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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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비빔밥]

요즘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다 보니, 가사분담을 많이 하는 추세인데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런데 우리 세대는, 아직도 가부장적 관념에 사로잡혀, 맞벌이를 하면서도 집안일은 여자가 전담하다시피 하는 집이 많다.

사실 사랑해서 결혼할 때만 해도 손에 물도 안 묻히게 하고, 남자가 집안일도 다 도맡아 하겠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 남자들의 그 말은 진심이다. 다만, 세상이 힘들고 사랑이 좀 식다 보니 어기게 된 것일 뿐.

그러다 보면, 그때부터 부부간의 가사에 대한 밀당이 시작된다. 우리 남자들은 부모님과 선배들을 통해, 가사분담이 여자에게서 남자에게로 어떻게 전수되는지 전해 들어 잘 알고 있다. 한 번 밀리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때부터 남자들의 눈물겨운 저항이 시작된다.

나는 처음부터 백기를 들고 집사람에게 집안일 지휘봉을 맡겼다. 지휘관은 한 명이고, 나는 시키는 대로 따르면 된다. 청소해야 되니 애들 데리고 놀다 오세요 라고 하면 애들과 놀다 오고, 이불 좀 털어주세요 하면 즉시 베란다로 가서 추락 위험을 감수하고 이불을 털어 장롱 속에 넣는다.

밥상 차렸으니 가져가세요 하면 상을 들고 거실로 가고, 빈 그릇은 설거지통에 담아놓으세요 라고 하면 설거지통에 담아놓고, 쓰레기 버리고 오세요 하면 쓰레기를 버리고 온다. 내가 이렇게 지휘관의 지시를 잘 따르니 싸울 일이 별로 없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서로 간의 역할 분담과 사랑인데, 내 항상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주말 아침에는 거의 내가 해결한다. 라면을 끓이거나 비빔밥이 내 전공이다. 비빔밥 한 그릇에 엄마와 장모님, 집사람이 만든 반찬과 내가 한 계란후라이에 참기름까지, 제 잘났다 뽐내지 않고 모두 섞여 잘 비벼지니, 집안 공기가 고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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