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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소개

한 화음으로 엮어진 한국의 서정시 5집 전질/깊은샘

정석영 | 2017-03-03 18:40:37

조회수 : 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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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화음으로 엮어진
              한국서정시순례 전5권ㅡ정석영 편저

          1. 각 권 서문의 요지
                 
민족문학의 자화상-- 문학평론가 김남석
이 시전집은 겨레의 영혼이 담겨진 민족 문학정신의 불사조가 되어진다. 이것이 앞으로 이어질 우리의 문학터전에 창작시의 보람진 씨앗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아름다운 사랑의 선율 -- 시인 조병화
여기, 여러 시인들의 사랑의 노래가 강줄기처럼 이어져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집을 통하여 하나의 화음을 이룬 아름다운 사랑의 선율들을 감상하면서 각자 각자의 가슴 속에 그러한 사랑의 빛을 더해 가리라 생각합니다.

한 화음을 이룬 시집이-- 시조인 장순하
전체 5권 10부의 구성으로 각 부마다 유사한 이미지의 그룹으로 이어져,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로 전개되어 가도록 엮어져있다. 이렇게 한 화음을 이룬 시집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하며 편자의 노고를 크게 치하하는 바이다.

사념의 별빛을 모아 -- 아동문학가 김종상
우리는 문화나 정신이 뿌리를 잃고 표류하고 있다. 그래서 향수는 짙고, 삶에 대한 애증도 깊어만 간다. 이러한 때에 맞춰 우리 서정시를 정리하여 묶은 거정 스님의 깊은 속마음을 헤아려 낡아간 우리의 서정을 되살려 우리 모두의 원역을 밝힐 한 송이 꽃으로 새롭게 피어나길 바라는 바이다.

한 편의 시정으로--엮은이 정석영
시는 문학의 정수요, 예술의 꽃입니다. 슬픔은 빚어내면 아름다움으로 승화하고 눈물도 다독이면 보배구슬로 꿰어집니다. 꽃은 늘 보아도 아름답고 시는 오래 새길수록 맛이 나고 향기가 짙어집니다. 그러한 시의 기능으로 우리의 정서를 되살려내야 한다는 의지와 염원으로 이 시집을 엮어내게 되었습니다.


                  2. 일 러 두 기

  머리로 아는 것이 이성이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감성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감성과 이성의 조화는 인․의․신․예(仁義信禮)의 바탕이 되고, 그것은 다시 인간완성의 지혜로 나아가는 길이며, 또한 우리 모두의 지순한 본래적 체성이다.

  우리는 지금 감성의 둔화로 인하여 날로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고, 지혜의 결여로 말미암아 이미 인간으로서의 길과 삶의 방향을 미혹해 버린게 아닌지 모르겠다.

  여기 이처럼 맑고 잔잔한 詩情(시정)을 통하여 우리들 마음속의 그 지순한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모든 인간다움의 바탕을 이루는 길이며 그것이 또한 시의 본래적 기능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좋은 시로써 아름다운 정서를 가꾸어 갈 수 있고, 그러한 시의 기능으로 인간성숙의 길로 이어져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시집은 지금까지의 다른 시선집과는 달리, 시와 시조, 동시와 선시 등 시 전체의 유형을 한자리에 모아 한 화음으로 기승전결의 체계를 지워낸 서정시선집이다. 맑고 순수한 서정과 예지의 시편을 중심으로 뽑아 모았고, 익히 알려진 시는 넣지 않기로 했으나 다소 들어간 경우가 있다. 작품 상호간의 흐름을 이어주는 데 주안점을 두었고, 같은 제목의 시가 여러 편일 경우는 구분하여 부를 새로운 제목을 붙이고 원제를 밝혀 두었다. 연작시는 편집 순서에 따라 새로운 순번을 매겼으니 양지하시기 바란다.
 
         
          3. 각 권의 제명과 해제
   

제 1집  달이 지고 해가 뜨고
                    1 부 이 강토에 어린 숨결
                    2 부 달아달아 밝은 달아 

 <1부 해제>
            서 시

여기, 산좋고 물맑은 마을
오오랜 하늘 아래
가지마다 치렁치렁 세월을 받쳐들고 선
우리네 동구나무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나니

그 인고의 세월만큼
가지 뻗고 뿌릴 내려
저 청청한 하늘자락

그러나 그 하늘마저 등치 속에 동그라니
나이테로 감아 넣고, 언제나 그렇게
말없이 살아가는 동구나무……

나의 삶도 그 속에 예쁜 금하나 긋고 싶다


<2부 해제>
          저기 저기 저 달 속에

  이 부는 오랜세월 묻혀있던 농가월령가를 뽑아옮겨 '달아달아 밝은 달아'라는 재목으로 고쳐낸 것이다. 우리 선조들의 농경생활상과 전래풍속도가 파노라마하게 그려진 대-서사극이 아닐 수 없다. 우리들에게 요즘 많이도 퇴색돼버린 고향에의 정서와 전통사상의 뿌리를 되살려낼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관심 속에 뽑아옮겼다. 가사문학의 가락과 시대적 배경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용은 다소 첨삭하여 아름답게 재구성해 낸 것이다.

          달아달아  밝은달아  이태백이  놀던달아
          저기저기  저달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이러한 소박한 서정으로 노래하며 살았던 우리네 선조들은 둥근달을 쳐다보고 애환을 달래며 꿈을 그리곤 했었는데, 저기 저기 저 달 속에 그러한 선조들의 얼이 담겨있는 것 같아 옷깃을 여미게 된다. 그렇게 힘들여 일하면서도 늘 헐벗고 굶주려야 했던 선조들의 삶이 가슴을 치는가 하면, 한편으론 그분들의 소박한 서정과 그때의 그 평화로운 정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기도 한다.

  가난한 자에게 복이 오나니, 힘들고 어려움 속에서도 별욕심 부리지 않고 담박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생활의 즐거움과 삶의 보람이 훨씬 크게 다가와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보람과 행복은 언제고 떳떳한 땀방울에 정비례하여 다가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새삼 실감하게 되리라 여겨진다.

  우리 겨레의 온화한 정서와 근면성실한 품성은 오랜 농경사를 거쳐 길러져 온 것으로서, 이러한 고전을 통해 농경생활에 뿌리한 우리들의 정서와 사상을 되살려낼 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으로 이 글을 정리한다. 또한 집집마다 마당귀나 베란다에다 한 평의 푸성귀밭을 일구어 농심의 정취를 누려 보셔도 좋으리라. 한 그루 고추나무에서 우주의 질서가 열려오기도 하고, 조그만 옹달샘에서 해와 하늘이 다 담기는 여유와 운치를 누리게도 될 테니까 말이다. 


제 2집 몸 다 뉘인 이 그리움
                    3부 사람의 자식으로
                    4부 꽃초롱에 불 밝히어

<3부 해제>
          감나무 둘레엔 감나무 둘레만큼

  우리는 누구나 어머니가 그리우면 고향이 그려지고, 고향을 그려 가노라면 더욱 그리워지는 어머니의 모습이 둥그런 보름달로 떠오를 것이다. 그래서 서낭당 돌무더긴 어머니의 원을 실어 탑으로 솟아나고, 고개 위로 떠오르는 달을 보아도 어머니를 향한 그리운 정이 삼삼히 피어나곤 하는 것이다.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기기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달파 어리 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은 이 뿐인가 하노라
                            - 정  철 -

  이럴 듯 세월은 내가 철 들 때를 기다려 주지 않고 부모님은 어느날 훌쩍 우리곁을 떠나시는 것이다. 그래서 감나무 둘레엔 감나무 둘레만큼 사과나무 그늘엔 사과나무 그늘만큼 햇살로 그림자로 머무시는 어머니의 영상 - 그 애절한 그리움과 회한의 노래들을 모아 엮었다.


 <4부 해제>
            사랑의 꽃나무로

  사랑이란 저마다의 가슴에 불을 밝혀 제 모습을 드러내고 서로를 확인하며 외로움과 그리움 속에서 세월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그 무엇이 아닌가 싶다.

  꽃은 열흘 동안 피어있는 꽃이 없고 달도 차면 기우듯이 만나서 함께하는 기쁨보다 헤어진 뒤의 슬픔이 더욱 길기도 한가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기다림이 긴긴 나날들이 있어야 했고, 또한 그 꽃진 자리 아무는 동안도 다시 아픔의 긴긴 시간들이 흘러가야 하는, 그 슬픔과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아로새겨진 세월들이 다 사랑이 아닐는지…….
 
  세상에 태어나 어느것 하나 죽지 않을 생명이 없고, 사랑으로 만나 누구하나 헤어지지 않는 이도 없는 법이니, 그래서 피어나는 꽃이 그처럼 곱고 피워내는 사랑 또한 아름다운 건지 모를 일이다.

산숲에 묻어온 연륜 솔빛 서려 가물하고
안으로 다독인 숨결은 새 하늘로 열려 오는데
호심에 젖는 노을은 상기 저리 고울는고

  사랑이란 욕망과 타산이 아닌, 티없는 순수 그것이 아닐는지, 그리고 또 인생을 따라 함께 성장해 가는 영원의 과제가 아닐는지 모르겠다. 여기 실린 시들 모두가 이 두 지주의 가지에서 각기 다른 빛깔의 꽃초롱으로 곱게 불 밝혀 든, 그리하여 커다란 사랑의 꽃나무를 이뤄낸 게 아닌가 싶다,.



제 3집 꽃진 자리 잎이 피어
                5부 구름 너머 고향을 두고
                  6부 송이 송이 피는 꽃은

 <5부 해제>
            순수 그 바탕 위에

  우리 모두는 가슴 밑바닥에 고향에의 그리움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고장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그 한없이 푸근한 부모님의 품안과 아무런 격의 없이 뛰놀며 자라온 티없는 우정 - 그 유년의 그리움이 배어있는 곳이기에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자라면서 배움을 따라, 일자리를 찾아 뿔뿔이 고향을 떠나게 된다. 떠나와서는 늘 고향을 그리다가, 그리면서 살다가 문득 돌아와 본 고향은 그리던 고향만은 어닌 것이다. 그 풋풋했던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버꾸기 제 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 중략 ……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ㅡ정지용ㅡ

  고인의 이런 시에도 인생무상의 서러움이 짙게 깔려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고향을--그 수순의 세계를 그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순수의 마음들을, 그 순수에로 돌아가는 길을 여기 이렇게 꽃밭처럼 엮어 걸었다. 조용히 읽고 감상하며, 또한 그렇게 살아갈 일이다. 진정한 행복과 사랑은, 또 그만한 자유와 평화는 오직 그 순수의 바탕 위에서만이 가꿔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 6부 해제>
            그 아픔 뼈속에 살아

피고 지는 꽃들 따라 가신 이들 정이 어려
지는 해 피는 놀도 벌로 아니 여겨저라
한 핏줄 이어진 애환이 별로 총총 뜨는 것을

앞뒷들 농사짓고 산자락에 뜸을 모아
아들딸 나기르며 초가지붕 박 올리어
둥그런 만월이 뜨면 송이송이 곱던 사연

허기진 배 채우려고 산열매와 풀뿌리며
가슴 파 자식 묻고 새벽산을 내려오던
그 아픔 뼈속에 살아 꽃이 되어 피는 건가

  이 이슬 같고 눈물 같은, 도라지꽃 꽃빛 같은,
어쩌면 그처럼 정겹고 눈물겨운 꽃노래들을 노래
의 결을 따라 모아 엮었다.

제 4집 가슴마다 총총 별이 돋기로
                        7부 방울물이 모여서
                        8부 뿌리 깊은 그 샘물은

 <7부 해제>
            아기 옹달샘의 물길여정

  깊은 산속 풀숲 사이 '조용히 하늘을 우러르는 눈빛' 아기 옹달샘 하나가 태어났습니다. 풀꽃들은 신기한 듯 고개를 숙여 들이다보고 있고, 산새들도 포로롱 날아와 날개짓을 익히곤 하는 고운 나날들이 연이어 지나갔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아기 옹달샘은 조올졸 실개울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흘러내리던 실개울이 이젠 제법 돌돌돌 노래까지 곧잘 부르는 산골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산골물은 구름배 타고 한나절을 건너기도 하고, 꽃이파리 하나 띄우고 하루내내 달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날이 가고 달이 바뀌는 동안, 개울물은 쉬지 않고 다시 동그란 연못으로, 파아란 호수로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거기서는 오래오래 힘을 모으고 마음을 키워 갔습니다. 호수는 마침내 하늘을 가득 담아놓고 구름까지 둥둥 띄워두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동안 봄이 가고 여름이 왔습니다. 

  드디어 오랫동안 호수로 모여 있던 물줄기들은 다시 온 들녘의 논밭들을 향해 흘러 들어갔습니다. 흘러가면서 쑥부쟁이며 민들레 뿌리에도 가는 물줄기를 이어주는 일을 잊지 않았습니다. 여름내 땡볕 아래서 푸성귀를 가꾸고 낟알을 익혀 내었습니다. 그러고는 가을이 올 무렵부터 물줄기들은 다시 시내로, 강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골골마다 흘러내린 개울물들이, 들녘마다 거쳐나온 물줄기들이 모두 함께 강물로 만났습니다. 아득히 수백리 길을 흘러 내려온 강물은 마치 싸움터에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장수처럼 느긋해져 있었습니다. 느긋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강물이 드디어 바다에 잇닿은 하구에 이르러서는 거의 흐름을 멈추고 질펀하게 깔려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안으로 안으로만 흐르고 있는 듯 싶었습니다. 차츰 강물은 어두운 바다 밑으로 빨려 들어갔었나 봅니다. 이윽고 갈매기들의 무도회가 벌어진 바다--아득한 수평선 위로 불그런 아침해가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8부 해제>
        쪽빛 하늘이 고울 때

삶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행복은 어떤 거고 인생의 종착지는 그 어딘지……

  억조창생의 삶이 천태만상으로 나눠질지라도 그 가닥을 잡아 보면 크게 두 가지 방향이 있을 뿐이니, 하나는 명리추구의 길이요. 또 하나는 인간성숙의 길인 것이다.

아름다운 꽃들은 피었다 지고
무성하던 잎새마저 모두 떨어지나니
앙상한 가지 새로 쪽빛 하늘이 고울 때
숲 사이로 하얀 눈썹달 같은 옛길이 트이리니

  여기 묶인 작품은 대개가 엄부렁한 지엽들을 잘라 버리고 속심 등걸만 남은 정금 같은 시편들이다. 인생과 우주, 삶과 죽음…… 그 모두를 존재론적으로 조명해 보는 비수같은 예지의 칼날들이 아닐까 싶다.



제 5집 외로 밝은 저 빛자리
                      9난향에 그 산향에
                      10부 산숲에 꿈을 묻고

 <9부 해제>
        소소한 저 바람소리

  산은 항시 마음을 열어놓고 텅 빈 가슴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작은 산새 한 마리, 풀꽃 한 송이까지 그 품안에 안겨 제 모습, 제 소리를 키워가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더러는 우거진 숲그늘 아래 조그맣게 제 자리를 잡고 조용히 하늘을 우러르는 난의 청아(淸雅)한 눈빛이 있어서 또한 좋다. 조촐하면서도 초라하지 않고 의연하면서도 함께 어울릴 줄도 아는 너그러움이 있어 더욱 좋다. 나도 청고(淸高)의 뜻을 가꾸는 한 포기의 난이고 싶다. 가슴을 열어놓고 살아가는 말없는 산이고 싶다.

훌훌이 떠났다도 다시 오면 옛정 같은
넉넉한 그 품안에 감아 안긴 산자락 속은
어머니 숨결이던가 소소한 저 바람 소리

 꼭 어느 산이 아니더라도 내가 살았던 곳은, 그것도 어렵게 혼자서 산 데는 더욱 그러한 정이 깊다. 어쩌다 시정(市井)에 나가 며칠 머물기라도 할 때면 아슴한 먼 시야로 거무스름한 첩첩 산빛이 들어올라치면 어쩌지 못하는 아련한 향수에 흠씬 젖기도 한다.

  그러한 산의 품안에 안겨, 또 그러한 난의 향훈에 젖어서 이부를 편성했다. 우리의 강산에 대한 애정을, 또한 선인들의 지개와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0부 해제>
          길을 알고 보면

  길을 알고 보면― 아는 이를 의지하면 선(禪)만큼 쉬운 게 없고, 믿음이 미치고 보면 도(道)만큼 가까운 게 없는 법이다. 선은 말과 생각의 바깥에서 접할 수 있고, 시는 걸러진 마음의 표현이다. 우리는 좋은 시로써 낡은 관념의 찌꺼기와 잡다한 정념(情念)의 가닥들을 씻어낼 수 있고, 선을 통하여 지혜로운 삶으로, 진리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선의 바탕 위에 그러한 시로 빚어진 것이 바로 선시(禪詩)일진대, 그것은 우리 모두가 밟아 가야 할 길―도가 아니겠는가.

  그러한 도를 향한 전진이 틀림없는 인간성숙의 길이고, 또 그런 인간성숙의 길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결국 자아완성(自我完成)이라는 궁극의 경지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악한 사람은 착한 사람으로, 착한 사람은 지혜로운 삶으로 항시 그 차원을 바꿔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테면 어제까는 셋을 얻어 다섯을 모았는데, 오늘은 다섯마저 버려 하나를 이루는, 또 어제의 내가 온전히 죽어버린 자리에 오늘의 나로 새롭게 태어나는 그것이 진정한 전지이요 성숙의 길인 것이다. 인간이 만약 그러한 혁범성성(革凡成聖)의 길을 밟아 인간초탈의 경지를 지향해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연 인간 이하의 자리로 전락하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 어찌 삶의 저 끝이 죽음이 아니고 인생의 종착지가 무덤이 아니라고 누가 감히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선시라 하면 예로부터 이치와 실제가 서로 부합하고 견해와 행리(行履)가 일치를 이룬 선사들이 도의 경지를 읊어낸 시구(詩句)들이다. 여기, 그러한 선시 오십여 편을 엮어 묶었다. 그런데 요즘 특정한 형식을 빌어 말장난 부리는 것으로 선시로 여기는 폐단이 있는데 지양돼 가야 할 일이다. 따라서 선시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또한 도를 구하는 마음으로 경건히 모아졌으면 하는 바램으로 기대해 마지 않는다.


   
  4, 시인과 독자의 편지 중에서

 

한국서정시순례 전질ㅡ저의 졸고에 대한 너무나 크고 아름다운 선물이었습니다.

책이 장정도 활자도 예쁘고 사이즈도 마음에 듭니다. 이런 방대한 시집을 엮어내신

선생님께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원고료를 받는 것 못지 않게 이런 시집에

실리게 된 의미가 더 크고 보람된 일이라 여겨집니다. 시인의 마음이란 산골물이나

풀꽃처럼 맑고 청초한 데 있는 까닭에 좋은 책을 보면 절로 즐거워집니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에 한번 뵐 기회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94.4.12  서울에서  정숙자 올림

 

 오랜 가뭄으로 메마른 봄날, 오랫만에 단비가 촉촉히 내리는 오후.

스님이 보내주신 귀한 책을 읽고 있노라니, 또 출판사에서 전질이 보내져왔네요.

이렇게 방대하고 뜻깊은 역사인 줄을 알지 못했던 것이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참으로 큰일을 하셨습니다. 누군가가 꼭 해야만 할 일을 스님께서 엮어내셨네요.

여러가지 시를 한곳에 모으고 가닥을 지워서  아름다운 화음을 이뤄놓았으니,

보는 이로 하여금 모두 찬탄을 금할 수밖에 없으리라 여겨집니다.

우리 문학의 한 분류인 서정의 맥을 이 5권 전질로 한눈에 조명하게 되었으니,

문학, 특히 서정시에 뜻을 둔 사람이면 누구나 숙독해야 할 자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많은 시들과 시인들, 제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의 다른 목소리들을

한 흐름으로 짜모으기 위해 심혈을 쏟으셨을 스님의 노고에 거듭 고개를 숙입니다.

저 역시 시의 본질은 서정성이라 여기고 감동적인 시를 쓰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육신의 고통과 소멸의 불안을 넘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의 하나가

사유와 창작이라 여기고 있는 저에게 고마우신 뜻으로 마음의 벗을 삼겠습니다.

우연히 스님과 닿은 인연의 끊이 길이길이 남아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저의 집 뜰에 눈부신 신록으로 흠뻑 젖은 봄을 스님께 아름으로 선사해 드립니다.


1994년 4월 12일 부산에서 박권숙 올림.

 

스님, 참으로 큰일을 하셨네요.

그야말로 대작불사를 하신 겁니다.

저녁상 물리고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듣는 꼬마,

달빛을 먹고 달빛을 한줌 먹고 박을 낳는 박꽃,

보리갈이 마치고 재너머 새엄마 얻으러 간 아빠,

긴 면사포에 긴 설움을 가라앉히는 신부..........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마음에서부터

어른들의 뼈속 깊은 한에 이르기까지

한많은 겨레의 일대파노마라입니다.

잊고 살다가 이 글을 보니 십년세월을 뛰어넘어

어제도 오늘도 늘 스님곁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가끔씩 오래전에 신광사에서 몇이 모여서

바루 펴고 새벽밥 먹던 기억이 반짝입니다. 살아가면서

그윽히 간절한 것은 지난 세월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그리움! 살다가 결국 우리는 무엇으로 화하여 남게 될까요?

스님,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1994.9.13. 봉녕사에서 원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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