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꾼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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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0 07:24
얼마 전 살던 아파트 앞에는 작은 공원과 함께 어린이 놀이터가 있었다. 그 놀이터에는 제법 큰 미끄럼틀이 있고, 그 미끄럼틀 위에는 2단으로 성처럼 꾸며진 집이 지어져 있었는데 그 집에서 밤마다 시끄러운 소리가 났었다.
그 미끄럼틀 위 성은, 어린아이들이 궁전처럼 놀 수 있게 만들어둔 것인데, 해가 져 아이들이 집에 가고 어두워지면, 거기에 청소년들이 둥지를 튼다. 그런데 그 둥지가 묘하게 가로등이나 달빛이 들지 않아 밖에서는 둥지 안을 볼 수가 없다.
여름밤만 되면 청소년들이 울기도 하면서 하도 시끄럽게 하고 가끔 말해도 듣지 않아, 어느 날 내가 술 먹은 김에 그 둥지에 쳐들어가 누워 뻗어버렸다. 그대로 잠들었던 것 같은데 자정이 넘어 애들이 수위 아저씨를 불러와 나를 깨우는 것이었다.
정신없이 일어나 사과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다행히 아무 이상은 없었다. 지갑도 그대로고 몸 아픈 곳도 없는 것을 보니, 우리 동네 놀이터 청소년들은 아주 착한 것 같다. 그 이후론 좀 시끄러워도 이해하기로 했다.
어쩌면 그들이 그 옛날 골목길이나 놀이터의 청춘들일 것이다. 요즘은 워낙 좋은 데이트 장소가 많지만 예전엔 대부분 여자 친구를 데려다주면서 집 근처 으슥한 골목길이나 놀이터가 밀회의 장소였고, 그런 곳엔 으레 성숙한 달이 부끄러워 실눈을 뜨고, 호기심 많은 별은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시소는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어쩌면 나도 그날 구경꾼 중 하나였을 것이다.