게 명령하는 명령문이다. 이 명령자는 절대자이다. 명령자가 “그중에1인의아해가문서운아해라도좋소”라 한다. 텍스트를 통해 말씀하고 있다. 시의 화자이다.
이 시 속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살려주기를 작정한 절대자와 예수님과 무서워하는 아해들이다. 그런데 사실상의 이 시의 아이러니는 아이들은 무서움을 모른다. 사리판단을 잘 할 줄 모르지만 그러나 믿는 구석이 있으면 그중에 1인의 아이가 무서운아이가 된다. 절대자는 “그중에1인의아해가문서운아해라도좋소”라 하신다. 이 단호한 명령 절대자의 힘을 믿는 힘으로 겁날 것이 없어진다. 절대사랑이 내재한 “무서운아해”가 된다.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다.
이 변화의 자리는 변화 산에서 변화된 모세처럼 막다른 골목에서 전능자를 소망하는 사역자의 모습이다. 어려운 시대를 극복하는 자의 자리이다. 이 자리는 어떠한 절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조차도 막을 수 없다. 예수님이 그러하였고 스테반이 그러하였다. 텍스트에서 본 이미 뭉쳐진 리듬자리는 한 사람의 시작으로 하여 뭉쳐지고 다져졌기에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절대적이고 부유하고 완전하고 무서운 아해들이 이미 되어있다. 시로 보면 리듬자리이다. 상승곡이다. “무서운아해”는 시의 외연리듬인 4연에서 드디어 들어난 뭉쳐지고 뭉쳐져 합하여지는 3연의 많은 한국인 전체가 들어난 시의 내포리듬이다.
그러기에 4연에서 명령자는 아주 여유롭게 2행에서 무서워하는아해가 겨우 2명임을 알린다. 다시 줄어서 겨우 1명임을 알려준다. 

그중의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이제 무서워하는 아해는 2명에서 1명으로 줄어들었다.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이다. “무서워하는아해”는 드디어 아주 없어질 것이 예측되어지는 시 질서의 자연스러운 수치의 연속에서 2 · 1 · 0이 될 것이다. 아주 없어진 것이다. 반대로 무서운아해는 점점 불어 하나님이 주신 귀한 생명, 그들의 아름다운 나날을 영위하는 권리와 자유를 누리게 됨을 시의 내포로 한다.
인간들은 죽음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들을 살려줄 하나님을 찾아 살아남아 이 땅에서 풍요와 안정의 축복을 누리며 산다. 이 동종요법 Ibid 99.
은 우리들의 현실가운데서도 같다. 우리들의 삶에서도 같다. 성경의 마가의 다락방 합심기도는 옥에 갇힌 바울을 나오게 하였다. 거대한 기도로 일어섰다. 이 확신의 믿음자리에 있는 이들은 인간에게서 그 해답을 얻기를 거부한다. 오직 막다른 골목에서 하늘을 울리며 얻는 믿음! 그러기에 메마르고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땅 창 1:9.
에서 일어섰다.
이상시의 시 가치는 이상시의 난해성을 극복하고 인간이면 누구나 갖는 어려움에서 하나님을 찾는 결과로 얻어진 해답을 오감도 시제 1호 시의 내포로 한다. 기독교 믿음의 시가 되게 한다. 참 삶은 믿음 안에서만 가능하다. 시의 참 가치는 시의 외연리듬이 내포성의 리듬으로 인하여 시의 거리를 해소할 때이다. 그것은 바로 “아해”가 무서워함이 아니라 오히려 “무서운아해”로서의 뚜렷한 상을 가지는 구원의 문학이 되게 한다. 하나님이 살려준 아이의 예는 성경에서 다윗이다. 양치기 다윗은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불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라는 믿음으로 적군 골리앗에게 나아간다. 그는 말하기를 “너는 칼과 창과 단검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즉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불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임을 알게”하리라 하였다. 이상은 그의 시를 통하여 하나님이 구원의 하나님임을 그리고 이기는 일은 칼과 검에 있지 아니함을 시로 공포한다.

(2). 뚫린 골목의 흥이 나는 감동리듬

다윗이 행보를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멧돌을 던져 불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게 삼상 17:34∼50.
 하는 무서운 아이들! 우리들의 유관순이, 이순신이 나라를 구하는 무서운 아이들이 시제 1호의 아이들이다.
뚫린 골목에서의 아해들은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의 명령을 받는다.

(길은뜷린골목이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이 시의 존재에 대한 유추 이영지, 『시조창작리듬론』에서.
는 인간과 예수와의 차이를 식별하고 있는 시이다. 인간유형의 어떤 영웅적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함께로서만 가능한 시이고 그 방법으로 인성으로 표출된 구조로 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시의 내포로 한다. 카톨릭에서 예수를 어린아이로 표시하고 있는 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공동의 생명체 13인이 되어 있다. 아브라함은 그가 살고 있는 우르 땅을 알고 그곳을 떠날 때 갈 곳을 모르고 일어섰다. 기독교인들은 암울한 일제하에서 36년간의 긴 시간을 벗어나며 죽음을 이기고 일어섰다. 명령에 의해 참 자유자 이스라엘은 생명을 보존 받는 참 자유자가 되었다.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하여 야곱은 이스라엘이 되었다.
밤새도록 기도하는 장면을 시적으로 표현한다면 이 시제1호가 갖는 반복의 리듬에 해당한다. 따라서 시제1호는 읽으면서 자극을 받고 또 읽으면서 얻어지는 홍문표, 『시창작의 원리』(서울: 창조문학사, 2004., 400∼413.
 리듬의 신통력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감동의 힘이 되어 솟구치는 신이 부여한 생태리듬이다.
아해의 태어남은 신의 절대영역의 신비의 리듬이다. 이 신비는 아해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의 자유로움의 시제 1호 리듬이다. 막히지 않는 “뜷린골목”이다. 우리들이 아이같이 순수하여 하나님과 같이 있을 때 천국이다.
시제 1호는 아이들에 관한 시이다. 아이들이 보호자와 같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 같이 있게 되는 아이들은 보호자와 같이 있어서 순수와 깨끗함과 온전한 자리에서 그 힘을 얻는다. 이들에게는 공포가 있지 아니하다. 따라서 시제 1호는 처음부터 메타의 시이다. 죽음 앞에서도 “무섭다고그리오” 함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무섭다고그리오”를 설정하고 시제1호가 메타포 은유의 시임을 천명한다. 이 숨겨진 천기는 바로 아이가 아주 귀중한 존재임을 암시하는 시이다. 이 아이 예수님 의미의 확대까지 가능하게 한다. 천국과 고나련하여서이다. 이 존재의 의미리듬은 세상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모습이 부각되는 절대자의 모습이다.
이상시 오감도 시제1호는 심층생태학들로 자유로움의 리듬이다. 이 시의 은유는 개체들과 공동체들, 자연과 만물사이의 새로운 균형과 조화를 모색하는 리듬이다. “막다른골목”의 아해들이 “뚫린골목”에 서게 되는 물 흐르듯이 흐르는 리듬이다. 이 세상에 모습인 불안과 죽음직전에 직면한 절규와 목숨조차 유지할 수 없는 당시의 일제 상황인 생성불가능의 자리에서 그와는 전혀 다른 절대자의 권능이 내재하는 은유리듬이 이 시에는 있다. 이 가능성은 문학스토리에서 전개되는 리듬으로는 영웅주기 리듬 영웅신화를 주기로 본 라딘박사는 트리스터 주기, 토끼주기, 붉은 뿔 주기와 쌍둥이 주기로 표현하였다.
이다.
신화적 주인공 시인 이상이 쓴 시의 리듬이다.

13인의아해라가도로로질주하오.
        ↓
13인의아해는문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오.
        ↓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따라서 텍스트 순서에 의한 시의 내포 암시리듬은 텍스트라인이 유일한 구체성을 지닌 객관 사물어 “아해”를 통해 “무서워하는아해”와 “무서운아해”로 연결리듬을 한다. 이 긴장리듬은 그 해소리듬의 “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의 한쪽 리듬을 배치하고 자연 생성되는 리듬을 얻게 한다. 바로 시제 1호의 생성리듬이 특이한 괄호를 넣어 시행으로서의 구성을 세 번으로 한정하여 우주적 질서의 리듬으로 시의 긴장도가 존재하게 하고 있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오)
        ↓
(길은뚫린골목이정당하오)

“무서운아해”와의 유기적 리듬은 막다른골목에서 다른사정을 제치고 “뚫린골목이적당하오”로 만든다. 뚫린골목이라고 혼자만의 자유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로 합하여야 이 뚫린 골목을 유지할 수 있으며 더욱 자신을 조심스럽게 잘 유지하도록 노력한다. 참 자유가 주어지면 오히려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치밀한 자신을 위한 계획과 미래를 향한 발돋움을 위해 노력한다. 이 노력이 같이 있어야 한 시제 1호이다.


2. 한 방울의 피를 모아 살아나는 생명리듬
 
개개인의 참자유자에게 주어진 한 방울의 참 피가 필요하다. 에스겔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일어나는 리듬이 있다. 시제 1호를 통사성에 따른 외연으로 본다면 이 시는 아해들의 죽음 상황에서 한 방울의 피 두 방울의 피가 한 아해, 두 아해 피 모아 삶을 만들어간다. 왜냐하면 반복리듬이기 때문이다. 삶의 생성리듬은 아해들의 죽음을 위한 질주리듬이 아니라 삶으 위한 질주리듬이다. 그 이유는 시어 “아해”가 26회나 사용된다.
이 26은 절대자 여호와의 히브리어적 수치로도 연결된다. ה ו ה י(ה󰕯ה󰖾) 5 + 6 + 5 + 10=26이다. 이토록 중요한 이싱시 시제 1호의 리듬 생성은 아이의 문제가 바로 절대자와 연결되는 문제가 되는 시이다. 여기에 무슨 다른 문제가 나올 수 없다. 삶만이 있다. 생명이 숨쉬는 리듬이다. 세상의 진리로도 아이는 죽을 날 보다 살날이 더 많다. 시제 1호의 가치가 부여되는 아이의 중요함이다. 강렬한 징소리로 “막다른골목”을 “뚫린골목”으로 만든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 “아해” 예수의 손 옳은 손, 그 분의 오른 손 그리스도 힘이 여기에 암시되었다.
십자가 앞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보인 예수님 그러나 깊은 기도에서 일어서 이기시고 “다 이루었다” 요 19:30.
라 하신 부활하여 생명을 얻는 리듬이다. 일제강점의 광야에서 한국인이 일어선 리듬이다. 이 리듬은 여럿이 기도하는 부르짖음이 이루어진 일이다. 이 기도로 참 목숨이 살려졌으며 그 결과 이루어진 일이다.
시제 1호는 무서운 아이들의 시이다. 이 무서운 아이들 아니 ᄉᆞᆷ들 중의 하나는 아브라함이다. 그는 100세에 아들을 얻고 그를 너무 애지중지한 나머지 하나님을 잊고 있자 하나님이 그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의 사랑하는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무시무시한 명령을 내린다. 아브라함은 이튿날 아침 일찍 외아들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려고 모리아 산으로 간다. 하나님이 지시하는 한 산 거기에 가서 그를 번제로 드리려 창 22:2.
 한 무서운 사람 에 선다. 또한 요셉도 무서운 사람의 리듬을 가진다. 형들에게 팔려 애급으로 내려가 바로의 신하 애급 사람 시위대장의 집에서 여호와가 그와 함께 하심으로 형통한 자가 된다. 사실 요셉은 가정 총무가 되었으나 시위대장의 아내로 유혹을 받지만 이를 거절하고 옥에 갇힌다. 이때의 요셉도 무서운 사람의 리듬에 선다. 창 39:1∼23.
 다니엘의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벤느고도 풀무 불에 들어가는 무서운 사람의 리듬이 되는데 이는 오로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죄목 때문이지만 풀부 불 속에서 또 한 사람의 천사가 그를 도우는 까닭으로 하여 그 속에서도 살아남는다.
의로운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천사가 뒤 따라 같이 보호한다.  이 보호하심에 대한 믿음 없이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무서운 사람이 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개인적인 일에 얽매일지 않고 절대자의 뜻에 순종하여 절대자를 절대자로 섬기는 데서이다.  큰 힘이 생기는 무서운 사람이다.
가장 무서운 사람은 바로 혼자가 아니라 같이 힘을 합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무서운 사람은 나라를 움직이며 세계를 움직이며 주위를 움직인다. 그러기에 한국에서는 단합대회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봄이래서 단합대회 여름이래서 단합대회 모이어서 즐기며 그 뜻을 다짐한다. 이 군중의 힘은 잘못된 법을 고치며 잘못된 관행을 고친다. 그러기에 이 단합의 힘을 모으기 위해 일정한 뜻을 적고 같이 싸인을 하여 이 증거로 어떤 일을 해결하기도 한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흥이 많아 모이어 즐겁게 노래 부르며 마음의 든든함을 가진다. 이 힘은 바로 한국이 이제까지 그 절절한 사연들을 뒤로 하고 단일민족으로 이어오는 원천이 된다. 우리말에 십시일반이라는 말이 있다. 조금씩 모아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의 좋은 풍습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외국의 침략 등에서 우리나라를 지키는 무서운 피를 물려받았다. 나라가 이어지는 혈통을 가진 단일민족의 피! 이 무서운 우리들의 피 리듬은 혈통으로 계속 이어진다. 바로 한국시인 이상이 쓴 시제1호에서의 피의 리듬이다. 죽음의 골짜기에 있던 마른 뼈들이 일어나는 기적의 리듬처럼 경수가 끊어진 사라가 아들을 얻을 수 있는 피의 리듬처럼 불가능에서 가능이 되는 이 피는 절대의 사역을 소망하는 데에서만 이루어진다. 이 간절한 전능자를 사모하는 리듬은 죽어서야 싹이 나는 리듬이다. 시제 1호에서의 생명체의 싹 ב󰙸󰘡(에세브·싹, 창 2:5; 출 9:25; 신 32:2; 시 106:20; 잠 19:12; 미 5:7; 슥 10:1).
 아해들은 그들의 막힌 골목을 열어 열린 골목열매를 맺는다. 󰘨יר󰖅󰗫(마즈리아·열매맺는, 창 21:12, 49:24; 출 16:31; 신 5:15; 레 11:37; 대상 4:3; 렘 4:3 31:29; 시97:1, 105:9∼19, 126:5; 사 19:7; 잠 22:8; 단 1:12; 호 1:4).
 
이 장한 이들에게 있는 아주 작은 싹에는 물의 입자가 있다. 이 물의 입자는 죽은 물이 아닌 산, 물이다. 아름다운 육각형의 모양을 가지고 있으면서 몸 안에 이 싹 물을 소유하여야 살아 움직이는 리듬선 에모트 마사루, 양억관 옮김 『물은 답을 알고 있다』(서울: 나무심는 사람, 2004)참조.
을 만든다. 이 생명의 입자들은 육각형이고 이 육각형들이 모여서 된 이 결정체는 너무나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른 뼈 속에 아직도 있는 물기이다. 이 물기가 살기를 희망하는 작은 물의 입자이다. 아벨이 그러하며 마른골짜기 뼈들이 그러하다. 미미세계에서 거시세계로 나아가는 “뚫린골목”이 되는 거대한 기적은 이 물의 입자들을 하나님이 살린데 있다.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일은 나라가 다시 일어서는 일이다. 리듬이다. 대한민국이 독립되는 리듬이다. 이 살아있는 피의 싹이 시의 내포이다. 시가 살아 있어야 사람이 살아 일어선다. 살아나 지혜의 시인이 되고 지혜의 시인에게는 늘 삶의 시의 리듬이 있다. 시로써 애국하는 이상에 의해 나라는 살려진 것이다. 이상의 시 속에는 무서운 아해의 피가 살아있다. 싹은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는다. 이상의 시「오감도」시제 1호가 제시하는 살아나는 뼈는 하나에서 둘 그리고 셋으로 차근차근 늘어나면서 생명의 피가 강력무리들의 리듬이 된다. 이 피는 작가의 작품창작 당시의 상황인 일제강점기의 한국인의 피와 살이다. 첫싹 “무섭다고그리오”의 츨빌 리듬으로 하여 거목이 된 아해리듬이다. 이 아해는 막다른 골목에서 피의 우렁찬 박동소리로 하늘을 뚫으며 뚫린 골목까지 간다. 이 거대한 폭의 리듬은 시의 내재리듬이다. 현재를 초월하는 “꿇린골목”으로 나아가 열린 세계를 만드는 리듬이다. 이 거대한 꿈은 우주로 뻗어 말씀에 복종하는 생성의 자리에 선다. 이 탈바꿈의 변환성 리듬은 모세가 광야에서 탈바꿈하여 요단강의 물을 건넜다. 그 2세들과 여호수아와 갈렙은 탈바꿈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 싹을 낸다. 가나안에서 싹이나 장성하기까지 어려움을 겪지만 다시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는 “무서운아해”들! 싹이 나지 않는 리듬들은 사울처럼 처절하게 죽어가는 리듬이며 싹이 났다하더라도 불필요한 사랑을 하였을 때 이스라엘멸망의 리듬이다.
시제 1호는 “무서운아해”의 시이다. 일제에 항거하는 의미의 확대개념과 월드컵대회에서 무서운 아이들이 보여주었던 그 실 경험과 막다른 골목에서 변신하는 홍문표, ‘생태학과 시’ 창조문학(서울: 창조문학사, 2000).
 무서운 아이의 시이다. 이 무서워하는 아해가 무서운 아해가 되는 시기는 합치어서 단결할 때 생성되는 힘이다. 잎도 그러하다 차츰 자라 커다란 나무가 된다. 물론 이 무한의 생성성은 순서들의 집합 1, 2, 3… 1, 2, 3은 W+3으로 나타낼 수 있다. 모든 무서운 아이들의 집합 1, 2, 3…W의 서수를 가진다. 1, 2, 3…의 한국인들 전부를 합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한국인의 모든 참여인 무서운 아해는 대한민국을 구하고도 남는다. 무서운 아해의 확대는 특별한 힘을 생성하여 뭇사람이 주시하는 영웅리듬이 된다. 한 세계를 뭉치는 힘은 세계를 하나님의 자녀로 복음화하는 작업의 생성리듬이다. 이상시가 추구하는 시의 내포이다.
무서운 힘의 생성은 믿음에 있다. 바로 지금 내가 하나님과 더불어 힘을 합할 때, 늘 함께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 심리리듬은 하나씩 합하여 지면서 이 힘은 사람만의 합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과 합하여진 믿음 힘이다. 믿음이 서는 순간 생성되는 하나님의 힘이다. 이스라엘 열두지파와 열두 사도와 열두 지방이 그리고 열두 사제가 모이어 하나님과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하는 13인일 때 그 순간에 일어나는 기적의 시이다.
동시에 내가 남을 헤치지 않고 하나님께 나를 기대는 때 시제 1호는 반복과 수리의 서열에 의한 한 사람의 무서운아해를 탄생시키고 이 아해는 한 사람만이 아니라 무한한 사람의 서로 기대임으로 하며 무서운 힘을 만들어 내는 생성리듬이다.
그것은 무서워하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시로 빛의 존재를 깨닫는 시간이다. 이 존재의 영속성은 하나님의 하신 일을 그대로 본받으려 하는 때에 힘을 얻는다. 빛의 존재역할일 대이다. 옛 사람이 아닌 새사람이 되어 앞으로 존재할 역사 위에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더불어서 힘을 같이 합했을 때 생겨난다. 이 시는 청산의 시이다. 늘 푸른 청산과 사람과 어우러짐을 쓴 시다. 마음의 푸르름과 자연의 푸르름이 합하여 녹색지대를 형성하고 이러한 뜻을 가진 사람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시이다 .하나님을 믿는 위대한 정신력으로 해결한 특별한 존재의 시이다. 생각이 없는 인간은 동물과 다를 바 없다. 머리를 가지고 있고 현대인들이 쓰는 자아의 시이다.

예수님이 함께한 13명은 통일리듬이다. 이 합은 새로운 뭉침의 합하여 1호의 무리라는 설정을 성경적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러기에 10명으로 묶고 나머지 3명을 다시 한 모임으로 형성하여 두 개의 단체를 만들어 그토록 강조하는 성경의 특징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온전히 너와 내가 합하여 이루어 내는 합일리듬은 한 덩어리가 되어 절대자를 감동시키는 주파수가 된 외침리듬이다. 이러한 동종요법은 하나님이 살려준 아이들만 살아나는 성경적 기법으로 하늘을 울리는 소리로 전능자를 간절히 사모하여 얻어지는 리듬이다.
이제 뚫린 골목에서 흥이 나는 감동 리듬 시다. 시가 가지는 은유란 히브리어로 임마누엘 뜻이 되는바 하나님과 같이 있는 존재라는 뜻인 동시에 뜻이 아이같이 순수할 때 하나님과 같이 있을 때이다. 천국에 들어가는 의미의 시적 조건리듬이다.
시제 1호는 아이들의 시이다. 아이들이기에 죽음 앞에서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이 무서운 아이들이 절대자의 뜻에 순종하여 절대자를 절대자로 섬기는 리듬이어서 오늘날 까지 이어지는 한국역사이다.











  * 이 영 지
 · 문학박사․철학박사․시인․시조시인
 · 저서: 『한국시조문학론』『물에 대한 신학과 문학의 비교연구』              『물의 신학과 물의 시학』『이상시학연구』
        『한국 시조시학 연구』『한국시조 창작리듬 연구』(근간)
 · 시조집: 『하오의 벨소리』『행복의 순위』『행복행내님네」
        『일곱금촛대위에행복』『행복보라』『하나님의행복                          한연출』『사랑이랑행복이랑』『사랑비비행복』『장미와앵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