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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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림

[나의 그림]

완연해진 가을인데 햇볕은 아직 따가워 좀 움직이니 등줄기로 땀이 줄줄 흐른다. 가을을 관통하는 땀방울에 문득 나를 돌아보니, 아직도 흐르는 땀방울에서 인생의 그림을 그리는 최적의 먹물은 땀이고 붓은 손과 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인생의 도화지와 같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밑그림을 그리는 것은 우리의 손과 발이고, 그렇게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손과 발에 흐르는 땀방울로 도화지에 점점이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가기 때문이다.

내가 막 밑그림을 시작하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그림을 남이 그려주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기도 했고, 어리석게도 남의 물감을 탐하느라 식은땀을 묻히기도 했었다.

그런 부끄러운 과정도 있었지만 나는 대부분의 그림을 나의 손과 발로 서울과 부산을 새벽같이 뛰어다니며 내 등줄기로 흐르는 땀을 원천으로 이마의 굵직한 땀방울로 하나하나 멋지게 그려왔다.

이제 내 그림의 여백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이 가을날에도 햇빛을 피하지 않고 내가 그려온 그림을 돌아보니 아직도 등줄기로 나의 물감이 흥건히 고이고 있고, 나는 이제 마지막 마무리를 위하여 손발에 땀을 적시고 있다.

-나동수 수필집 “시와 당신의 이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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