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잘 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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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잘 쓴 시

유용선 0 7510
<table border=0 width=500 style="line-height:160%;"><tr><td>
그동안 참으로 많은 시인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구상, 김광림, 김경린, 김남조, 김춘수, 김규동, 민영, 유영, 조병화, 황금찬 등의 원로시인은 물론 강은교, 김대규, 김영승, 도종환, 마광수, 민용태, 박남철, 신달자, 신세훈, 윤강로, 윤후명, 이기철, 정진규, 최승자 등 중견시인과 김중식, 박형준, 배정원, 이윤학, 함민복 등 저와 연배가 엇비슷한 시인들을 만났습니다.

너무 쟁쟁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 탓인지 제 경우엔 자기 작품에 대해선 늘 미흡하다는 느낌이고, 그에 따라 작품을 쓰고 발표하는 일보다는 좋은 작품을 찾아내는 일에 더욱 관심이 많게 되었습니다. 다른 이유로는 우리 시단에 대해 깊은 회의를 지닌 지 오래된 탓도 있습니다. 그러던 제가 요즘은 새삼 새로운 의욕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제 의식을 붙잡아 오던 '잘 쓰려는' 강박을 벗어던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수준 높은 시인들을 만나면서 제가 가장 자주 하는 생각은 ≪'좋은 시'와 '잘 쓴 시'≫의 문제입니다. 제게 있어 좋은 시란 '시정신이 살아 숨쉬고 독자를 견인하는 힘이 있는 시'입니다. 하지만 '잘 쓴 시'에 대해서는 지식만이 있을 뿐 개인적인 의견을 따로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시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형상화', '구성미', '낯설게 하기', '전경화', '언어의 조탁', '인식력' 등등이 제게 있어서도 역시 '잘 쓴 시'의 잣대들입니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것은 잘 썼으면서도 좋은 시를 남기는 것이겠습니다만, 저는 때로 아주 서툰 무기교의 시편들 속에서 사금파리처럼 빛나는 '좋은 시'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일체의 사마(邪魔)가 끼어들어 있지 않은 그런 시편을 읽는 일은 참으로 커다란 행복이요 행운입니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서럽고 다른 한편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다행인 '詩 쓰기'입니다. 따라서 시인의 노고가 문예지나 시집을 통해 잠깐 위로 받다가 사라져 버리지 않을 수 있다면 '시의 백과사전'을 시도한 무모함은 참으로 칭찬 받아 마땅하지 않나 하는 것이 제 어리석은 소견입니다. 이곳에는 한국 시문학사에 획을 그을 시인들의 작품과 아직 많은 공부를 필요로 하는 이들의 작품이 백과사전 스타일의 편집 덕택에 동등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이 시집을 구입하는 데에 긍정적일 것인가 혹은 부정적인가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많습니다. 이곳에서 처음 시를 접하고 시집을 찾게 되었다는 분들이 많아지기 바랍니다.

세상에 태어난, 태어나고 있는, 태어날 많은 시편들이 제각기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징검다리와 같아지길 희망합니다. 이곳을 만든 이나 저와 같은 몇몇 도우미들의 마음이 서로 매우 비슷할 거라 생각합니다.
비록 한 잔의 차나 술을 마주할 수도 없고 자료를 모으는 외에 별다른 문학행사를 주관하지도 못하고 있지만, 이곳을 아는 사람들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 '詩가 있는 만남'이 무수히 많이 생겨나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작은 시상이 유장한 시편으로 자라듯, 작지만 꾸준한 걸음으로 시의 백과사전을 완성해 나가는 데에 더많은 시인들과 시애호가들이 발맞추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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