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운 김남열의 "행복은 시공을 초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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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운 김남열의 "행복은 시공을 초월한다"

하운 0 252
행복은 시공을 초월超越 한다

하운 김남열

사람들의 삶은 흘러가는 것

 사람들의 삶은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물처럼 흘러간다. 정지하면 고여서 썩는다. 고이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강에서 최종의 목적지인 바다로 흘러간다. 그리고 흘러가면서 일부는 하늘로 증발되어 구름이 되고, 그 구름은 다시 비가 되어 대지를 적시고 하천에서 강으로 강에서 바다로 끊임없이 돌고 돌아 흐르면서 순환한다.
 이같이 인간에게 주어진 어떠한 것이든 간혹 순환의 논리에 위배 하는 것도 있지만, 거의 순환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 없다. 그 순환의 이치를 거역하면 그대로 그것은 해로운 것이 되어 인간에게로 돌아간다. 재앙과 재난이 되어서.
 그래서 거진 그 순환의 이치에 동참하면서 흐른다.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느낌으로 와 닿는 사람들의 행복이란 것도 마찬가지이다. 정지되어 있지 않고 물줄기처럼 흘러감의 노상路上(길 위에)에 있다. 그 흐름의 과정 속에서 인간은 희로애락喜怒哀을 느끼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즐거우나 슬프나, 많이 가지고 살거나, 적게 가지고 살거나 그 스스로  성취한 만큼 행복을 느낀다. 사람들의 행복은 사람들에 의해서 성취되면서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불행 하게도 만들며 파노라마의 곡선을 그려간다. 또한 현재의 삶을 안주하게 하지 않고 움직이면서 질적이며 양적으로 변모시켜 증대시켜 나간다. 그래서 인간의 행복은 정해진 울타리의 논리 속에서 가두어져 있지 않고, 논리적인 생각과 시간과 공간적 개념의 제약을 벗어나서 행복을 느낀다.

사후의 행복을 위하여
 
 인간은 인간이란 자체가 생명을 가지고 있는 우주에서 살아가는 존재로서는 가장 소중한 개체이다. 인간이란 개체가 유기체이며 이 세상에서 소멸 된다 해도 우주를 이루며, 산을 이루며, 물을 이루며, 불을 이루며 우주공간에 영기靈氣(신령한 기운이 되어)가 되어 유영한다. 그래서 우리가 인간의 행복을 논할 때는 지상에서의 행복만 애기하지 않는다. 지상地上에서 살다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사후의 행복까지 논한다.
 그것은 인간의 행복은 죽음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인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죽으면 사후의 세계가 있다고들 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간이란 현생이 있으면 내생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란 존재가‘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기이하는 것이며,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몸과 정신을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사후의 세계를 믿든지, 말든지, 인간이란‘사후死後’자신을 위해 혹은 타인을 위하여‘천도’를 지내고 있다. 타인을 위한 것은 산자의 죽은 자를 위한‘천도제’이다. 또는 죽어서 영혼이 어떻게 될는지 모르기에 어찌하였던 내생에서는 좋은 곳으로의 태어나는 것을 누구나 할 것 없이 잠정적으로 원하는 까닭에 살아있는 자신을 위한 천도인‘천도제’를 지낸다.
그것은 직접‘행동’으로도 표시하는데, 우리는 그것을‘공덕’이라 말하며, 몸으로 행하는 모든 것을 소위 말해‘공덕 쌓기’라 한다.
 그 공덕公德은 살아생전 육신이 죽어서 자신이 좋은 하늘 길로 가기 위해 이승에서 자신이 행동으로 쌓는‘천도제天道祭’(사람이 죽어 그 영혼이 내생(來生)의 좋은 곳에 다시 태어나도록 그 가는 길을 안내하고 인도하며 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이끌어주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영기가 서린 인간존재

 위와 같히 견주어 생각할 때, 결코 인간이란 몸체는 몸과 정신을 구분해서 말할 수는 없다. 또한 남자니, 여자니 구별하지 않고, 구분해서 말할 때 인간이란 존재는 인간존재의 진정성의 가치를 빠트리고 설명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을 논할 때 남과 여는 실과 바늘과 같다. 한편으로 그것은 남녀 모두에게는 공통적으로 소통되는‘영기’가 서려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정상적이 되려면 남녀가 결혼하고, 사랑하여 하나가 되어 반쪽과 반쪽이‘한쪽’이 되어야 하듯 그래야 납자는 진정한 남자로서, 여자는 진정한 여자로서 거듭나며 제구실을 하고 살듯이,‘몸과 정신’도 일체가 되었을 때 우리의 몸도 정상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추구하는‘행복’도 몸과 정신이 정상적인 사람의 행복이다. 우리는 흔히“정신의 줄을 놓거나, 정신이 나갔다고” 한다. 이때 사람들은 그를 일러‘미친 사람’‘제 정신 아닌 사람’‘정상이 아닌 사람’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행복도 비정상적인 사람의 행복이 아니며, 그것을 우리는 행복이라고도 말하지도 않는다.       

무어라말해도 인간이라는 존재의 최상의 목적은 행복으로 나아가는 행복의 추구이며, 남녀누구나 몸에는‘영기’가 서려있기에 그것을 기운氣運으로 느낀다. 그리고 다분히 중간자적 존재이며 다분히 중성자적 성격을 지닌, 사람인 남자는 약간의 여성성의 여자의 모습도 보이면서, 여자는 약간의 남성성의 남자의 모습을 띄면서 살아간다. 남자이고 여자이고 결정하는 것은 남자와 여자 속에 내재하고 있는 약간의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약간의 의지에 달려있다. 그 약간의 의지가 남자의 모습, 여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융(독일어: Carl Gustav Jung [ˈkarl ˈgʊstaf ˈjʊŋ], 1875년 7월 26일 ~ 1961년 6월 6일. 스위스의 정신의학자로 분석심리학의 개척자이며〕은 남자는 50%의 남성과 49%의 여성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성은 50%의 여성성과 49%의 남성성으로 되어 있다고 말했다. 또, 간단한 예로써 남자가 수줍어하는 모습, 여자가 왈가닥처럼 보이는 모습도 사례가 된다. 그래서 남자 속에 여자 있고 여자 속에 남자가 있다는 말을 사람들은 종종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인간인 남녀 모두의 몸은 영기로 이루어져 있어‘희로애락喜怒哀樂(기쁨과 노함과 슬픔과 즐거움)’의 행복을 ‘기운’으로 느낀다. 몸체와 정신과 영기로 구성되어 있기에 사람 몸은 죽어도‘기운’은 수 백 년을 간다고 한다. 몸은 사라져도 그 사람의 ‘기운’은 우리 주변을 맴돈다. 그리고 기운이 사라질 때 정신도 몸도 함께 완전히 소멸되고 ‘영기’는 몸에서 빠져나와 다시 우주에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남과 여로 살아있을 때 인간의 행복은 몸이‘영기’로 이루어져 있기에 몸만 편하다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더불어 정신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야 완성된 행복을 가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의 느낌은‘기운의 느낌’이다. 즉,“몸 가는데 마음도 따라간다”는 말처럼 몸 따로 정신 따로의 행복은 없다. 몸과 마음이‘일체동심’이 되어 움직일 때 진정한 행복을 추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의 행복의 출발은‘일체동심一體同心(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으로 부터 출발 한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 서로 얽히고 얽혀 만들어지는 행복은 극히 행복의 일부이다.

행복은 기운의 느낌

 정해져 묶여있는 행복은 행복이 아니다. 행복은 인간의‘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자유로움의 풍요를 느끼는 최상의‘기운의 느낌’이다. 그러기에 행복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매우 민감하게 적응하고 변한다.
 시간과 공간적 제약이 없으며, 그 시간과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는다. 그것은 인간이 누리는 행복이란 것이 인간이 느끼는‘기운의 종합’이기 때문이다.
 환경은 좋은 환경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환경도 있다. 부자도 있고, 가난한자도 있고, 권력을 쥔 자도 있고, 그렇지 못한 자도 있다. 이것들이 모두 다 열거된 환경의 모습이다. 그 환경의 차이가 어떠하든 인간은 누구나 그 환경 속에서 생각과 몸의 감각에 의하여 행복을 체험하고 느낀다. 어떨 때는 몸만 편해도 행복하다 하고, 어떨 때는 정신이 안정을 찾아도 행복하다고 한다. 반면 몸만 불편해도 불행하다고 하고, 정신적인 고초만 겪어도  불행하다고 한다. 행복은 몸과 마음이 둘로 갈라지면 정상이 아니 듯, 행복도 몸과 정신이 갈라진 반쪽의 행복이 될 수가 없다. 그것은 행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하나로 느끼는 행복 그것이 최상의 행복이다. 행복은‘큰 행복’‘작은 행복’이 없다. 기운氣運을 ‘크게 느끼든지’‘적게 느끼든지’할뿐이다. 우리가 행복이라고 말할 때, 행복이란 단어는 인간들이 규정한 정의定意일 뿐, 실질적으로 인간세계에서의 행복은 그 정의의 시간과 공간적 제약을 벗어난 시공을 초월한 행복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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