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고절

홈 > 커뮤니티 > 시인의 편지
시인의 편지
 
시인이 쓰는 편지...예쁘게 꾸며 주세요.

오상고절

[오상고절]

겨울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고 오늘도 나는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선다. 버스 정류장까지 100미터 남짓, 찬바람에 손을 주머니에 넣고 몸을 조금 숙인다. 정류장에 도착하여 버스를 기다리는데 정류장 뒤 화단 아래 떨어져 있는 낙엽들이 바람에 날려 쇳소리를 내고 있다.

낙엽들도 추위를 타는지 갑작스런 추위에 사람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 웅크리고 있는데 바람은 그것을 보고 그냥 가지 않고 이리저리 낙엽을 굴리며 쇳소리가 나게 만드니 끈 떨어진 낙엽들은 더욱 처량해진다.

그래도 고개를 들어 화단을 보는데 평소 아주 밝은 노란색이던 국화가 하얀 미소를 머금고 있다. 뭔가 싶어 자세히 보니 새하얀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은 것이다. 서리가 내릴 정도로 추운 날씨인데 국화는 기죽지 않고 여전히 보풀보풀하다.

절개는 고사하고 돈과 권력에 웃음을 파는 세상의 대로 옆 버스정류장에서, 엄동설한 겨울의 차가운 심술조차 그의 황금빛 미소를 더 아름답게 만들고 절개를 드높이는 한낱 소품이 되어버렸다.

하얗게 서리 내린 노란 국화가 최악의 상황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찬바람을 맞으며 웃고 있으니, 요즘 세상에 무엇이 절개고 무엇이 변절인지 모르겠지만 나 아직 돈과 권력에 비굴하지 않고 웃음을 판 적 없다 생각하니 절로 어깨가 펴진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