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남열의 "정치꾼들의 시대에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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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남열의 "정치꾼들의 시대에 우리는"

하운 0 115
정치꾼들의 시대에 우리는

김남열

참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참이 되는 시대로 변환 사회. 이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사회 실상이다. 그 참과 기준의 정의를 만드는 것이 사람이며 그 사람에 의하여 결정되어진다.
소위 권력이라는 칼자루만 주어지면 무림의 세계로 만드는 사람들. 그래서 맹주처럼 활동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밑에서 기생하며 살아가는 졸개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하여 굽신 거리거나 아부하며 복종하며 노비가 되는 사람들. 힘의 논리로 참과 거짓이 만들어지면서 일어나는 참상이다.

이 사회는 ‘꾼’ 의 세계이다. 마치 영화에서 노름판이나 도박판에서 있을 법한 영화 같은 세상이다.
꾼이란, 타인을 속이는 사람을 말한다.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주나 기능을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타인을 속이거나 현혹하여 자신이 획득하고자 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며, 그 자신의 뱃속을 채우기 위하여 타인은 그의 목적 추구의 수단이나 동원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꾼’의 속성이다. 사기꾼, 야바이꾼, 협잡꾼 등이 모두 이에 해당되는 부류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타인이 짓밟히거나 희생되는 것은 관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서 진정한 애국이나, 민족의식이나, 봉사니 하는 것은 그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유희 도구들이다.
아니, 100% 왜곡하며 사람들의 영혼마저 착취한다.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사명은 없다. 오직 그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 그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관이며 가치관이다. 법률, 도덕, 관습 그리고 그것이 존재하는 나라가 망해가도 자신의 뱃속만 기름지게 하면 된 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사회의 악이며, 사회를 좀먹는 좀비와 같은, 바이러스와 같은 존재이다. 헌데, 태치 되어야 할 좀비와 바이러스가 현재 이 세계는 창궐하고 있다. 보이는 좀비와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으나 스스로가 좀비나 바이러스가 되는 것이 평안이라 여기며 자처할 때는 막을 수가 없다. 이러한 좀비와 바이러스 같은 존재가 민족을 구렁텅이로 몰아가며 오히려 사회의 혼란을 가중 시키는 데도 지성인이나 소위 의식 있는 민중들은 그것을 ‘파괴’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방관하며 그들도 공범이 되고 있다.

더불어 이와 같히 사냥꾼의 토끼몰이 하는 사람들처럼 이구동성으로 박수하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소위 박수부대이다. 무엇이나 얻어먹을 것이 없느냐 싶어 함께하려는 존재들이며, 아무런 의식 없이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사람들과 같은 존재들도 부지기수 이다. 이들에 의하여 이 사회가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실상 이들에 의하여 우리 사회가 굴러가고 있다는 양상을 하고 있다. 너무나 참담한 현실이며, 너무나 어두운 현실이다. 특히 정치하는 곳에서 이러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물은 고이며 썩는다. 그 물이 썩고 있음에도, 썩게 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그 오물과 같은 현상을 모시는 우상숭배자들이 판을 이루고 있다. 자신의 ‘티는 말하지 않으면서 오물덩어리를 숭배하는 사람들’ 바로 이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모든 사물을 정확하게 직시하는 눈을 망각한 상태. 아니면 개개인의 이득을 위하여 방관하는 상태 이것이 ‘꾼’들의 세계에서 사람들이 행동하는 모습이다. 무엇이 진리이며 진리가 아닌가 하는 것이 혼동이 된 시대. 사람들의 감각이 집나간 시대. 이성적 참다운 감각이 없으니 짐승과 같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시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일들이란 다름 아닌, 선거철만 되면 남발하는 ‘군’들의 공약이나 약속들이다. 공수표 남발이다. 그 공수표 남발은 예사이며 자연스럽고 진실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문제이지만, 당연시 하며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문제이다. 자신의 영혼이 어디갔는지도 모른다. 결국 공수표 남발하는 사람들에게 배신당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날름 받아먹는다. 받아먹으면서 간이나 쓸게도 없는 존재가 된다. 이러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선거는 ‘꾼’들에 의한 정치이니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정치라고 말할 수가 없다.
선거는 국민을 위하여 봉사하겠다는 사람들의 다짐이며, 국민의 일꾼이 되겠다는 진취적인 모티브(motive)를 주는 사건이다. 그런데 봉사와 일군에 대한 다짐이 선거가 끝나면 국민은 ‘팽’ 당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 문제이다.
흔히, 정치를 훌륭한 직업군으로 분류하고, 국민을 위하여 진심으로 봉사하는 사람을 정치꾼과 구별하여 정치가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치를 하는 모든 사람을 정치가로 보편적으로 말하지만, 영어에서는 정치가를 ‘Statesman’ 라고 하고, 정치꾼을 ‘Politician’이라고 구분한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영국의 콜린 클라크(Colin Grant Clark)는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고 정의한 바 있다. 또, 프랑스 대통령을 지낸 조르주 퐁피두(Georges Pompidou)는 “정치가는 나라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이를 말하고, 정치꾼은 자신을 위해 나라를 이용하는 이를 말한다.”고 정의하였다.

자기의 이기적 마음을 채우려고 하지 않은 정치가가 많을수록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이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살맛나는 세상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며 마치 자신의 음식을 먹는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하여 이익에 집착하여 패거리를 만들어 정권욕에만 불타는 사람이 많으면 그들이 조직폭력배나 다름없으니 ‘무슨 파니’ 하여 세상은 더욱 혼탁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정치구조는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구조가 아니다. 판을 짜고는 그들 조직의 이득이 안 된다 싶으면 손바닥 뒤집듯이 새로운 판을 잔다. 조직의 이름도 쉽게 바꾸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무슨 조직 폭력배도 아니면서 폭력배보다 더한 행동하는 것을 보여 준다. 그들의 권력은 무기이다. 아니 망치나 연장이다. ‘꾼’의 힘이 되는 것이 권력으로 ‘속이는’ 것이 생각이라면 망치나 연장은 물질적인 것으로 합당하게 사용 할 수 있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정치꾼들이 되어서 가짜 정치가가 정치군이 되어 판을 치고 있다. 이러니 이런 생각에서 무슨 봉사니, 희생이니, 위한다는 마음이 있겠는가? 애초부터 잿밥에 관심 있는 자들이다.

달콤한 말로 사람을 희롱할 수 있으나 그런 모습은 성범죄자나 다름없는 모습이며, 공약을 망치와 연장으로 사용하면 조직폭력배나 다름이 없으니 이것이 현실이라면 하루바삐 국민들은 바로 직시해야 한다. 또다시 외세 침략에 의하여 역사적으로 과거에 종살이 하듯 제1, 제2의 종살이 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아니 지금도 ‘꾼’들의 노예가 되는 것을 보면, 혹은 기업들이 외국 자본 세력에 의햐여 경제적 침탈을 당하는 것을 보면 미래에 조짐들이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른 정치, 국민의 정치 떠들어 봤자 “소귀에 경 읽기” 이며 지나가던 개도 웃는다. 국민들이 바로 직시하지 않으면 여전히 ‘정치꾼’들은 판을 치며 ‘도박판, 술판, 아사리판...처럼 그들의 판을 만들어 갈 것이다.
잠자는 국민이 눈을 비비고 위기의 현실을 바로 직시할 수 있는 시대는 언제 올는지, ‘그 놈이 그 놈이네’ 하는 시대가 언제 사라질는지. 그렇지 않으면 당대에 우리에게 시련은 게속 이어질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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