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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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혈

[수혈]

무엇이든 처음 할 땐 가슴이 뛰고 서툴겠지만, 사랑을 처음 할 때만큼 혼이 빠져나갈 듯 가슴이 뛰는 것도 드물 것이다. 요즘은 대부분 남녀공학이라 어릴 때부터 남녀가 함께 생활하기에, 그 신비감이나 두근거림이 예전 같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 때 미팅을 한 번 해 봤는데, 서로 부끄러워 공원을 한 바퀴 돌면서도 길 양쪽을 각기 나누어 걸었다. 대학 와서도 첫사랑을 만나 가끔 걸으면 처음엔 몸이 조금 부딪치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움찔했었고,

손을 잡으려 몇 차례 시도하다 결국 손을 잡고 걷게 된 날은, 온몸이 전율에 떨면서 내 혼이 빠져나가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그것은 마치, 내가 대형 사고를 당해 내 모든 피가 빠져나가 그녀가 수혈을 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날부터 나만 생각하던 것들이 그녀에 대한 생각들로 바뀌었고, 나를 위한 생각들이 그녀를 위한 생각들로 바뀌었고, 고독한 영혼에서 그녀와 함께 꿈을 꾸는 행복한 영혼으로 채워지기 시작하였다. 요즘도 가끔 이성과 함께 있으면 멍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아마 치매 초기증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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