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운 김남열의 "천의 얼굴을 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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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운 김남열의 "천의 얼굴을 한 인간"

하운 0 327
천의 얼굴을 한 인간

하운 김남열

선과 악에 대하여

  세상이 급속도로 변하고 발전하고 있다. 그렇게 급속도로 변하는 만큼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도 여러모로 변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양한 많은 얼굴을 가진다. 사람들은 천의 얼굴을 지닌다. 미운 얼굴, 고운 얼굴, 험상 굳은 얼굴, 화사한 얼굴, 둥근 얼굴, 각진 얼굴, 길죽한 얼굴, 통통한 얼굴, 주름살이 많은 얼굴, 탱탱한 얼굴..., 등 사람들의 얼굴은 사람들의 인구 수 만큼 모두 다른 특징의 얼굴을 가지며 다양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얼굴을 인간사회의 도덕적인 잣대로 다시 표현한다.
 선한 얼굴, 악한 얼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얼굴,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얼굴 등이다.
 그 도덕률의 잣대로 표현하는 얼굴은 마음의 발로에 의하여 나타나는 모습이다.
 그래서 선한 얼굴의 모습은 선한 마음의 표현이기에 선하게 얼굴에 나타나 보인다는 것이며, 악한 얼굴은 악한 마음으로의 표현이기에 얼굴 모습이 악하게 나타나 보인다는 것이며,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는 얼굴은 말 그대로 선해보이지도, 악해보이지도 않는 선도 악도 느낄 수 없는 얼굴이라는 것이며,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얼굴은 악과 선의 마음이 동시에 얼굴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얼굴에 대한 이러한 표현은 사람이 개개인의 사회적 환경과 여건에 따라서 형성되며, 한 개인이 다 취할 수 있는 얼굴 모습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 문화 환경에 따라서 얼굴이 여러모로 바뀌고 변한다.
이를 일러 우리는 선한 사람, 악한사람,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사람,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사람으로 분류하며 사람들 서로 간에 평가하며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는 얼굴자체로만 보고서는 말할 수 없는 까닭에 사람들이 행하는 행동과 더불어서 사람 개개인의 마음 씀씀이를 보고 규정짓기도 한다.
 그 행동은 마음의 사유를 통하여 실천되어지는 것이기에 이런 한때, 그 사람의 참선, 악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래서 얼굴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선한 것이 아니요, 얼굴이 아름답지 않더라도 선하지 않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가 진정성의 마음을 가지지 않고 행동을 올바르게 하지 않으면 아름답다고 해도 선해질 수가 없으며, 또한 얼굴이 추하더라도 행동하는 모습이 진정성에 입각하여착하게 보이면 그는 선한 사람으로 비추어지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은 사람의 얼굴에 선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악한 사람도 그 사람의 얼굴에 악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얼굴이 아름다워도 마음은 미추美醜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며, 얼굴은 미추美醜해 보이나 마음은 맑고 깨끗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얼굴에 비추어진 선한 얼굴과 악한 얼굴의 모습은 개인 스스로가 행하는 마음에 달려있다고 본다. 그 사람이 마음을 어떻게 가지는가 하는 것이다. 가령 겸손과 겸양의 마음으로 행동하는가, 아니면 이기와 욕심으로 가득한 모습으로 행동하든가. 하는 것이다.

도덕률에 의해 정의 되는 선과 악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선이란 무엇인가?
악이란 무엇인가? 근본적인 질문으로 부터 시작해보고자 한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선善은 올바르고 착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음, 또는 그런 것 혹은 도덕적 생활의 최고 이상이라 보며, 언행이나 행동이 바르고 상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선이 적합한 선인가에 대해선 정의할 수 없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느끼는 그 선을‘선’이라고 생각 한다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또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에 따라서 선이 지켜지거나 선 자체가 왜곡되어 선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절대적 선이란 인간 세계에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악惡이란 것도 마찬가지이다. 악은 올바르지 않고 악하여 도덕적 기준에 위배되는 행동이 바르지 않는 행위이다. 이 또한 보편성을 지니나 절대적 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한 얼굴을 하고 있더라도 속은 이리의 발톱을 감추고 사는 사람들도 있고, 악한 얼굴을 보여도 마음속은 선한 양의 모습을 한 사람도 있다. 선한 행동도 악한 행동도 아닌 자연의 흐름에 사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선도 악도 동시적으로 행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도덕적 기준에 의한 행동에 의해 정의하는‘선과 악’은 딜레마에 빠질 수가 있다. 선이 절대적 선이어야 하지만 위선이 될 수가 있고,악이 절대적 악이어야 하지만 필요악이 될 수 있을 때, 선도 취 할 수가 악도 취할 수 없는 상태와 선도 취하고 악도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딜레마에서 해방

 선과 악의 취함에 있어서 딜레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은 확고한 자기 정체성이다. 딜레마에 빠지는 것은 자기정체성의 결여에서 발생한다. 확고부동의 정체성이 있다면 이론과 실천에 의한 경험되어진 정의에서 이루어진‘선’은 선이며 인간 세계에서 인간의 질서를 위하여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인간이 정한‘법’이라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 인간으로서의 도리와 가치실현을 위하며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선’은 도덕률이며 그‘선’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반면 절대적 악은 배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선과 악의 양자 포기(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는)와 선과 악의 양자 수용(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고)도 배제해야 한다. 양자포기와 양자 수용은 사회의 혼란을 야기 시키며 혼란과 딜레마에 바지게 하는 위험성을 안고 있고,‘악’기운으로부터‘선의 정체성’을 위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확고한 선의 정체성은 어떠한 정의正義도 지켜낸다.
 그 정의를 지켜주는 그리고 일관성 있게‘선의 도덕성’과‘선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사고는 수평적 사고, 수직적 사고, 수평적 사고와 수직적 사고가 하나가 되는 본질적 사고이다. 전자는 보편성 사고이며, 후자는 보편성의 허구를 정화시켜주는 역설적 사유이다.
수직적 사고는 깊이의 사고이며, 수평적 사고는 논리적이며 넓이의 사고이며, 역설적 사유는 반전의 사유이다.
 그래서 수직적 사고가(A-A'-A''...,) 깊이 있게 심성을 만들어주며, 깊이 갈수록 필터로 먼지를 거르는 것처럼 마음의 순수성을 더해 준다면, 수평적 사고(A-B-C...,)는 넓게 생각하게 만들면서 배려와 이해의 넓은 마음으로 만들며, 본질적 사고는 수평적 사고와 수직적 사고가 범할 수 있는 극단적 교만과 이기의 사고를 정화시켜 다시한번 맑게 해주는 사고이다. 이렇게 수직적사고-수평적 사고 – 교만과 이기가 배제 된 사고-본질적 사고의 시스템을 거친 후의 사고 곧 도덕률의‘선’은 참 인간사회를 만들며 밝혀주는 정체성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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