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맥문학5월호 시월평/김송배(시인, 평론가/한국문인협회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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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맥문학5월호 시월평/김송배(시인, 평론가/한국문인협회사무처장

서봉석 1 4757
-한평생에 여러 권의 작품을 만들어 내느니보다 차라리 하나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편이 낫다.
-E. L. 파운드

 

5월은 싱그러운 녹색의 계절이다. 계절의 찬미보다는 시간의 소비에 대한 집념이 강해지는 요즘 시 작품들을 대하면, 아, 우리도 낭만적인 순진성이 사라지고 어쩔 수 없이 동시대의 혼탁과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더 많은 가운데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5월은 잎의 달이다. 따라서 태양의 달이다. 5월을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도 사랑한다. 절망하거나 체념하지 않는다. 권태로운 사랑 속에서도, 가난하고 담담한 살림 속에서도 우유와 같은 맑은 5월의 공기를 호흡하는 사람들은 건강한 희열을 맛본다.


-이어령의 <차 한 잔의 사상> 중에서

친자연만을 고집하는 시인이 아니라도 5월의 푸른 생명성에 대한 이미지가 넘쳐나는 작품들이 많이 선보인곤 했다. 이러한 원색의 계절을 위해서 발표된 지난 4월의 시편들은 풍성했다.
우선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월간문학? 이외 ?계간 한국시학? 봄호가 나와 회원들의 발표지면을 확대하고 있어서 주목되고 있다. 많은 회원들에게 발표 기회를 균등하게 하고자 ?월간문학?에서 30인의 작품 60여 편과, ?계간 한국시학?에서 105인의 작품 210여 편을 게재하여 화제를 낳고 있다.
한편 한맥문학에서도 90여 편의 작품이 실려 시단의 풍작을 이루고 있으나 서봉석의 ‘신작 소시집’ 10편이 이번 달에는 유독히 눈길을 모은다. 이미 시력으로 중진인 서봉석의 작품들은 주제나 의미성의 추적보다는 그가 구사하는 어조와 구도상의 시법에서 이미지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겠다.

 

 

 

하루에 꼭 두 번은
들물 썰물
생시로 안부 물으러 오는 파도
후렴 없는 바다새의 노래따라
물안개 흩는 봄날을
장난스럽게도
통, 통, 통
물장구치는 작은 배
싱싱한 바다를 머리채 끌고 와서는
철퍼덕 내려놓고 흥정하는 소리
좌판마다 팔팔 뛰고
곰삭은 갯바람에
비린내 묻은 햇빛도 소금빛
지금은 밀물
수만 파도 타 넘고
세상으로 유람 오는 해풍이
넉넉한 몸짓으로
앞길 틔워 놓는 서해바다
꽃게 한 마리가
짭쪼롬하게 간 밴 파도를 물고
게걸음으로 온다
맛깔스럽게 문 열리는 아침

 

 

 

 

우리는 이 작품 <소래포구>를 대하면서 몇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시적인 구도상으로 다양한 이미지의 동원이다. 이미지는 현대시의 표현 본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놓인다.
시의 이미지는 대체로 우리 신체의 오관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있으므로 시각?청각?미각?후가?촉각 등의 다섯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는데 역학적 이미지나 색채적 이미지와 공감각적 이미지도 이미지의 효과를 높여 주고 있다.
서봉석은 ‘안부 물으러 오는 파도’에서 시각적 이미지를, ‘바닷새의 노래’나 ‘통, 통, 통’에서 청각적 이미지를 구사하여 작품의 구도를 조화롭게 하고 있다. 작품 전체에서 시각,청각을 반복하다가 ‘비린내’라는 후각과 ‘짭쪼롬하게 간 밴’과 ‘맛깔스럽게’에서 미각적 이미지까지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
이른바 이것을 우리는 공감각적 이미지(synaesthetic image)라 이름한다. 이는 하나의 감각이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감각과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제시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바로 정신적 이미지의 대표적인 제시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시에서 정신 자체가 단순하고 분석적이지만은 않다는 이유로 복합적인 감수성에 호소하기에는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현대시 창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다음 <분재>에서도 동류의 개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산 위 사는 하늘 만날까
오르다 지친 소나무를
분재 삼아서 집에 모셔 놨더니
청풍명월도 선뜻 뒤따라와서
산도 놓고 물도 놓고
나무 심더니
가끔은 구름으로 멋도 부리네
무심한 한 시절 철새 보고도
꼬리치며 일어서서 환장하는 꽃
씨방 터트리며 내리는 비로
마른 가슴 번갈아 서로 비비면
속 젖는 풀 향기 고운 봄날이
풍경 달린 새소리로 밀려들어서
작은 집도 넓게 차는 열두 폭 햇빛.
분재 속을 놀다 가는 목숨 한 소절
벌레 한 마리가 유람중이네.

 

여기에서도 서봉석은 적절한 이미지의 구현을 보이고 있다. 처음부터 ‘씨방 터트려 내리는 비로’까지는 전형적인 시각 이미지만을 지속하다가, ‘마른 가슴 번갈아 서로 비비면’에서 촉각 이미지로, ‘속 젖는 풀 향기’에서 후각 이미지로, 다시 ‘풍경 달린 새소리’에서 청각 이미지로 변환되는 특성이 있다.
이는 시 창작에서 단순한 시각적 이미지만을 표현한다면, 작품이 단조로운 스케치가 될 뿐만 아니라, 정경의 묘사로 끝나면서 아무런 감각적 정서나 의미가 위축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일러 이미저리(imagery)라고 한다. T. S. 엘리어트도 현대적 감수성은 시 작품에서가 아니면 느끼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것은 통합된 감수성은 과학의 세계가 노출하는 추상적이고 비인간적인 측면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라는 의미에서 공감각적 이미지의 설명에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 가지의 감각 묘사로는 다른 감각을 묘사할 때, 즉 소리에 냄새가 가미되고 냄새에 색채가 가미되고 다시 냄새와 소리, 맛과 시각적 사물의 현상이 가미되는 등 복합적으로 작품 속에 제시되는 이미지가 바로 공감각적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다음 <산행.2>는 어떤가.

 

소한 대한에도 얼지 않던 산이
오늘은
바람부터 얼었다
겨우내 자라 다복솔 같은
고드름으로
살갗 햇빛을 문지르면
수염 쓸리는 따가움에
간지러움조차 생생 일어
산 오르기 바쁜 열여섯
계집아이에게는
추우면 더 붉어지는 홍조가
볼연지부터 부끄러운 그리움이고
산 높을수록
더 단단해지는 빙판 위로
말씀만 다녀가시던 범종 소리가
바람 쓸어 길을 놓으니
아래에다 세상 놔두고 온 사람들
꽃보다 더 색색으로, 짜릿
짜릿 전기를 탄다.

 

 

서봉석의 이미지 제시와 구현은 이미 익숙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대체로 촉각 이미지의 제시가 두드러지고 있다. 보는 바와 같이 시적 상황 설정에서 ‘바람부터 얼었다’는 촉각에서부터 ‘문지르면’이라든지, ‘따가움’, ‘간지러움’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짜릿/ 짜릿 전기를 탄다.” 등은 순전히 촉각 이미지로 작품을 형상화하고 있다.
물론, 전체적인 작품의 전개는 시각 이미지가 대종을 이루지만, ‘범종 소리’라는 청각과 ‘홍조’, ‘볼연지’, ‘색색’이라는 색채적 이미지의 제시가 가미됨으로써 시 읽기에서 상상력의 발현은 그만큼 영역이 확대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서봉석은 신작 소시집으로 발표된 작품 전체에서 이러한 이미지의 제시가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지가 광의의 개념으로 육체적 지각작용에서 일어난 감각적 현상이 마음속에서 재생되어 작품으로 분화한다는 작법상의 몇 가지 원론을 감지하고 있음에 기인한다.
그러나 요즘 현대시는 이 다섯 가지의 분화된 이미지도 중요시하지만, 작품 전체의 어떤 스토리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전달되는 메시지적 이미지를 제시하는 경향이 더욱 호감을 얻고 있다.
원래 이 이미지는 상상력(imgination)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의 심리학자였던 윌리엄 제임스의 언지를 잠깐 들어볼 필요가 있다. 이 상상력은 재생적 상상과 생산적 상상으로 구분하는데, 단순히 지난날을 되새기는 재생이 아니라, 재생된 상상에서 선택된 요소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이미지의 통일체를 만들어내는 것, 곧 생산적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심리학적 분석이 우리 문학에도 적용되어 재생적 상상력은 바로 창조적 상상력으로 전환되고 시인의 정서와 사상이 가미되어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삶의 궤적에서 획득되는 많은 체험들이 여과하여 우리의 소중한 시적 상상력으로 다시 제시되는 것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대명제를 철학이나 심리학쪽에서 해법을 찾을 것이 아니라, 문학과 접목시켜서 조화를 이룬다면 우리 현대시의 미래는 더욱 밝을 것이다.
1 Comments
이은별 2005.05.13 08:45  
섬세하면서 유려하고 쾌연한 작품이어서 단독으로 월평에 나오셨어요~!
스승님의 힘이 넘쳐나는 詩에 박수를 드립니다.
문학상 수상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항상 좋은일만 가득하시길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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