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하 님의 시중에

홈 > 게시판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시론, 수필, 감상평 등과 일상적 이야기, 유머, 질문, 답변, 제안 등 형식이나 주제, 성격에 관계없이 쓸 수 있습니다.
(단, 영리 목적의 광고성 정보는 금지하며 무단 게재할 경우 동의없이 삭제하며 향후 이용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유 하 님의 시중에

진진 2 3415
신해철에게 쓴 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해철이 2집에서 그 시를 노래로 옮겨 '나에게 쓰는 편지'를 만들었구요.

이 시를 어디선가 언뜻본 것도 같은데 찾을 수가 없군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와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을 뒤져도 나오지가 않구요.

이 시에 관해서 전문이나, 혹시 제목이라도 알고 있으신 분이 계시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2 Comments
가을 2005.05.09 00:31  
안녕하세요.
저도 오래전에 유하님의 작품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뭔가 잘 못 전해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나에게 쓰는 편지가 아니라 정확한 제목은
"너에게 쓰는 편지 -신해철에게" 입니다.
이 시는 신해철씨의 노래 '나에게 쓰는 편지'를 페러디 하여
만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홈페이지에 올린 기억이 분명히 있습니다만
지금 엉망이라서 찾을 수가 없군요.

다음은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와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전문입니다.
100% 도움을 못드려 죄송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1
-어떤 배나무숲에 관한 기억
 


 압구정동에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게로라는 까페가 생겼다
 온통 나무로 인테리어한 나무랄 데 없는......
 그 옆은 뭐, 매춘의 나영희가 경영한대나 시와 포르노의 만남 또는
 충돌......몰래 학생 주임과의 충돌을 피하여 펜트하우스를 팔러 다니던,
 양아치란 별명을 가진 놈이 있었다 빨간 책과 등록금 영수증을
 교환하던 녀석, 배나무숲 너머 산등성이 그애의 집을 바라볼 때마다
 피식, 벌거벗은 금발 미녀의 꿀배 같은 유방 그 움푹 파인 배꼽 배......
 배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밤이면 옹골지게 익은 배가
 후두둑 후두둑 녀석은 도둑고양이처럼 잽싸게 주워담았다
 배로 허기진 배를 채운 새벽, 녀석과 난 텅 빈 신사동 사거리에서
 유령처럼 축구를......해골바가지......난 자식아, 여기 최후의 원주민이야
 그럼 난......정복자? 안개 속 한남동으로 배추 리어카를 끌고 가던
 외팔의 그애 아버지...... 중학교 등록금...... 와르르 무너진 녀석의
 펜트하우스, 바람부는 날이면 녀석 생각이 배맛처럼 떠올라 압구정동 
 그 넓은 배나무숲에 가야 했다 그의 십팔번 김인순의 여고 졸업반
 휘파람이 흐드러진 곳에 재건대원 복장을 한 배시시 녀석의 모습
 그 후로부터 후다닥 상전벽해(桑田碧海)된 지금까지 그를 볼 수 없었다 어디서
 배꽃 가득한 또 다른 압구정동을 재건하고 있는지...... 바람부는 날이면
 배맛처럼 떠오르는 그애 생각에 배나무숲 있던 자리 서성이면......
 그 많던 배들은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수많은 배들이...... 지금
 이곳에 눌러앉은 사람들의 배로 한꺼번에 쏟아져들어가 배나무보다
 단단한 배포가 되었을까..... .배의 색깔처럼...... 달콤한 불빛, 불빛
 이 더부룩한...... 싸늘한 배앓이...... 바람부는 날이면...... 


시집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문학과지성사 1991


================================================================================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2
-욕망의 통조림 또는 묘지



  압구정동은 체제가 만드어낸 욕망의 통조림 공장이다
  국화빵 기계다 지하철 자동 개찰구다 어디 한번 그 투입구에
  당신을 넣어보라 당신의 와꾸를 디밀어보라 예컨대 나를 포함한 소설가 박상우나
  시인 함민복 같은 와꾸로는 당장은 곤란하다 넣자마자 띠―소리와 함께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그 투입구에 와꾸를 맞추고 싶으면 우선 일 년간 하루 십 킬로의
  로드웍과 섀도 복싱 등의 피눈물 나는 하드 트레이닝으로 실버스타 스탤론이나
  리차드 기어 같은 샤프한 이미지를 만들 것 일단 기본자세가 갖추어지면
  세 겹 주름바지와, 니트, 주윤발 코트, 장군의 아들 중절모, 목걸이 등의 의류 액세서리등을 구비할 것 그 다음
  미장원과 강력 무쓰를 이용한 소방차나 맥가이버 헤어스타일로 무장할 것
  그걸로 끝나냐? 천만에, 스쿠프나 엑셀 GLSi의 핸들을 잡아야 그때 화룡점정이 이루어진다
  그 국화빵 통과 제의를 거쳐야만 비로소 압구정동 통조림통 속으로 풍덩 편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곳 어디를 둘러보라 차림새의 빈부 격차가 있는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욕망의 평등 사회이다 패션의 사회주의 낙원이다
  가는 곳마다 모델 탤런트 아닌 사람 없고 가는 곳마다 술과 고기가 넘쳐나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구나 미국서 똥구루마 끌다 온 놈들도 여기선 재미 많이 보는 재미 동포라 지화자, 봄날은 간다―
  해서, 세속도시의 즐거움에 동참하고 싶은 자들 압구정동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힘쓰는구나
  투입구의 좁은 문으로 몸을 막 우겨넣는구나 글쟁이들과 관능적으로 쫙 빠진 무용수들과의 심리적 거리는, 인사동과 압구정동과의 실제 거리에 비례한다
  걸어가면 만날 수 있다 오, 욕망과 유혹의 삼투압이여
  자, 오관으로 느껴보라, 안락하게 푹 절여진 만화방창 각종 쾌락의 묘지, 체제의 꽁치 통조림 공장, 그 거대한 피스톤이, 톱니바퀴가 검은 기름의 몸체를 번득이며 손짓하는 현장을
  왕성하게 숨막히게 숨가쁘게
  그러나 갈수록 쎅시하게
  바람이 분다 이곳에 오라
  바람이 분다 이곳에 오라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이곳에 오라


시집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문학과지성사 1991


================================================================================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3



까페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에 자주 오는
심혜진 닮은 기집애가 묻는다 황지우가 누구예요?
위대한 시인이야, 서정윤씨보다두요?켁켁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라는데 그게 무슨 소리죠
아, 이곳, 죽은 시인의 사회에 황지우의 시라니
아니, 이건 시가 아니라 삐라다 

캐롤이 섹슈얼하게 파고드는 이, 색쓰는 거리
대량 학살당한 배나무를 위한 진혼곡이다
나는 듣는다, 영하의 보도 블록 밑
우우우 무수한 배나무 뿌리들의 신음 소리를

쩝쩝대는 파리크라상, 흥청대는 현대백화점,
느끼한 면발 만다린 영계들의 애마 스쿠프, 꼬망딸레부
앙드레 곤드레 만드레 부띠끄 무지개표 콘돔
평화이발소,이랏샤이마세 구정 가라오케

온갖 젖과 꿀과 분비물 넘쳐 질퍽대는
그 약속의 땅 밑에서 고문받는 몸으로,
고문받는 목숨으로, 허리 잘린 한강철교 자세로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틀어막힌 입으로 외마디 비명 지르는
겨울나무의 혼들, 혼의 뿌리들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 하늘에 뿌리고 싶다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다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 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 일수 아줌마들이 작은 쪽지를 돌리듯 그렇게
저 말가죽 부츠를 신은 아가씨에게도
주윤발 코트 걸친 아이에게도 삐라 돌리고 싶다

캐롤의 톱날에 무더기로 벌목당한 이 도시의 겨울이여
저 혹독한 영하의 지하에서 막 밀고 올라오려
발버둥 치는 혼의 뿌리들, 그 배꽃 향기 진동하는 꿈이여, 

그러나 젖과 꿀이 메가톤급 무게로 굽이치는 이 거리,
미동도 않는 보도 블록의 견고한 절망 밑에서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필 수 없는 나무다



*황지우의 시를 부분적으로 페러디하거나 인용했음을 밝혀둔다.


시집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문학과지성사 1991


================================================================================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4



소망교회 앞,
주 찬양하는 뽀얀 아이들의 행렬,
촛불을 들고 억센 바람 속을 걸어간다
태초에 불이 있나니라, 이후의,

칠흙의 두메 산골을 걸어가다 발견한,
그 희미한 흔들림만으로도 반갑던
먼 곳의 등잔불이여
불빛을 발견한 오징어의 눈깔처럼
눈에 거품을 물고 돌진 돌진

불 같은 소망이 이 백야성을 만들었구나,
부릅뜬 눈의 식욕, 보기만 해도 눈에 군침이 괴는,
 저 불의 부페 色의 盛饌을 보라
그저 불밝히기 위해 심지 돋우던 시절은 지났다

매서운 한강 똥바람 속,
촛불의 아이들은 너무도 당당해 보인다
그들을 감싸고 있는 이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수정 샹들리에이므로
風前燈火, 불을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

이젠 바람도 불과 함께 놀아난다
휘황찬란 늘어진 샹들리에 주위에 붙은 똥파리
불의 소망 근처에서 불의 구린내를 빠는
똥파리의 윙윙 날개 바람

바람 속으로 빽이 든든한 촛불들이 기쁘다
구주 기쁘다 걸어간다, 보무도 당당히,
오징어의 시커먼 눈들이 신바람으로 몰려가는,
불의 부페 파티장 쪽으로


시집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문학과지성사 1991


================================================================================
================================================================================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1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독한 마음의 열병,
나 그때 한여름날의 승냥이처럼 우우거렸네
욕정이 없었다면 생도 없었으리
수음 아니면 절망이겠지, 학교를 저주하며
모든 금지된 것들을 열망하며, 나 이곳을 서성였다네

흠집 많은 중고 제품들의 거리에서
한없이 위안받았네 나 이미, 그때
돌이킬 수 없이 목이 쉰 야외 전축이었기에
올리비아 하세와 진추하, 그 여름의 킬러 또는 별빛
포르노의 여왕 세카, 그리고 비틀즈 해적판을 찾아서
비틀거리며 그 등록 거부한 세상을 찾아서
내 가슴엔 온통 해적들만이 들끓었네
해적들의 애꾸눈이 내게 보이지 않는 길의 노래를 가르쳐주었네

교과서 갈피에 숨겨논 빨간책, 육체의 악마와
사랑에 빠졌지, 각종 공인된 진리는 발가벗은 나신
그캄캄한 허무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나 모든 선의 경전이 끝나는 곳에서 악마처럼
착해지고 싶었네, 내가 할 수 있는 짓이란 고작
이 세계의 좁은 지하실 속에서 안간힘으로 죽음을 유희하는 것,
내일을 향한 설렘이여, 우우
무덤은 너를 군것질하며 줄기차게 삶을 기다리네

내 청춘의 레지스탕스, 지상 위의 난
햇살에 의해 남김없이 저격되었지
세상의 열병이 내 몸 속에 들어와 불을 밝혔네
금지된 生의 집어등이여, 지하의 모든 나를 불러내다오
나는 사유의 야바위꾼, 구멍난 영혼, 흠집 가득한 기억의 육체들을
별빛의 찬란함으로 팡아먹는다네
내 마음의 지하상가는 여전히 승냥이 울음으로 붐비고
나 끝끝내 목이 쉰 야외 전축처럼
해적을 노래부르고 해적의 야꾸눈으로 사랑하리
 

시집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95


================================================================================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2 


 
사춘기의 나날, 유일한 낙이 있었다면
오르넬라 무티, 린제이 와그너, 엘리다 벨리…
세운상가 다리 위에서 이방의 여배우 이름이나 뇌까리는 것,

세운상가, 욕망의 이름으로 나를 찍어낸 곳
내 세포들의 상점을 가득 채운 건 트레이시와 치치올리나,
제니시스, 허슬러, 그리고 각종 일제 전자 제품들,
세운상가는 복제된 수만의 나를 먹어치웠고
내 욕망의 허기가 세운상각를 번창시켰다

후미진 다락방마다 돌아가던 8미리 에로티카 문화영화
포르노의 세상이 내 사랑을 잠식했다
여선생의 스커트 밑을 집요하게 비추던 손거울과
은하여관 2층 창문에 매달려 내면의 음란을 훔쳐보던
거울의 포로인 나, 오 그녀는 나의 똥구멍
가끔은 서양판 변강쇠 존 홈스가
나의 귀두에 다마를 박으라고 권했다
금발 여배우의 매혹이 부풀린 영화 감독이라는 욕망,
진실은 없었다, 오직 후끼된 진실만이 눈앞에 어른거렸을 뿐

네가 욕망하는 거라면 뭐든 다 줄 거야
활한 불빛으로 세운상가는 서 있고
오늘도 나는 끊임없이 다가간다 잡힐 듯 달아나는
마음 사막 저편의 신기루를 향하여,
내 몸의 내부, 어두운 욕망의 벌집이 웅웅댄다
그렇게 끝없이 웅웅대다가 죽음을 맞으리라
파열되는 눈동자, 충동의 벌떼들이 떠나가고
비로소 욕망의 거울은 나를 놓아줄 것이다
 


시집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95



================================================================================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3

 

나는 미국판 마분지 소설
휴먼 다이제스트로 영어를 공부했고
해적판 레코드에서조차 지워진 금지곡만을 애창했다
나의 영토였던 동시 상영관의 지린내와, 부루라이또 요코하마
양아치, 학교의 개구멍과 하꼬방,
난 모든 종류의 위반을 사랑했고
버려진 욕설과 은어만을 사랑했다

나는 세운상가 키드, 종로3가와 청계천의
아황산 가스가 팔 할의 나를 키웠다
청계천 구루마의 거리, 마도의 향불 아래
마성기와 견질녀, 꿀단지, 여신봉, 면도사 미스 리
아메리칸 타부, 애니멀, 뱀장어쑈, 포주, 레지, 차력사…
고담市의 뒷골목에 뒹구는 쓰레기들의 환흐, 유혹
나의 뇌수는 온통 세상이 버린 쓰레기의 즙,
몽상의 청계천으로 출렁대고
쓸모 없는 영혼이여, 썩은 저수지의 입술로
너에게 무지개의 사랑을 들려주리
난 구정물의 수력 발전소,
난지도를 몽땅 불사른 후의 에너지

세상이 나를 원하지 않을 것이기에, 태양의 언어 밖에서
난 노래한다, 박쥐의 눈으로 어둠의 광휘를
난 무능력한 자이므로, 풍자한다
호화 양장본 세상의 기막힌 마분지성에 대하여

나는 부유하는 육체의 세운상가
곰팡이를 반성하지 않는 곰팡이,
그리하여 곰팡이꽃의 극치를 향해가는 영혼
 


시집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95
진진 2005.05.09 02:02  
가을님 감사합니다. 패러디를 바꾸어 알고 있었군요^^;
말씀해주신 '너에게 쓰는 편지 - 신해철에게'는 제가 가진 세 권,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에는 없더군요. 나중에라도 혹시나 발견하게 되시면 꼭 알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